1998년 6월, 원로 천문학자 이시우(75) 서울대 명예교수는
정년을 5년 남기고 교수직을 사퇴했다. 후배들 자리를 위한 것도 있었지만,
'출가'를 염두에 뒀다. 그는 "교양과목인 '인간과 우주'를 가르치다가
'금강경'을 읽고 불교에 심취하게 됐다"며
"별들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이치가 불교의 연기법에 딱 들어맞더라.
우주 법계를 다루는 천문학은 불법(佛法)에 가장 가깝다"고 했다.
하지만 수행을 본격적으로 하려고 들어간 선방에서 그는 크게 실망했다.
권위적인 풍토와 억압적 분위기는 일체의 권위를 부정하라는 선불교 풍토와도 떨어져 있었다.
절망을 챙겨 돌아온 그는 대신 '학문' 수행에 매진했다.
독학으로 불교 서적을 파고들어
'천문학자와 붓다의 대화'
'천문학자, 우주에서 붓다를 찾다'
'천문학자가 풀어낸 금강경의 비밀' 등
천문학적 시각에서 불교를 해석하는 책을 잇따라 펴냈다.
이 교수가 이번에는 '직지(直指)'에 도전했다.
직지심체요절을 번역·해석한 '직지, 길을 가리키다'(민족사)를 펴낸 그는
10일 간담회에서 "직지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썼다"고 했다.
직지에 대한 본격적인 해설서는 처음.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는 그동안 문화재적 가치가 많이 강조됐지만,
불교사상적으로는 제대로 조명된 적이 없었다. 직지는 고려 말 백운(白雲·1299~1375) 화상이
부처님과 조사들이 마음의 본체를 바로 가리켜 보인 설법의 중요한 부분만을 집어내 기록한 책.
석가모니불 등 '일곱 부처(七佛)'로 시작해,
달마(達磨) 대사 등 조사(祖師) 스님 28명,
중국의 선사(禪師) 110명 등 145명의 가르침 가운데 핵심을 가려 뽑았다.
이 교수의 책은 직지를 '세상 만물은 서로 연결돼 있으며
네가 있기 때문에 내가 있다'는 연기론(緣起論),
즉 인연을 키워드로 풀어낸 것이 특징.
선(禪)을 논리적으로 해석해 부처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현대사회에 적용할 수 있을지 설명했다. 그는 "선종의 조사나
선사들이 남긴 언어는 신비적 경향을 띠고 논리적 해석을 금기로 여긴다.
무엇이든 신비화하고 초월화하는 것은
비논리적인 것을 절대 권위로 치장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연기는 주고받음의 관계예요.
가족, 사회제도, 자연, 태양계 모두가 서로 묶이고 얽혀 있습니다.
행복 뒤에는 불행이 붙어 있고, 고통 속에도 진리와 기쁨이 있어요.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데
어느 하나에 집착하는 건 어리석죠." 이 교수는 "오늘날 불교는 집착심을 심어줬다.
행복만 추구하는 종교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라며 "
고통 속에도 진리가 숨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