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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4:12~24 큰 잔치 비유
결혼식장이나 호텔이나 뷔페식당에 가면, 먹을 것이 산더미처럼 차려져 있는데,
구약 제사도 그렇다. 제사도 먹는 것이다. 성경은 믿음을 먹는 것으로 비유한다.
먼저 번제는,
소나 양을 완전히 태우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헌신을 의미한다. 공생애 시작 후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을 드리시고 또한 십자가에서 자신을 온전히 완전히 드리셨다. 그러므로 번제는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심이 된다.
레1: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번제는 먹는 것이 아니고, 온전히 다 태워 드리는 연료 땔감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소제가 있다.
소제는 밀가루같이 고운 가루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놓아 굽는 것인데, 빵이나 과자같은 것이다. 소제는 화덕에서 굽거나, 철판에 부치거나, 냄비에서 삶아내는데, 소제에는 소금이 들어간다. 짭짤한 비스켓 맛이 난다. 소제는 감사제로 지극히 거룩한 것이다.
레2:10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신기한 것은 소제는 번제같이 다 태우는 것이 아니라, 한 줌만 태우고, 나머지는 제사장이 먹는다.
그런데 믿음이란 무엇인가. 십자가에서 한 줌 가루처럼 소제로 바쳐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도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다. 곧 한 줌 태운 가루로 말미암아, 태우지 아니한 나머지 가루들도 다 거룩함을 받는 것이다.
롬11: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오직 믿음으로’가 곧 소제이다.
또한 화목제가 있는데,
화목제는 모든 내장과 꺼풀과 기름과 콩팥을 떼내서 다 번제물 위에 태우는 것인데, 내장을 제외하고 화목제 고기는 소제와 같이 먹는데, 꿀과 같은 유교물도 섞어 먹는다.
레7:12~13 만일 그것을 감사함으로 드리려면 기름 섞은 무교병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를 그 감사제물과 함께 드리고 또 유교병을 화목제의 감사제물과 함께 그 예물로 드리되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 돌릴지니라
화목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한 것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런데 화목제는 그 날에 다 먹되 적어도 삼일 안에 다 먹어야 한다.
레7:15~17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그러나 그의 예물의 제물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것이면 그 제물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그 제물의 고기가 셋째 날까지 남았으면 불사를지니 만일 그 화목제물의 고기를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되지 못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그 죄를 짊어지리라
화목제물을 삼일 안에 다 먹으라는 것은 아마도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만 유효하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또한 속죄제 제물이 있는데,
속죄제물은 죄인의 죄가 짐승에게 전가된 것으로, 내 죄를 대신 짊어진 짐승이 죄값을 받아 죽은 것이므로, 그 고기에 접촉하는 자는 거룩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복음은 예수께서 대속물로 대신 죄값을 받으신 것을 말한다.
롬4:25~5:1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또한 속건제라는 것이 있는데,
속건제는 속죄제와 비슷하지만, 성물 곧 하나님의 물건이나 또는 이웃에게 범죄한 죄을 대속하는 제물이다. 속건제는 속죄제와 똑같이 먹는다.
또한 전제라는 것이 있는데,
다른 제사에 포도주를 제물에 부어서 같이 드리는 것이다.
민15:5~7 번제나 다른 제사로 드리는 제물이 어린 양이면 전제로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준비할 것이요 숫양이면 소제로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삼분의 일 힌을 섞어 준비하고 전제로 포도주 삼분의 일 힌을 드려 여호와 앞에 향기롭게 할 것이요
마지막으로 대속죄일이라고 하여, 제사장 자신으로부터 회막과 백성들 모두가 한 번에 몽땅 제사로 사함 받는 제사가 있는데, 이 날은 대제사장 한 사람만 택함을 받고, 목욕후 거룩한 옷을 입고 지성소에 들어가는데, 자신과 자신이 속한 모든 사람이 사함받기 위한 제사를 드리는데, 연기를 뿌리며 들어가되,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 휘장 앞에 피를 뿌림으로 모두가 사함을 받는다. 특별히 염소는 두 마리를 잡아서 한 마리는 제사용으로 잡고, 한 마리는 광야에 보낼 염소로 대기 시켜 둔다. 광야에 가는 염소는 모든 불의를 지고 가는 염소이다. 두 마리 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그러므로 사실 지루하다고 여겨지던 레위기는 영적인 요리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튼 제사가 한꺼번에 드리는 경우,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전제를 보면, 이는 마치 만찬과 비슷한 것이다. 고기와 가루떡 빵종류와 과자와 각종 소 양 염소 어린양 고기에 포도주가 같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제물은 다 먹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 명만 제사를 드리겠는가. 그러므로 제사는 사실 성스러운 제사임과 동시에 만찬이었다. 그러므로 제사물들을 분명히 성도들이나 약자들에게 베풀었을 것이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고, 다윗도 제사를 드리고 많은 먹을 것을 베풀었는데, 히스기야 요시야도 그러했는데, 그때마다 백성들은 죄사함을 받고 또 배불리 먹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제사드리는 날이 사실은 즐거운 잔칫날이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죄를 사함받는 날이며, 동시에 제물을 먹을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운명하시기 전날 밤 유월절 만찬을 하실 때, 성찬식을 베푸시고, 성찬을 자신의 몸과 피로 비유하셨다.
마26:26~29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새언약이라고 하는데, 예수의 피로 맺은 언약이다. 구약도 동물의 피로 언약을 맺었는데, 구약은 돌판에 새겼고,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십자가에서 새기신 언약이다. 예수님은 산돌이라고 하며, 부활한 유일한 분이다.
요한복음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요6:53~5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을 떡으로 비유하셨는데,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성찬식은 예수께서 기념하신 후에 교회에 역사적으로 전승된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이었다. 또한 성경은 부활시 혼인잔치가 있음을 말하고 있는데, 혼인잔치 비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대한 만찬을 준비하시겠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만찬객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먼저 유대인들 중에서 14만4천명이 있고, 이방인은 셀 수가 없다.
계7:5~9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누가 이들을 다 먹이겠는가. 모세가 60만 장정을 두고, 광야에서 누가 이들을 먹일 수 있겠사옵나이까 할 때,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팔이 짧으냐’ 하셨는데, 셀 수 없이 많은 자들을 천국 혼인잔치 때 먹이실 것이다.
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 예수님은 만찬을 베풀 때, 가족이나 형제나 부한 이웃보다도 가난하고 몸 불편한 자들을 청하라고 하셨다. 그들은 갚을 것이 없으므로, 부활 시에 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에게 꾸어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꾸어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15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 그런데 오늘 본문은 14장 초반과 이어지는 본문인데, 예수님을 욕보이려고 데려온 수종병자가 있었다. 그런데 이 병자는 전화위복이 되어, 고침을 받았다. 분명히 같이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때 예수께서 몸 불편한 자를 초청해서 베풀면 부활시 복을 받을 것이란 말을 듣고, 함께 먹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지금 자기들을 가리켜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사람의 말은 자기들이 천국 백성이라는 암시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정작 천국잔치 곧 예수초청 큰잔치에 의외로 그런 일이 적을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 이는 이미 땅에서부터 있는 일인데, 복음의 천국 잔치에 초청을 하지만, 나는 밭을 사서 밭 때문에 신경이 쓰여 예수를 믿을 수 없소. 나중에 믿겠소. 날 양해해주시오.
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 또 어떤 다른 사람은 복음의 천국잔치에 초청을 했으나, 나는 소를 샀으니 소가 일을 잘하나 못하나를 시험해야 하기 때문에 교회에 못가오, 날 양해해 주시오 말하는 것이다.
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 또 다른 사람은 장가들었기 때문에 교회에 못 간다는 것이다. 장가들었으면 부부끼리 같이 나오면 되는데, 핑계를 대는 것이다.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 그러자 예수큰잔치를 준비한 주인이 화가 나서,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맹인들과 저는 자를 데려오라고 말한다.
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 그러자 주인은 이성을 잃은 듯이 아무나 강권하여 길에서 산울타리에서 데려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론 교회가 시장바닥 같은 것이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처음에 초청받은 자들은 누구인가.
아마도 성경의 문맥상,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놀랍게도 유대인들 중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극도로 적다. 그것을 바울도 그렇게 말하였는데, 다만 바울은 모든 유대인들이 다 예수를 믿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롬11:13~20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그러므로 어쩌면 계시록의 14만4천이 실수인지도 모른다. 이단들은 자신들이 14만4천이라고 한다. 아무튼 성경을 보면, 율법과 선지자가 복음의 거푸집 역할을 하였는데, 곧 이스라엘이 그러하였다. 그런데 나중에는 복음을 믿은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이 예수를 믿도록 하는 거푸집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롬11: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마태복음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는데, 예수께서 말씀하신 떡과 구약의 제사는 사실 영적인 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예수를 믿어 죄사함과 부활과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다.
행13:37~39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어떤 목회자가 보니 구약에서는 주로 외면적인 것 곧 잘먹고 잘사는 것을 복으로 묘사하는데, 신약에서 보면, 내면적인 것 곧 영적인 것을 취하는 것을 복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신약도 구약의 복이 포함되어 있고, 구약도 신약의 복이 포함되어 있다. 현대에 들어서 현대인들은 육욕을 정신없이 채우고 있지만, 심령이 가난한 것을 모른다. 대체로 이스라엘처럼 등 외적으로 잘 되었을지라도 등 따숩고 배부르게 되면 죄로 무너지고 넘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말씀의 귀중함, 복음의 귀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목회자가 보니 죄를 책망을 하지 않으니까, 복음이 소중한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율법으로 죄를 책망받지도 않고, 양심적으로 살지도 않고, 율법을 지키지도 않는데, 어떻게 복음이 귀중한 줄 알겠냐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결을 지키지 못하여 온 결과일 수 있다. 성결이 깨질 때, 복음이 희석된다. 복음이 희석됨으로 죄에 대한 각성도 약해진다.
그러나 한결같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다른 것은 변할지 모르나, 심지어 율법도 천지가 없어질 때 없어진다고 하였으나 하나님의 사랑은 없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의 공급하심이 끊어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초청 큰잔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예수 십자가의 사랑만이, 복음만이 인간의 증오와 거짓과 상처와 아픔을 치유한다. 장발장을 고친 것은 무자비한 형사의 추적이 아니라 신부의 사랑이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십자가의 사랑 복음으로 거듭나는 것뿐이다. 이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선물이다. 물론 원칙대로 너그럽게 사랑하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 기준이 무너지고 원칙이 무너져서 사랑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식은 것이다.
마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안타까운 것은 성경이 말하는 사랑을 왜곡하는 것이다. 동성애도 사랑이라고 하고 사랑을 왜곡하는 것이다.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과 관용은 같은 것이 아니다. 사랑은 잘못되어 가고 있는 자에게 겸손하며 온유하게 그 사실을 얘기해 주는 것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이 기차를 잘못 탔는데 그 때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자비로운 일은, 그가 진지하다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솔직하고도 설득력 있게 그의 잘못을 알려주고, 어디서 올바로 차를 탈 수 있는가 말해 주는 것이다. (브리안 메이든)
그러므로 큰 잔치에 초대하여 다같이 사랑스럽고 정결한 모습으로 혼인 큰잔치에 들어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