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함께 다구리라도 시작할 줄 예상됐던
3학년 상대측 학생 한 명이
이미 안면을 몇 대나 맞은
자기의 친구를 오히려 말리고 나섰다.
-야, 그냥 그만 하자,,,
그런 식으로 친구를 잡고, 물러나 주었다.
아마,싸움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도 얼른 그 자리를 피해야 했다.
자리로 돌아가 서둘러서, 책을 챙기고 도서관을 빠져 나왔다,
나름, 소년들이 전투를 치르고 났으니
작은 승리의 포만감이 몰려왔다.
풍문여고 골목 분식점에서 라면을 사 먹으며
우린 다음에도 이런 일엔 이렇게 대응하자는 의견과
싸움은 안 된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물론 싸움은 안 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은
반듯한 태희였다.
그런 태희가 싸우는 장면을 목격한 건
3학년 때였다.
그와 나는 반이 갈렸고, 그가 있는 반은 복도 끝에 있었으며
우연인지, 그쪽 복도 구석 향의 반에는
불량 써클의 아이들이 더 많이 배정돼 있었다.
어느 날인지, 복도 끝반의 교실 앞 복도엔 구경꾼이 자욱했고
난 무슨 일인가 잘 가지 않던 그쪽으로 걸어가
목을 빼고 안을 들여다봤다.
책걸상은 전부 링의 그것처럼 아무렇게나 바깥으로 치워져 있었고
상대측 학생은 척 봐도 불량 써클의 아이였다.
둘레에서 벽을 쳐주고 있는 써클의 동료 아이들이 그 증거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같이 싸우고 있는 아이는 태희였다.
태희잖아....?
난 어지간히 놀랐다
태희와 나는 반이 갈리고,
독서 토론회를 내가 탈퇴한 다음으론
웬지 서먹해졌다.
자주 만날 일을 만들지 않아서
나도 태희를 간만에 본 것이다.
태희가 싸움을 다 하네...
태희는 태권도 유단자였고,
평행봉이나 철봉을 쉽게 하던 그 애의 몸태는
그냥 보기에도 단단했다.
미간에 내천자를 그리며,
태희는 걸상을 방패처럼 가슴께에 들고 있었다.
태희가 화가 났을 때 하는 표정이었다.
교복바지를 양아치스럽게 꽉 조이게 줄여서 입고
키가 제법 컸던 상대방 아이는
살기가 가득 찬, 살벌한 욕을 뿌리며 눈이 뒤집혀 있었다.
그 녀석은 겨울난로 옆에 두는 쇠꼬챙이를 휘둘렀다.
조개석탄을 쑤시는 1미터 정도 되는 공사장 철근인데
겨울 난로가 들어오면 함께 모든 반에 비치돼있었다.
당시, 우리 학교 불량한 아이들이 싸움을 하면,
아직 철이 없는 까닭인지
상대가 상하고 불구가 되고
그런 걸 생각하며 싸우질 않았다.
나는 그런 양아치의 어리석음으로
모범생 친구 태희가 혹시 몸이라도 크게 상할까
걱정됐다.
상대는 쇠꼬챙이를 죽어라 휘두르며
태희의 팔뚝과 가슴, 어깨, 머리,
얼굴 따위를 가리지않고 노려댔다.
구경꾼은 늘어나기만 했다.
언제부터 싸움이 시작됐는지
구경꾼의 숫자로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지루하게 대치하는 국면은 이미 아니었다.
무슨 일로 싸움이 났는지 상대는
쇠꼬챙이로 피를 보려 했고,
태희는 욕 한자락 하지 않으며
매우 노한 표정을 짓고는 한일자로 입을 다문 채,
나무 걸상을 양손으로 들고있다가,
나비밴드 모양으로 휘두르며 들어오는
꼬챙이 활개짓을
전부 막아내고 있었다.
내가 봤던 당시의 아이들 싸움 중에서
최고의 장면이었다.
대여섯 번의 쇠꼬챙이 공격을 막다가 태희는 나무 걸상을
상대의 얼굴에 미닫이 문을 밀치듯 들어가 던져주고
바람이 들어,
갑자기 배가 확 불러지는 커텐처럼 거리를 좁힌 후,
정권으로 상대의 인중을 쳤다,
그리고 잇몸에서 피가 나면서도 욕이 끊이지 않는
상대방 아이에게 다시 또 떨어져서
바닥에 떨어진 걸상을 들고
쇠꼬챙이 활개짓을 다시 막아냈다.
살벌하게도 딱,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구경꾼들은 흥분했지만
태희는 흥분하지 않았다,
사뭇, 물속에서 고요하게 정지 잠영을 하는 사람같았다.
다시 그렇게 쇠꼬챙이 공격을 막고 같은 방식으로
걸상을 얼굴에 던져내서 움찔하게 만들고는
담배를 물은 상대에게 다가서 라이터 불을 갖다 대주듯이
또 주먹으로 얼굴 가격만 일발하고
기억대로 하는 무용수처럼 뒷스텝으로 물러났다.
교실의 흔한 싸움처럼 교복을 버리며 뒹굴듯 싸우지 않았다
두려움이 생기도록 만드는 상대방의 긴 흉기 때문에
그래도 멀찍이 거리를 두며 싸울 법도 한데
그건 이미 두려움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태희는 생각할 것이다.
흉기를 드는 걸 평소에도 제일 싫어했으니,
이미 태희는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태희는 교복의 흐트러짐이 평소에도 없는 아이였다.
약간 바랜 색깔의 교복이었는데
그건 검정색의 교복이 살그머니, 풀빛 색깔로 보이게 했었다.
평소 교복엔 주름도 없고, 교복 모자는 불량학생 처럼
삐딱하게 쓰진 않았지만
지루한 모범생처럼 쓰지도 않았다.
육사생도 처럼 오히려 각을 세우고 풍요하게
돋우어서 쓰고 다녔다.
뭐 사실, 교실 바닥에 엉키며 뒹굴듯 싸우는 건
서열이 낮은 아이들끼리 싸울 때였다.
게다가, 흉기를 상대가 놓치고, 만약 태희가 상대와 바닥에 뒹굴며
등을 보였다면
태희는 분명, 둘러친 불량 써클 회원들에게
다구리를 당했을 것이다.
그 당시 자기 동료들이 싸움을 하면,
대개들 말리는 척 다가들어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슬쩍 슬쩍
상대편의 등과 허리를 가격해서,
자기 편의 싸움을 거들어주곤 했었다.
이미, 주변에 호출을 받고 몰려온 불량써클 회원들이 가득한데
그네들에게 등을 내주며 교실 바닥을 뒹구는 건
가장 바보같은 짓이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