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충루(酬忠樓)
표충사의 정문으로써 밀양시 교동에 소재한 "밀양향교의 정문인 풍화루"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에 소재한 "예림서원의 정문인 독서루"와 양식이 같다.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서원 정문 형태의 누각입니다. 이는 表忠祠를 밀양시 무안면에서 옮겨오면서 사명대사의 위패를 모시고 서산대사와 기허대사의 위패를 같이 모신 표충서원이 表忠寺 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재약산 표충사 (載藥山表忠寺.경상남도 기념물 제17호.경남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표충사는 신라 무열왕 원년(654) 원효대사가 터를 잡아 세운 죽림사(竹林寺)이다. 흥덕왕 4년(829) 셋째 왕자가 몹쓸 병을 얻어 전국의 명산과 명의를 찾던 중 이곳의 약수를 먹고 병이 낫게 되자 탑을 세우고 약수 이름을 영정약수라 불렀다고 한다. 이때부터 절 이름을 재약산영정사라 부르고 절을 크게 부흥시켰다. 신라 때는 보우국사가, 고려시대 때는 해린국사가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며 특히 일연이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탈고하였다고 한다. 조선 헌종 5년(1839) 영축산 백하암에 있던 사명대사의 사당을 이곳에 옮기면서 표충사라 하였는데, 이 사당을 절에서 관리하면서 사(祠)자가 사(寺)로 바뀌었다.
사명대사는 서산대사의 제자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평양 탈환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사신으로 임명되어 여러 차례 적진에 들어가 회담을 했고, 그 성과로 포로로 잡혀간 3003여명의 동포를 데리고 귀국하는 등 외교적 업적을 남겼다.
현재 이곳에는 중앙에 사명대사의 영정이 있고 동쪽에는 그의 스승인 서산대사, 서쪽에는 임진왜란 때 금산싸움에서 전사한 기허당의 영정을 함께 모시고 있다.
주위의 뛰어난 경관뿐 아니라 불교와 유교가 통합되어 있는 한국사찰의 유연성을 보여 주는 곳이다.(문화재청 자료)
영사각
가람수호를 기원하는 외가람각으로써 가람각은 죽은 자의 혼을 실은 영가가 경내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모셔지는 곳으로, 이곳에서 영가는 속세의 떼를 벗는 목욕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가람각은 다른 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종교적 건물로, 전남 순천 송광사에 있는 아주 작은 전각인 세월각(洗月閣)과 척주각(滌珠閣)과 같은 용도의 건물입니다.
봉청필추가람신위(奉請苾芻伽藍神位)
봉청(奉請) : 奉(받을봉) 請(청할청)
필추(苾:향내(향기)-필. 芻:꼴(건초)-추. 필추苾芻:승려 비구)는 인도말로 스님을 뜻하는 비구(比丘).
가람(伽藍)은 절
필추가람 신위(苾芻伽藍神位)가????
말 그대로 하면 비구 곧 「남자스님절」 지키는 신위(神位)
필추가람(苾芻伽藍)이- 먼저 가신(영가) (남)스님(들)이 지켜준다는 뜻인가^^???
가람각(伽藍閣)
가람수호를 기원하는 가람각으로써 가람각은 죽은 자의 혼을 실은 영가가 경내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모셔지는 곳으로, 이곳에서 영가는 속세의 떼를 벗는 목욕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가람각은 다른 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종교적 건물로, 전남 순천 송광사에 있는 아주 작은 전각인 세월각(洗月閣)과 척주각(滌珠閣)과 같은 용도의 건물입니다.
나무가람수호신위(南無伽藍守護神位)
나무(南無) :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으로, 믿고 받들며 순종함을 이르는 말. 부처나 보살들의 이름 앞에 붙인다.
가람(伽藍)은 절
그러면
봉청필추가람신위(奉請苾芻伽藍神位)와 나무가람수호신위(南無伽藍守護神位)는 같은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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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表忠祠)
1839년(헌종 5)에 이건하면서 대광전 옆 지금의 팔상전이 있는 곳에 위치해 표충서원이란 이름으로 있었으나 이후 1971년 팔상전과 자리를 바꾸었으며, 최근에 가람을 정비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어 표충사라고 편액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로 여느 전각들과는 달리 전면의 한 칸 퇴를 물려 방을 들인 것이 이채롭다. 내부에는 사명대사ㆍ서산대사ㆍ기허대사의 진영을 봉안하고, 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 제향(祭享)을 올리고 있다.
表忠祠의 내부(기허대사.사명대사.서산대사)
서방 광목천.북방 다문천
동방 지국천.남방 증장천
삼층석탑 구역(위의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보입니다.)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密陽 表忠寺 三層石塔.보물 제467호)
표충사 대홍원전(大弘願殿) 앞에 세워진 3층석탑이다. 탑 앞에는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석등이 있으나 이 곳은 탑과 석등이 놓였던 원래의 위치가 아닌 듯하다. 표충사의 원래 이름은 죽림사(竹林寺)인데 신라 흥덕왕 4년(829)에 두번째로 크게 확장시켜 이름을 영정사(靈井寺)로 고쳤다고 전한다. 조선 헌종 5년(1839)에는 그때까지 밀양군 무안면에 있었던 표충사(表忠祠)를 영정사로 옮기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개칭하였고, 가람배치도 큰 이동이 있었던 것이니 이 탑도 그 때에 옮긴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기단(基壇)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으며, 각 면을 둘로 나누어 놓았다. 탑신부(塔身部)는 층마다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은 기단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형태로, 균형면에서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표면 모서리에는 매우 넓은 기둥이 새겨져 있고 다른 장식은 없다. 2층 몸돌은 1층에 비하여 높이가 급격히 줄었으며 3층도 체감되어 있다. 또한 2·3층의 몸돌 모서리에도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으나 너비는 전체가 축소됨에 따라 좁아졌다. 지붕돌은 밑에 4단의 받침이 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었으며, 지붕은 아름다운 곡선으로 흘러내리다가 네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치켜올려져 있다. 꼭대기에는 탑의 머리장식이 얹혀져 있으나 정돈되지는 못하고, 그 위에 1m 가량의 끝이 뾰족한 쇠막대를 세웠다.
탑신부 1층의 몸돌이 지나치게 커다란 단점이 있으나, 기단이 1단으로 구성된 신라석탑양식을 따른 아담한 탑이다. 탑의 머리장식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서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문화재청 자료)
표충사 석등 (表忠寺石燈.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호)
표충사내의 석등입니다. 방형으로 된 지대석과 원형으로 된 하대석이 한 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나 그 일부가 부서진 상태이다. 하대석은 낱장의 연꽃잎 모양 8매가 둘레에 고루 조각되어 있고, 각형 1단의 받침으로 8각의 간주를 받치고 있다. 간주에는 명문이나 조각이 전혀 없고 중대석에도 하대석처럼 낱장의 연꽃잎 모양 8매가 조각되어 있다. 화사석은 부등변의 8각형으로 4면에는 장방형의 화창구가있다. 옥개석 추녀에는 낙수 흠이 있고, 옥개의 이면에는 8구의 희미한 안상이 있으며 화사석과 연결되어 있다. 전각의 반전은 경쾌하며 옥개석 윗면 중심에 낱장의 연꽃이 모양 13매가 둘려져 있으며 정상에 보주를 꽂도록 되어 있다. 보주는 복발형 2단의 몰딩 받침위에 원좌를 두르고 그 위에 연봉오리 1개를 얹었는데, 석등은 대체로 완형이지만 간주석, 화사석, 보주 등은 뒤에 보수된 흔적이 있다. 조각의 특징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처마 밑에 서래각(西來閣). 무량수각(無量壽閣).보화루(寶華樓). 승련암(勝蓮庵) 현판들이 걸려 있다. 모두 추사의 수제자인 신헌(申櫶. 1810-1884)의 글씨이다.
신헌(申櫶) : 1810(순조 10)~ 1884(고종 21). 조선 후기의 무신·외교관.
실학과 개화파의 영향을 받아 근대적 군사제도 수립에 노력했으며, 강화도조약과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때 조선측 대표로 참여했다. 본관은 평산. 초명은 관호(觀浩). 자는 국빈(國賓), 호는 위당(威堂)·금당(琴堂)·동양(東陽)·우석(于石). 저서로 〈민보집설 民堡輯說〉·〈융서촬요 戎書撮要〉·〈금석원류휘집 金石源流彙集〉·〈유산필기 酉山筆記〉·〈농축회통 農畜會通〉·〈심행일기 沈行日記〉 등이 있다. 시호는 장숙(壯肅)이다.
영정약수
신라 흥덕왕 4년에 왕의 셋째 왕자가 나병에 걸려 명의, 명약을 찾던 중 황발선인이 소문을 듣고 이곳에 찾아와 병을 치유했다고 한다. 이에 왕이 친히 선사를 찾아와 크게 칭송하나 황발선인이 말하기를 이곳 산초와 유수가 모두 약초요, 약수라 하였다. 왕은 그말에 감탄하여 탑을 세우고 가람을 부흥시키고 산 이름을 재약산이라 하고, 사명 또한 영정약수의 이름 따서 영정사라 하였다. 지금도 이 영정약수를 찾는 발길이 하루도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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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대광전 (表忠寺大光殿.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
대광전은 표충사의 큰 법당이다. 법당이란 진리로써 가득 채워져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 법당에는 모든 번뇌와 미혹을 밝혀서 불멸의 생명, 무한한 행복과 영원한 자유를 이룬 부처님이 계신다. 스스로 이기심과 탐욕과 어리석음을 불러 일으켜서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눈 멀게 하는 중생을 향해 무궁무진한 법문의 세계를 펼쳐 놓으신 곳이 바로 법당이다. 대광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깊이 신봉 되어온 삼존불을 봉안하고 있다. 삼존불은 석가모니불(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 부처님을 형상화함), 약사여래불(동방 유리광세계의 주인.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며 재화를 소멸하고 의복, 음식 등을 만족하게 하는 등의 12대 서원을 세운 부처님이며, 손에 약함을 들고 있음), 아미타불(서방 극락세계를 주관하시며 그의 광명과 자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무한한 세계에까지 미 치며 그 광명을 받은 사람은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고 함)이며, 이들 부처님은 중생의 염원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에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깊이 신봉되어 왔다. 표충사의 대광전은 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고 하나, 화재나 병화(兵火)로 소실되어 중건, 중수 되었다. 현재의 전각은 조선후기에 중건한 정면 5칸, 측면 3칸, 외3포, 내3포의 다포식 팔작지붕이다.
표충사목조삼존여래좌상 (表忠寺 木造三尊如來坐像.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57호)
표충사 대광전에 봉안되어 있는 이 불상은 석가모니를 주존으로 좌협시 약사여래, 우협시 아미타여래로 구성된 삼세여래 존상이다. 준엄한 모습과 당당한 체구에 표현기법이 뛰어난 작품으로 조성 시기는 18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며 규모가 큰 대작에 속하는 작품이다.
대광전의 지붕 장식물(중국 남방불교사원의 지붕 장식의 영향을 받은 것 아닌지 ??? ...)
중국 마카오의 관음당 지붕 장식
중국 광주의 진가사의 지붕 장식
우리나라에서는 ... : 불갑사(佛甲寺.전남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8) 대웅전(大雄殿) 지붕의 용마루 중앙에 장식
영광 불갑사 대웅전 (靈光 佛甲寺 大雄殿.보물 제830호.전남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8 불갑사)
효봉대종사천진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