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울음소리
오늘 오전 햇살이 쨍쨍하게 쏟아지자 매미가 울었습니다. 맴, 맴 몇 번씩 목을 가다듬더니 급기야 목청을 열었습니다. 그 뒤를 따라 말매미도 떼지어 울었습니다. 매미 한마리가 신호를 하자 떼거리로 따라 우는 매미들은 작정을 한듯 여름을 달궜습니다.
곧 가을이 오고 있다는 신호일까요. 차도에 드문드문 늘어서 있던 플라타너스가 크고 넓적한 잎을 몇 개씩 떨어뜨립니다. 더운 여름 열심히 살고 가는 잎새에게 플라타너스 가지들이 아쉬움의 인사를 하듯 술렁술렁 손을 흔듭니다.
주택가 골목길로 매미 소리가 물살처럼 흘러듭니다. 그 소리 따갑게 길에 깔립니다. 하지만 요즘 매미는 사람들에게 속이 시원한 청량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세월에 무더위마져 온 몸을 휘감으니 짜증이 나겠지요. 게다가 매미의 울음소리가 보통 큰게 아닙니다. 귀가 멀듯 귀청을 얼얼하게 합니다.
내 유년 시절 시골길을 걸으며 듣던 아련한 울음소리가 아닙니다. 그때의 매미소리는 참 맑고 시원했습니다. 울음소리를 낮추어 지겹게 울다 지치면서도 제 삶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매미들이 울며 바라보는 하늘도 참 높았습니다. 구름은 여유롭게 흘러가고, 냇물은 잔잔한 수면 위에 울음소리의 파문을 그리며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강산이 세번이나 바뀐 지금, 매미는 변해가는 세월에 타고난 목소리를 잃은 것 같았습니다. 일단 목청을 열었다하면 벼랑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물소리처럼 거셉니다. 쉬지도 않고 하루종일 울며 끝장을 봅니다. 매미도 살기 힘든 것일까요. 제 삶에 큰 상처가 생긴 게 아닐까요. 칼칼한 공해가 목을 막아 신경질이 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악을 쓰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매미의 심정도 모르고 사람들은 매미의 울음소리를 소음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마음 속을 시원하게 씻겨주는 청량제가 되지 못하고 소음이 돼버린 매미의 신세는 얼마나 처량할까요. 하기야 그럴만도 합니다.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의 입장도 헤아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귀청이 멀도록 찢어지게 우는 매미를 누가 환영하겠습니까.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옛날처럼 볼륨을 낯추어 울어야 합니다. 오죽하면 정진규 시인이 매미의 울음소리를 "떼울음의 바다"라고 했을까요. 정말로 싱싱한 표현입니다. 매미들이 떼지어 울면 양탄자같은 숲이 푸른 물결처럼 출렁거릴듯한 환상이 그려집니다.
오늘 오전에 목청을 연 매미가 아직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해거름이 내려 깔려도 울음소리를 그칠 것 같지 않습니다. 정말 끝장을 보려는 것일까요. 무슨 불만일까요. 도시의 변두리인 우리 집은 다른 곳보다 공해가 심하지는 않을텐데, 왜 바락바락 악을 쓰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감나무 잎새들이 매미에게 그늘을 내려주며 위로합니다. "매미씨, 울음소리 한 옥타브 낮추세요. 이 집도 마음 편안 집이 아니랍니다"
맞습니다. 우리집에 지금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다름아닌 노모때문입니다. 몇 달 지나면 88년째 삶의 고개를 넘어갈 노모가 편찮은 것입니다. 노환때문인지, 입맛을 잃어 밥을 건너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오죽하겠어요. 몸은 미이라같고 삭정이처럼 마른 팔다리가 살짝만 잡아도 부서질것 같습니다. 그런 약한 몸으로 화장실에 갈때면 온 힘을 끌어당겨 엉금엉금 기어서 갑니다.
그리고 틈만나면 잠에 곯아 떯어져 저승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모두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그러니 "매미씨, 울음소리 한 옥타브 낮춰 울어주세요. 30년전 이집의 주인이 들었던 그 맑고 시원한 목소리를 내세요"
감나무의 잎새들은 아직도 잠이 들지 않았는지 살짝 바람만 불어도 술렁거립니다. 그렇지만 매미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악을 바락바락 쓰며 온 집안을 한바탕 소음으로 휘저어 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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