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4. 12
- 몸에 해로운 '단것' 즐기는 버핏
- 그것이 투자 척도 될 수는 없어
- 건강 관리는 버핏이 알아서
- '귀걸이-코걸이'식 ESG 논의
- 기업 자유 속박까지 가선 안 돼
지금 경제계에는 'ESG 투자' 광풍(狂風)이 불고 있다. 많은 기업이 'ESG 경영' 신앙 고백을 한다. '탈(脫)석탄'을 선언한다. 'ESG 위원회'를 만드는 기업들도 늘어난다. 대통령은 올해를 'ESG 경영 확산 원년'이라고 선포했다. 네덜란드연기금(APG)은 ESG를 내세워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미얀마에서 포스코가 가스전 사업을 철수해야 한다고 압력을 넣는다. 한국은행까지 금융권이 411조원에 달하는 '고탄소업종'에 대해 대출을 줄여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놓는다.
그러나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책 제목으로 붙였던 것처럼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ESG는 영어이기 때문에 그럴싸해 보일지 몰라도 한글로 번역해보면 공허하다 못해 허황되기까지 하다. 상식 있는 사람에게 "환경(E)·사회(S)·지배구조(G)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하면 대뜸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얘기냐"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사회'라고 할 때 그게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지배구조'나 '환경'은 '사회'에 포함되는 개념 아닌가 등 기본적 질문에 아무런 답이 없다.
그런데 왜 ESG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가? 옛날부터 기업과 사회의 관계는 수많은 연구와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경영학에서도 기업 내부 경영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도 잘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별도의 분야로 성장해 왔다. '이해관계자론(Stakeholder theory)'도 중요한 기업 목적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내용에서 별다를 바 없고 표현 수준은 훨씬 떨어지는 ESG가 갑자기 화두가 된 것은 기업의 대주주가 돼 있는 뮤추얼펀드, 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적극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기관투자가 블랙록의 래리 핑크 사장은 전 세계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보내는 연례 편지에서 ESG 강화가 '지각변동'이라고까지 강조한다.
그러면 기관투자가들은 왜 ESG를 외치게 됐나? 그 분기점은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였다. 금융위기에 대한 사회적 비판 중 하나가 기관투자가들이 금융회사나 기업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었다. 기관투자가들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을 기업에 전가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것을 만들어내고 '선한 집사'로서 책무를 다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래리 핑크의 CEO 편지도 이즈음 시작됐다.
금융투자자 입장에서는 ESG를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 기업 생존에 대해 끝까지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투자 기업에 조금 문제가 생기면 다른 기업으로 투자처를 바꾸면 된다. 하지만 기업은 곤혹스럽다. 시장 경쟁을 이겨 나가기 위한 존재론적 과제를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뚜렷하지 않은 목적론적 과제들을 더 많이 수행하라고 강요받는다.
제일 심각한 문제는 ESG가 너무 폭넓기 때문에 외부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마음대로 개입하고 기업의 자유를 속박하는 데 있다. 가치투자로 유명한 워런 버핏은 그래서 비유를 들어 ESG를 비판한다. 그는 단것(sweet)을 좋아한다. 단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은 다 안다. 그렇다고 버핏이 단것을 먹기 때문에 그의 펀드에 돈을 맡기지 않겠다는 사람을 따라 식습관을 바꿔야 하느냐는 것이다. 건강 관리는 버핏이 알아서 하는 일이다. 왜 돈 맡기는 사람이 버핏의 사생활까지 간섭하려 하는가.
기업은 자유롭게 사업을 추진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발휘한다. 기업이 스스로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을 외부 잣대로 제한하는 것은 ESG 사회주의라고 할 수 있다. 꼭 필요한 것은 정부 규제로 정당성을 갖춰서 시행하면 된다. ESG의 상당 부분은 자기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정당성도 없는 사람들이 기업에 맹종을 강요하는 것이다.
신장섭 /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