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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1522~1566).융경(1567~1572)연간에 한양에 협사 '김칭'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한미한 집안 사람이었다.
그는 장안의 화류계를 제 마음대로 하였으니 그를 한번이라도 만난 기생은 모두 그를 평생토록 지극히 사랑했다.
하루는 장안의 명기들이 서로 말하였다.
우리들이 각자 마음 속에 두고있는 사람이 있는데, 한번도 서로 상면한 적이 없으니, 이 어찌 풍류세계의 흠이 아니리오?
남산 상산대에서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놓고, 각자 한 사람씩 맞이하여 잔을 올리며 즐거움을 갖도록 하자."
여러 기생들이 서로 좋다고 응대하였다.
그날이 되자, 기생들이 상산대 위에 장막을 치고 각자 자신들이 마음에 두는 명사들을 초청하고 기다렸다.
이 사람들은 모두 십여명에 이르렀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화려한 의복에 아름다운 장식을 하고 용모가 수려한 사람들로 장안에서 이름난 젊은 협사들이었다.
나머지 오십여 명의 기생들은 모두 주인이 없이 소나무 숲 사이만 살펴보면서 날이 이미 저물었는데도 음식을 들지 않았다.
포시가 지났는데, 한 사람이 어슬렁, 어슬렁 걸어오는 것이었다.
그는 정수리가 훤히 드러난 관을 쓰고, 등이 헤진 꾀죄죄한 도포를 걸치고 뒷꿈치가 뚫어진 짚신을 신은 채, 오리 걸음으로 뒤뚱거리며 천천히 걸어왔다.
야 왔구나, 왔어!~"
오십 여 명의 기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한 소리로 외쳐대며 개떼처럼 야단법석을 떨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온 사람은 다름아닌 '김칭'이었다.
왼편 자리를 마련해 주고 풍악을 크게 잡히고, 오십 여 명의 기생이 각기 금 술잔을 받들고 서로 그에게 번갈아 가며 술을 올렸다.
이 모습을 넋을놓고 지켜보던 화려한 의복에 요란한 장식을 한 십여명의 협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기가 꺾여, 모두 소변보러 간다는 핑계로 나가 도망쳤다.
이로 부터 장안의 협사들 가운데 무릇 상산대의 연회, 북청문의 연회,삼청동의 연회 및 삼강선상의 연회 등에 명기를 맞이하려는 사람들이 모두 김칭의 서압을 받으면 온 성 안의 기생들이 파도처럼 달려오지 않는 이가 없었다.
비록 사인소와 장악원, 예조의 위풍과 서슬로도 감히 그 사이에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김칭이 죽음을 앞두었을 때, 많은 협사들이 그 술수를 전수해 달라고 청했는데, 김칭은 좌우를 물리치고 은밀하게 말했다.
종처럼 구시오.
이 한 마디만 남기고 죽었다.
아! 어찌 협사가 되는 데에만 이러한 술수를 쓰겠는가?
명사가 되는 데에도 이같은 술수가 행해지고 있다. ^^
*포시---신시.
곧 오후 3시에서 5시 까지를 말한다.
*김칭---조선왕조 실록.
연산군 3년 1월 8일 자, 기사에 '김칭의 죄명을 보니, 일찍이 수리도감낭청을 지낼 때, 친근한 창기에게 사사로이 역군을 빌려주었다고 하니, 불근함이 심하다.
곧 그의 관직을 박탈하라.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