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평온을 아껴주세요 –정민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싱가포르와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20대를 보냈다. 대학생 시절부터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했고, 졸업 후 디자인을 비롯해 번역과 의류무역업, 이커머스, 포토그래퍼, 디자인 컨설팅, 브랜딩 등 다양한 분야의 일을 두루 경험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힘들어하던 20대 초반에 명상을 시작했다. 명상을 따로 배우거나 공부하지 않았기에 여러 시도를 통해 서서히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찾고 고안했다. 이제 명상은 평온하게 하루를 열고 일상을 유지하게 하는 일과이자 습관으로 굳게 자리 잡았다. 2018년, 직접 녹음한 명상 가이드가 단 몇 명에게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유튜브 채널 ‘마인드풀tv’를 열었다. 자신이 지나온 터널을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하고 싶었고, 명상이 얼마나 쉽고 편안한지도 알리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마인드풀tv’는 2년 만에 11만 명이 넘게 구독하는 인기 채널이 되었다. 현재 명상 멘토로 활동하며 마인드풀한 인생을 살고 있다.
■ 유튜브 마인드풀tv
■인스타그램 @allbyjungmin
■ 커뮤니티 cafe.naver.com/mindfultv - <내 안의 평온을 아껴주세요>, 정민
여는 글 : 내 마음의 천국과 지옥
‘내 삶은 언제나 막장 드라마야’라고 곧잘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제 삶은 어려서부터 유별났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즈음엔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사춘기 시절부터 극도의 불안 증세와 공황장애를 겪었고, 불안의 정도가 심각해지면서 습관적 자해를 일삼기도 했죠.
처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열한 살쯤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때 저는 5층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옥상에 올라가 바로 앞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친구들을 내려다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저 친구들이 부럽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 나는 이상해. 나는 사랑받지 못해.’ 이런 생각들로 매일을 어둡게 보냈어요. 때로는 힘을 내서 즐겁게 지내다가도 감정적 지옥으로 추락하면 쉽게 헤어나지 못했죠.
저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돌이켜보면 엄청난 워커홀릭이셨고, 전 태어나자마자 할머니 손에 맡겨졌어요. 언론사에서 일하시는 부모님은 새벽 퇴근이 잦을 정도로 바쁘셨죠. 주 6일 근무였던 당시를 돌아보면, 사실상 제가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은 일요일뿐이었던 거예요. 갓 태어난 아기에게 엄마가 없는 시간이란 참 가혹했겠죠? 태어나 탯줄이 끊기는 순간조차 인간의 잠재의식에는 트라우마로 남는다고 하니까요. 늘 엄마를 기다렸지만, 어쩐지 자꾸만 버려지고 내맡겨진다는 생각에 많이 외로웠던 것 같아요.
게다가 키워주신 할머니의 우울증을 그대로 닮아버렸는지, 저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로 자라났어요.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신경쇠약 증세가 깊어서 헛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일상이었어요. 학교에 입학하면서 불안과 우울이 더욱 깊어졌고, 매일이 고비라고 느낄 정도로 힘든 학창 시절이 시작됐어요. 모자간 애착의 부재로 인해 언제나 외로웠던 저는 친구들을 참 좋아했는데, 마음을 온통 내어주면 꼭 왕따를 당하는 패턴으로 이어지곤 했어요. ‘왜 친구들은 항상 나를 싫어하지? 역시 내가 이상해서인가?’라는 의문이 점점 확신으로 굳어졌죠. 학년이 올라갈수록 따돌림의 강도는 심해졌고, 수치스러운 일들도 참 많았어요. 돌이켜보니 견디기 힘든 정신적 폭력을 장기간 겪었더군요.
게다가 또래보다 조숙했기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각종 성범죄에 노출되었고, 누구한테 말도 못 하고 혼자 속상한 마음을 억누르곤 했어요. 그렇게 스스로를 비련의 여주인공이라 여기고 피해자 마인드에 젖어 살다가 데이트 폭력과 정신적 학대까지 겪게 되었고요. 참 대단한 트러블 메이커였죠?
차곡차곡 누적된 트라우마는 제 마음속에 지옥을 만들어냈습니다. 제가 성인이 되자 그 지옥은 더 커졌고요. 게다가 제 삶에서 유일하게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집안마저 기울어 그야말로 뿌리가 뽑히는 기분이었어요. 당시의 연인에게는 정신적 학대를 겪었고, 그러면서 ‘나는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쓰레기’라는 망상이 점점 신념으로 굳어졌어요. 일주일 동안 한 시간을 채 못 잘 정도로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고, 누가 나를 공격할 거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커튼을 친 방에서 한 달 넘게 안 나가기도 했어요. 이 많은 문제들을 겪는 동안 심리상담 한번 받아본 적이 없으니, 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꾸역꾸역 살았답니다. 어쩌면 제 상태를 진단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정신병리학적 진단이 앞섰다면 혼자 이겨낼 기회를 갖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요.
어른의 충분한 보호와 관심이 필요했던 청소년기를 지나면서도 저는 제가 겪는 일들에 대해 자세히 말한 적이 없어요.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부모님은 늘 바쁘셨고, 제가 모든 걸 혼자 이겨낼 수 있다고 믿기도 하셨어요. 물론 지금은 그 신뢰에 감사하지만, 저는 오랜 시간 완전히 버림받았다는 착각에 빠져 살았답니다. 그래서 유년기 내내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대단했지요.
스무 해가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스무 가지 이상의 인생을 살았다고 느낄 만큼 삶에 싫증이 났을 때, 갑자기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평소 음식으로 보이던 고기에 갑자기 죽은 동물의 시체가 투영되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순간부터 고기를 못 먹게 되었거든요. 그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채식인으로 살기 시작했답니다.
완전한 채식이 이어져서 정신이 조금 맑아졌던 걸까요. 내면 깊은 곳에서 ‘명상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릴 때부터 제가 괴로워할 때 부모님이 종종 ‘그렇게 힘들면 명상이라도 해봐’라고 하셨던 것이 떠올라 바로 검색을 해보았어요. 그렇게 아무 가이드도 없이 ‘제멋대로 명상’을 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영적인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왜 갑자기 채식을 하게 된 건지, 왜 갑자기 명상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건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 자신을 살리려 했던 제 영혼의 외침이었다고 믿고 있어요.
명상 또한 막무가내로 시작했던 저는, 실제로 내면이라는 것을 들여다보고 마음의 평온을 찾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마음의 평온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라기엔 조금 난해한 방향의 영성 공부에 빠지기도 했죠. 다시 현실로 돌아와 현실에 맞춘 마음 수행을 하기까지 서너 해는 걸린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저는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운, 모자란 것도 없고 과한 것도 없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답니다. 그리고 유튜브라는 고마운 플랫폼을 통해 예전의 저와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요. 단 몇 명에게라도 닿았으면 했던 진심이 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마음의 고요를 찾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도 쓰게 되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내가 놓인 상황이나 현실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의 상태입니다. 남들 눈에는 저도 멀쩡한 환경의 보통 여학생으로 보였을 거예요. 무엇 하나 부족한 것도 없는데 복에 겨웠다는 말을 들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늘 저 자신을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천치라고 느끼고 동정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의 환경을 보고 그들의 마음을 판가름하지 않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가진 것이 많고 적음을 떠나 누구의 마음에나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요.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고요하고 행복하다면 내가 있는 곳은 천국입니다. 사회적으로 지극히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환경에 있어도 마음이 어둡고 고통스러우면 지옥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고요.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 마음의 지옥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늘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고 기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이 외부가 아닌 내면을 향해야 하고,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인정해야 합니다. 내 삶에 아픈 상처가 났고 아직 아물지 않았다면 약을 바르고 새 살이 돋을 때까지 지켜봐야 합니다. 당근과 채찍으로 자신을 대하지 않고 사랑과 관용으로 대해야 합니다. 이 일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원하는 직장을 얻는 것보다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나 돈을 모으는 것도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겠어요? 행복한 삶을 꿈꾸면서 지금 이 순간 내가 행복한지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고, 미래에 있는 막연한 행복만 좇다 보면 천국은 자연스레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며 오래도록 두려움에 갇혀 살기에 충분한 삶이었지만, 스스로 여기까지 헤쳐온 제가 있다는 것이 많은 분들께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누군가가 해냈다는 것은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제가 해온 거의 대부분의 노력은 내면에서 고요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매일 꾸준한 명상을 통해 외부의 자극에서 벗어나 나를 만나고, 알아차리고, 이야기하고…. 제 마음의 병에 맞는 다양한 유도 명상을 고안하고 행하며 재창조된 삶을 만난 것이죠.
제가 안고 있던 문제와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었던 명상 방법들을 이 책에 소개합니다. 저의 이야기와 함께 단계별로 나누어 설명한 가이드도 실었습니다. 하지만, 이 가이드는 이해를 돕기 위한 제안일 뿐 완벽하게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이렇게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데에 큰 도움을 준 결심 중 하나가 ‘정답을 구하지 않기’였어요. 명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정해진 답을 찾기보다는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그때그때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을 해보세요. 자꾸 정답을 얻으려 하는 마음은 내재된 불안에서 시작됩니다. 사실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나면 생각지도 못했던 자유를 얻게 되죠. 어떤 것들이 나를 행복하고 편안하게 하는지, 어떤 것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지를 관찰하고 내 안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보는 것이 정말로 평온해지는 비결입니다.
명상은 수염이 덥수룩한 도인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종교와 연관된 행위도 아닙니다. 거창한 테크닉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교리도 없지요. 내가 누군지 잊고, 삶의 본질조차 망각하고 살아가기 아주 좋은 환경에 놓여 있는 모든 현대인에게 필요한 하나의 활동일 뿐이에요. 마음을 또 하나의 근육으로 본다면 마음이 하는 운동이라고 여기셔도 좋습니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이 아침저녁으로 세수와 양치를 하듯, 매일 명상을 통해 마음을 닦는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분명 오늘 하루가 달라질 거라고 기대해봅니다. 그렇게 맑은 하루하루가 모이고, 맑아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더 괜찮은 세상이 될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