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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번역) - 674[4 ~ 75](240709)
< 전 체 번 역 >
한편 원소 진영에서는 이미 허유가 떠나버렸고 또 장합과 고람도 떠나버린 데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소의 군량마저 잃어버려 군사들의 마음이 흉흉하였다. 이 때 허유가 또 조조에게 속히 진군시키라고 권했다. 장합과 고람이 선봉을 서겠다고 자청하고 나섰음으로 조조는 그들의 의견을 따라주었다. 그리하여 즉시 장합과 고람에게 군사를 영솔하고 가서 원소의 영채를 겁채하라고 했다. 이날 밤 삼경쯤 삼로로 출군하여 겁채를 했는데 혼전을 하여 새벽에 이르러 서로 병력을 수습하게 되었는데 원소군은 절반의 병력을 잃었다.
순유는 계책을 올려 말하기를 : “지금 소문을 퍼뜨리기를 병력을 분산 배정하여 한 길로는 산조를 빼앗은 다음 업군을 공략하고 또 한길로는 여양을 취하여 원소 군사들이 돌아갈 길을 끊는다고 하십시오. 원소가 이 소식을 들으면 반드시 경황이 없어 군사를 나누어 우리 군에 저항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움직일 때를 잘 이용하여 원소 군을 치면 원소를 깨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는 그 계책을 받아들여 대소 삼군으로 하여금 사방으로 그 소문을 퍼뜨렸다. 원소 측에서 이 소문을 듣고 영채에 보고를 했다. : “조조가 군사를 두 길로 나누워서 한길의 군사 들은 업군을 공격하고 또 한길의 군사들은 여양을 공격하러 간다 합니다.”
원소가 크게 놀라 급히 원상에게 오만의 군사를 나누어 주어 업군을 구원하게 하고, 신명에게 오만의 군사를 주어 여양을 구원하라고 그 날 밤 직시 떠나도록 했다. 조조는 원소가 군사를 이동시키는 것을 탐지하고는 곧 대대 군마를 여덟 길로 나누어 일제히 출동하여 텅 빈 원소의 영채를 곧바로 치고 들어갔다. 원소의 병사들은 모두다 투지를 잃어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으므로 크게 허물어지고 말았다. 원소는 갑옷으로 갈아입지도 못하고 홑옷에 두건만 쓰고 말에 올랐으며 어린 아들 원상은 그 뒤를 따랐다. 장료, 허저, 허황과 우금 이렇게 네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원소를 추격했다. 원소는 급히 강을 건너면서 도서와 수레 무기 그리고 금은고화와 비단 등을 모조리 내버리고 단지 뒤 따르는 팔백여기만 거느리고 달아났다.
조조의 군사들을 추격했으나 따라 잡지는 못했지만 버리고 간 물건은 전부 획득했다. 원소의 군사 팔만여명을 죽여 흐르는 피는 도랑에 넘쳤고 물에 빠져 죽은 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조조는 전승을 하고 획득한 금은보화와 비단들을 군사들에게 상으로 나누어 주었다. 원소가 버리고 간 도서 중에 한 다발의 왕래한 서신이 발견되었다. 전부가 허도와 조조 군중의 여러 사람들이 원소와 암암리에 주고받은 서신들이었다.
좌우에서 말했다. : “이름과 편지 한 장 한 장을 대조해서 그 뒤를 캐어 죄 있는 자는 체 포하여 죽여야 합니다.”
조조 : “원소가 강성할 당시 나 역시 스스로를 보전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리하여 조조는 그 서신들을 모조리 불태워 없애게 하고 다시 문제 삼지 않았다.
한편 원소가 패해서 달아날 때 저수는 감옥에 갇혀있었기 때문에 급히 달아나 탈출하지 못하여 조조 군사에게 잡혀 조조 앞으로 끌려갔다. 조조는 이전부터 저수와 알고 지내는 사이었다. 저수가 조조를 보고 크게 부르짖었다. : “저수는 항복하지 않는다!”
조조 : “본초는 지략이 없어 자네 말을 듣지 않았는데 자네는 아직도 그 잘못에 집착하고 있는가? 내가 만약 자네를 진작 얻었더라면 천하사에 대해 무얼 걱정하겠는가!” 그리고는 그를 후대하여 군중에 머물게 했다. 그런데 저수는 영내의 말을 훔쳐 타고 원소에게 돌아가려 했다. 조조가 이를 알고 노하여 그를 죽여 버렸다. 저수는 죽음에 이르러서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조조가 탄식해 말했다. : “내가 잘못 충의지사를 죽였구나!” 그리하여 후히 장사지내게 하여 황하도구에 무덤을 만들어 안장하고 무덤의 이름을 “충열저군의 묘”라 했다.
훗날 어느 시인이 시를 지어 칭찬했으니 - - - -
하북에 명사가 많다 하지만 충절은 저수가 으뜸인데
눈여겨 바라보면 진법을 알아내고 하늘을 쳐다보면 천문을 해독했네
죽음에 이르러도 마음은 철석같고 위엄이 닥쳐도 높은 기상은 구름 같았지.
조공이 그의 충의와 절개를 흠모하여 외로운 무덤 하나 만들어 주었네.
드디어 조조는 기주 공격명령을 내렸다. 이야말로
세가 약해도 계략이 많으면 이기고 군사력이 강해도 계략이 적으면 망하는구나.
이 싸움에서 승부가 여하이 될가? 다음 편을 보자.
< 原 文 >
却說袁紹旣去了許攸,又去了張郃、高覽,又失了烏巢糧,軍心皇皇。許攸又勸曹操作速進兵;張郃、高覽請爲先鋒;操從之。即令張郃、高覽領兵往劫紹寨。當夜三更時分,出軍三路劫寨。混戰到明,各自收兵,紹軍折其大半。荀攸獻計曰:「今可揚言調撥人馬,一路取酸棗,攻鄴郡;一路取黎陽,斷袁兵歸路。袁紹聞之,必然驚惶,分兵拒我;我乘其兵動時擊之,紹可破也。」
操用其計,使大小三軍,四遠揚言。紹軍聞此信,來寨中報說:「曹操分兵兩路:一路取鄴郡,一路取黎陽去也。」紹大驚,急遣袁尙分兵五萬救鄴郡,辛明分兵五萬救黎陽,連夜起行。曹操探知袁紹兵動,便分大隊軍馬,八路齊出,直衝紹營。袁軍俱無鬥志,四散奔走,遂大潰。袁紹披甲不迭,單衣幅巾上馬;幼子袁譚後隨。張遼、許褚、徐晃、于禁四員將,引軍追趕袁紹。紹急渡河,盡棄圖書車仗金帛,止引隨行八百餘騎而去。
操軍追之不及,盡獲遺下之物。所殺八萬餘人,血流盈溝,溺水死者不計其數。操獲全勝,將所得金寶緞疋,給賞軍士。於圖書中檢出書信一束,皆許都及軍中諸人與紹暗通之書。左右曰:「可逐一點對姓名,收而殺之。」操曰:「當紹之强,孤亦不能自保,況他人乎?」遂命盡焚之,更不再問。
却說袁紹兵敗而奔,沮授因被囚禁,急走不脫,爲曹軍所獲,擒見曹操。操素與沮授相識。授見操,大呼曰:「授不降也!」操曰:「本初無謀,不用君言,君何尙執迷耶?吾若早得足下,天下不足慮也。」因厚待之,留於軍中。授乃於營中盜馬,欲歸袁氏。操怒,乃殺之。授至死神色不變。操歎曰:「吾誤殺忠義之士也!」命厚禮殯殮,爲建墳安葬於黃河渡口,題其墓曰:「忠烈沮君之墓」。後人有詩贊曰:
河北多名士,忠貞推沮君。
凝眸知陣法,仰面識天文。
至死心如鐵,臨危氣似雲。
曹公欽義烈,特與建孤墳。
操下令攻冀州。正是:
勢弱只因多算勝,
兵強却爲寡謀亡。
未知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 文 段 解 說 >
(1)却說袁紹旣去了許攸,又去了張郃、高覽,又失了烏巢糧,軍心皇皇。許攸又勸曹操作速進兵;張郃、高覽請爲先鋒;操從之。即令張郃、高覽領兵往劫紹寨。當夜三更時分,出軍三路劫寨。混戰到明,各自收兵,紹軍折其大半。荀攸獻計曰:「今可揚言調撥人馬,一路取酸棗,攻鄴郡;一路取黎陽,斷袁兵歸路。袁紹聞之,必然驚惶,分兵拒我;我乘其兵動時擊之,紹可破也。」
각설원소기거료허유,우거료장합、고람,우실료오소량,군심황황。허유우권조조작속진병;장합、고람청위선봉;조종지。즉령장합、고람령병왕겁소채。당야삼경시분,출군삼로겁채。혼전도명,각자수병,소군절기대반。순유헌계왈:「금가양언조발인마,일로취산조,공업군;일로취려양,단원병귀로。원소문지,필연경황,분병거아;아승기병동시격지,소가파야。」
軍心皇皇 군심이 흉흉하다. 作速 속히, 빨리. 折 꺾을 절. 揚 오를 양, 널리 알리다, 드러내어 밝히다. 揚言 (…하겠다고) 떠벌리다, 큰 소리 치다. 調 고를 조, 조졸하다, 이동하다, 파견하다. 撥 다스릴 발, 나누다. 調撥 (주로 물자를) 조달하다, 파견하다, 배정하다. 鄴 땅 이름 업. 黎 검을 려[여]. 驚惶 놀라 당황하다, 우왕좌왕하다.
< 해 석 >
한편 원소 진영에서는 이미 허유가 떠나버렸고 또 장합과 고람도 떠나버린 데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소의 군량마저 잃어버려 군사들의 마음이 흉흉하였다. 이 때 허유가 또 조조에게 속히 진군시키라고 권했다. 장합과 고람이 선봉을 서겠다고 자청하고 나섰음으로 조조는 그들의 의견을 따라주었다. 그리하여 즉시 장합과 고람에게 군사를 영솔하고 가서 원소의 영채를 겁채하라고 했다. 이날 밤 삼경쯤 삼로로 출군하여 겁채를 했는데 혼전을 하여 새벽에 이르러 서로 병력을 수습하게 되었는데 원소군은 절반의 병력을 잃었다.
순유는 계책을 올려 말하기를 : “지금 소문을 퍼뜨리기를 병력을 분산 배정하여 한 길로는 산조를 빼앗은 다음 업군을 공략하고 또 한길로는 여양을 취하여 원소 군사들이 돌아갈 길을 끊는다고 하십시오. 원소가 이 소식을 들으면 반드시 경황이 없어 군사를 나누어 우리 군에 저항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움직일 때를 잘 이용하여 원소 군을 치면 원 소를 깨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2)操用其計,使大小三軍,四遠揚言。紹軍聞此信,來寨中報說:「曹操分兵兩路:一路取鄴郡,一路取黎陽去也。」紹大驚,急遣袁尙分兵五萬救鄴郡,辛明分兵五萬救黎陽,連夜起行。曹操探知袁紹兵動,便分大隊軍馬,八路齊出,直衝紹營。袁軍俱無鬥志,四散奔走,遂大潰。袁紹披甲不迭,單衣幅巾上馬;幼子袁譚後隨。張遼、許褚、徐晃、于禁四員將,引軍追趕袁紹。紹急渡河,盡棄圖書車仗金帛,止引隨行八百餘騎而去。
조용기계,사대소삼군,사원양언。소군문차신,내채중보설:「조조분병량로:일로취업군,일로취려양거야。」소대경,급견원상분병오만구업군,신명분병오만구려양,련야기행。조조탐지원소병동,편분대대군마,팔로제출,직충소영。원군구무두지,사산분주,수대궤。원소피갑부질,단의폭건상마;유자원담후수。장료、허저、서황、우금사원장,인군추간원소。소급도하,진기도서차장금백,지인수행팔백여기이거。
遠 멀 원. 四遠 사방으로 멀리 떨어진 곳. 揚言 (…하겠다고) 떠벌리다, 큰 소리 치다.
連夜 1. [국]며칠 밤을 계속함. 2. [중]밤새도록, 밤 내내, 밤새껏. 3. 그날 밤.(즉시 행동하는 경우에 쓰임) 4. [중]며칠 밤 계속. 俱 함께 구, 갖출 구. 鬥 싸울 두, 싸울 투. 潰 무너질 궤. 披 나눌 피, 옷을 걸치다. 迭 갈마들 질, 달아나다, 번갈아 듦. 單衣 홑옷, 한 겹으로 된 옷, 여자 한복의 속 치마 안에 입는 속 속곳, 다리 속곳, 단속곳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幅 폭 폭, 너비, 두건 복. 幅巾[복건] 예전에, 유생들이 도포에 갖추어서 머리에 쓰던 쓰개의 하나. 趕 달릴 간, 뒤를 쫒다. 車仗 수레와 무기. 帛 비단 백.
< 해 석 >
조조는 그 계책을 받아들여 대소 삼군으로 하여금 사방으로 그 소문을 퍼뜨렸다. 원소 측에서 이 소문을 듣고 영채에 보고를 했다. : “조조가 군사를 두 길로 나누워서 한길의 군사 들은 업군을 공격하고 또 한길의 군사들은 여양을 공격하러 간다 합니다.”
원소가 크게 놀라 급히 원상에게 오만의 군사를 나누어 주어 업군을 구원하게 하고, 신명에게 오만의 군사를 주어 여양을 구원하라고 그 날 밤 직시 떠나도록 했다. 조조는 원소가 군사를 이동시키는 것을 탐지하고는 곧 대대 군마를 여덟 길로 나누어 일제히 출동하여 원소의 영채를 곧바로 치고 들어갔다. 원소의 병사들은 모두다 투지를 잃어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으므로 크게 허물어지고 말았다. 원소는 갑옷으로 갈아입지도 못하고 홑옷에 두건만 쓰고 말에 올랐으며 어린 아들 원상은 그 뒤를 따랐다. 장료, 허저, 허황과 우금 이렇게 네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원소를 추격했다. 원소는 급히 강을 건너면서 도서와 수레 무기 그리고 금은고화와 비단 등을 모조리 내버리고 단지 뒤 따르는 팔백여기만 거느리고 달아났다.
(3)操軍追之不及,盡獲遺下之物。所殺八萬餘人,血流盈溝,溺水死者不計其數。操獲全勝,將所得金寶緞疋,給賞軍士。於圖書中檢出書信一束,皆許都及軍中諸人與紹暗通之書。左右曰:「可逐一點對姓名,收而殺之。」操曰:「當紹之强,孤亦不能自保,況他人乎?」遂命盡焚之,更不再問。
조군추지불급,진획유하지물。소살팔만여인,혈류영구,닉수사자불계기수。조획전승,장소득금보단필,급상군사。어도서중검출서신일속,개허도급군중제인여소암통지서。좌우왈:「가축일점대성명,수이살지。」조왈:「당소지강,고역불능자보,황타인호?」수명진분지,갱불재문。
盈 찰 영. 溝 도랑 구. 溺 빠질 닉[익]. 將 장수 장, 장차 장, ---을[를]. 緞 비단 단. 疋 필 필. 給 넉넉할 급, 줄 급. 逐 쫓을 축, 뒤를 쫓다. 逐一 하나하나, 일일이, 남김없이. 點 점 점, 조사하다, 검사하다. 點對 대조하여 검사하다. 收 거둘 수, 잡다, 체포하다. 孤 외로울 고, 나, 왕후[王侯]의 겸칭.[王后가 아님. 옛 봉건시대의 제후를 뜻함]. 焚 불사를 분.
< 해 석 >
조조의 군사들을 추격했으나 따라 잡지는 못했지만 버리고 간 물건은 전부 획득했다. 원소의 군사 팔만여명을 죽여 흐르는 피는 도랑에 넘쳤고 물에 빠져 죽은 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조조는 전승을 하고 획득한 금은보화와 비단들을 군사들에게 상으로 나누어 주었다. 원소가 버리고 간 도서 중에 한 다발의 왕래한 서신이 발견되었다. 전부가 허도와 조조 군중의 여러 사람들이 원소와 암암리에 주고 받은 서신들이었다.
좌우에서 말했다. : “이름과 편지 한 장 한 장을 대조해서 그 뒤를 캐어 죄 있는 자는 체 포하여 죽여야 합니다.”
조조 : “원소가 강성할 당시 나 역시 스스로를 보전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리하여 조조는 그 서신들을 모조리 불태워 없애게 하고 다시 문제 삼지 않았다.
(4)却說袁紹兵敗而奔,沮授因被囚禁,急走不脫,爲曹軍所獲,擒見曹操。操素與沮授相識。授見操,大呼曰:「授不降也!」操曰:「本初無謀,不用君言,君何尙執迷耶?吾若早得足下,天下不足慮也。」因厚待之,留於軍中。授乃於營中盜馬,欲歸袁氏。操怒,乃殺之。授至死神色不變。操歎曰:「吾誤殺忠義之士也!」命厚禮殯殮,爲建墳安葬於黃河渡口,題其墓曰:「忠烈沮君之墓」。
각설원소병패이분,저수인피수금,급주불탈,위조군소획,금현조조。조소여저수상식。수견조,대호왈:「수불항야!」조왈:「본초무모,불용군언,군하상집미야?오약조득족하,천하부족여야。」인후대지,류어군중。수내어영중도마,욕귀원씨。조노,내살지。수지사신색불변。조탄왈:「오오살충의지사야!」명후례빈렴,위건분안장어황하도구,제기묘왈:「충렬저군지묘」。
囚 가둘 수, 죄인. 禁 금할 금, 감옥. 見 볼 견, 만날 현, 나타날 현. 尙 오히려 상, 오히려 상, 아직, 여전히, 그 위에, 역시. 迷 미혹할 미. 執迷 잘못을 고집하다, 잘못에 집착하다. 耶 의문 조사. 殯 염할 빈. 殮 염할 염[렴]. 殯殮 납관(納棺)과출관(出棺). 墳 무덤 분.
< 해 석 >
한편 원소가 패해서 달아날 때 저수는 감옥에 갇혀있었기 때문에 급히 달아나 탈출하지 못하여 조조 군사에게 잡혀 조조 앞으로 끌려갔다. 조조는 이전부터 저수를 알고 지내는 사이었다. 저수가 조조를 보고 크게 부르짖었다. : “저수는 항복하지 않는다!”
조조 : “본초는 꾀가 없어 자네 말을 듣지 않았는데 자네는 아직도 그 잘못에 집착하고 있 는가? 내가 만약 자네를 진작 얻었더라면 천하사를 걱정할 것이 없었을 것일세.” 그리고는 그를 후대하여 군중에 머물게 했다. 그런데 저수는 영내의 말을 훔쳐 타고 원소에게 돌아가려 했다. 조조가 이를 알고 노하여 그를 죽여 버렸다. 저수는 죽음에 이르러서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조조가 탄식해 말했다. : “내가 잘못 충의지사를 죽였구나!” 그리하여 후히 장사지내게 하여 황하도구에 무덤을 만들어 안장하고 무덤의 이름을 “충열저군의 묘”라 했다.
(5)後人有詩贊曰:
河北多名士,忠貞推沮君。凝眸知陣法,仰面識天文。
至死心如鐵,臨危氣似雲。曹公欽義烈,特與建孤墳。
操下令攻冀州。正是:
勢弱只因多算勝,兵強却爲寡謀亡。
未知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후인유시찬왈: 하북다명사,충정추저군。응모지진법,앙면식천문。
지사심여철,임위기사운。조공흠의렬,특여건고분。
조하령공기주。정시: 세약지인다산승,병강각위과모망。미지승부여하,차간하문분해。
推 옮을 추, 추천하다. 凝 엉길 응, 춥다, 엄하다, 심하다. 眸 눈동자 모, 자세히 보다. 凝眸 응시[주시]하다. 눈여겨 보다. 欽 공경할 흠. 義烈 충의와 강한 절개. 算 셀 산, 계략, 계략을 꾸미다, 계산하다. 寡 적을 과.
< 해 석 >
훗날 어느 시인이 시를 지어 칭찬했으니 - - - -
하북에 명사가 많다 하지만 충절은 저수가 으뜸인데
눈여겨 바라보면 진법을 알아내고 하늘을 쳐다보면 천문을 해독했네
죽음에 이르러도 마음은 철석같고 위엄이 닥쳐도 높은 기상은 구름 같았지.
조공이 그의 충의와 절개를 흠모하여 외로운 무덤 하나 만들어 주었지.
조조는 기주 공격명령을 내렸다. 이야말로
세가 약해도 계략이 많으면 이기고 군사력이 강해도 계략이 적으면 망하는구나.
승부가 여하이 될가? 다음 편을 보자.
2024년 7월 9일
이 종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