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소나무에게 지다
복효근
2020년 8월 8일 내린 폭우로 동네 뒷산에서 산사태가 쏟아졌다 우리 두 사람 출퇴근차가 떠내려가 폐차를 시키고 말았다 자차보험도 들지 않아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있는지도 모를 하느님을 원망할 수도 없고 나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은 이웃들도 있어 쓰리고 아린 속을 견디며 지낸다 오늘 아침 산사태에 쓸려온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쌓여있는 동네 어귀를 지나는데 꺾이고 부러진 소나무 둥치에서 송진향이 진하게 풍긴다 뿌리 뽑혀 죽은 나무 형편에 향기라니 차라리 시취屍臭라도 뿜어야 옳지 않나 감히 무슨 훈계라도 하듯 그래, 뭘 어쩌란 말이냐 죽은 소나무 무더기가 괘씸하다 아침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뒤 내내 그 괘씸한 향기가 내 몸 어딘가에 스며서 코끝에 폐부에 머릿속에 스며서 소화제에 감기가 나은 것처럼 그놈의 송진 향기에 쓰리고 뒤틀린 속이 조금은 개운해지는 것이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냥 다 용서해도 될 것만 같았다
_계간 『문예연구』 (2024년 봄호)
_복효근 시인 1991년『시와시학』등단 신석정문학상, 박재삼문학상, 시와편견문학상 등 수상 시집『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버마재비 사랑』,『새에 대한 반성문』,『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