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잊게한 손맛과 성취감…20만 어르신 파크골프 ‘홀인’
신심범 기자2024. 6. 24. 03:02
77번 버스가 간다 <2> 필드 위 은발의 전쟁
- 비교적 공 크고 신체 부담 덜해
- 운동신경 떨어져도 누구나 즐겨
- 이용료도 무료… 실버세대 인기
- 삼락생태공원 4곳 72홀 골프장
- 부산 최대…작년 23만 명 라운딩
- “노인도 재밌게 운동… 소통은 덤”
국제신문 77번 버스의 두 번째 행선지는 부산 사상구 삼락생태공원이다. 벚꽃과 록페스티벌만 떠오른다면 삼락생태공원을 잘 모르는 소리다. 이곳은 말 그대로 부산 파크골프의 성지. 부산 최초의 파크골파장이 생긴 곳도, 부산에서 가장 많은 코스가 운영되는 곳도 모두 삼락생태공원이다.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젊은 어르신’의 발길이 이어진다. 대체 무엇이 실버세대를 파크골프에 미치게 하는지 30대 기자가 어르신과 함께 라운딩하며 확인해봤다.
▮실버세대, 파크골프에 미치다
“아~ 나이스 샷. 젊으셔서 그런지 금방 잘 따라 치시네. 다음에 치실 땐 힘 조절 좀 해가매, 공을 때려서 칠지 밀어서 굴릴지 고민해가, 예? 코스가 직선인지 커브인지도 보고, OB(Out of Bound·경계구역을 벗어난 범타) 조심하시고, 경사로 보낼지 평지로 보낼지 생각하시가꼬….”
지난 8일 부산 삼락생태공원 36홀 파크골프장 1번 코스. ‘실버 대표 운동’ 파크골프 첫 라운딩에서 호기롭게 클럽을 휘두른 햇병아리 파크골퍼에게 어르신들의 ‘우쭈쭈’ 세례가 쏟아졌다. 직선으로 78m 떨어진 홀에 공을 때려 넣기까지 걸린 타수는 8타. 뜻한 바를 멀찍이 벗어난 타구가 연거푸 나왔다. 두 번의 OB로 벌타까지 진탕 먹었다. 반면 함께 필드에 선 사상구파크골프협회 강혜정(여·66) 사무장은 3타 만에 1번 코스를 끝내며 젊은이의 기를 꺾었다.
‘우야든동’ 홀과 가까워졌으니 이제 문제는 퍼팅이다. 지름 6㎝짜리 사과만큼 큰 공이 17㎝ 커다란 홀컵을 피해 요리조리 굴렀다. 낭패의 연속이었다. 코앞의 목표 지점을 두고 애간장을 태우다 세 차례 만에 가까스로 코스를 마쳤다. “탁 치는 기 아이고, 슬슬 밀어야지!” 과연 은발의 파크골퍼들은 3, 4타 만에 코스를 마무리했다. 깔끔하면서도 절제된 샷이 중후한 신사·숙녀의 품격을 연상케 했다. “나이스 샷!”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공이 홀컵에 빠질 때 들려오는 ‘땡그랑’ 소리는 성취감과 쾌감을 모두 맛보게 했다. “인자 와 우리들이 파크골프에 미치는지 알 것 같습니꺼?” 권정대(73) 회장이 홀컵 속 볼을 챙기며 미소 지었다. 비교적 공이 커 스윙이 잘 맞고 힘도 들지 않는 운동, 운동신경이 감퇴해도 ‘구력’으로 이를 커버할 수 있는 운동. 그러면서도 적절한 힘 안배와 스윙 기술 등을 요하는 ‘스포츠’로서의 면모. 조망이 탁 트인 생태공원을 배경으로 공을 칠 때 느끼는 여유. 운동을 매개로 모인 동료와 쌓는 친밀감. 게다가 10만~20만 원은 쉽게 깨지는 일반 골프와 달리 이용료까지 무료라니.
“공이 크니까 일단 잘 맞잖아요. 그러면서 또 목표 지점으로 공을 굴려 넣는 맛이 있거든. 몸도 따라주고 게임도 재미있고. 젊었을 땐 골프를 쳤지만 은퇴해 비용 부담이 커지고 몸도 예전 같지 않은 지금은 파크골프에 미치는 거죠” 권 회장이 사용한 ‘재미있다’란 단어 안에는 노년 세대가 파크골프에 ‘홀 인’ 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가 함축돼 있었다.
▮“구들장 지고 죽을 수는 없잖아”
젊은 층에 삼락생태공원은 부산국제록페스티벌 개최지로 유명한 곳이다. 매년 여름~가을 전 세계 유명 뮤지션이 이곳에 모인다. 록 스피릿을 온몸으로 느끼며 함께 소리 지르고 몸을 격동하는 젊음의 장이다. 이런 뜨거운 축제가 열리는 곳이라니, ‘실버’와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는 삼락생태공원의 진면목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곳에는 부산에서 가장 큰 규모의 파크골프장(4곳 72홀)이 조성됐다. 부산의 첫 번째 파크골프장도 이곳에 처음 만들어졌다(2011년·9홀). 잔디 휴식기(8주)와 장마철(1주) 외에는 매주 화~일 상시 운영된다.
실버 세대의 파크골프 사랑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지난해 삼락생태공원에서 라운딩을 한 파크골퍼는 23만1840명(중복 포함)으로 추산한다. 파크골프는 구·군 단위 협회에서 회원과 필드 운영을 관리하는데, 부산에서는 화명생태공원을 거점으로 둔 북구협회가 회원 수 1500명가량으로 가장 많다. 양산 등 인근 경남지역의 어르신까지 회원으로 둔 영향이다. 삼락생태공원을 사용하는 사상구협회에도 800명가량이 회원으로 활동한다. 전국적으로도 20만 명 이상이 동호인으로 파크골프를 즐긴다. 파크골프처럼 수많은 어르신이 회원으로 가입한 생활체육 단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2008년 12월 전국파크골프연합회가 생긴 지 약 15년, 실로 가파르게 세를 확장 중이다.
파크골프의 인기는 한마디로 ‘재미있는’, ‘운동’이란 점에서 비롯한다. 파크골프 18홀을 돌 때 걸리는 시간은 대체로 2시간 내외다. 7000보 정도를 자동으로 걷게 된다. 무리하게 뛰거나 험준한 지형·환경을 견디며 운동할 필요가 없어 체력 부담도 덜 하다. 삼락생태공원에서 만난 파크골퍼 노모(70대·영도구) 씨는 “주 2, 3회, 하루 3시간씩 공을 친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지루하지 않게 자주 걸을 수 있다는 게 이 운동의 장점이다”며 “몸 핑계 돈 핑계로 집에만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없어진다. 스윙하며 공을 때릴 때의 손맛, 홀컵에 공이 빨려 들어갈 때의 쾌감이 짜릿하다”며 파크골프의 참맛을 전했다.
달리 말해, 세월 탓에 지게 된 ‘몸의 제약’을 뛰어넘게 해주는 스포츠가 바로 파크골프인 셈이다. 강 사무장은 “파크골프 입문자를 대상으로 협회 차원의 강습을 정기적으로 나간다. 이번 강습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신 분은 78세였다. 그분 말씀이 ‘이대로 구들장만 지다가는 죽겠다 싶어서 파크골프를 배우러 나왔다’였다”며 “노인의 몸으로도 즐겁게 운동을 즐기는 동시에 협회가 활성화됐으니 이를 통해 서로 집에서 만들어 온 음식을 나눠 먹는 것과 같은 일종의 소통도 이뤄지는 것이 파크골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