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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에서 여는 작고 아늑한 축제
- 우은숙 시집 『물무늬를 읽다』(시학)
- 장영춘 시집 『어떤 직유』(동방)
정용국
1. 길을 나서며
인간이 태어나 오롯이 꾸려 가는 여정을 곰곰 생각해 보면 부모님 그늘에서 자라는 20년의 시간을 빼더라도 60여년이라는 긴 시간을 자신의 의지와 공력으로 주도해 나가야 한다. 물론 의학의 발달로 하루가 다르게 평균수명이 연장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 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다. 갑년(甲年)은 예로부터 천간지지(天干地支)가 한 바퀴 돌아 제 자리로 돌아오는 기간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간의 장수를 뜻하기도 하였다. 80년의 생애 중 성인으로 살아가는 기간을 60년으로 본다면 50대는 그 반환점이라 할 수 있겠다. 글쓰기에 들어가며 인간의 수명과 나이를 셈해본 것은 이번에 서평을 쓰게 된 두 시인의 연치가 그에 해당하는 것 같았고 편편에 나타난 생각의 깊이에 이제 새 길을 나서는 삶의 참맛이 들기 시작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 고은 「순간의 꽃」부분
돌아보면 20세에 성인으로 출발한 삶은 참으로 고단하고 된 오르막길이다. 공부와 군복무를 마치고 취직하고 결혼에 이르는 길도 만만치 않으려니와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과 가파른 직장의 고개를 넘는 길은 얼마나 숨이 차고 아스라한가. 그러니 반환점인 50세 정도는 되어야 겨우 한 숨을 돌릴 겨를이 생긴다. 그 즈음은 되어야 고은 시인이 말한 ‘그 꽃’도 더러 볼 수 있으리라. 일가를 이룬 대 시인도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을 우리 범인들 눈엔들 보였겠는가. 어쩌면 내려갈 때도 안 보일지 모르는 일이다. 인간의 생명이 연장된다는 일은 객관적으로 축복이고 다소곳이 받아 들 소중한 시간이다. 늙으면서 생의 참맛을 음미하며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의 시간을 통해 새로운 사유와 인식의 폭을 확충하는 것은 아름답고 소중한 의미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육체적으로 이 시기는 많은 질병이 발생하고 노쇠해 가는 기간인 것은 또 다른 이율배반의 시간이다. 그래서 자칫 건강관리에 소홀하다 보면 사는 것이 고단하고 가족에게도 큰 부담을 초래하는 힘든 모습들을 본다.
남성보다 결혼이나 출산이 빠른 여성에게 있어서의 50대는 아주 홀가분해지는 시간이다. 양육과 가사의 굴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는 시기여서 그 동안 미루어 두었던 개인의 발전과 취미생활에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 있는 전환기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삶의 연륜과 경험이 풍부해져 보다 수준 높은 문화적 예술적 체험을 통하여 풍성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향유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사람 속을
훑고 가는
희뿌연
바람
소리
벌레들이
계절의
달력을
넘기는
소리
그소리,
화르르 지피고
달아나는
점령군
- 우은숙 「시」 전문
자음과 모음 사이
다리 하나 놓아보자
열면 길이 되고
닫으면 문이 되는
숨죽여 네게로 향한
가갸 거겨
세우며
- 장영춘 「시」전문
두 시인의 나이를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50대 초반에서 중반 사이인 것은 틀림없다. 모두에서 말한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서는 의미 있는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그들에게 ‘시’는 이렇게 다가왔다. 지천명 이전의 모든 소리들, 자연의 소리들까지도 나를 스쳐 지나갔지만 그 이후의 소리들은 내 마음에 들어와 소통하는 소리가 되는 모양이다. 바람소리와 벌레소리 마저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내 안테나에 걸려 소용돌이친다. 결국 그 소리에 놀라고 눈물짓고 끝내는 ‘화르르’ 불 지피고 ‘달아나는 점령군’으로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는 것이리라. 또한 수십 년을 쓰고 다루던 글자들도 ‘열면 길이 되고/ 닫으면 문이 되는’ 나와 밀접하게 상관하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래서 ‘숨죽여 네게로 향한’ 강력한 메시지가 되어 있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50을 ‘지천명’이라 하지 않았을까. 제대로 알게 되고 새로 느끼게 된다는 의미이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지천명의 나이는 축복이요, 신천지로 나가는 길목이다. 새록새록 다시 느끼고 호흡하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니까 말이다.
선인장 손질로 하루를 여는 어머니
화분을 햇빛에 놓으시며 하는 말
시간을 말리는 거야
이게 다 준비하는 거지
이 선인장 가져갈래?
이래 뵈도 잘 자란단다
플라스틱 화분을 나에게 건네신다
얘, 이젠
모든 게 성가셔
굽은 등이 말한다
내 품에 안겨 온 게발선인장 화분
이젠 우리 집에도 어머니가 사신다
어머니 말 건네신다
걸어오기도 하신다
파르르 떨던 가시 귀 쫑긋 세운다
지나온 시간들을 봄볕에 꺼내 놓고
말리신 어머니 시간
나에게 젖어 든다
- 우은숙 「어머니의 화분」전문
삼년 전 폐원한 과수원 한 귀퉁이
귤나무 한 그루 우두커니 서 있어
팔순의 주름진 손으로
귤 몇 개를
건네시는
눈 맞아 익은 귤이 무척이나 달다고
재래식 수화기에 군침이 마르도록
어머니 미닫이문이
열두 번도
더 열려
- 장영춘「어머니의 미닫이」 전문
어머니의 딸로 자라 자신들의 자식을 기르며 어머니께 죄스럽고 미안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자식들 자라는 모습을 보면 나를 키우시며 속이 새까맣게 타셨을 엄마를 수없이 떠올리곤 했을 것이다. 이렇게 절실하게 어머니를 생각해보게 된 것도 반환점에 이르러서야 온전히 내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이니 사람은 참 늦된다는 생각이 든다. 의도적으로 다소 성긴 네 수의 구조를 지키고 있는 우은숙의 작품은 어머니의 작은 손길과 말씀까지도 일부러 느릿느릿 가슴에 새겨 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팔십 년 넘게 ‘말리신 시간’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은 딸의 오롯한 정성이 전편을 관통한다. 장영춘의 작품 또한 읽고 나면 가슴이 짠하다. 왜 하필이면 ‘폐원한 과수원 한 귀퉁이 귤나무’ 였을까. 그래서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귤나무에는 눈이 내려도 거둬가지 않은 귤이 더 달았을 것이다. ‘열두 번도 더 열’린 미닫이는 어머니의 곳간이요, 마르지 않는 애정의 원천이었다.
어머니의 ‘화분’이나 ‘미닫이’는 그분들의 분신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가장 슬플 때는 그분들의 손때가 묻어있거나 각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물건들을 마주할 때다. 딸은 아들과 달라 어머니와 유사한 여정을 걸어가게 된다. ‘난 엄마처럼 안 살거야’라고 했던 딸이 오랜 시간을 지나 돌아다보니 참 기이하게도 꼭 닮은 길을 가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렇게 지천명의 구비는 세상을 톺아보고 되씹어 보는 아주 소중한 길목이다. 두 시인이 더듬어 가는 그 반환점의 이야기에 귀를 더 기울여 보기로 한다.
2. 목울대를 치올린 음각의 시간들
우은숙 시인의 시집에서는 놀라운 상상력이 여기저기에서 소리를 지르고 튀어나오기도 하는데 마치 스타카토로 빠르게 울리는 행진곡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대목이 여러 군데 있다. 농익은 생각들은 지천명에 있으면서도 젊고 싱그러우며 상큼한 냄새를 시의 구석구석에 장치해 두고 있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나이를 인정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나이를 잊고 사는 것 또한 더 어려운 일이다. 다음의 시를 통하여 상상력의 난장을 돌아보기로 한다.
우리 동네 과수원에 봄마다 피는 배꽃
올해도 어김없이 허리 휠 듯 피었는데
고딕체
영농금지가
개발구역 통보한다
숨 막히게 피워 낸 눈부신 절정의 행렬
시리도록 폭죽 터진 저 축제 언제 끝날지
아찔한
고요의 시간
화두처럼 번져 갈 즈음
난 재빨리 몸 안으로 배나무를 가지고 와
거친 내 몸 구석에 정성 다해 심는다
입 안은 금방 배꽃으로
가득 찬 수레다
그때, 과수원 앞 좁은 길 사이로
천천히 자전거를 밟고 오는 사내아이
스르륵
흰 꽃잎 열고
배꽃으로 들어온다
- 「가난한 축제」전문
네 수로 구성 된 이 작품은 전후 두 수 씩를 경계로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뛰어 넘는 유기적 구조로 전개된다. 앞의 두 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다. 아파트가 들어서거나 다른 개발을 이유로 과수원은 곧 없어지게 되는 상황을 ‘영농금지’ 고딕체 푯말이 극명하게 알리고 있다. 그러나 ‘절정의 행렬’을 맞고 있는 ‘시리도록 폭죽 터진 저 축제 언제 끝날지’ 시인은 온통 배꽃의 ‘아찔한 고요의 시간’이 화두로 들어와 마음이 안절부절 걱정이 태산이다. 이러한 상황들은 우리가 쉽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파트 천국의 일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 현실이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맘껏 상상의 날개를 펴고 현실을 극복한다. 배나무를 ‘거친 내 몸 구석에 정성 다해 심는다’ 아, 망가지기 일보 직전에 배나무를 내 몸에 옮긴 시인이여. 시인의 몸속으로 들앉은 배나무여, 절정의 배꽃이여. 그러자 ‘사내아이’로 상징되는 세상도 ‘흰 꽃잎 열고 배꽃으로 들어온다’ 인간들이 말로만 주창했던 상생평화가 이 시 속으로 오셨다. 아니 시인이 물아일치를 꿈꾸어 상상의 밭에 잉태하게 하였다. 놀라운 상승이요, 안양세계(安養世界)를 이룬 이 시의 제목을「가난한 축제」라 하였으니 더 더욱 아름답고 소박하지 아니한가. 축제는 ‘가난한’이라는 형용사로 인하여 미적 완결성을 갖추게 되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서둘지 마세요
섬 한복판 거대한 가마솥 걸었거든요
아궁인 땅속에 있어요
불길이 너무 세요
햇빛과 바람이 고슬고슬 밥을 지어
거대한 밥 한 그릇 고봉으로 차렸어요
가난을 먹고 살았다고요
이젠 이리 오세요
견고한 땅의 입김이 담겨진 마음 한술
무욕의 공동체로 모여 핀 그리움입니다
생명의 빛이 들지요
따듯한 손길입니다
대낮이면 투명하게 흰 그늘 드리우고
밤이면 꽃등으로 불 밝힌 작은 밥알들
눈부신 한 그릇의 공양
하늘 아래 놓였어요
- 「그 섬의 이팝나무」전문
제목을 생각하면서도 첫 수만 읽고 나면 무슨 말인가 고개를 갸웃 할 것 같다. 두 수 째를 읽으면 이팝나무라는 제목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며 밥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구나 ‘이팝나무 전설’은 알고 있어서 이밥처럼 하얀 꽃이 피어 고봉 밥그릇으로 보이기야 하겠지만 ‘섬 한복판 거대한 가마솥’을 걸고 땅 속에 아궁이를 내어 불을 때서 밥을 짓는다는 상상력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한 것이라 하겠다. 더구나 ‘무욕의 공동체로 모여 핀 그리움’이며 ‘밤이면 꽃등으로 불 밝힌 작은 밥알들’은 한 그릇의 밥 차원을 넘어서 ‘땅의 입김’과 ‘햇빛과 바람’이라는 대자연이 건네주는 ‘생명의 빛’이라 하겠다. ‘눈부신 한 그릇의 공양’이 된 섬의 이팝나무는 한 점 섬광이 하늘로 올라가 수십 개의 불꽃으로 산화하는 축포처럼 건강하고 따듯한 위로와 격려가 되고 있다.
여성스러운 시각과 따스한 눈길로 주변과 사물을 응시하는 우은숙 시인의 작품들은 위에서 살펴 본 대로 자유롭고 세련된 상상력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시편들이 많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얻은 날카롭고 감각적인 직감들을 많은 시에 담아 넣고 있다. 자칫 경계해야 할 여행지에서 얻은 느낌들을 너무나 적절하게 깎고 다듬어 순도 높은 차원의 밀도를 구성해내는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또한 팔순이 넘으셨을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단순한 과거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적당한 상징과 소재를 통하여 애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다음에 살펴 볼 두 편의 시는 자신을 성찰하고 뒤돌아보는 깊이가 남다른 작품들이다.
50대의 나이가 신세계로의 출발이라고 말했지만 또한 서서히 노화와 귀환을 준비하는 하향기라는 사실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체력이 저하하고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 우울증으로 감정이 곤두박질치기도 하며 직장과 조직에서도 서서히 물러나야 하는 위치에 서있는 것이다. 가정에서도 자식을 분가시키고 모두 떠난 자리에서 조용하게 여생을 계획하고 배우자와의 관계도 재정립 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열정이 넘쳤던 시절에 비해 말도 한결 성숙해져야 하며 이제는 어디서든 ‘어른’으로서의 위치와 책임을 져야하는 시기이다.
오늘 내가 뱉은 못질
얼기설기 그물 짜고
강물은 낡은 수첩에
꼼꼼하게 적는다
온종일
바람 속에 박힌
자모들의 현기증
하늘 길과 사람의 길
그 탱탱한 빗장 열고
일직선으로 날아가
익명의 징을 친다
명치끝
투망에 걸려
식지 않는 체기
- 「말의 그물」전문
불교 경전에서 기본이 된다는 천수경의 첫머리에는 사람의 잘못 중 구업(口業)을 가장 경계하고 염려하는 진언이 나온다. 그만큼 말의 해악은 사람이 저지르는 잘못의 으뜸이라 할 수 있겠다. 가장 쉽게 저지르면서도 상대방이 받을 상처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시인도 ‘내가 뱉은 못질’을 걱정하고 경계한다. ‘하늘 길과 사람의 길’을 제대로 가기가 얼마나 신산한 과정인지를 알게 되는 나이도 50대이다. 흔히 ‘나이 값도 못 한다’는 말은 그 사람의 언행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것도 말이 우선인 것이다. 내가 뱉은 말로 두고두고 가슴앓이를 하는 경우는 가장 가까운 배우자나 부모, 그리고 형제 사이에서 생기게 마련이다. 늘 스스럼없다 생각하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말을 함부로 하게 되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낡은 수첩에 꼼꼼하게 적’힌 못질들을 듣는 이는 오래 기억할 것이며 ‘일직선으로 날아’간 대못도 상대방의 가슴에 박힌 채 몸부림을 칠 것이다. 또한 발설자인 나도 ‘명치 끝 투망에 걸려 식지 않는 체기’로 오래오래 가슴 아플 것이니 세 번 생각하고 말하라는 격언은 두고두고 곱씹어 볼 일이다. 말을 통하여 서로 연대하고 상통하는 그물 같은 평화를 이룰 수도 있지만 말로 인해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불통을 저지를 수도 있으니 시제 ‘말의 그물’은 성서와 고전에 수없이 거론되는 재미있는 패러디라 할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시인이 여행지에서 느낀 소회를 현실과 자아와의 관계를 통하여 건져 올린 묵직한 시 한 편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1.
산꿩의 붉은 눈이 능가산을 적시고
흔들리는 마흔이 목울대를 치올라
켜켜이 잔등을 넘는 들숨과 날숨의 밤
솨악솨악 불어오는 내소사 대숲 소리
서늘한 향기 품고 화살처럼 달려와
제 몸을 더욱 거칠게 빈 하늘에 꽂는다
2.
무명으로 온 새벽은 투명의 가슴 열어
나의 긴 발자국을 판각으로 새겨 넣고
또 다른 하루를 향해 마른 목을 축이는데
그 무엇으로 음각의 시간을 견딜 것인가
빈 들판에 돋을새김의 팔을 뻗는 그날 위해
아직도 잠 못 드는 바람만 서성이고 있는데
- 「하루」전문
이상한 일이다. 어떠한 하루였기에 전나무길이 아름답고 대웅보전 꽃창살이 어여쁜 부안의 명소 능가산 내소사에서 시인은 자못 비장하게 생의 중요한 한 대목을 버티고 있는 것일까. 불혹의 마지막 해를 아쉬워하는 것일까. ‘켜켜이 잔등을 넘는’괴로움은 무엇이었을까. 아주 추상적인 신산함이 전편을 관류하며 독자를 답답하고 심오한 골짜기로 끌고 내려간다. 아마 시인은 커다란 낭패를 두고 새롭게 자신에게 다짐과 격려의 의식을 치루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어떻든 그것을 꼭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 이러한 상황을 접하게 될 수 있고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가야만 하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넷째 수에 언급된 ‘음각’과 ‘돋을새김’이라는 두 단어는 전편을 통해 아주 중요한 이미지와 단초를 제공하는 시어로 보여 진다. ‘음각’과 ‘돋을새김’은 상대어다. 파여지는 부분이 주체냐 객체냐에 따라 글씨나 그림이 낮아지고 높아질 뿐이지만 시어로 확장되어진 이상 시의 내부에서는 조금 더 다양하고 유기적이며 돌올한 이미지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음각’은 결핍, 미완, 부족 등의 의미로 ‘돋을새김’은 풍요, 완성, 충족 등의 이미지로 확장해 본다면 시제인 어느 ‘하루’는 대체적으로 어렵지 않게 해석되어진다. 누구든 어떤 전기를 맞아 성장하고 탈바꿈 하며 대의를 이루고 상대와의 관계를 개선하여 생의 길을 전진해 나가기 마련이다. 그 ‘하루’는 누구에게나 이렇게 비감하고 결연했으리라. 우은숙 시인의 감각적인 시를 돌아보고 나서 설핏 무거움이 독자를 압도하는 분위기의 작품을 읽는 것도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한다. 조금 긴 간격을 두고 두 번째 나온 시집이어서 그 기간만큼이나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들이 속살거리고 있는 인생 반환기의 시집은 묵직하면서도 날렵하였다.
3. 섬은 시를 낳고 시는 섬을 섬기고
인간은 자신이 태어난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고 성장한다. 여기서 환경이라 함은 자연 뿐만이 아니라 가정, 교육, 문화, 경제, 정치 등 인간을 감싸고 있는 모든 환경을 말한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며 그 커다란 자장의 테두리 안에서 부대끼고 물들어 개인의 인성과 품격은 물론이요 사회적 지위, 역사 인식 등이 형성되는 것이다. 물론 자의적으로 환경을 개척하고 열악함을 극복하는 노력을 경주하겠지만 이러한 개선의 의지도 결국은 성장과정의 교육이나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고 본다면 환경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하겠다. 제주도는 우리 국토 중에서도 특별한 몇 가지를 지니고 있다. 특히 오랜 동안 역사의 그늘에서 외세의 격랑에 흔들렸고 사상의 대립으로 많은 목숨이 희생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막대한 상처를 입은 바 있다.
"제주도의 시인들이 너무 판에 박힌 소재와 주제에 집착하여 그 변별력과 창의성이 느슨해지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특히 삼별초의 대몽항쟁이나 4.3사건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필자는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과거의 역사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다양한 의미와 양태로 재해석되기도 하며 그 진실과 영향이 전이되어 가기도 한다. 특히 4.3사건은 아직 그 피해자와 가해자들이 생존해 있고 진실규명도 완전하게 마무리 되지 않은 현시대의 사건이기 때문에 예술가들이 관심을 가지고 창작의 소재로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의미 있는 일이다. 다만 표현방식과 창의성이 타 작품과 어느 정도의 변별력과 순도를 지니고 있느냐가 문제일 따름이지 더 많은 예술가들이 연구하고 재해석하고 희망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도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장영춘 시인도 제주도에서 출생하여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는 토박이 시인이다. 당연히 그의 시집 속에는 제주도의 자연과 역사 등 제주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느끼고 호흡할 수 있는 작품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장영춘 시인이 선택한 소재를 얼마나 주관적으로 인식하고 창의적으로 적절하게 표현하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상당한 부분에서 성공하고 있다고 동의할 수 있다. 그것은 제주에서만 감화할 수 있는 자연과 사상에서 출발한 소재를 취했지만 상당히 사회 현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유기적 구조와 은유로 직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장영춘의 시가 소재의 단순성을 극복하고 변별력 있는 순도 높은 창의적 깊이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년원 울타리 안에 축축한 손 내미는 아이
강남 간 제비도 오기 전에
제비꽃은 피어서
파리한 외투 걸치고
아직 거기 섰구나
초롱초롱 맑은 눈빛조차 다 풀리고
까까머리 정수리에
햇살 잠시 내리면
정이월 보도블럭에
물음표를 세운다
- 「제비꽃」전문
육지의 정이월이면 아직 한파가 한창일 터인데 남쪽 섬은 벌써 꽃이 피었나 보다. 두 수의 이 시조는 첫 수 초장에서 이미 대세가 결정되었다고 본다. 아마 그냥 첫줄만 놓아도 좋은 자유시라 할 수 있겠다. 제비꽃은 잘 해야 한 뼘 정도로 자라는 다년생 풀인데 그 자주색 꽃이 예뻐서인지 노랫말이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꽃이다. 작고 여려서 예쁜 아이나 귀여운 연인 등으로 비유된 표현들이 많다. 그러나 '소년원 울타리 안에 축축한 손 내미는 아이'라니 제비꽃을 표현한 모든 비유를 통틀어 본다 해도 이 한 줄만한 것이 있을까 싶다. 꽃의 이미지와 잘 상통하면서 제비꽃의 또 다른 면모를 하나 창출해 내었다고 생각한다. 소년은 무슨 연유로 교도소엘 오게 된 것일까. 엄마에게 매질하고 술주정하는 아비를 위해한 것일까.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빵이라도 훔친 것일까. '파리한 외투 걸치고' 서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그래서 시인은 제비꽃 소년을 위해 '물음표를 세운다' 라는 말로 마무리 한다. 아마 그 물음표 속에 독자가 궁금해 하는 사연들이 다 들어 있을 듯하다. 그것은 소년원 밖에 있는 어른들에게 던지는 물음들이 아닐까 싶다. 왜 소년을 이리 만들었는지 가정과 학교와 사회는 이 지경에 이르도록 이 소년을 방치했는지 묻고 있는 것이리라. 제주도 제비꽃은 이쁘기도 하지만 고 여린 이파리는 창칼과도 같이 예리하고 다부지다. 이번에는 민들레를 만나 보자. 당연히 장영춘표 민들레다.
어젯밤 노숙을 한
네 눈빛이 퀭하구나
머리채 반쯤 뜯긴
신산공원 뒷마당에
제초제
수차례 맞고도
백치 웃음
웃는 너
밝힐수록 일어나는
우리나라 들풀처럼
아플수록 힘이 난다는
노형동 복순 아줌마
돌아서 주름살 펴며
마구 손을
흔드네
- 「신상공원 민들레」전문
제비꽃은 소년원 아이 하나였지만 신상공원 민들레는 노숙자이거나 필경 청소 용역으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민들레의 뿌리를 캐보면 생각보다 굵고 억세다. 그래서 보도블록 사이고 시멘트벽 갈라진 틈에다가 뿌리를 잘도 내린다. 그 씨 또한 관모(冠毛)가 있어서 낙하산처럼 멀리 날아가 높은 곳에도 쉽게 씨를 떨군다. 이렇게 강인한 뿌리와 씨를 가진 민들레는 신상공원 해도 덜 드는 '뒷마당'에서 '제초제 수차례 맞고도 백치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강인한 체력과 정신을 상징한다. '아플수록 힘이 난다는 노형동 복순 아줌마'는 긍정의 힘을 믿는 사람인가 보다. 얼굴 한가득 주름살이 지나가고 아픈 날이 더 많은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일을 해야 아프지 않은 특별한 인자를 가지고 계신지 외려 우리더러 힘내라고 손을 마구 흔들어 주시는 것이다. 제비꽃과 민들레 외에도 약 20여 편에 이르는 나무와 꽃이 대체적으로 장영춘 시인의 감성에 체화되어진 모습으로 선을 보이고 있으니 다행스럽고 기쁜 일이다. 이번에 살펴 볼 시들은 제주도의 풍광을 배경삼아 자연이 보여주는 현상들을 통하여 시인의 심연에 일어나는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50보다 60에 가까운 장영춘 시인의 깊이가 잘 드러나 있는데 반환점을 잘 돌아 귀환하기까지 생각을 잘 다듬고 벼리기를 바란다.
태풍 메아리가 섬자락을 뜯고 있을 때
수월봉 절벽 아래 수직으로 돋는 파도
허옇게
기둥을 세운
물의 뼈를 보았네
누구의 등을 타고 저리 치열하게 오를까
서로 할퀴고 허물어도 흔적조차 남지 않는
그게 다
거품인 것을,
여기 와서 보았네
부표로 떠돌던 허물어진 수평선에
짜디짠 그리움이 목젖 가득 밀려오면
부메랑
화살 한 촉을
바다 위로 날렸네
- 「바다에 눕다」전문
사람의 속성 상 흔하면 관심 밖에서 밀려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주도에서야 매일 보게 되는 것이 파도이련만 시인은 중후한 시각으로 파도를 읽어낸다. '수직으로 돋는 파도'에서 '물의 뼈'를 보았고 그것이 곧 '거품'이란 것을 인식한다. 삶에서 때로는 진실과 신념이 맥없이 무너지고, 빛나던 맹서가 식기도 전에 배신하는 모습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직면하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허옇게 기둥을 세운 물의 뼈'가 단숨에 무너져 내리는 모습에서 시인은 우레 같은 메시지를 받아든다. 마치 자식을 키우며 나의 어머니를 이해하는 나이가 저절로 그것을 가르쳐주는 것처럼 말이다. 세월이 약이라는 속담은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말이다. 세월은 인간에게 어마어마한 스승이고 위안이고 안타까움 자체이다. 시인은 부메랑에 무엇을 실어 날렸을까. 분명 자신에게로 되돌아 올 그것에 '거품'을 한가득 날려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편안하게 모든 것을 맡긴 채 바다에 눕지 않았을까. 바다에 둥둥 떠서 '서로 할퀴고 허물어'버린 것들과 '짜디짠 그리움'까지 날려버리고 빈 몸으로 돌아오는 부메랑을 맞이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편을 시를 더 살펴보기로 한다. 역시 배경으로 깔린 제주의 풍광이 이름답다.
점박이 노루 등 타고
영실로 내려온 가을
자폐증 앓던 산이 그 오랜 말문을 열고
가을볕 노랗게 내린 돌계단을 쓸고 있다
시대의 파수꾼으로
한 빛깔을 지니고 살던
등 굽은 적송들도 단풍 들고 싶었는지
누렇게 절망을 두른 곁가지를 내민다
바람도 깃을 접는
순환의 소롯길에
아직도 물들지 못한 아픔의 미립자들
어제 그 산중의 가을이 내 창에 와 물든다
-「단풍들고 싶은 계절의 시」전문
'점박이 노루 등 타고 영실로 내려온 가을'은 어떤 색깔이고 모습일까. 그런데 산이 많이 아픈 모양이다. '등 굽은 적송들도' 얼마나 아팠으면 '누렇게 절망을 두른 곁가지를' 내밀었을까. '아직도 물들지 못한 아픔의 미립자들'도 창밖을 서성이고 있다. 세 수에 모두 아픈 것들 천지다. 계절이 변하는 것과 함께 모든 자연은 순환의 법칙을 준수한다. 봄이 오면 싹이 나오고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단풍이 들고 잎이 지는 것은 거대한 원칙이다. 그러나 어떤 연유에선지 그 순리를 따르지 못하게 하거나 방해하는 요소가 있을 때 자연은 아픈 것이다. 상록수가 단풍이 들어 일순에 잎이 져서도 안 되고 단풍이 들어 잎이 져야 하는 나무가 잎을 단 채로 겨울을 날 수 없는 것이 철칙이다. 그러나 인공이 저지른 해악은 점차 자연을 흔들기 시작했다. 온난화의 결과는 아마 끝내 지구를 궤멸시키고 말 것이다. 그래서 '단풍들고 싶은' 나무들이 많아질수록 이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고 '물들지 못한 아픔의 미립자들'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장영춘 시인은 2001년에 등단하였고 첫 시집 「쇠똥구리의 무단횡단」을 상재한 바 있다. 이번에 두 번째 시집이 나온 것에 비해 대체로 낯이 선 이름이다. 제주도에 사는 이유도 있었고 전반적으로 시조단의 활동이나 발표의 기회도 충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살펴본 바와 같이 그의 시는 상당한 변별력과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반듯한 작품들로 가득하다. 이번 시집이 인생 귀환점을 도는 여정에 좋은 청량제로 시인과 독자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4. 돌아가며
인생은 누구라도 돌아갈 수밖에 없는 여정이다. 젊어서는 죽음을 많이 두려워하고 멀리 있는 것으로 보게 마련이지만 누구라도 지천명을 넘어 이순에 이르러서는 순명의 자세로 받아들이게 된다. 길을 나서며 말한 바와 같이 인생 80세 이상에 이른 현실에서 50세는 실질적인 그 반환점이다. 요즘은 늙어가는 것을 즐기고 담담하게 노후를 감동적으로 지켜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접하게 된다. 돌아간다는 말은 참 여유 있는 말이니 삶의 대부분을 이미 경험하였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쉽게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는 판단력은 물론이요 인간과 사물에 대한 중후하고 따듯한 시선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밀어낸 시집은 당연히 무게와 절제가 있고 풍부한 상상력이 가세하고 있다. 천재적인 표현으로 20대에 절창을 뽑아낸 몇몇 시인들의 이야기와는 차원이 또 다르다. 이번에 각각 두 번째 시집을 출간한 두 여류시인의 작품들을 살피면서 동시대인으로서 많은 이해와 위안을 받았다. 인생 반환점을 돌아가는 여유로운 길에서 그들이 벌이는 길 위의 축제는 아늑하고 감미로웠다.
발췌: 《시조시학》 2012년 가을호
정용국 :경기 양주 출생 2001년 《시조세계》로 등단
이호우,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수상.
시조집 『명왕성은 있다』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