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시작되고 여름 휴가철이 되자 집 나갔던 독자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모처럼 책방이 활기를 띠었다. 괴산의 산과 계곡을 찾아 일부러 온 이들도 있고, 휴가 여행의 길목에서 책방에 들러준 이들도 있었다. 방학이 끝나가자 무더위와 함께 몰려들던 손님들 발걸음이 뜸해지고 극성맞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도 뚝 그쳤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새벽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서늘해졌고 이불을 끌어당겨 덮는 일이 잦아졌다. 못 견딜 것만 같던 최악의 여름 더위도 이제는 끝이 보이나 보다. 올여름엔 특히 매미들이 어찌나 큰 소리로 울어대는지 가끔은 짜증이 나다가도 삶이란 이렇게도 최선을 다해 맹렬하게 울어대야 겨우 살아지는 거구나, 엄숙한 생각도 들었더랬다. 나는 한여름 매미처럼 저리도 열렬하게 내 생을 향해 소리쳐 봤던가, 반성하며 늘어진 몸과 맘을 다잡기도 했다.
올해는 책방 10주년을 맞아 작은 전시를 하고 있다. ‘보고 만지고 느끼고 체험하는’ 팝업북 전시다. 팝업북은 글과 그림만 있는 평면적인 책과 달리 펼치면 그림들이 입체적으로 튀어 오르는 아름다운 예술 책이다. 20여년 전, 종이 한장을 접고 오리고 붙이면 완전히 새로운 책이 탄생하는 예술 팝업북의 세계에 매료된 뒤로 전 세계 아름다운 책들을 수집해왔다. 개인적 즐거움도 있었지만 종이책을 멀리하고 독서를 싫어하는 어린이·청소년에게 책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줄 것이라 생각했다. 책이란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펼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살아있는 매체임을 알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파손이 쉽고 절판이 많은 팝업북의 특성상 귀한 컬렉션을 유리장 안에 모셔둔 채 책방을 찾는 독자들에게 상시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고민 끝에 책방 10주년을 맞아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닫혀있던 책장의 문을 활짝 열고 지역 어린이와 주민들에게 이 아름다운 책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한 것이다. 5월 괴산 전시에 이어 9월과 10월에는 이웃한 증평과 청주에서 순회 전시를 이어 갈 예정이다. 20년간 수집해온 귀한 책들과, 비싼 가격 때문에 일반인들이 선뜻 구매하기 어려운 대중적인 팝업북들, 기존 출판물을 숲속작은책방의 시선으로 재가공해 새로운 창작품으로 만든 예술 책들을 전시한다.
무엇보다 이 전시의 특징은 관람객이 직접 책을 한장 한장 열어보며 팝업북의 장점을 최대로 즐길 수 있게 한 점이다. 전시를 마치고 나면 다수의 책이 손상되지만 애초에 책이라는 상품은 서가에 장식으로 꽂혀 있을 때가 아니라 독자들에게 읽힐 때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이니 기꺼이 책의 운명을 감수하겠노라 각오를 다졌다. 전시 예산도 부족하고 공간도 작아 보여 주고픈 세계를 충분히 담지는 못하지만 디지털 시대, 종이책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를 구현하기 위해 여름 내내 땀방울을 흘렸다.
책은 종이로 만들어진 예술 작품이며 특히 그림책은 누구나 휴대하고 소장할 수 있는 ‘손안의 작은 미술관’ 구실을 한다. 비용과 시간을 들여 미술관에 가는 건 멋진 일이지만 생활에 치여 사는 이들에게 일상이 되긴 어렵다. 미술관이 없는 농촌 마을에선 기회조차 갖기 힘들다. 그러나 책은 동네 도서관에서 무료로 빌려 볼 수도 있고, 책값이 비싸졌다고는 하지만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났을 때 지갑을 열지 못할 만큼 고가도 아니다. 책은 여전히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값싼 문화 상품이며, 운이 좋다면 맹렬하게 울다 결국에는 새 삶을 얻고야 마는 한여름 매미처럼 삶의 뜨거움을 일깨우는 인생 책을 만날 수도 있다. 페이지를 펼치면 절로 감탄이 튀어나오고 죽어 있던 감성을 일깨우는 아름다운 예술 책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다. 이미 천년 전부터 당대 가장 ‘힙’했던 예술 책, 그 아름다움의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