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배 시인이 만난 문인 . 34
자회 진을주 시인
김 송 배
어느날 문학 전문지『지구문학』사의 주간인 김시원 선생이 전화를 했다. ‘계간평’ 집필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그런 시평을 쓸만한 실력이 있느냐고 거절했다. 아니 부군이신 자회(紫回) 진을주(陳乙主) 선생의 간곡한 부탁이라고 말했다.
내가 익히 진을주 원로 시인을 잘 알고 있었으나 그와 만나서 정감을 쌓은 것은 그가 한국문인협회 감사와 이사를 역임하고 상임이사(2001~2003) 재임시에 예총회관 문협 사무실에서 문학과 문단 이야기를 자주 나눌 수 있어서 더욱 가까와졌다. 그는 훤칠한 신사풍의 용모에 언제나 유행에 걸맞는 패션을 선호하는 멋쟁이 시인으로서 한국문단에서 공인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다정다감해서 우리 후배 문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내 눈물로는 채울 수 없는 텅 빈 항아리
놔 두소
돌팔매질 보고 빙그레 웃는 속마음
조금만 더 있다가 내가 찾아가 묻힐 항아리
그는 2007년 겨울호『지구문학』에 이 작품「텅 빈 항아리」를 발표했다. 우선 그 간결한 언어의 함축이 우리들의 공감을 확산시키고 있어서 다음과 같은 시평을 써서 다음 해 봄호에 게재했다.
이 작품은 전문에서 느낄 수 있는 ‘눈물’과 ‘빈 항아리’와의 상관성은 절묘한 서정의 심연으로 몰입하게 한다. 이처럼 ‘비어 있음’에는 사물이거나 관념 모두에게서 우리는 ‘채움’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눈물로는 채울 수 없’다는 존재의 성찰을 가미한 이미지의 적출은 ‘비어 있음’에 대한 예비적인 진실의 창출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시적 화자는 그냥 ‘놔 두소’라는 단정적 어조로 시의 묘미를 증대시키는 효과를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결론에서 ‘조금만 더 있다가 내가 찾아가 묻힐 항아리’라는 어조는 시간성에서 아직 채울 단계가 아니지만 ‘조금만 더 있다가’ 나의 영육(靈肉)이 동시에 스스로 찾아가서 채워질 것을 염원하고 있다. 이러한 시적 발원은 시인의 숙성된 가치관의 발현이다.
우리 현대시가 그러하듯이 항상 존재의 근원이나 그 의미를 관조하는 고차원의 정서와 사유(思惟)가 이렇게 짧은 행간에서 공감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은 우리 시인들이나 독자들이 공통적으로 깊이 새겨야 하며 이처럼 ‘비움’의 언어로 시적 의미를 수용하는 데는 다양한 인생관이 포괄되어야 한다. 결국 인간의 생명성과 결부하여 형상화하는 경향으로 표출되는데 대체로 시인들은 성찰의 의미를 시의 원류로 설정하는 특징을 엿볼 수 있게 한다는 요지로 게재하였더니 진을주 시인은 대단한 만족감을 어떤 시상식장에서 만나 직접 전해주었다.
진을주 시인은 1927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전북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49년에 이미「전북일보」에 작품을 발표하고 문단활동을 해오다가 1963년『현대문학』에 김현승 선생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그는 『문예사조』기획실장과『문학21』고문, 1998부터『지구문학』상임고문으로 사모님 김시원 선생과 함께 편집 및 제작업무를 담당해 왔다.
또한 그는 한국문인협회 와 국제펜한국본부, 그리고 한국시인협회, 세계시문학연구회, 한국현대시인협회, 국제문화예술협회 등에서 자문위원, 고문 등으로 한국문학의 발전과 문학인구의 저변 확대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1966년 첫시집 『가로수』를 비롯해서『슬픈 눈짓』『사두봉 신화』『그대의 분홍빛 손톱은』 『부활절도 지나버린 날』『그믐달』『호수공원』등 일곱 권을 상재하여 개인적인 문학업적을 빛내고 있으며 신작1인집으로『M1조준』등 네 권을 빌간히여 우리 문단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공적이 인정되어 자유시인상(1987), 청녹두문학상(1990), 한국문학상(1990), 세계시가야금관왕관상(2000), 예총예술문화상(2003),한민족문학상(2005), 국제문화예술상(2006), 고창문학상(2008) 등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작품 경향은 대체로 인생과 자연에 대한 참신하고 투명한 인식을 보여준다는 평자들의 담론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그의 정감어린 언어에서 조감할 수 있는데 그의 마지막 시집『호수공원』‘서(序)’에서 ‘이처럼 어름답고 역사성이 깊은 일산 호수공원을 어찌 보도만 있을 수 있겠는가. 부득이 시를 써서 남기고 싶은 마음에 이 시집을 내게 된 동기이다’라고 평소에 그가 좋아하고 사랑하던 자연(호수)에 대한 정감 넘치는 넉넉한 심성의 일단을 피력하고 있다.
진을주 시인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함축적인 언어로 간명(簡明)하게 형상화하는 특징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의 지론(持論)이 시는 언어가 간결해야 하고 이미지나 상징이 독자들과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낯설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본인도 대체로 간결한 문체로 주제가 명징(明澄)한 작품을 선호하고 있다.
그는 작품「바이올린」전문에서 ‘만삭의 妖婦 // 의문의 잉태 // 청중 앞에 심판으로 나타날 비밀의 法典인가’라고 단 3행(3연)으로 완성하고 있어서 사물 ‘바이올린’에 대하여 탁월한 이미지의 투영으로 주제를 읽을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담백하고 의미성이 깊은 작품을 많이 발표하면서 후진양성에도 남다를 열정으로 한생을 문학과 더불어 살다가 2011년 2월 14일, 향년 84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나는 문협 임원들과 함께 일산 어느 병원 영안실로 조문을 갔다. 여기에는 그의 장조카인 진동규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도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그가 떠나간지 1주년을 맞이하여 ‘제1회 진을주문학상’을 제정하여 추영수 시인의 「重生의 연습」외 l편을 수상작품으로 선정하고 시상식을 성대하게 거행하였으며 『지구문학』봄호(통권57호)에는 그를 평소에 존경하고 생활했던 몇 분의 문인들이 ‘진을주 시인 추모특집’을 게재하여 그를 추모했다.
이제 그가 사랑하면서 산책하던 경기도 일산 ‘호수공원’도 말없이 일렁이고 있다. 그가 항상 여기에서 명상하고 시상에 잠겨서 건져올린 작품들은 시집『호수공원』에 집약하고 있다. ‘길가에 쥐똥나무 울타리가 인정스럽게 / 봄이 오면 마음 흔드는 향수 내음 // 초록빛 울타리 속에 점박이 같은 하얀 꽃송이가 / 사랑을 눈뜨게 하는 곳(「호수공원 가는 길」중에서)’ 이곳이 바로 그의 노년의 시적 발상지이다.
시인 진을주 선생께서 2011년 2월 14일 0시1분에 유명을 달리 하셨습니다. 선생께서는 생전에 한국문인협회 상임이사를 지내셨으며 한국문단에 기여하심 바 그 공이 매우 크십니다. 또 오래 전에는 지구문학을 창간하여 고문으로 계시면서 깊은 애정으로 후배 양성에 전념을 다하셨습니다. 이에 선생의 문학과 삶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시비를 건립하고자 합니다. 뜻을 같이하시는 분들께서 동참하여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이제 진을주 시인의 건립행사가 진행중이다. 『지구문학』을 중심으로 ‘진을주시인 시비건립추진위원회’ 명의로 성금을 모금하고 있어서 관심있는 문인들이 모금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조속한 시일내로 그의 시비가 완성되어 그의 업적을 영원히 기리데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