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바둑 전 종목 금메달을 획득한 감흥이 채 가시기도 전에 들려온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바둑이 제외됐다는 소식.
바둑 팬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부터 단추를 잘못 꿴 것인지, 그리고 누구를 탓해야 하는 건지 또 과연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아시안 게임에서 바둑종목을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가득한데 시야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 대한바둑협회 조건호 회장.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대한바둑협회 조건호 회장을 만났더니 비장한 답변이 돌아왔다.
"광저우 아시안 게임 종목이 42개였는데 너무 많다는 의견이 나와 인천에서는 36개로 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둑과 체스가 빠졌지요. 바둑에서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강세가 두드러져 서아시아, 중동 국가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바둑이야말로 한국인 두뇌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트렌드와도 같은데 이 상태로 앉아서 포기해선 안 될 일이죠. 조직위원회와 인천시를 계속 설득하고 있는 중입니다. 또 국회 기우회 소속 50명의 국회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도 부족하면 바둑 팬 20만 명의 청원서명운동이라도 벌여야 합니다."
- 36개 종목으로 축소됐다면 바둑을 포함시키기에 더욱 어려워진 것 아닐까요? 바둑계의 대응이 좀 늦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처음부터 몰랐던 건 아닙니다. 일단 광저우에서 성적을 내고 그를 바탕으로 움직일 생각이었지요. 인천 조직위원회와 채널을 가동해 지속적으로 협의했습니다만 이 번 겨울에 연평도 사태와 구제역 파동으로 인천시가 무척 분주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시아 바둑연맹에 가입된 국가들의 힘을 모아 아시아 올림픽평의회의 문을 노크할 계획입니다"”
한국기원과 대바협의 통합이 무산되면서 바둑계의 힘도 분산되는 것은 아닌지 바둑 팬들의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만?
"누가 뭐라 해도 한국기원은 장구한 역사와 정통성을 지닌 한국 바둑의 본산입니다. 인정해야지요. 하지만 대한바둑협회는 대한체육회 정가맹단체로 2010년에 15억원에 달하는 국가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두 단체가 힘을 합쳐 바둑을 아시안 게임종목으로 채택시켜야죠."
- 정부지원금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요?
"세계화사업에 6억2천, 아마추어대회 1억8천, 한중교류 1억, 초등학교 지원 3억, 경기력 향상으로 1억 8천을 사용했습니다. 또 직원 3명의 월급이 체육진흥공단에서 나옵니다."
- 대바협의 직원이 몇 명인지요?
"6명입니다. 업무는 많은데 인원이 좀 적지요. 그 대신 각 시도협회 임원들과 초중고연맹 등 조직이 활성화되고 있어 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 대바협이 그리는 큰 그림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추진 중입니다.
첫째, 소년체전과 전국체전에 바둑을 정식종목으로 넣고자합니다. 현재 16개 시도 바둑협회가 있는데 그 중 제주, 인천, 경기, 부산 이렇게 네 곳만 체육회에 정가맹되어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과반이 넘어야 가능하거든요. 체전에 바둑이 채택되면 지방바둑과 초등, 중등 바둑이 활성화되게 마련입니다. 금년 중으로 어떻게든 여건을 만들 생각입니다.
둘째, 16개 시도를 프랜차이즈로 내쇼날 리그를 추진 중입니다. 시니어 대표 1명, 주니어 2명 여류 1명을 기본으로 팀을 만드는 것이죠. 철저하게 지역의 대표성을 안배하고 스폰서를 확보해 흥미있는 리그전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셋째, 서두에 말씀드린 아시안 게임에 바둑을 정식종목으로 채택하는 일입니다."
- 국제대회 계획도 설명해주시지요.
"그 동안 아마추어 세계바둑대회는 JAL의 지원으로 일본이 29년 동안 주도해왔습니다. 그 바람에 세계적으로 바둑의 명칭이 GO로 굳어졌습니다. 그런데 사정 상 일본이 더 이상 대회를 주관할 수 없게 되었지요. 그러나 우리가 주관한 국무총리배 세계바둑대회는 중단 없이 지속될 겁니다. 또 세계청소년 바둑축제와 더불어 바둑의 세계화 시대에 이제는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지난해 명지대 용인캠퍼스에서 열린 세계청소년바둑대축제 전경.
- 세계청소년 바둑축제는 1회 강릉시, 2회 용인시를 거치면서 화제가 됐는데 올해 주최도시가 정해졌는지요?
"네, 충남 서산시의 서광사로 결정했습니다. 올해는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청소년들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시켜주면서 바둑을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고 있습니다."
- 바둑 템플스테이를 국제적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서광사에서 자발적으로 바둑보급에 힘쓰고 있는데 세계청소년 바둑축제를 그곳에서 개최하면 시너지 효과가 크리라 전망합니다."
대한바둑협회 조건호 회장은 김포 하성 출신으로 보성중,고와 서울법대를 나와 30여년 간 중앙부처의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상공부와 재무부, 국무총리 비서실장(김종필, 고건)과 과학기술부 차관을 역임했다.
바둑은 고교 때 친구들과 함께 두기 시작했고 대학 시절 영주 희방사와 의정부 회룡사에 들어가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조남철 선생의 '위기개론'과 사카다의 '묘 시리즈' 9권을 세 차례에 걸쳐 완독하고 나니 짧은 기간에 2급의 기력에 도달했다고 한다.
재부무에서 바둑동호회 회장을 맡았고 서울법대 동문 바둑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다.
▲ 아시안게임이 열렸던 광저우기원 전경.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바둑경기장을 보고 놀랐습니다. 제 꿈이 바로 한국에 바둑경기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제 임기가 2년 더 남았는데 그때까지 혼신을 다해서 영종도 같은 지역에 바둑경기장을 만들어볼까 합니다. 또 광저우의 바둑경기장 인프라가 훌륭하니까 한중교류전을 그쪽과 협의할 계획입니다. 가령 한중 100:100으로 바둑시합을 한다면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꿈을 이야기하는 조건호 회장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잔여임기 2년이라는 말이 어쩐지 비장하게 들렸다.
그 꿈이 바둑 팬들과 함께 품어 현실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