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탄>
봄까치 아재비가
당신을 향해 말합니다
층층이 꽃이 빌딩 옥상에서
당신을 찾습니다
언 땅에 연약한 실뿌리 숨어서
억울하다고 힘들다고 말합니다
당신에게 호소하고
살고 싶다고 꽃을 피웁니다
밤하늘 별이 쏟아집니다
당신이 꼭 보아주기를
꽃으로 펑 쏘아 올립니다
<내가 만일>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붉게 물든 저녁 저 노을처럼
나 그대 빰에 물들고 싶어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그대
위해 노력하겠어
엄마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나 행복하게 노래하고 싶어
내가 만일 구름이라면
그대 위해 비가 되겠어
더운 여름날에 소나기처럼
나 시원하게 내리고 싶어
세상이 그 무엇이라도 그대 위해 되고 싶어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너는 아니
워 이런 나의 마음을
<당신과 나의 나무 한 그루>
노래가 끝나자 바람소리가 크게 오네요
열어둔 창으로 솨아솨아 밀려오는 바람처럼
당신의 사랑은 끊임없이 제게 오네요
가늠할 수 없는 먼 거리에 있어도
나뭇잎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흔들리며
아주 가까이 당신의 사랑은 제게 와 있어요
어떤 날은 당신이 빗줄기로
나뭇잎을 하루종일 적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거센 바람으로
이파리들을 꺾어 날리기도 하지만
그런 날 전종일 나도 함께 젖으며 있었고
잎을 따라 까마득하게 당신을 찾아나서다
어두운 땅으로 쓰러져 내리기도 했어요
봄이 또 오고 여름이 가고 잔가지에 푸른 잎들
무성히 늘어 빈 가슴에 뿌릴 박고
당신의 하늘 언저리 더듬으며 자라는 나무 그늘에
오늘도 바람은 여전히 솨아솨아 밀려오고
천둥이 치고 마른 번개가 높은 나무끝을 때려도
어둠속에서 어린 과일들 소리 없이 크는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사이에 두고
당신과 나의 사랑은 오늘도 이렇게 있어요
<비슬산 참꽃>
내가 해와 달과 별이 점지해준 산신이라면
비 구름 바람 눈 다 불러놓고
어느 산 꽃이 진짜 참 꽃이냐고 물어보겠네
내가 한 마리 뻐꾹새라면
이 산에서 뻐꾹 저 산에서 뻐꾹 슬피 울어대고
비슬산 참 꽃 품에 안겨 찍은 사진
어디다 숨겼냐고 밤마다 뻐꾸기 깨워 물어보겠네
내가 너덜겅보다 웅숭 깊은 숲이라면
둥지 없는 새 다 모아놓고
비슬산 참 꽃 언제피고 지더냐고 물어보겠네
내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면
사시사철 오가는 사람들 다 붙잡고
비슬산 별호가 뭐냐고 활짝 물어보겠네
너도 나도 참꽃 참꽃 그럴 때까지
<아래 위>
긴 소매 벗어 허리에 감싸고
산위를 올라갈 때는 여름이더니
겨울은
보내기 아쉬워
산 어디쯤인가에
숨겨놓고 있었구나
진분홍 고운 댕기 날리며
일천미터 산위를 오르내리는
진달래 꽃 진달래 꽃들
산 위를 올라가면
사람도 꽃이 된다
봄을 붙잡고 싶은 이 진달래 꽃 산으로 오라
봄을 보내고 싶은 이 진달래 꽃 산으로 오라
<사랑 그대로의 사랑>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이른 아침 감은 눈을 억지스레 떠야하는 피곤한 마음 속에서도
나른함 속에 파묻힌채 허덕이는 오후의 애뜻한 심정속에서도
당신의 그 사랑스런 모습은 담겨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층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느껴지는 정리 할 수 없는 감정의 물결 속에도
십년 훨씬 넘는 그래서 이제는 삐적대기까지 하는 낡은 피아노
그 옆에서 지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내 노래 속에도
당신의 그 사랑스런 마음은 담겨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당신도 느낄 수 있겠죠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도 느낄 수 있겠죠
비록 그날이 우리가 이마를 맛댄채 입맛춤하는 아름다운 날이 아닌
서로 다른 모습으로 잊혀져 가게 될 각자의 모습으로 안타까워 하는
그런 슬픈 날이라 할 지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건 당신의 사랑을 받기 위함이 아닌
사랑을 느끼는 사랑 그대로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포산 남령 천년의 절터>
미리 나무가 허리 구부리면 서로 맞아
매양 구름헤쳐 달을 노래한 포산의 두성사
도통바위에서 공중으로 튀어나간 도성에 뒤이어
십리쯤의 관기도 날아갔다는
차마 믿기 어려운 이야기
돈독한 두 우정만큼은 가히 짐작할만하다
관기가 날아간 뒤 잃고 잊은 천년의 절터를
기어코 찾아내었다
한 때 도굴꾼 빤히 쳐다봤을
연꽃무늬 또렷한 동그란 석조를 하나 더 건졌다
일직선상 저만큼에서 도통 굴
그 중간 두드러진 산등에
일연의 벼슬자리 보담암 어련하다
<한 절벽이 있었습니다>
옛날 어느 한 절벽이 있었습니다
그 곳 중앙부분쯤에는
아름다운 꽃이 한 송이 피어 있었습니다
어느 한 여인이 그 꽃을 바라보다가
그만 미끄러져 떨어지는 순간
어느 남자는 그녀의 순을 잡았지만
남자 역시 같이 떨어져 나뭇가지를 잡았습니다
그 나무 전가지에서
남자는 자기 혼자라면 살아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자기 손을 놓으라고 했습니다
남자는 처음에는 거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곰곰이 생각한 후
미안하단 말과 함께 손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살았지요
그런 일이 벌어진 후
많은 연인들이 그곳에 가서
똑같은 상황을 당하게 됩니다
어느날 나와 당신은 그곳에 가게 됐습니다
당신도 그 꽃을 바라보았지요
당신 역시 미끄러져 떨어지게 되었답니다
난 당신의 손을 잡고 같이 떨어지다가
나뭇가지를 잡았지요
당신은 내게 말할겁니다
이 손을 놓으라고
난 미안하단 말과 함께 손을 놓을겁니다
당신 손을 잡고 있는 손이 아닌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손을
<꽃따러 갔다가 꽃따라 가버렸지요>
동생은 세상에서 겨우
백 일을 살다가 갔지요
세상 더 먹은 나는 살아남아
철딱서니 없이 이 골목 저 골목 쏘다녔지요
어미는 꽃 피는 봄날
꽃 따러 갔다가
꽃 따라 가버렸지요
우리 어머니
손놀림, 그렇게도 빨랐다더니
좋은 솜씨 칭찬도 자자했다더니
흰 명주 옷 입고
하느적 하느적 나비되어 날아가 버렸지요
병원 침대에 누워서
눈에 밟히는 어린 새끼들 남기고
그 새벽 어둠에 말려 가버렸지요
<비화>
조용히
싸늘히 썩어가던 날
오늘 뿌렸다
세상마저 거부했던
우리의 사랑을 뒤로한 채
하얀 넌 흩어졌다
너에 대한 기억을 멈추고
너에 대한 감정들을 모두 착각이었다고
다짐 아닌 다짐을 해봐도
마음속에서
날 부르는 너의 목소리
날 오라하지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지금
날 부르는 소릴따라 너에게로 다가가고 싶어
지금 난
너에게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