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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 선생님의 사랑과 가르침, 내 인생의 등불이 되다
이효수 / 경제금융학부
나는 대학원 수업에서 조순 선생님을 뵙고, 평생 많은 가르침과 사랑을 받아왔다. 당시 선생님께서 케인즈(John M. Keynes)의 '일반이론', 레인온후프트(Leijonhufvud)의 '케인즈 경제학과 케인지언 경제학' 등 케인즈 관련 여러 권의 책을 교재로 하여 문답식 수업을 진행하셨다. 거의 매주 수업 시간에 선생님과 질의문답이 오고 갔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학장이셨다. 한 학기가 마무리될 무렵 선생님께서 학장실로 부르셨다. "군(君)이 우리 집 서재에서 생활하면서, 경제학원론 개정 작업을 도와줄 수 있겠냐"라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 가까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1974년 '경제학원론'을 발간하셨는데, 1976년에 바로 전면적 개정 작업에 착수하신 것이다. 법문사에서 발간된 이 책은 당시 경제학계는 물론 고시 등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의 필독서가 되었고, 오늘날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학 원론으로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서울대학교가 관악 캠퍼스로 막 옮긴 직후여서, 선생님 댁은 여전히 서울 상대와 가까운 상월곡동에 있었다. 나는 선생님 댁 2층 서재에서 교정작업 등을 하였다. 선생님께서는 저녁 식사 후 경제학자로서의 자세에 대해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가시면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한국 최고의 경제학자로부터 개인 지도를 받는 행운이 주어진 것이다. 평생 잊히지 않는 가르침들이었다.
실사구시(實事求是) 하되, 곡학아세(曲學阿世) 하지 마라
"경제학자는 사회과학자이다. 한국에서 사회과학을 하려면 한문을 잘 알아야 한다. 사회과학자는 인간과 사회를 탐구해야 하고, 사람의 사고와 가치관은 과거로부터 형성되고 사회는 역사적 산물이다. 그런데 한국은 100년만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대부분의 자료가 한문으로 되어 있다."
"오늘날 경제학은 지나치게 수리적 모델에 함몰되어 있다. 경제학은 인간의 삶을 다루는 학문이다. 인간의 삶을 이해하려면, 수학 못지않게, 심리학, 사회학, 역사학 등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경제이론을 개발하는데 꼭 수리 모형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마라. 훌륭한 이론은 경제 원리나 법칙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직관력, 분석력, 논리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심리학, 논리학, 역사학 등 인접 인문사회과학 등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이유이다. 꼭 수리적 증명이 필요하다면, 뛰어난 수리경제학자가 그 일을 하면 된다."
"경제학은 실사구시의 학문이어야 한다. 경제학이 이론화를 위하여 추상의 단계를 높여도 어디까지나 인간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론을 위한 이론은 가치가 없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보편적 가치관이 있고, 역사와 문화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형성된 가치관이 있다. 한국의 경제학자가 한국인과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과 연구가 필요한 이유이다."
"경제학은 실사구시의 학문이므로, 경제학자는 때로는 국가 정책의 입안이나 자문에 응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경제학자로서의 자신의 철학과 소신, 경제학적 지식을 기초로 하여야지 권력을 탐하여 곡학아세(曲學阿世) 하면 안 된다."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조선시대의 시대 상황과 재상들의 정책, 인도 등 외국의 경제 자문 경험 등 강의실에서 들을 수 없었던 여러 가지 말씀들과 함께 들려주셨다.
당시 석사과정 학생으로서 경제학을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한 초기였기에, 선생님의 이런 가르침은 내가 경제학자로 성장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큰 학자가 되려면 자신의 건강관리를 잘 해야
선생님께서 봉천동으로 이사를 하신 후였다. 하루는 아침 5시경에 전화 소리에 잠을 깨어 전화기를 들었다. 책을 보다가 늦잠이 들었던 터였다. "이 군(李君) 아직 자는가?" 선생님 목소리에 놀라, 아닙니다. 선생님! 이군 오늘 시간이 괜찮으면, 나하고 관악산 등산이나 가세. 네, 선생님 바로 선생님 댁으로 가겠습니다.“ 당시에 본격적으로 공부를 한다고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던 터라, 선생님을 따라 관악산을 오르는데 무척 힘들었다. 나는 내심 힘든 모습을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이군 힘들어 보이네. 좀 쉬어서 가세. 큰 학자가 되려면, 자신의 건강관리를 잘해야 하네.“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봉천동으로 이사 오신 이후 매일 아침 관악산에 등산을 다녀오시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루는 대구에서 올라와 저녁에 선생님 댁에 들렸는데, 선생님께서 "늦었으니 2층 서재에서 자고 가게" 하셨다. 아침에 사모님께서 아침 식사를 하라고 하셔서 식탁으로 갔더니, 선생님께서 "이 군 그 물 한 번 마셔 보시게, 내가 아침 등산 갔다가 산에서 떠온 물이네" 하셨다.
한지에 붓으로 쓰신 교수 임용추천서
나는 석사를 마치고 국제경제연구원(산업연구원 전신)에 들어갔고,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구에 갔다가 영남대학교 배연수 교수님을 만나 뵈었는데, 교수님께서 영남대학교 신임 교수 선발에 지원서를 내라 하셨다. 갈등이었다. 시간을 주시면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고, 서울에 와서 조순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께서 학자의 길은 평생의 길이니, 일단 교수가 되어 평생 학문의 길에 진력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내가 영남대 이인기 총장님을 잘 아니 추천서는 총장실로 바로 보내겠네"라고 하셨다. 나중에 선생님 추천서가 영남대에서 화제가 되었다. 선생님께서 선생님 특유의 수려한 문장으로 한지에 붓으로 추천서를 써서 보내신 것이었다.
영남학파를 일구어라
선생님께서 우리 부부 결혼식에 주례사를 해 주셨다. 주례사의 핵심 내용이 "큰 학자가 되어라. 오로지 학문 연구에 매진하여 독창적 연구로 영남학파를 일구어라. 이 군은 직관력과 창의력이 뛰어나니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옛날부터 영남에는 선비가 많이 배출되었고 영남학파가 우리나라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런 내용이 주례사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선생님께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 군은 직관력과 창의적 사고능력이 남다르다" 하시면서 격려해 주셨다.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에서 개발한 '단층노동시장론'에 대해서도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접근이 훌륭하다고 칭찬을 주셨다. 선생님께서는 한국경제학회 기조강연에서 "이효수 교수의 단층노동시장론에 의하면, 한국은 학력으로 은폐된 신분사회이다"라고 하셨다.
대학과 인재를 아는 총장
내가 영남대학교 총장에 당선되자, 선생님께서 "참으로 기쁜 일이네. 대학과 교육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한 총장들이 얼마나 많은가? 영남대학교가 대학과 대학 경영, 인재와 교육을 제대로 아는 총장을 만났네" 하시면서 기뻐해 주셨다. 취임식에 직접 참석하시어 과분한 취임 축사를 해 주셨다. "저는 이효수 총장은 이 시대가 배출한 거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는 많은 좋은 소질을 가지고 태어나서, 지금은 신언서판을 갖춘 훌륭한 인격으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능력은 겉으로 반짝거리는 것이 아니라 온화한 외모 속에 감추어져 있는, 날이 갈수록 더 빛을 나타내는, 천품을 반영하는 것으로 저는 읽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그의 식견과 인품에 대해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효수 총장은 교수였던 시절, 세계 각국의 저명한 학교, 연구소 및 학자와 넓은 교류를 맺고, 이를 통해 세계 각국의 교육문제에 대해 中正을 얻은 이해를 가지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의 경제학은 항상 사람을 기르고, 사람을 쓰는 문제에 대한 폭넓은 시각 위에 서 있습니다. 이러한 넓은 시각을 가진 이 총장이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방금 피력하신 바와 같은 탁월한 교육관을 가지게 된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방금 총장의 취임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어디에서도 듣기 어려운 감동적인 것이었습니다." (조순, '이효수 박사 영남대학교 총장 취임 축사', 『조순 문집(趙淳文集), 이 時代의 希望과 現實(Ⅲ), 人本主義로 未來를 열자』, 비봉출판사, 173쪽)
선생님께서는 또한 총장 취임을 축하하는 다음과 같은 한시와 함께, "그의 품성은 순수하고 높고 밝으며, 일에 임해서는 한편으로는 멀리 생각하고, 또 한 편으로는 가까운 것도 챙긴다(稟性純粹而高明, 臨事遠慮而近思)"라는 과분한 평을 주셨다.” (조순 선생 팔순 기념문집 간행위원회, 『趙淳漢時集 二, 奉天昏曉三十年』, 2009, 264쪽
祝李孝秀敎授就任嶺南大學校總長
和風甘雨解天乾
嶺大今朝式典喧
文質彬彬新總長
應能奮勵振名門
봄바람에 단 비 내리서 가뭄이 풀리고
오늘 영남대학교 총장 취임 식전이 따뜻했다.
학문과 자질이 빛나는 신임 총장은
응당 힘을 다해 명문대학의 명성을 드높이리.
총장 임기를 마치고 인사차 선생님 댁에 들렀을 때, 선생님께서는 “이 총장의 글로컬 선도대학(Glocal Initiative University)의 비전과 전략은 이 시대를 이끌 새로운 대학 패러다임인데 임기를 마치게 되어 영남대는 물론 한국 대학발전을 위해 매우 아쉬운 일이야! 미국의 명문대학은 탁월한 리더십과 경영능력을 가진 총장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 총장이 장기 재임하면서 대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말이야. 우리나라에서는 대학 총장 리더십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사실 기업은 CEO의 역량만큼 크고, 대학은 총장의 역량만큼 크는 데”라고 하시면서 못내 아쉬워하셨다.
총장 임기를 마치고 연구실에 돌아와서 2년여 연구 끝에 『창조경제』를 출간하였다. 선생님께서는 이 책의 원고를 다 읽으시고 표지 추천사를 다음과 같이 써 주셨다. "창조경제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실천이 절실한 시기에 이 책은 창조경제 패러다임과 한국경제의 진로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경제, 교육, 노동에 대한 폭넓은 전문지식과 경제학자, 대통령 자원위원, 대학 총장 등 다양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 방향을 실효성 있게 제시하고 있다. 저자의 학문의 폭과 깊이, 독창성과 통찰력이 돋보이는 역작이다. 이 시대 누구나 읽어야 할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조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전 경제부총리). 이 책은 한동안 베스트셀러였는데, 아마 선생님의 추천사에 힘입은 바 큰 것으로 생각한다.
존경받는 큰 스승
선생님께서는 제자에게 항상 "지력(智力)과 덕성(德性)을 겸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지력과 덕성을 겸비하시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실천하신 존경받는 큰 스승이시다. 선생님께서는 한국 경제학 발전에 토대를 놓으셨기에 한국 경제학의 태두, 경제학 대부, 경제학 거목 등으로 불린다. 선생님께서는 매일 아침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와 중국 인민일보(人民日报)를 읽으시고,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의 흐름을 파악하셨다. 선생님께서는 매년 연말연시에 우리나라 주요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경제의 문제점과 정책 방향을 제시해 오셨다.
선생님께서는 수백 편의 한시를 남기신 한학자이시고, 안동 서쪽 관문 '西義門' 등 전국 곳곳에 수많은 현판과 서예작품을 남기셨다. 선생님께서는 선친으로부터 한문을 배웠지만 한시를 배운 적이 없다고 하셨다. 나이 55세가 된 1983년 늦가을, 우연한 계기로 한시를 배울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수많은 한시를 남기셨다. 선생님 한시집(趙淳漢詩集)에는 선생님의 사상과 철학이 녹아 있고, 동서고금의 인물, 문화, 자연에 대한 선생님의 깊고 넓은 해석이 서려 있다. 중국 쓰촨 성 동파류에서는 소동파시에 차운하셨고, 아미산에서는 이태백의 아미산 달 노래 시에 차운하셨다. 교황, 중국 강택민 주석 등 세계적 지도자를 만나시고 시를 남기셨고,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한 시도 남기셨다. 왕양명전서, 노신전(魯迅傳), 간디전, 한비자, 율곡전서, 중국경제발전사 등 수많은 독후감을 한시로 쓰셨다. 미국 발 금융위기를 진단하신 '미국금융위기(美國金融危機)'라는 시에는 '곡론도인나치원(曲論導人那致遠)'라는 시구가 있다. "굽은 이론이 사람을 인도하니 어찌 멀리 가겠나"라는 뜻이다. 당시 유행했던 신자유주의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또한 정치가, 행정가로서 실사구시와 경세제민을 실천하셨다. 경제부총리 시절 토지공개념을 도입하셨고, 서울시장 시절 넓은 아스팔트로 덮여 있던 여의도 5·16 광장을 시민들을 위한 여의도 공원으로 만드셨다. 선생님께서는 한국은행 총재를 하셨는데, 금융경제를 전공하셨고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정책의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에 한국은행 총재 자리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그러나 정부가 금융정책에 개입하려 하자 미련 없이 총재 자리에서 물러나셨다. 한나라당 초대 총재를 지내시고 국회의원도 하셨지만,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셨고, 끝내 학자의 길로 돌아오셨다. 선생님께서는 돌아가실 때까지 한결같이 학자의 길을 걸으셨다. 2017년 구순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선생님께서 직접 쓰신 노회(老懷)라는 한시에 잘 나타나 있다.
老懷 (노회)
平生構想未全空
隨運微機遇適中
望九老身留本性
年重日課少時同
평생의 내 구상 아주 공허한 것은 아냐
운에 따라 작은 기회에 우연히 적중한 것도 있다네
구십을 바라보며 몸은 늙어도 본성은 그대로 남아
해가 가도 하루 일과는 젊을 때와 같구나.
존경하는 선생님께 올립니다.
"큰 별이 졌다", "경제학 대부, 조순 전 경제부총리 별세", "경제학 거목, 조순 전 경제부총리 별세", 2022년 6월 23일 모든 언론들이 일제히 조순 선생님 별세 소식을 크게 알렸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하여 수많은 각계 인사들이 조문을 하셨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조화와 조기들이 선생님 가시는 길을 배웅했다. 나는 선생님 영전에 엎드려, 눈물로 마지막 인사를 올렸다.
존경하는 선생님, 이제 선생님을 직접 뵙고 가르침을 받을 수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영원히 남을 수많은 글과 가르침을 이 땅에 남기셨습니다. 선생님의 따뜻하신 사랑과 주옥같은 가르침 잊지 않겠습니다.
"지력(智力)과 덕성(德性)을 겸비해야 한다"라는 말씀 새겨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 老懷 (노회)의 마지막 시구(年重日課少時同)가 바로 '학자의 길'이라 생각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바른 생각 바른 행동으로 덕성(德性)을 쌓는 일 또한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글을 쓸 때는 "글이란 도를 싣는 도구이다(文所以載道也)"라는 말씀,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게 된 것은 제 인생에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경제학자이시면서 인문학 특히 고전,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전국 곳곳에 많은 현판과 서예작품, 수백 편의 한시를 남기셨습니다. "글은 도(道)를 싣는 도구이고, 시는 정(情)을 싣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가셨지만, 선생님께서 남기신 수많은 글은 도(道)가 되어 후학의 등불이 되고, 선생님의 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무사(思無邪)와 청복(淸福)의 가치를 깨우쳐 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전국 곳곳에 남기신 현판과 서예작품은 역사가 될 것입니다. 경제부총리, 서울시장, 한국은행 총재, 한나라당 총재, 혼탁한 정치 세계에서 보여주신 올곧으신 실행은 공직자의 표상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부처님 세계, 하느님 나라에서 항상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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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교수님, 스승님과 제자가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옥고에 감사드립니다. 조순 총리께 이런 면이 있었구나하고 느끼게도 됩니다. 무엇보다도 원고 청탁할 때, "총장님께서는 바쁘시니까 10월 중순까지 주시면 됩니다."라고 말씀드렸었는데, 지난 토요일에 15일까지 원고를 내라고 해서 원고를 보내려고 하니 원고 보낼 주소를 달라고 보내신 문자를 보고, 완벽한 원고가 들어오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날짜를 챙기신 일도 그렇지만, 편집까지 깔끔하게 해서 보내주셔서 저는 얹기만 했습니다. 스승님을 그리는 마음이 간절한 글, 스승과 제자간의 격려와 동행도...... 덤으로 오는 한시 작품도 사시는 분들의 세계를 그려보게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