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12: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롬12장은 산제사와, 은사를 말하고 있는데,
9절부터는 성도의 생활에 대해서 얘기한다.
제일 중요한 것이,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사랑을 오해하는 것이 많다.
이스라엘 후기를 보면, 예레미야가 홀로 성전에서 싸우는데, 제사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왜인가.
렘3:3~5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청년 시절의 보호자이시오니 노여움을 한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품으시겠나이까 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가장 싫어하셨던 것이 외식인데, 외식은 위록지마, 곧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 고사성어인데, 권력자를 두려워하여, 사슴을 말이라고 하니, 분명히 사슴인데, 사슴을 사슴이라 말하지 않고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마치 빛에 투광되는 것처럼 다 드러나는데, 어떤 심해의 물고기는 속에 내장이 다 보인다. 그처럼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죄인임을 시인하고 죄를 고백하고 살아야 하는데, 외식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있는데, 그런 것이 바리새인들의 특징이었다.
눅16: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복음도 율법과 같은 결인데, 복음은 율법을 완성시키고, 갱신시키고, 마치게 한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인데, 그러므로 예수께서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서 말씀하듯이, 모세에게 듣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 곧 복음을 권함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눅16: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죄를 깨닫지 않는 사람은 복음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을 우리는 성찬식에서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성찬은 자신의 죄를 살피고 먹는 것인데, 죄를 자백하고, 먹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을 때, 바울은 그것은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하였다.
고전11:27~29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는 요한일서에서 더욱 분명한데,
요일1:9~10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물론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산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사람을 엄밀히 볼 때, 사람 속에 수박씨같이 타락의 인자가 있다. 그것은 언제든 타락할 수 있는 요소인데,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게 된다. 겉은 깨끗해도 속은 썩은 과일이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원래 죄인의 참상이다. 내가 원래 그렇게 죽어야 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하였는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예수님께 오는 것이 복이다. 십자가 우편에 강도는 그런 복을 얻었다.
눅23:41~43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것은 구약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렘3:13~14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가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그러나 그것이 자주 무시를 당하였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가 이렇게 말하였다.
사1:11~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하나님은 회개없는 제사, 회개없는 기도를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사1:15~17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하였다.
시5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바울은 말세를 예언하였는데, 이스라엘 후기와 비슷하다.
딤후3:1~6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가장 큰 오해는 하나님의 사랑을 죄를 짓는데 남용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로 말미암아 사랑이 식는다고 하셨다.
마24:11~13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불법이 성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 게임을 하는데, 조작을 한다던지, 도박을 하는데 야바위 곧 조작을 한다던지, 경기를 하는데 조작을 한다던지 할 때, 그럴 때 상대방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선거를 조작하면 국민들이 홧병나는 것이다. 또한 차별금지법은 남자여자 성별을 자기가 정한다는 것인데, 생물학적 성 태어나면서부터 성을 자기 맘대로 바꾸면, 그 인생이 어떻게 되는가. 또는 고려연방제하면 어떻게 되는가. 한 나라에 두 체제, 홍콩을 보라. 아무튼 기준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인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발람 곧 니골라 당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의 끝물 무렵에 만난 거짓 선지자가 발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였으나, 그 마음이 탐욕에 기울어 있었고, 복채를 받으며 예언을 하였다. 예레미야는 끌려다니면서 수치를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였다면, 발람은 끌려다니면서 돈을 받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였는데, 그는 돈을 위해서 대언한 것이다. 그의 목적은 돈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마지막에 무수한 복채를 받은 것 때문인지, 이스라엘을 황홀하게 만드는 여자들로 유혹하여 우상제물을 먹게 하고 우상숭배에 빠뜨려, 많은 사람들을 멸망시켰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 발람은 계시록에서도 나온다.
계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니골라당 곧 발람당은 하나님은 사랑아닙니까. 내 맘대로 하게 하소서. 기준도 법도 바꾸는데 사랑을 오해하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정의가 상실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미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여기에 대해서 오해할까봐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마5:17~18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복음과 율법은 적대적인 것이 아니다. 잘 보면 원칙대로 너그럽게이다. 복음은 율법을 갱신하고 완성한다. 성령으로 그렇게 된다. 또한 구약에서 솔로몬은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낫다고 하였다. 잔소리가 때론 낫다는 것이다.
잠27:5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잠28:23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부모님께 달려드는 자식과, 자신의 죄를 부인하고 부모님께 없는 것으로 해달라고 하는 자식은 부모 입장에서 어떤 느낌일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만성화되는 죄의 체질을 바꾸는 것은 어떤 단계가 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벧후1:5~9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사람은 은혜가 필요하다. 그런데 거듭남 이후에도 경건이 없을 때, 믿음으로 살지만, 경건이 없을 때 위험하다. 믿음을 다 잃어버린 것 같다. 그러므로 주의 도우심에 응답으로 사람이 갖추어야 할 것은 경건이다. 경건이 믿음 다음으로 중요하다. 물론 베드로는 경건에 이르는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사람이 처음부터 경건하지 않다. 경건은 성령 안에서 변화 받아 계속 연습해야 한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사람이 예수를 믿어 거듭나는 것 구원받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만,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성화 곧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인데, 경건이 성도에게는 기본기이다. 기본이 없으면 무주공산이다. 구원받고 끝. 아무것도 없어. 히브리서 기자도 이렇게 말한다.
히12:12~13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아멘.
윌리엄 거널 목사님은 순전함이 허리띠라고 하였는데, 거룩, 거짓이 없는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는 것이 사랑의 허리띠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 막 지으라고 지신 것이 아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지신 것이다.
544
참아도 못 하네 할 수 없는 죄인이 흉한 죄에 빠져서
어찌 아니 죽을까 참아도 못하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당했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 밖에 없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