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의미의 바깥
시인들은 의미를 앞세우고 시에 접근하지 않는다.
시어 하나하나마다 의미의 낚싯줄을 꿰어 놓지 않는다는 말이다.
김소월이 "진달래 꽃"의 마지막 연을 쓰면서 과연 '인고의 태도로 이별의 정한 극복'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을까? 이육사가 "가난한 노래 씨"를 쓰면서 이 구절이 '조국 광복을 위한 자기 희생적 의지'라는 의미로 읽히기를 원했을까.
이 시인들이 교실 안의 문학 수업을 참관한다면 몸둘 바를 모르고 난감한 표정을 취할 것 같다.
언젠가 내가 쓴 시 "너에게 묻는다"를 가르치는 YouTube를 본 적이 있다. 끝까지 볼 수 없었다. 마치 한 편의 잘 만든 개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느낌이었다.
김완준 시인, 정대호 시인, 안도현 시인
의미는 언어의 규범화된 질서를 부여한다. 하나의 시어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규정되는 순간 독자는 시어가 품고 있는 의미의 바깥을 보지못한다.
그런 면에서 의미는 하나의 감옥이다. 의미는 언어를 강제한다. 의미는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의미의 틀 안에 갇힌 독자는 스스로의 '느낌'을 포기한다.
대상에 대한 그 어떤 느낌도 없이 그 대상을 이해할 수는 없지 않나?
나는 의미 이전에 언어를 먼저 만나려고 한다. 언어의 모양과 빛깔 언어가
만들어낸 소리와 냄새 언어가 사전에서 뛰쳐나와 시어로 사용될 때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먼저 살핀다.
^^
언어와 언어가 만나서 한편의
시에서 어떤 불꽃과 향기를 만드는지
살펴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앞에서
무릎을 꿇을 때도 있고 언어 때문에
급기야 무장 해제되기도 한다.
의미 없이도 우리는 얼마든지
시를 즐길 수 있다.
김완준 시인, 정대호 시인, 안도현 시인, 이복희 시인
의미 바깥을 독자에게 안내하기 위해서는 시인이 언어를 의미의 울타리 안에 묶어 두려고 하면 안 된다. 의미의 주인은 시인이 아니라 독자다. 물론 더 현명한 독자는 의미의 울타리 안쪽만을 주시하지 않는다.
대구이육사기념사업회 주최로
[작가와의 만남]에 초대시인 안도현 시인의
" 우리는 어떻게 시에 다가가는가?"
강의를 들으면서 그간 시창작을 하면서 풀리지 않던 매듭이 술술 풀리는 느낌이랄까.
^^
그렇다고 시의 길, 결코 쉽지않은 ᆢᆢ
[출처] 작가와 만남, 안도현 시인/대구이육사기념사업회|작성자 보내미이복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