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수업 만들기의 동역이신 선생님,
가을 햇살 한 자락 한 자락이 금싸라기 같습니다. 풍요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그토록 경건할 수 있는지 새삼 느끼게 해주는 계절이 연실 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 올해 이 가을은 참 저에게 의미가 깊습니다. 2005년 전교조 탈퇴 후 좋은교사 회원이 되어 적을 둘 곳 없어 답답하던 와중에 공동체를 만나게 되고, 복음과 사회 실천 영역의 교차점을 찾고자 목말라 하던 저의 갈함을 축이는 샘터를 찾은 것과, 함께 고민하고 저만치 앞서간 많은 동역을 일시에 얻게 된 것이 제 교육의 첫 번째 대 변화였다면, 2008년 가을 이제는 교육의 본질인 지식의 문제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새롭게 정의하는 교육과정 운동의 태동이 열리는 시점에 다시 한 번 대변혁이 제 내부에서 그리고 우리 지체들 한분 한분의 내면에서 지진처럼 균열하며 일어나고 있음을 절감합니다.
지난번 문경민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메일에서 정병오 선생님께서는 '행복한 수업만들기'를 '좋은교사'의 교육과정 운동 이름으로 선포하자며 언급하신 말씀을 읽고 제가 크게 웃었습니다.
지난 연수센터 회의에서 좋은교사운동의 교육과정운동을 "행복한 수업 만들기"로 하기로 한 결정을 하면서 마치 처음에 '기윤실' 교사모임의 홈페이지 주소를 www.eduhope.or.kr로 정할 때의 흥분과 기독교사연합의 이름을 '좋은교사운동'으로 정할 때의 흥분을 느꼈습니다. eduhope의 경우 기윤실 교사모임이 전교조보다 먼저 사용을 했고 (그래서 전교조는 홈페이지 주소를 www.eduhope.net으로 사용을 하죠) '좋은교사' 라는 이름이 가져온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행복한 수업 만들기'가 바로 이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이 이름을 통해 새 역사를 해 나가시리라는 확신이 듭니다.
'어 그래? 신중한 이성의 소유자 정병오 샘이 흥분을 느끼셨다는 말이지?'
사실 저는 흥분을 지나서 전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름의 사용에 대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 안에 일어날 대변화와 그것을 계기로 봇물 터지듯 쏟아질 하나님의 지혜가 마구 마구 기대돼서 말이죠. 비유하자면 구한말 항일 운동하던 때의 독립투사 같은 마음이라고 할까요? 저는 늘 복음에 빚진 자로 쫓기듯 살면서도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의 엄중한 사명 앞에 늘 무엇인가 부족한 느낌을 받아오면서 내면의 치열한 고민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앞에 놓인 이 문제가 제가 앞으로 가야 할 이정표를 버젓이 제시해주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교육이 갖는 의미는 경쟁사회에서 잔혹한 승자가 되는 것을 가르쳐주는 교육과 공동연대를 만들어가고 희망을 보여주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교육의 본질적 가치가 큰 충돌을 하고 있습니다. 매년 사회로 배출되는 학생들을 '잔혹한 승자와 절망에 빠진 패자'로 가르는 교육을 할 것인지, 아니면 함께 공동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좌표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김민웅 목사, 좋은교사 2006 10월호: p116>
현 한국교육의 문제점으로 짚은 잔혹한 경쟁구도는 김민웅 목사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통감 하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저희들이 바라보아야 할 것은 이 문제의 진단에 대한 해법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겠지요. 김목사님은 건강한 교육 공동체의 연합으로 보았습니다. 그 연합의 실체가 '좋은교사'로 구현되고 있으며 더 강력히 사회 속으로 녹아들어가야 함을 절감하고 있구요. 그러나 이런 연합의 공동체로 기존에 탄생한 다른 교육 단체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 무엇이며, 누수 되고 있는 부분이 어떤 것인가를 찾아내어 그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지금 저희들이 찾아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교육에 있어서의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 즉, 가치관 및 세계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인권의 조직적 체계를 갖추어 나가는 부분과 권리 찾기 부분에서 전교조의 기여와 성과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교조가 한국교육을 바꾸지 못하는 한계는 바로 현 교육을 밀어붙여 가고 있는 세속적 교육관, 세계관을 세상과 함께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에 '좋은교사'가 교육에 있어서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준비를 갖추고자 진리에 의한 교육과정운동을 본격적으로 풀어내려 하는 가운데, 몇몇 준비된 선생님들을 통하여 주님께서 전심으로 헌신하고자 하는 한사람 한사람의 선생님을 동역으로 부르고 계심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가슴 뛰는 행복입니다. 그러나 마냥 행복일 수많은 없는 것은 우리들의 실존이 내 안의 죄 성과 나를 둘러싼 사람들 속의 죄 성과 싸워야 하는 버거움 속에 있다는 것이고, 진리를 현장에서 풀어내는데 턱없이 부족한 역량을 갖고 있다는 자기 성찰이 늘 어깨를 짓누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지요. '행복한 수업 만들기 초등 서울 모임'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에 의한 수업지도안을 협의하며 느꼈던 충일한 행복감이 버젓이 가슴에 살아 있기 때문이며, 요즘 아들 동현이와 일대일 수업을 하며 느끼는 행복감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아들과 나누는 수업을 기회 되는 대로 행복한 수업 만들기 카페 '나의 수업이야기'에 올려놓겠습니다. 선생님들도 함께 참여해 주세요.^^ 어제는 사회 '조상들의 슬기와 멋'을 공부하면서(이단원은 뒷부분인데 아이들 현장체험학습과 연계하여 담임선생님께서 내주신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공부 하였습니다.) 아들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사회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건데 말이지,,,,,,"
아들이 공부를 재밌어 하는 책벌레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부하려면 머리부터 아픈 아이들 쪽에 더 가깝죠. 제가 한 것은 거창한 것 아니었어요. 다만 아들과 학습 할 내용을 계속적으로 연결시켜 주며, 새로운 관점으로 교과서를 보았을 뿐이었어요. 수업 준비하는데 걸린 시간은 10분도 채 안되었죠. 제가 깨달은 것은 우리들이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들을 통해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분에게 기회를 드리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고보서 1장 5절>
구한말 항일 운동의 역사를 코믹한 관점으로 해석한 영화 '원스 어폰어 타임'에서 제가 동일시 한 인물은 일본 간부를 위한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는 경영주와 주방장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술을 부리며 엄청난 재력을 갖고 있음과 동시에 영민한 두뇌와 날렵한 몸놀림을 하는 주인공과는 대조적으로 우스꽝스럽고 어설프며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에는 독립에 대한 의지가 핏자국처럼 시퍼렇게 살아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혼자 일하는 영웅주의 사관의 주인공과는 다른 연합과 동역함을 통해 독립을 추구해 갔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혼자 할 수 없는 나약한 자들이었으며 겁쟁이였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 하나 해결하는데도 새가슴이 되어야 하는 영웅과는 완존히~~~ 거리가 먼 인물들이었지만 그들의 행보 하나 하나가 얼마나 저를 눈물짓게 했든지,,,,,,,.
선생님, 더 이상의 우리들의 연약함을 핑계대지 맙시다. 이것이 옳다고 여겨진다면 그냥 첨벙 뛰어듭시다. 내가 손해보고 깨져도 대의를 위한 것 인줄 믿으며, 내가 으깨지고 버림받아도 의를 위한 핍박임을 믿으며 내 좋은 주님이 친히 우리 머리에 씌어주실 면류관을 꿈꾸며 함께 갑시다. 그리하여 10년이 지난 후 기독교사 역사를 되돌아 볼 때, 변혁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의의 길을 지킨 순결한 공동체 '좋은교사'의 한 지체로서 뜨거운 눈물이 우리들의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릴 수 있기를 소망합시다. 할렐루야!!!
2008년 한글날 하루 지나서
어쭙잖게 열정만 많은 교사 서혜미 드립니다.
첫댓글 아, 선생님..첫번째로 댓글을 다는 영광을 제가 차지 합니다. 빠른 시일내에 행수만 mt라고 갔으면 좋겠네요. 좀 친해지게요. 선생님 얘기도 듣고 싶구요. 행수만 선생님들이 모두 한 학교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인영샘이 꼬박 꼬박 답글을 달아 주셔서 얼마나 힘이 솟는지 선생님 축복 합니다. 감사합니다. 행수만 샘들이 한 한교에에 모일 날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계셔서 행수만이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살아오셨고 치열하게 살아오셨던 선생님의 삶을 우리 후배들이 열심히 배워야 겠지요 그리고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행복한 수업을 만들어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