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733호 자기 것을 찾아야 성공하고 행복하다 (롬9:14~21)
저는 주의 종이 되기 전에 취미 삼아 도자기를 만들러 이천에 자주 다녔습니다.
도자기를 만들 때면 저는 그것을 어디에 쓸 것인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미리 생각하고 거기에 알맞게 흙덩이를 떼고, 쓰임새에 맞게 모양새를 만들었습니다.
로마서 9장에는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비유했습니다. 제가 그릇하나 만들 때도 그렇듯 계획하고 생각해서 만드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손수 하나하나 만드실 때 얼마나 심사숙고해서 만드셨겠습니까? 성격, 재능, 인물 등을 당연히 가장 적합하게, 가장 좋게 우리를 만드셨을 게 분명합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잠16:4).
그런데 많은 사람이 자신의 것에 만족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평을 하고, 시기질투를 하고, 남의 것을 탐내고, 남의 것이 부러워 그것과 같게 되려고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집을 잘 지키는 개가 있었습니다. 밤이면 우렁차게 짖으며 도둑의 범접을 막는 충성된 개였답니다. 그런데 그 집에는 그 개 말고도 수탉 한 마리가 있었는데, 이 닭은 새벽이 되면 지붕에 올라가 큰 소리로 울어 주인을 깨웠습니다. 그러면 주인이 기지개를 펴고 나와 그 닭을 보고 칭찬을 했습니다. 목소리가 우렁차다느니, 고맙다느니…. 개는 주인이 고까웠습니다. 밤새 잠도 안자고 도둑을 지킨 자기는 보는 둥 마는 둥 하니…. 그래서 개는 결심합니다. ‘나도 연습해서 저 닭처럼 새벽을 깨우리라.’
개는 며칠을 몰래 연습하고는 어느 날 아침, 지붕에 오르려는 닭을 밀치고 지붕 위로 호기롭게 뛰어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동트기를 기다려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이 가만히 듣자니 닭소리도 아니고 개소리도 아닌 것이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마당으로 나가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보니 아니, 지붕 위에서 개가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는 거 아닙니까? ‘아니 저 개새끼가 뭐하고 있는 거야? 집안에 우환이 끼려고 저러나?’ 놀란 주인은 당장 머슴들을 불러서는 저 미친개를 끌어내려 없애버리라고 명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개처럼, 남의 것만 탐하다 되는 꼬락서니 없이 죽도록 고생하고 있습니다. 누차 말하지만, 무가 배추 안 되고, 장미가 백합 안 됩니다. 김연아가 장미란이 될 수 없습니다. 다 자기 것이 있습니다. 왜요? 토기장이가 처음부터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종지에 밥을 담을 수는 있지만, 제 양껏 먹을 수 없고, 국 대접에 간장 담아 올리면 우스운 꼴 나는 겁니다.
성경에도 닭을 부러워하다 죽음을 부른 개와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울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그에게 맞는 그릇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는 다윗의 그릇을 넘겨다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자기에게 없는 용맹과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백성들이 찬사를 보냅니다. 사울은 부럽기도 하고 시기심도 발동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됩니다.
그래서 주인이 이상해진 개를 죽인 것처럼, 토기장이신 하나님이 이상해진 사울을 깨트리셨습니다. 토기장이는 토기를 깨트릴 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렘18:6).
십계명 중 열 번째 계명이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입니다. 왜 남의 것을 탐낼까요? 내 것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남의 여자와 바람을 핍니까? 내 아내에게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자꾸 남의 집 자식 이야기를 합니까? 내 자식이 마음에 안 들기 때문입니다. 왜 자꾸 성형을 합니까? 내 외모에 만족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자꾸 직장을 옮깁니까? 일이 맘에 안 들기 때문입니다.
성형 이야기가 나오니 얼마 전 가슴 아프게 본 기사가 생각납니다.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에게 딸이 있었는데, 딸이 아버지의 우락부락한 얼굴을 쏙 빼닮은 모양입니다. 딸은 그것이 늘 불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성형하고 싶어 아버지를 졸랐습니다. 아버지는 그 딸 소원을 들어주려고 점심을 굶어가며 막노동을 해서 돈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딸이 수술 중에 죽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펑펑 우는 겁니다. ‘그렇게 소원이라고 해서 수술 시켜준 건데’ 하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불량품을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딸이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정말 안타깝습니다.
누구에게나 자기에게 맞는 일과 직업, 배필과 옷, 신발이 있습니다. “왜 나는 간장종지냐, 저렇게 큰 장독도 있는데.” 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간장종지는 비록 작지만, 작기 때문에 매일 밥상에 올라 주인얼굴을 매일 볼 수 있습니다. 큰 장독은 커서 많이 담기는 하지만, 주인 얼굴은 어쩌다 한 번 볼까말까 입니다.
여러분, 우리 몸이 천 냥이라면 눈이 구백 냥이라고 합니다. 눈이 귀하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다 눈이면 냄새는 어떻게 맡고 소리는 어떻게 듣습니까? 굳은살이 박혀 아름답진 않지만 발이 있어서 걷는 겁니다. 발이 “왜 나는 신발 속에서 갇혀 살아야 하나, 왜 냄새가 나는 거야?” 하고 발을 안 하겠다고 하면 어찌 됩니까?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찌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찌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고전12:15~17). 하나님이 다 필요해서 맞게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의 잔디가 푸르게 보이고, 남의 떡이 크게 보이는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남의 일과 직업이 멋있어 보이고, 남이 입은 옷과 남의 아내나 남편이 좋아 보이는 것도 다 욕심 때문입니다. 송충이에게는 솔잎이 가장 좋고, 뱁새가 황새 흉내 내면 가랑이만 찢어집니다. 제가 지금 운명론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달란트, 내가 가진 외모에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것을 찾으세요. 자기 적성, 자기에게 맞는 직업을 찾으세요. 없다고요? 그럴 리가요. 하나님은 분명히 각자에게 맞는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고, 자기가 낳은 알 하나 책임지지 못하는 타조도 달리는 재주만은 탁월하다고 욥기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당신에게 달란트가 없겠습니까? ‘CEO 예수’의 저자인 로리베스 존스는 유난히 맞지 않는 전업주부를 버리고 작가로 변신해서 최고의 작가가 된 사람입니다.
또한 더불어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제발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공부 못했으니 내 자식은 공부 많이 시켜서 검사, 의사 시켜야지’, 이러지 말라는 겁니다. 자식은 결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아이의 능력, 잠재력, 본성, 기질 따위를 잘 고려하되 그 아이가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도록 어려서부터 훈련시키라는 것입니다.
부모 마음대로, 부모가 원하는 대로 키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명문대학을 나온 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봤더니 자신의 적성과 관계없이 진학했다는 아이가 반을 넘습니다. 비록 그들이 명문대학은 나왔지만 인생이 행복할까요? 끝까지 그 일을 할까요? 억지춘향은 힘든 것인데 말입니다.
자기가 가진 달란트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가장 행복한 길입니다. 하면 즐거운 것이 있고, 하면 유난히 잘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적성이요, 천직입니다. 그걸 하면 됩니다. ‘주신 분량대로 일하라’는 사도 바울의 말을 명심합시다(고전7:17). 할렐루야!
너는 세계 유일한 사람이다 너의 개성과 달란트를 찾아라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누에는 뽕잎을 먹고 산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http://m.cafe.daum.net/ssj0643/cR42/93?svc=cafe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