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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대한제국과 임시정부의 근대역사 박물관이 세워지면
인도 캘커타에 처음 갔을 때 빅토리아 기념관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자국, 인도를 본격적으로 식민지화 시킨 영국의 여왕, 원흉을 기념하는 건물인데
독립 후에 제거하지 않았고 오히려 박물관으로 사용되면서 당시 식민지 당국과 지배자들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내 눈에는 생경스러운 고딕식이니 르네상스식이니 하는 첸나이 기차역이나 법원, 경찰청의 건물 등,
뭄바이의 구시가지에 늘어선 식민지 시대의 건물을 인도인들은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영국을 미워하지 않는 인도인들,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을 계속 보수하여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인도인들이 참으로 신기하였다. 그래서 내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인도인들의 식민지 인식에 대한 질문을 주변 인도인들에게 자주 말하였다.
어느 날 인도 계급사회와 인권에 관심이 많은 어느 분이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하였다.
“지나간 역사는 돌이킬 수 없다. 아무리 외면하고 지우려고 해도 사실은 사실이다.
우리가 식민지 역사를 가르치고 건물을 없애지 않는 것은 그들을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뼈아픈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우리 역사에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와 우리 후손들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그는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을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거울” 이라고 비유하였다. 나는 그의 비유에 깊이 공감을 하였다.
작년에 모 단체에서 주관하는 광복절 기념행사에 참여를 하였다.
그 자리에서 지역사회 대표되시는 분이 친일청산에 대하여 고민하는 이야기를 하셨다.
모처에 그 지역사회의 유지되는 고인의 기념비가 있는데 그분이 적극적인 친일파였으며 이승만 정권 하에서
그 지역사회의 장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친일파라는 사실을 아는 분들이 기념비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며
제거를 요청하고 있어서 고민하는 중이라고 하였다.
최근에 어느 대학교 교정에 세워진 초대 총장의 동상이 제거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나라와 민족의 역사에서 그는 여성 지식인으로서, 적극적인 친일 행각을 벌인 자로서 반민특위의 재판을 받아서
그 지위와 명예가 몰수되어야 마땅한 인물이다. 그러나 학교 일각에서는 학교를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며
철거에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 학교를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하여 동상을 그대로 보존하자는 주장을 하는 자들은
단순하게 그의 공로를 인정하자는 뜻이겠지만 내가 볼 때 그들의 주장은
그에게 일체의 역사적인 시대적인 의무와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면
방응모도 언론 발전에 힘을 썼고
박훙식도, 김성수도 공업 발전에 힘을 썼고,
이인직, 이광수도 문학 발전에 기여를 했고,
진단학회도, 이병도도 역사발전에 기여를 하였고,
김갑순도 나름대로 대전 발전에 보탬이 된 사람들이 아닌가!
지도자를 보는 시각이 서로 다르기에 양쪽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설 수 있지만 우리는 지도자에게 국가적인 역사적인 대의를 적용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민족과 국가의 입장에서 친일청산을 위한 갑론을박을 많이 하였지만
여전히 주도권을 가진 자들이 자기들의 패거리와 함께
그 판을 장악하고 계보를 만들어 관리하며 엄호하고 있어서 안타깝게도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방관하거나 방치하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다만 제거나 철거로 친일청산이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염두에 두면서
진정으로 친일청산, 사대주의를 청산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첫째로 무엇보다 근대 역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자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건을 그대로 전후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대로 가르치는 것이다.
선악과 애호를 떠나서 변명과 비난을 떠나서 그대로 서술하는 것이다.
교육당국이나 정부나 정권이 취사선택을 해서 가르치고 싶은 것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건의 전말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판단은 배우는 국민들, 학생들이 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국정교과서는 근대 역사를 객관적 기술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본다.
조선 말기 부패하고 타락한 관료들과 매국노들과 관련된 인물들이나 그의 후손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시대에
역사 교과서 집필하는 학자들이 알아서 기었을 것이고 정부나 관련 부처의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집필진으로 선택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교과서에 실린대로 민영환을 을사늑약에 분노하여 자결한 충군애국지사로 알고 있지만
그가 임오군란을 일으키게 만든 부패한 관리의 대명사 민겸호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그 또한 전봉준이 공초에서 부패의 대명사로 지목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같이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휘문중고등학교를 세운 민영휘가 조선의 부호이며 대표적인 친일파 민영준이며
그가 갑오동학농민전쟁 당시 원세개에게 청군 파병을 요청한 장본인이며
그의 후손들이 독재정권 치하에서 학계와 정계에서 자랑스럽게 활동한 사실을 같이 알리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완용과 이병도의 후손들은 어떤가! 송병준, 이용구의 후손은 어떤가!
이완용을 매국노라고 떠들지만 말고 그가 매국을 해서 무슨 혜택을 받았으며
그 후손들이 그 혜택을 어떻게 계승하였는가를 드러내자는 것이다.
또한 이병도가 황국신민사관을 전개하는 조선사편수회에서 일하며 무슨 논문을 썼으며
그로서 받은 혜택이 무엇이며 우리 역사에 무슨 폐를 끼쳤는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자는 것이다.
물론 수많은 친일 매국노들을 다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우리 역사를 왜곡시킨 직접적인 사건에 연루되는 사람들에 관한한 다 드러내자는 것이다.
그들이 막연히 악하고 패덕한 인물이 아니라 얼마나 우리 역사와 국민들에게
무슨 과오와 고통을 어떻게 가져왔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조선 망국의 과정 속에서 자기들의 안위와 부귀영화만 생각했던 고종과 민비의 무능과 탐욕, 안일과 무지를
그대로 들여다 보노라면 조선의 백성들이 얼마나 참고 견디었는가? 주자학의 양반 중심의 계급질서에 세뇌되었는가
임진년 일본 침략 때 망했어야할 조선이 망하지 않은 이유가 삼강오륜 윤리의 세뇌에 있었다는 저절로 알게 된다.
임오군란과 동학전쟁을 깊이 들여다보면 대원군의 백성을 향한 사랑과 조선을 살리고자 하는 대한 몸부림이 보인다.
김활란 동상을 그대로 두더라도 우리는 그 옆에 그가 행했던 반민족적인 매국의 행위에 관한 글을 기록해서
그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그에 대한 일방적인 찬미나 명예를 거두어야 한다.
휘문고등학교를 그대로 두더라도 창립자인 민영휘의 반민족적인 악랄한 죄악상을 밝혀서
학교를 세운 것으로 그의 매국이 덮어질 수 없는 것임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한다.
이광수의 소설을 분서갱유를 할 필요는 없으나 그의 책 서문에는 반드시 그의 부일 죄악상을 밝혀서 독자들에게 경고를 해야 한다.
조선일보사를 강제로 문 닫게는 할 수 없으나
우리는 창립자인 방응모가 신문사를 인수인계한 뒤에 친일 활동을 벌인 행위를 밝혀서
조선일보가 매국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서울대학교를 없앨 수는 없으나 서울대학교가 일본인들이 한국의 식민지 통치를 원만하게 하고자
식민지 인재를 양육하는 기관으로 세웠던 학교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미화시키거나 폄하하거나 과장하거나 과소평가를 할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사건들을 드러내주면 국민들이 스스로 분별할 것이라고 본다.
둘째로 근대사를 한 과목으로 독립시키자는 것이다.
대학입시 위주의 교과과정 속에서 국사수업이 그리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참으로 안타깝다.
또한 국사 기술에 있어서 근대사나 현대사에 대한 분량이 많지 않기에 시간 배당이 많지 않아 건너뛰거나 대충 가르치기가 너무 쉽다.
그런 면을 고려하면서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근대사를 따로 분리하여 가르치자는 것이다.
수험 과목으로서가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살아야하는 국민으로서 정체성 형성을 하기 위해서 근대사에 심혈을 기울여야 된다고 본다.
앞으로 남북분단의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미국과 일본, 중국 사이에서 한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독립을 유지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한국인으로서
침략과 수탈을 당한 고통스런 근대사를 배우는 것은 ‘지피지기’의 작업의 일환인 것이다.
근대사를 국사 교과서에서 분리하여 가르치면 굳이 애국애족을 목소리 높여 외치지 않더라도
우리가 잘못 살면 언제든지 나라를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
나라를 잃게 되면 국민들이 어떤 고통과 치욕을 당하는가를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근대사 교육을 통해서 우리 청소년들에게 남북한의 문제를
이해와 득실을 논하는 경제 차원을 넘어서는 한 민족과 역사의 차원으로 접근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근대 역사 100년 박물관을 세우자는 것이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역사박물관에 가서 자료를 보면서 역사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근대사 박물관을 세우자는 것이다.
조선 말기 고종이 왕으로 옹립되고 대원군이 수렴 청정하는 1863년부터 1963년 까지
100년의 역사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공업, 의료, 농업, 교통, 이민, 종교, 예술, 스포츠 등등 가능한 모든 부분을 망라해서
정리하여 연표를 만들고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을 일목요연하게 사진과 그림, 조각, 동영상으로 정리하여 보여주자는 것이다.
특별히 독립운동 부분에서 독립운동가와 친일부역자들의 생애와
그 후손들이 누린 혜택과 그 조상들이 매국을 통해서 쌓은 돈으로 물려받은 부와 유산까지도 선명하게 보여주자는 것이다.
시대적인 구분은 역사가들이 알아서 할 것이겠지만 굳이 나누어 보자면
1863년,고종의 등극과 대원군의 수렴청정에서 1894년갑오동학혁명 전까지
갑오동학혁명에서 1896년,아관파천까지
아관파천 후에서 1910년, 한일늑탈조약까지
한일늑탈에서 1919년, 삼일운동과 임시정부탄생까지
임정탄생에서 1931년,만주사변까지
만주사변에서 1945년 독립일까지
독립일에서 1963년 까지
시대를 나누어서 근대역사관을 종로나 광화문 거리에 세우자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누구나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외국 관광객이라 할지라도 역사박물관에 오면 한국의 고난의 역사를 한 눈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우리들 자신과 후손들이 망국의 역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역사박물관을 세우자는 것이다. 을사 5적과 고종을 협박하여 주권을 내려놓도록 싸인하고 조선 귀족 작위를 받은 76명과 같은 그런 인간들이 역사에서 다시 나오지 않도록 역사의 거울을 한국의 중심부에 놓자는 것이다.
천안의 독립기념관처럼 찾아뵈러 가기 어려운 구석진 곳에 세우지 말고 가능하면 4대문 안에, 가능하면 광화문에 세우자는 것이다.
이완용의 매국의 일들을 역사박물관에 자세하게 기록해 놓는 것과 책에 기록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전자는 역사적인 차원에서 국민적인 차원에서 공적인 기록이 되는 것이고
후자는 역사에 관심 있는 자들의 연구이지만 사적인 기록이다.
우리는 반민특위가 하지 못했던 일들,
친일인명사전이 기록했지만 국가적 차원의 공적인기록이 되지 못한 뼈아픈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독립 100주년을 맞이하기 전에 근대사 100주년을 정리하면서 통일의 주춧돌을 놓아야 할 것이다.
넷째로 광화문에 독립운동기념탑을 세우고 독립운동 기념광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24시간 불을 밝히고
우리 국민들이 헌화하면서
유명, 무명의 독립 운동가들의 나라 사랑의 숭고한 뜻과 희생을 기리며 배울 수 있는 광장,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의 소통의 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천안 독립기념관은 우리 의식 속에서 너무 멀다.
왜 나라 사랑을 운운하면서 사랑하기에 생명을 바친 님들을 4통 5달의 거리에 모시지 않고 구석진 곳으로 몰아넣었는가!
우리로 하여금, 국민들로 하여금 일상적으로 독립 운동가를 만나게 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가!
광화문을 지키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의 업적과 공로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분들은 우리에게 600 여 년 전의 조상, 400여 년 전의 조상이다.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그분들의 동상을 다른 곳으로 이동을 시키고
근대사에서 망국의 고통을 누구보다 깊게 겪은 독립투사들에게 그 자리를 내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아마 이순신 장군과 새종 대왕이 살아계신다면
기꺼이 그 자리를 독립 운동가들에게 양보해주실 것이다.
대한민국의 1번지!
광화문에 대한민국 광복을 위해서 피와 땀과 눈물을 바친 분을 모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는 역사를 바로잡는 지름길이 될 것이며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목이 될 것이라고 믿어진다.
며칠 전 천진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천진 100년 역사 전시회‘에 갔다.
2시간의 관람으로 나는 천진의 100년 역사를 대충 이해를 할 수가 있었고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다.
아편전쟁부터 시작되는 많은 침략 전쟁으로 천진의 자존심은 구겨졌고
9개 나라의 조계지가 만들어지며 수많은 불평등조약을 체결한 불명예스러운 곳이 되었다.
역사 전시회는 천진의 슬픈 전쟁과 수탈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었으며
그 사건들과 관련된 자국인들과 외국인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실패와 패배, 혼란과 고통의 시간들, 그 속에서 부일한 사람들, 항일한 사람들의 면모,
청나라 말기의 썩고 부패한 정치인들의 모습도 그대로 보여주었다.
천진에서 맺어진 조약들과 불평등한 조약문들도 가감 삭제 없이 보여주며 후세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크고 작은 전쟁에 대한 기록이다.
전쟁에는 양쪽의 참여자 수와 사망자, 부상자의 수 그리고 무기의 종류와 수량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고 전투의 내용도 설명해 놓았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더러운 전쟁으로 손꼽히는 아편전쟁에 대해서도
그들은 도덕적인 정죄나 비판을 가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실상, 원인, 진행과정, 결과를 아주 객관적으로 차분히 정리해 놓았다.
아무리 지우고 싶어도 역사는 지울 수 없다.
중국인들이 치욕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듯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우리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좌절과 고통스러운 역사가 길었던 길을 피하고 국민이 함께 살 수 있는 길로 나가도록 우리의 힘과 생각을 모아야 한다.
동상을 헐고 식민지 총독부 건물을 헐어낸다고 해서 친일청산이 되는 것이라면 문제는 아주 간단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진짜 속 알맹이는 골수 친일인 사람이 겉으로는 아닌 척 다른 색깔의 옷으로 위장하고 있는 사람들,
조상들이 친일파로 규정된 사람들의 후손과 그런 사람들의 도움으로 학자가 되어 계보를 이룬 사람들이 역사학계와 정계, 경제계, 언론계에 얼마나 많은가!
카멜레온처럼 변색을 잘 하여 자기를 들어내지 않으면서도
국가적으로나 학계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소리 없이 친일적인 언행을 일삼는 무리들이 아직도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우리는 호시탐탐 우리를 삼키려고 하는 일본과
우리 속국 취급하려고 하는 중국,
군사작전권을 손에 쥐고 우리의 주인 노릇을 하는 미국을 상대해야 한다.
사드배치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이 문제를 스스로 풀어야만 우리를 죄여오는 신냉전의 대결 구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은 우리가 어떤 자세로 대응하느냐의 문제다.
물론 현실적으로 인구와 군사력이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열세한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를 풀려는 우리의 의지와 태도가 중요하다.
을사늑약 때처럼 한일 침탈조약 때처럼
매국노 몇 사람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 없도록 막아야 할 것이며 국민들 모두가 부엉이처럼 깨어 있어야 한다.
독립 직후에 했어야 할이었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근대역사 100년 기념관, 근대역사 공원, 근대사 교과서를 만들어
우리 국민들이 역사 속에서 살며 숨쉬며 의식화되며 역사에서 스스로 교훈을 얻게 되길 바란다.
아프고 치욕스럽고 한스러운 우리의 근대사는
우리가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나라가 얼마나 귀한지를 가르쳐주며
우리 국민들 스스로가 깨어있도록 만들어갈 것이다.
또한 단군의 후손으로 한민족, 한겨레 의식을 가지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경제문제로 통일을 기피하는 이기적인 세대가 되지 않도록 인도해줄 것이다.
우리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통해서 세계를 섬기는 의로운 민족으로 성장하며 성숙하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