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부활 제5주간 월요일-요한 14장 21-26절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꽃피는 봄이 오면>
최민식 주연의 ‘꽃피는 봄이 오면’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가 끝나니 마치도 한권의 서정적인 시집을 읽고 난 것 같이 머릿속이 환해져오고, 또 길고도 잔잔한 여운이 남더군요.
트럼펫을 전공한 현우는 관현악단 오디션에서 거듭 고배를 마실 뿐 아니라, 떠나가는 사랑도 잡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접은 현우는 강원도 산골 한 중학교 악대부 임시 교사로 가게 됩니다.
낡은 악기, 찢어진 악보, 색 바랜 트로피와 상장들, 전국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하면 강제 해산해야만 악대부, 그러나 현우는 시골 아이들 마음속에서 싹트고 있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가난한 제자들을 위해 손수 라면을 끓이는 스승, 그 아이들과 함께 머리 맞대고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라면을 먹는 스승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제자를 돕기 위해 그렇게 강하던 자존심마저 내팽개치고 카바레 밤무대까지 뛰는 스승, 가슴 아픈 제자와 함께 눈물 흘릴 줄 아는 스승, 가끔은 엄격함을 버리고 친구처럼 다가갈 줄 아는 센스를 지닌 스승의 모습,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또 다시 스승의 날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지난 세월 제가 만났던 수많은 아이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습니다.
제가 종사했던 일의 성격상 잘 풀린 아이들보다는 주로 늘 뭔가 꼬인 아이들, 노력해보지만 안타깝게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방황을 거듭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어제도 최근 가까운 소년원에 오게 된 한 아이가 ‘스승의 날’이라고 편지 한통을 보내왔더군요. 화가 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신부님,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는데, 이런 곳에서 편지를 드리니 정말 창피하네요. 신부님과 함께 했던 살레시오... 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네요. 신부님, 보고 싶어요. 예전에 함께 외출하던 기억, 등산가서 한잔 하던 기억, 싸우면서 운동하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많이 창피해하는 아이에게 빨리 답장을 써야겠습니다.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미안해할 것 하나도 없다. 다 네가 시대를 잘못타고 난 때문이다. 지난 일에 너무 마음 쓰지 말거라.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란다. 널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내가 있다는 것 잊지 말거라...”
오늘 스승의 날을 맞아 고마우신 모든 선생님들, 잊지 못할 은사님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 바쳐야 하겠습니다. 열악한 교육 풍토 안에서 우리 선생님들 정말 고생들이 많으십니다. 꼬이고 꼬인 교육제도 아래에서도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시는 선생님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아이들에게 좀 더 다가서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선생님들도 많으시더군요.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춤을 배우는 선생님들, 아이들에게 보다 효과적인 학습을 제공하기 위해 불철주야 교안작성에 여념 없는 선생님들, 아이들이 너무 좋아 결혼조차 포기하신 선생님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장학금을 내어놓는 선생님들...
선생님들로부터 이런 사랑을 받은 제자들이 나중에 자라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스승으로부터 듬뿍 영양분을 제공받은 그 제자들은 언젠가 반드시 그 사랑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더 풍성히 나누어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스승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듯 제자들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섬기라는 예수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가 아니라 제자들에게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제자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시길 바랍니다. 제자들의 소리 없는 눈물 앞에 함께 눈물 흘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자들 안에 깃들어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많은 결실을 맺도록 지지해주고 격려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