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에서 출판된 <닥터 지바고>를 읽고, 영화도 보았습니다. 영화는 세 시간이 넘어서 '이걸 언제 다 보지.'했는데 보길 잘 했습니다. 저는 이번이 <닥터 지바고> 책도, 영화도 처음이었습니다. 영화때문에 <닥터 지바고>는 수선화와 얼음저택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간단히라도 정리해두지 않으면 날아가는 휘발성 기억력이라 두서없이라도 적어봅니다.
우선 이 책의 별점은 4.6점입니다. 이번이 一讀이라 깊이 있는 독서는 부족해서 등장인물 중심으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러시아문학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작품에서도 한 사람이 여러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유리는 유라, 유로치카, 유리 안드레예비치 지바고, 지바고 등으로 불립니다. 제가 이번 읽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인물로 꼽는 "라라"는 라리사, 라루샤, 라리사 표도로브나 기샤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민음사판 표지에 나온 인물이 "라라"라면 그녀를 정말 잘 표현한 듯 합니다. 라라는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인물이라기보다는 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입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공부를 놓지 않았고, 빅토르 아폴리토비치 코마롭스키와 본능적 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그 고리를 끊기 위해 '권총'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남편인 파벨(파샤, 파툴랴) 파블로비치 안티포프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집을 떠나자 그를 찾기 위해 간호사로 지원해서 전쟁터로 가기도 합니다. 도덕적인 결합이 있다 하더라도 그녀를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로 선택한 이유는 그녀가 끊임없이 걸어가기 때문입니다. 가끔 그 길에 물웅덩이가 있고, 진흙탕도 있어서 얼룩이 묻더라도 그녀는 그 길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눈이 내린 귀가길에 닥터 지바고의 OST를 들으며 라라를 생각했습니다.
첫 문장은
"사람들은 계속 걸음을 옮기며 [영원한 기억]을 불렀고, 그들이 멈출 때는 발소리, 말발굽 소리, 바람 소리가 노래를 이어 가는 것 같았다."(p.15)입니다. 지바고의 어머니 마리야 니콜라예브냐의 장례식 모습입니다. 영화에도 회상신으로 등장하는 이 장면에서 어린 지바고가 들고 가던 은방울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호자가 되어 준 외삼촌과 머물던 저택의 정원을 거닐면서 "새들의 멜로디 섞인 선율, 벌들의 윙윙거림과 함께 귓전을 맴돌앗다. 정말 어머니가 계속 야호 소리로 어디선가 자기를 부르는 것 같아서 몸이 파르르 떨렸다."(p.30) 이 구절을 읽으면서 엄마를 잃은 어린 유리의 슬픔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멍청한 짓거리는 그만하자. 단번에 영원히. 어수룩한 여자처럼 굴지 말고 응석 부리지 말고 수줍은 양 눈을 내리깔지 말자. 그러다가는 결국 끝이 좋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바로 옆에 무서운 선이 있다. 한 발만 내디디면 당장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진다. 춤 생각은 잊자. 춤에는 모든 악이 있다."(p.58) 라라는 빅토르와 간 무도회(?)에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녀의 이런 생각에는 "그녀에겐 아직 때 묻지 않은 천진난만함이"(p.55) 많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알고 또 모든 것에 이토록 가슴앓이를 하는 운명"(p.55)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지하실에서 바깥으로 올라왔을 때 그들은 취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동물적인 기쁨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이 세상을 한심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공짜 밥을 먹는 것도 아니고 집에 있는 젊은 안주인 토냐의 칭찬과 인정을 받을 만하다는 의식 덕분이었다."(p.383) 이 부분이 유리의 아내인 안토니나(토냐, 토넨카) 알렉산드로브나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낸 부분인 것 같습니다. 토냐는 아들에게 뿐만 아니라 지바고와 아버지 알렉산드로 알렉산드로비치 그로메코에게도 어머니같은 존재인 듯 합니다. 집 안의 실질적인 가장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 안의 소소한 일 뿐만 아니라 바르이키노로 이주하는 중요한 문제에서도 그녀의 목소리는 큰 역할을 합니다.
"유리 안드레예비치는 지난날 멜류제예프에서 관찰했던 것을 점검하고 확증했다. '그녀는 남의 마음에 들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가 생각했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 생각, 남의 마음을 끌고 싶은 생각 말이다. 그녀는 여성적 본질의 이런 측면을 경멸하고, 자신이 그토록 예쁘다는 것 때문에 스스로를 벌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 오만한 반발심이 그녀의 매력을 열 배나 돋보이게 한다. 그녀가 하는 일은 모두 너무나 훌륭하다. 그녀는 독서가 인간의 고상한 활동이 아니라 동물도 해낼 수 있는 뭔가 아주 단순한 일이라는 듯 책을 읽는다. 꼭 물을 나르거나 감자를 깍듯이 말이다.'(2권 p.82) 바르이키노로 이주한 지바고가 이웃 도시 유랴틴 시립독서관에서 라라를 다시 만났을 때 그녀에 대해서 서술한 장면입니다. 지바고가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그리 보였을 수도 있지만 이 장면이 머무르지 않고 성장하는 "라라"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다시 읽을 때 내게 울림을 주는 인물은 누구인지, 어떤 문장이 가슴에 와닿을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만 라라와 토냐 그리고 지바고에게 인사를 전해야 겠습니다. 안티포프에게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