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32167093 김세연
오늘도 모모는 마사이족 운동화를 신고 나갔다. 그걸 신으면 허리 디스크가 싹 낫는다나 뭐라나. 언젠가 신문에서 본 마사이족은 맨발로 다니던데. 과연 모모가 무려 오만 팔천 원을 주고 산 저 운동화가 진정 마사이족의 발명품인지 의심스러웠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때로는 진실을 모르는 편이 더 나을 때도 있다고 모모가 이야기한 적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70대에 접어든 모모가 아직도 잘 걷는 것을 보면 운동화의 효능이 아예 없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내가 모모, 잘 걷네 하고 말하면 모모는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라며 입을 비죽 내밀었다. 하지만 모모는 모모. 모모는 언제나 역할보다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허리 디스크 수술 후 모모는 매일같이 마사이족 운동화를 신고 수변공원을 걸었다. 조깅이라는 근사한 이름이 붙을 정도는 아니고 산책 혹은 마실이나 겨우 다니는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요즘 들어 모모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고 좋아했다. 수변공원 안에 경로당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시에서 큰돈을 들여 지었다는 경로당은 아주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시설이 아주 좋은 만큼 비용 역시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째 경로당 안보다 밖에 노인들이 더 많다며 모모는 웃었다.
“특히 지금은 겨울이어서 더 그래. 세상에 노인네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수변공원이 바글바글 하다니까.”
겨울에는 보통 집에 있지 않나, 내가 대꾸하자 모모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여름은 일사병 걱정 때문에 안 되고 봄이나 가을은 축제니 뭐니 해서 젊은이들이 많아 안 된다고 했다. 게다가 젊은 사람들이 많으면 눈치를 보게 된다고도 덧붙였다.
모모의 말처럼 겨울 공원에는 노인들이 정말 많았다. 벤치, 바닥, 풀밭 할 것 없이 자리를 잡고 앉아 여자들은 윷놀이를 하고 남자들은 장기를 두었다. 물론 본인들이 산 것은 아니고 시에서 구비해둔 제품들이었다. 게 중에는 윷놀이보다 화투가 좋다며 투정 부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막상 놀이가 시작되면 입을 다물었다. 여럿이 모여 하는 윷놀이는 어느 월드컵이나 경마보다도 재미있었다. 놀이는 중심 인원 대여섯 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빙 둘러싸 구경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덕분에 주변은 항상 왁자지껄했다.
모모는 그곳에서도 모모였다. 윷판에서 모모의 주특기는 ‘모 아니면 도’의 긴장감을 승리로 이끌어내는 것. 모모가 ‘도’일 것 같았던 판을 아슬아슬하게 ‘모’로 바꾸자 그 자리에 앉아있던 여자 중 하나는 벌떡 일어나 이렇게 소리쳤더랬다.
“자네는 모의 어머니라서 이름이 모모인가?”
이러한 모모의 매력에 빠진 뭇 남자들은 은근한 구애를 하기도 했다. 자판기 커피를 건넨다거나 경로당 옆 매점에서 산 봉지라면을 건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모모는 번번이 고개를 돌렸고 사람들은 그런 모모가 이름과는 달리 도도하다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한 번은 백 원씩 걸고 한 윷놀이 내기에 어떤 여자가 돈을 내기 싫어 뛰쳐나간 적이 있었다. 며느리가 왔다며 급하게 자리를 벗어난 여자를 모모는 단숨에 따라잡았다. 다년간의 마실 다니기와 마사이족 운동화로 다져진 걷기 실력 덕분이었다.
그렇게 돈을 따낸 날 모모는 나를 수변공원으로 불러냈다. 매점에서 라면과 자판기 커피를 사주고 싶다는 이유였다. 그 말에 성인인 내가 얻어먹을 수 없다고 거절하자 모모는 내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
“나이 먹고 자식한테 밥 얻어먹으면 얼마나 불안해지는데. 내가 사게 해줘.”
모모가 돈을 따고 내가 모모에게 라면을 얻어먹는 날이 잦아질 즈음, 수변공원에는 가로수로 심은 벚꽃 봉오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제 한동안 친구들 보기는 힘들겠네. 그렇게 말하며 모모는 좁은 간격으로 줄지어선 벚나무들을 바라보았다. 벚나무가 마치 거대한 윷이라도 되는 듯 모모는 가까운 나무 기둥을 어루만졌다.
“전부 똑같은 게 꼭 모 같다.”
나는 그런 모모의 발을 쳐다보았다. 언제나처럼 모모는 마사이족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이 신발을 신고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신나게 걸었을 모모를 생각하니 새삼 봄이 야속했다. 겨울이 끝나면 모모는 이제 어디로 걸어야 할까. 나는 가만히 나무를 매만지는 모모에게 봄이 되면 함께 이곳에 오자고 말했다.
“와서 벚꽃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자.”
나의 말에 모모는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듯 입술을 달싹이던 모모는 이내 입을 앙다물었다. 덕분에 모모의 주름진 입술에 한층 더 주름이 졌다. 나는 어쩌면 그런 모모가 외로운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모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이제 윷놀이를 못 하니까 돈 나올 구석이 없는데.”
그렇게 말하며 모모는 내게 씩 웃어보였다. 그렇게 웃는 모모의 얼굴에 주름이 하나도 없어서 나는 모모가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 날 이후 모모는 틈만 나면 벚꽃 이야기를 했다. 누가 그러는데 벚꽃은 밤에 보는 것이 가장 예쁘다더라, 커피는 내가 살 테니 라면은 네가 사라, 요즘 들어 친구들이 많이 안 나온다 등등. 겨울을 떠나보내는 모모의 얼굴은 밝으면서도 어두웠다. 그렇게 모모가 몇 번의 표정을 바꾸는 사이 벚꽃의 봉오리는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벌어지는 것은 봉오리만이 아니었다. 삼년 전 수술했던 모모의 척추 뼈 역시 봄을 맞이하며 아무도 모르게 벌어지고 있었다. 뼈와 뼈 사이가 멀어지는 바람에 디스크가 튀어나왔네요. 의사는 한숨을 쉬며 재수술을 권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걱정은 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고, 이 정도면 많이 아팠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모모의 운동화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그거 디스크 환자들한테 치명적이에요.”
그 말을 들은 모모는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아보였지만 쉽게 인정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마사이족 운동화를 신어서 그나마 지금까지 버텼다며 모모는 화를 냈다. 결국 수술실로 들어갈 때에도, 수술에 실패해 영안실로 옮겨질 때에도 모모는 마사이족 운동화를 신었다. 나중에 병원 관계자가 모모의 운동화를 벗길 때 나는 모모가 눈을 감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운동화를 벗겼다는 것을 알았다면 모모는 절대로 웃을 수 없었을 테니까. 나는 까맣고 거친 모모의 발을 매만지며 언젠가 모모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진실은 모르는 편이 더 나을 때도 있어. 혹시 모모는 일부러 나에게 허리가 아프다는 것을 숨긴 걸까. 그렇다면 역시 모모, 하고 생각했다. 모모는 언제나 모모다웠고, 나는 그런 모모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모모가 떠나고 얼마지 않아 봄은 찾아왔다. 많은 사람들의 얼굴은 꽃잎 색으로 물들었고 너도나도 소풍을 가기에 바빴다. 꽃가루에 들뜬 사람들 속에서 나는 혼자 수변공원으로 향했다. 내 발에는 조금 작은 모모의 마사이족 운동화가 신겨져 있었다. 모모가 보고 싶다던 밤 벚꽃을 운동화에게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공원은 역시나 복잡했다. 솜사탕이며 아이스크림이며 온갖 푸드트럭이 갓길에 주차된 바람에 지나갈 틈이 없었다. 세상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 나는 미소 띤 사람들을 겨우 지나쳐 윷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윷판 주위에도 노인들은 없고 죄다 젊은 사람들뿐이었다.
나는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윷판을 바라보았다. 이 따뜻한 봄밤, 도시의 노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판 위에는 윷이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나는 윷을 하나씩 뒤집으며 모, 하고 중얼거렸다. 모, 모, 모, 모. 나는 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주워 윷판 위에 뿌렸다. 벚나무가 꼭 윷 같다는 모모의 목소리가 발목 부근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고 언젠가의 모모처럼 입술을 달싹였다. 모모. 모모. 입술 사이로 따뜻한 바람이 새어나왔다.
박덕규 교수님 과제..hwp
첫댓글 글의 분위기가 따듯해서 그런지 읽으면 읽을수록 더 마음이 찡해지는 글이었습니다. 특히 모모의 죽음이 벚꽃과 어우러지는 부분에서 참 마음이 아팠던 것 같아요. 모모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글쓴이의 마음이 잘 담겨있는 글이어서 좋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꽃과 공원, 윷놀이와 운동화 등의 소재가 매끄럽게 얽히는 글이었어요. 모모라는 명명도 좋았습니다. 초반부는 재치 있는 문장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야기가 뒤로 흘러갈수록 마음이 아팠습니다. 모모와 화자가 나누는 대화들이 다 다정하고 공감 가서 슬펐습니다. 가족이나 엄마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었어요. 모모와 화자가 쭉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더 마음이 쓰이는 것 같네요. -모모는 언제나 모모다웠고, 나는 그런 모모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 문장이 정말 좋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엄마를 왜 모모라 부르게 되었는지 그 배경이 궁금해지는 글이었습니다. 자식에게 손을 벌리기 싫어하는 엄마의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기에 더욱 따뜻하게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배경 역시 따뜻함을 더하는 설정이지 않았나 싶어요.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