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소리를 듣는 회로(回路)
당신의 마음은 우주(宇宙)의 전파(電波)를 잡는 수신기(受信機)이어야 한다. 모든 감각(感覺)은 예민한 안테나처럼 生의 지붕보다 한 치라도 높이 솟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의식(意識)은 증폭기(增幅器)의 구실을 해야 한다. 땅 밑에서 우는 벌레의 소리보다도 더 미세(微細)한 소리라 할지라도 그것은 수백 배 수천 배로 울릴 수 있게 해야 한다. 거기에서 당신의 음악(音樂)은 탄생(誕生)되는 것이다.
육안(肉眼)으로만 보이는 세계, 그리고 보통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만이 당신의 현실(現實)이라 고집해서는 안 된다. 그 말이 믿기지 않으면 한밤중 FM 수신기(受信機) 앞에 앉아 있는 것으로 족하다. 당신은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단지 쥐가 천정에서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아니면, 골목을 지나는 바람소리 정도이다. 그런데 스위치를 돌리는 순간, 당신은 영혼을 울리는 바하의 토카타나, 비발디의 아름다운 <사계四季>의 선율을 들을 수가 있을 것이다.
당신이 라디오를 켜기 이전에도 그 어둠의 방안에는 끝없이 그 선율을 담은 전파가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당신의 귀로 들을 수 없었던 것뿐이다.
마찬가지이다. 우주(宇宙)의 모든 것은 당신을 향해서 무수한 의미를 발신(發信)하고 있다.
그것은 땅속 깊이에서도 오며 구름 뒤의 하늘 위에서도 온다. 라디오의 전파(電波)와도 같이 그것들은 긴급한 뉴스를 보내기도 하고 아름다운 음악이나 웃음소리를 띄우기도 한다.
詩人은 그것들의 전파(電波)를 잡기 위해서 특수한 회로(回路)를 고안(考案)해 내야 한다. 그 회로에 따라서 잡히는 전파도 있고 그냥 영원히 놓쳐버리는 소리들도 있다.
그리고 그 소리를 재생(再生)하고 증폭장치(增幅裝置)로 확대시켜 보통 사람의 청각에까지 도달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민감한 言語의 스피커를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당신은 귀로 들을 수 없는 소리와 눈으로 볼 수 없는 빛을 바로 이 現實의 방안 속으로 끌어 들인다. 그때 사람들은 FM의 音樂소리를 듣듯이 풀잎에서 이슬이 떨어지는 작은 붕괴의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詩의 수사학(修辭學)은 바로 전자공학(電子工學)에서의 새로운 회로기술(回路技術)의 탐구(探究)와도 같은 것이다.
지은이: 이어령
출 처: 『문학사상1978.09』
< 세상을 떠날 때 무엇을 남길 것인가>
길을 떠날 때마다 우리는 고민한다. 무엇을 남겨두고 무엇을 챙겨 갈까? 모자, 운동화, 옷, 책을 비좁은 가방에 넣었다 빼기를 반복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필요성의 이유만이 아니라 몸에 휴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물건이 사람마다 따로 있기 때문이다. 전쟁 난민이나 불법 이민자가 고향을 떠날 때도 증명서, 면도기, 라이터, 상비약과 더불어 가족사진, 집 열쇠 같은 것들이 가방에 들어 있다. 그들에게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추억이자 동반자다. 세계적인 조각가 브루노 카탈라노의 ‘여행자’ 시리즈처럼 가슴이 뻥 뚫린 채 가방을 들고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독일 작가 스벤 슈틸리히의 책 ‘존재의 박물관’에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많은 사람이 직장을 떠나야 했을 때의 증언이 담겨 있다. 여직원들은 화분, 사진, 고객의 명함과 함께 대부분 책상 밑에 몇 켤레씩 두고 있던 구두를 챙겨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직장은 일터인 동시에 생활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대의 많은 중년들이 은퇴를 앞두고 정든 사무실을 비워야 할 때 그들의 심정은 상실감, 딱 그거다. 장소와 공간은 여전히 존재해도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곳이 된다는 무력감 말이다. 내가 앉던 정든 의자와 책상에 내일이면 다른 누군가가 앉는다는 상상이 유쾌할 리 없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때 상실감은 더 크다. 무더위가 절정이던 지난달 장모님이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장가를 가겠다고 처가를 찾아가야 했던 젊은 시절 어느 날이 떠올랐다. 나는 봉천동 산동네 월세를 살고 있었던 반면, 처가는 압구정동의 아파트였다. 여러 가지로 선뜻 발걸음과 말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따뜻한 웃음으로 받아주셨다. 세월이 한참 지나 중년의 나이에 내가 직장 문을 나온 뒤 여러 제안을 거절하고 집에만 있는 상황이 계속되자 아내가 장모님에게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던 모양이다. 그때 딸에게 해준 장모님의 말씀, “네 남편 눈빛을 봐라. 부드러운 것 같지만 단단하다. 절대로 가족을 굶게 하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얼마나 부끄럽고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위안과 용기가 되었던지. 힘들 때 믿고 격려해 주면 평소 이상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인간의 신비함이다. 믿어주는 만큼 사람은 노력하는 법이다. 부모 자식, 직장의 상하 관계도 비슷하다.
민족과 종교에 따라 장례 문화가 다르기는 해도 애도 의식은 고인과의 인연을 정리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보았던 사람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였다. 어쩔 수 없는 이별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것. 장례식장에서 내 가슴 리본에 새겨진 서(壻)라는 한자는 사위를 뜻함을 처음 알았다. 원래는 둘째 사위였지만, 나이가 비슷한 손위 동서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내가 유일한 사위 노릇을 해야 했다. 예정되었던 해외 출장을 부득이하게 취소했어도 징검다리 연휴라 빈소가 너무 텅 비어 있으면 떠나시는 장모님께 면목이 없을 것 같아 내심 걱정도 없지는 않았으나 주변의 도움으로 그리 흉하지 않게 마지막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발인 때 맨 앞에서 영정과 위패를 들고 나가며 가난한 청년에게 주었던 믿음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기를 빌었다.
유품 정리를 하던 아내는 장모님의 서랍을 열다가 그만 눈물이 터졌다. 서랍 속에 놓여있던 진녹색 가계부와 검은색 탁상 수첩 때문이었다. 제사상에 올릴 품목과 가격, 음식 요리법, 명절 때 자식들이 건넨 용돈 봉투 등을 정갈한 글씨로 적어두고 있었는데, 특이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수첩 여백에 마치 어린아이가 글자 연습하듯 장모님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 어느 날에는 두 글자로 끝나고, 어느 날은 성만 적혀 있거나 이름의 받침을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몇 년 전 불행하게도 찾아온 혈관성 치매의 결과였다. 가족에게도 들키지 않고 자기 자신을 찾으려 애쓰던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의 현장이었다. 고대인들이 동물 뼈나 청동으로 만든 뾰족한 필기구 스틸루스(Stilus)로 ‘나, 여기 세상에 왔었다’며 그림을 남겼던 장면이 연상되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학평론가 김현의 말이 옳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 정신적으로 죽는다.”
이처럼 자신에게 닥친 비극의 한가운데서도 장모님은 생전에 입던 옷과 이불, 별로 사용한 적이 없는 예쁜 그릇과 유리잔 같은 것을 따로 분류해 두었다.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주변을 정리한다는 ‘데스 클리닝(Death Cleaning)’, 스웨덴에서 시작되었다는 운동을 이미 조용하게 실천하고 있었다. 본인의 이름까지 상실하는 비극 앞에서도 주변을 깔끔히 정리하려는 노력이다. 아무리 소중한 물건이라도 주인을 떠나면 빛을 잃는다. 기부, 재활용,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으로 분류하다가 나는 작은 포도주잔 두 개를 챙겼다. 크리스털 잔을 살짝 튕겨 보았더니 ‘쨍’ 하고 명징한 소리가 장모님 목소리처럼 울린다.
무더운 여름이 지겹다고 투덜거렸는데, 어느새 9월이다. 정말이지 인생은 짧다. ‘다음에 할게요’라고 하지만 다음이 항상 오리란 법도 없다. 오늘에 충실해야 한다. 작별 의식은 고인을 기억에서 지워버린다는 뜻은 아니고 오히려 중요한 질문을 되새기게 만든다.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지은이 : 손관승 , 글로생활자
출처 : 조선일보, 입력 2024. 09. 07 00:40 업데이트 2024.09.07. 06:04
<옛날의 그집>
박 경리
빗자루 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횡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국새가 울었고 연못에 맹꽁이는 목이 터지게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사람의 됨됨이>
박 경 리
가난하다고
다 인색한 것은 아니다
부자라고
모두가 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됨돔이에 따라 다르다
후함으로 하여
삶이 풍성해지고
인색함으로 하여
삶이 궁색해 보이기도 하는데
생명들은 어쨌거나
서로 나누며 소통하게 돼 있다.
그렇게 아니하는 존재는
길가에 굴러 있는
한낱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인색함으로 하여
메마르고 보잘 것 없는
생을 더러 보아 왔다
심성이 후하여
넉넉하고 생기에 찬
인생도 더러 보아 왔다.
인색함은 검약이 아니다
후함은 낭비가 아니다
인색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
후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준엄하게 검약한다.
사람 됨됨이에 따라
사는 세상도 달라진다
후한 사람은 늘 성취감을 맛보지만
인색한 사람은 먹어도 늘 배가 고프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산다는 것>
박 경리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를 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데
그보다 생광스러운 말이 또 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은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허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오래 살았으니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 가을로 들어가는 길목에 서있습니다.
지난 여름은 몹시도 더웠습니다. 이제 선들바람 불면서 여기 저기에 가을의 색채가 배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과일들은 단맛을 익히고 있고, 곡식들도 열심히 낱알들을 여물게 하고 있습니다.
달님은 한가위를 위하여 열심히 그 뽀얀 살을 찌우고 있겠지요.
유정독서모임, 9월 12일 목요일 16:00~18:00까지 커먼즈 필드 세미나실에서 진행됩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김유정의 소설 <만무방>을 함께 읽고 토론하게 됩니다.
구월의 두번 째 목요일 오후, 커먼즈 필드에서 뵙겠습니다.
2024. 9.7 강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