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핀 루이의 <천국의 나무들>, 1930년
‘나이브 아트(Naive Art)’의 화가들
2009년에 마르탱 프로보스트 감독은 “세라핀”이라는 영화를 제작했다. 프랑스의 ‘나이브 아트’ 화가 세라핀 루이(Séraphine Louis, 1864-1941)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세라핀 루이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상리스(Senlis)의 수녀원과 중산층 가정에서 청소부, 또는 세탁 담당으로 일하면서 주변에서 흔히 보는 꽃이나 과일, 나무 등을 그렸다.
‘나이브 아트(Naive Art)’란 세라핀 루이처럼 미술가로서의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화가들의 작품을 말한다. 이들 그림의 공통점은 미숙함과 소박함에 있다. 이들은 원근법을 무시하고 평면적이며, 강렬한 색채나 세부적인 표현에 집착하는 공통점을 가진다. 나이브 화가들은 그림을 취미로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와는 다른데, ‘나이브’란 단어가 의미하듯 훈련받은 화가와 다른, 솔직하고 어린이같이 단순하고 순수한 표현 때문에 현대에 와서 관심을 끌게 되었다. 세라핀 루이가 그린 과일이나 나무도 강렬하고 격정적이었고 화면은 왁스로 닦은 것처럼 매끄러웠다. 정밀하게 그린 과일과 나무 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다 신기(神技)를 느끼게 한다. 그는 물감도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성분은 끝내 비밀에 부쳤다고 한다.
1912년 어느 날, 세라핀 루이의 그림은 상리스에 머믈던 독일인 화상 빌헬름 우데(Wilhelm Uhde)의 눈에 띄었다. 그는 이 평범하지 않은 그림들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제 1차 세계대전이 터지나 적국인이었던 우데는 세라핀과 연락을 하지 못한 체 프랑스를 떠나야 했다. 이후 1927년에 다시 상리스에 온 우데는 세라핀의 작품을 사기 시작하고 주요 화랑에서 전시를 하게 해주었다. 세라핀은 점점 유명해지고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아졌다. 그러나 1930년의 경제 대공황은 우데의 지원이 계속될 수 없게 만들었고 돌변한 상황은 세라핀의 정신 상태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는 1932년부터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41년에 죽고 말았다.
세라핀을 발굴한 우데는 일찍이 무명이었던 피카소의 작품을 사들였고 피카소도 그의 초상을 그린 바 있다. 그러나 우데의 열정은 무엇보다도 세라핀 루이의 작품과 같은 나이브 아트’에 있었다. 그가 열정적으로 후원하고 단행본까지 쓴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 역시 또 다른 ‘나이브 아트’ 화가였다. 약 14년간 세관원으로 일하다 그만두고 중년의 나이에 화가가 된 루소는 원래 앵그르처럼 아카데믹한 화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루브르박물관에서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기도 했지만 루소가 주로 영감을 받은 곳은 그가 자주 다니던 동물원, 식물원, 이국적 문화나 장소의 그림엽서 등이었다.
루소가 53세에 그린 <잠자는 집시> 는 어느 아카데믹한 화가도 그릴 수 없었던 꿈과 같은 세계를 보여준다. 원근법과 신체 묘사는 서투르지만 이상하게 모두 앞으로 향하는 사자의 갈기나 집시의 옷 등은 아주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적막한 사막에서 사자가 잠이 든 집시에 다가가는 장면은 숨을 죽일 듯한 긴장감을 주지만 이들을 비쳐주는 둥근 달이 뜬 밤의 풍경은 말할 수 없이 매혹적이고 신비스럽다. 이 환상적인 그림은 진정으로 타고난 재능과 상상력을 가진 작가만이 가능한 것으로, 예술은 교육과 훈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