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벌봉, 한봉 (2022. 9. 17)

[느리게]

남한산 벌봉, 한봉

 
 
1. 일자: 2022. 9. 17 (토)
2. 산: 남한산(522m), 벌봉, 한봉(418m)
3. 행로와 시간
    [산성역(08:10) ~ 남문(09:58) ~ 수어장대(10:35) ~ 서문(10:55) ~ (식사) ~ 봉암성(12:32) ~ 벌봉(13:01) ~ 남한산(13:09) ~ 노적산 갈림(13:30) ~ 한봉(13:35) ~ 도로/탑공암(14:05) ~  동문(14:30)/ 13.99km)
 
 
  도팔산에 대식이 합류하여 인원이 7명이 되었다. 9월 산행은 남한산성을 가기로 했다. 이왕이면 새로운 길로 가보자는 심산으로 벌봉, 한봉을 코스에 포함했다.
 
비 내리는 산성역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길을 나선다. 초입 잣나무 숲의 풍취가 그윽하다. 짙은 갈색의 낙엽, 푸르름을 뽐내는 나뭇잎, 검은 나무기둥이 앙상블을 이루는 색의 조화가 근사하다. 그 한적하고 풍성한 숲을 걷는 기분이 그만이다. 길은 도로와 이웃하며 무척 길게 남문까지 이어진다. 남문은 연무에 자욱하다.
 
남문에서 수어장대 오름은 된비알이었다. 웬 돌 계단이 이리 많은지. 장대 계단에 앉아 사진을 찍는다.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없다. 서문 가는 길은 굽어보는 풍경이 멋진 곳인데 오늘은 안개에 젖어 희미하다.
 
서문을 지난다. 성 밖으로 잠시 나간다. 성벽에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남한산성은 둘레 8km로 백제의 성이었는데, 조선 인조 때 승려를 동원해 개축했다. 내가 이 성을 눈 여겨 본 계기는 김훈 선생의 ‘자전거기행’ 때문이다. 김훈은 역사가 기록이 아니라 풍경과 표정으로 남아 있는 곳이 있는데, 서문이 그곳이라 했다. 병자호란 삼전도의 치욕은 바로 이 서문으로 인조가 항복하러 나감으로써 시작되었으며, 그 선택의 기로에서 쏟아진 수 많은 말에 김훈은 주목했다. 주전파 김상헌의 실천 불가능한 정의와 주화파 최명길의 실천 가능한 치욕이 대립했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국가 위기 대응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힘과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교란 결국 허망한 것이라는 교훈을 이야기한다. 세월이 흘렸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연주대 암문, 공사중인 북문을 지나 성곽 따라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남한산성은 결코 만만한 산행지가 아니다. 봉암성에서 벌봉으로 방향을 튼다. 겨울 눈 풍경이 근사한 곳인데, 초가을에도 운치가 있다. 일행들은 한적한 오솔길을 맨발로 걷는다. 벌봉까지는 가 본 길이다. 무너진 성곽 밑으로 한봉 가는 길이 이어진다. 중간에 남한산 정상석도 보았다. 그 위치가 생뚱맞았다. 벌봉에서 정상을 묻던 분들에게 그런 거 없다고 한 말이 미안했다.
 
한봉 길은 높낮이 변화는 적지만 인적이 드물어서인지 등로는 희미하다. 노적산 갈림을 지나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오르자 작은 공터가 나온다. 한봉이다. 그간 10번도 넘게 남한산을 왔어도 갈 엄두를 내지 못한 곳에 드디어 발도장을 찍었다. 애써 다시 올 곳은 아니라 여겨졌다.
 
내림 길이 거칠다 싶었는데, 철희가 넘어졌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순간적인 사고에 크게 놀랐다. 허리를 다친 것 같은데 큰 부상이 아니길 바래본다. 스틱은 유용한 도구지만 때론 사고유발의 원인제공자도 될 수 있다. 험로에서는 조심이 최고의 안전책이다.
동문을 지나 종로로 이어지는 도로는 멀게만 느껴졌다.
 

< 에필로그 >
 
종로 초입에서 걸음을 멈춘다. 작은 연못이 있는 함지박이라는 음식점 앞이다. 15km 가까운 먼 길을 걸었다. 남한산과 벌봉, 한봉으로 이어지는 잘 가지 않는 길을 처음으로 가 보았다. 예상보다 길 정비가 안 되어 당황스러웠다. 도전과 첫 만남에 의미를 둔다.
 
성종형의 큰 아이가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단다. 축하할 일이다.
닭백숙과 오리탕이 끊는다. 막걸리와 소주 잔이 부딪힌다. 긴 산행을 함께하고 나누는 뒤풀이는 관계를 돈독하게 만든다. 산행을 복기하고, 다음 산행지를 정하고, 서로가 함께 나눈 추억을 들추어내고, 했던 말 또 하고…. 싫지 않은 의식이다. 문뜩, 평범한 일상에서 맞는 이런 조금은 범상치 않은 일들이 행복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대왕마마]

내가 같이 한 산행을 어땋게 써줄까 기다리는 재미가 하나 더 생겼다. 역쉬~~ 나중에 내 추억이 필요할때 좀 퍼갈지도 모르니 좀 이해를……

[느리게]

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해는 무슨 ㅎㅎ

더 즐거울 다음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