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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효선이 순천에 오셨습니다. 다소 수척해 보이신 모습이었지만, 맑고 건강한 웃음으로 우리를 만나십니다. 사.인.미 (사그락인생미션스쿨)는 한 달에 한 번, 선생님을 모시고 책을 통해 말씀을 듣는데, 마음을 내어주신 장소에서 그간 회포를 풉니다.
학생 : 사그락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지금 글쓰기로 아이들을 만나는데, 잘 만날 수 있는지 확신이 안 서서, 생각을 해보겠다고, 그것은 저의 힘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기도를 했죠. 이런 제안을 받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아침에 걷기를 하는데, 생각에 잠겨있는데, 대답을 해주기로 한 날짜는 다가오는데, 어떤 응답을 하시는지 제가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런데, 제 머리 속으로 계속 교육과정을 짜고 있더라구요. (웃음) 또, 하나 선생님과 전에 10주 글쓰기 한 것이 그것이 교환인 거잖아요. 오후에 해보겠다고 했어요.
선생님 : 적어도 데이빗 홉킨스의 ‘놓아버림’이라는 책을 함께 읽는다는 사실 자체가 뭐를 의미하냐면, 더 이상은 내 생각과 내 판단으로 살 길을 포기하고, 하늘의 뜻과 그의 지시를 따라 살겠다는 마음, 그것, 그 놔버리는 것이 안 돼. 놔버린다는 것은 잡고 있던 것을 놓는다는 거잖아. 저기 ‘의지의 침묵’이라고 써 놨는데, 테레사 수녀님 하신 말씀이라고 내가 기억하거든. 침묵에는 세 가지가 있대. 하나는, 생각의 침묵, 그것은 말을 하지 않는 거야. 말을 하지 않으면 생각이 자기 표현의 방법이 없잖아. 말을 하지 않는 침묵, 사람들은 그것이 침묵이라고 알고 있어. 진짜 침묵은 그것이 아니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그 다음에는 의지의 침묵이야. 의지는 뭐를 하고 싶다는 마음, 뭐를 해야겠다는 생각, 이런 것을 침묵한다는 거지. 놔버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내가 잡고 있는다는 것을 놓는다는 건데. 놓는다는 것은 한님이 잡으시게 한다는 거거든.
아까 제안이 왔을 때, 망설이고 나한테 과연 뭘까 하는 생각이 옛날 습관이야. 지금은 제안이 왔다는 사실 자체가 한님이 당신의 삶을 간섭하고 있다는 그런 신호라 볼 수 있어. 뭘 하다가 안 될 때, 한님이 내 삶을 간섭하고 있구나. 고마운 마음으로 안 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제안이 올 때, 하늘이 나한테 이런 일을 하라고 하신가 보다. 나한테 자격이 있나, 실력이 있나, 헤아릴 것 없고, 다 아시고 그 일을 나한테 맡기는 거니까.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는 것, 이 정도까지 우리가 왔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나. 아주 잘 했어. 거 봐, 내 머리로는 망설이고 있지만, 몸은 이미 하고 있잖아. 계획 짜고 있고. (웃음)
학생 : 긍정적으로 얘기할 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하는 것이다. 이러는데, 부정적으로 얘기할 때는 다르잖아요.
선생님 :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도 하늘이 하시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이것은 아니야. 그것은 하늘이 하신 것이 아니고, 내가 하는 거야. 부정적인 것은 부정해도 돼. ‘예스, 노’를 해가면서 살아가는 거야. 살다 보면, 때가 되면, ‘노’ 라는 것이 없구나. 알 게 될 때가 있어. ‘예스, 노’라는 것이 없고, ‘예스’ 밖에 없다. 라는 것을 알 때가 있어. 그것을 알기 전까지는 그것을 구분해서 ‘예스’면 ‘예스’이고, ‘노’면 ‘노’야. 이것은 하늘이 하는 일이 아니다 싶으면, 하지 않는 것이 옳아. 그것을 분간하는 방법이 뭐냐 하면, 컴퓨터와 똑같아. 컴퓨터는 0과 1가지고 일을 하잖아. 없던지 있던지 그래. 하늘이 하신 일인지 아닌지 분간하는 것은 머리 굴려서 모르고, 생각으로는 몰라. 생각은 가짜를 진짜로 생각하는 것이 많아. 생각을 믿지 말고, 가슴을 믿으라고. 느낌이 살아. FEELING이라고 그러지. 가슴은 말을 못 해. 서늘하다. 느끼잖아. 성자가 만지던 도둑놈이 만지던 서늘한 것은 서늘한 거야. 그것이 느낌이야. 감정은 아니야. 감정은 느낌이 아니야. 감정은 고약해. 얼마나 잘 속이는지 몰라. 감정에 놀아나면 사람을 망쳐. 느낌은 물리적인 거라, 거짓말을 못 해. 몸은 거짓말을 못 해. 그래서, 몸이 하는 얘기를 들으라는 얘기는 몸은 거짓말을 못 하기 때문에 그래. 생각은 거짓말이야. 생각대로 살아가니까 힘든 거야. 가야 할 길은 여기인데, 생각은 저리 가라 그래. 길이 아니니까 힘든 거야. 가슴이 이런 느낌을 가지는지 생각은 이해를 못 해. 머리로 생각을 하면 이리 가는 게 맞아. 그런데, 가슴이, 느낌이, 아니라 그래. 선택하는 것은 내 마음이지. 이럴 때, 가슴으로 선택하는 거야. 제대로 가는 길이야. 저 사람 누군지 몰라. 처음 보는 사람인데, 이상하게 그 사람한테 호감이 가. 보고 싶고, 참 좋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럴 때 있지 않아? 반대로, 처음 보는 사람인데, 어쩐지 경계가 되고 어쩐지 피하고 싶고, 머리는 몰라, 그 인간이 누군지. 그런데, 몸은 알아. 몸과 머리가 어긋날 때, 내 생각, 의지를 침묵시키고, 몸이 하자는 대로 한다. 우리가 그렇게 안 살아봤기 때문에, 그 반대로 사는 세월이 하도 많아서 처음 해보려면 쉽지는 않아. 그러나, 용기를 가지고 그렇게 해보면 그것이 맞구나. 몸이 머리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그렇구나 라는 것을 알게 돼. 느낌에는 좋은 느낌, 나쁜 느낌이 없어. 그냥 느낌이지. 감정은 싫고 나쁘고 이런 것이 생기는 거지.
학생 : 생각의 뿌리, 감정과 생각이 뒤엉켜있는 거 같아서요. 어쩔 때는 생각의 뿌리가 감정이고, 어쩔 때는 감정의 뿌리가 생각인 거 같고요.
선생님 : 그런 작용을 하지. 감정이 생각을 만들기도 하고, 생각이 감정을 만들기도 하고. 서로 보완을 해. 정말 뿌리는 감정보다도 그것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괜히 생각나는 것은 아니잖아. 가만히 있는데, 어떤 생각이 불쑥 들어올 때도 있어. 감정도 그렇고, 생각도 그렇고, 계기가 있어서 그것이 만들어지는 건데, 내가 일부러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없어. 보통 우리가 얘기할 때, ‘생각은 떠올랐어.’ 이렇게 얘기하잖아. ‘생각이 들었어.’ ‘내가 생각을 했어.’ 이런 말도 하지만, ‘생각이 들었어.’ 이런 얘기를 무심코 하잖아.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어. 떠올랐어.’ 내가 생각을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왔다는 얘기야. 생각이라는 것은 한 개인이 스스로 창작할 수 있는 생각은 없어. 소유주가 없어. 감정도. 슬픔이라는 것도 한 사람 껀가? 아니잖아. 슬픈 감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가슴을 한 대 치면 있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생각도 내가 붙잡지 않으면 가. 감정도 마찬가지이고.
학생 : 알아차림을 얘기할 때, 순수심법을 얘기하잖아요. 모든 일체 현상의 법이..
선생님 : 이 생각이 어디서 왔느냐는 그 근원을 물으면, 답이 없어. 그래서, 알 수 없다 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어. 내 존재가 어디서부터 왔나. 시원을 알 수 없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와. 온 것은 분명한데,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는 거야. 아무도 몰라. 알아차리라는 말은 많이 하잖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안다고. 그것의 알아차림이 생략되면, 그 생각이 바로 내가 돼. 나와 생각이 일치가 되어 버려. 그 생각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아. 이건 그래. 그래서, 해 버려. 우리가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어. 그것이 뭐냐니깐, 자기 껏도 아닌 생각에 내가 돼서 산 거야.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생각에 내가 그 생각이 시킨 대로 산 거란 말이야. 그동안에 몸이라는, 우리의 몸은 우주야. 우주와 몸이 하나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살았어. 이것이 단절되었으면 우리는 땅 속에서 썩었어야 해. 숨으로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잖아. 그래서, 몸이 살아있는 거라고. 이것은 우주라고 보면 돼. 우주가 알고 있는 것을 몸이 알고 있다고 보면 돼. 몸에게 물어보는 것이 뭔데? 우주에게 물어보는 것과 마찬가지야. 모르는 것이 없어. 그런데, 그 대답은 항상 진실과 거짓만 얘기해. 몸은.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니고. 그것을 잘 알아보는 것이 알아차림이라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내가 안다는 얘기는, 내가 너를 볼려면 내가 너랑 붙어 버리면 내가 너를 못 봐. 생각하고 자기와 하나가 되어 버리면 안 보여. 그러면, 생각이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어. 일을 저지르고 나중에 왜 그랬나. 내 생각을 본다는 것은 거리를 둔다는 거야. 걔가 시키는 대로 안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야. 머리가 하라는 대로 안 할 수 있는, 감정도 마찬가지야. 많은사람들이 감정에 휘말려 들어서 별 짓 다하잖아. 으 감정도 떨어트려놓고 보면, 갑자기 왔다가도 해 안되게 내가 잘 쓰면 돼. 내가 누굴 좋아해서 뭘 주고 싶어서 그런 마음을 왜 감춰. 내가 누굴 한 대 패주고 싶은 감정이 들 때도 있잖아. 그럴 때, 그대로 하면 일이 복잡해지고 힘들어 지는 거야. 봐서 좋다는 것은 보면 돼. 같이 놀면 돼. 긍정적이지 않는 감정은 그냥 보는 거야. 보면, 그 감정에다가 내가 땔감을 주지 않으면, 조금 있다가 사라져 가 버려. 그렇게 미운 인간이 조금 있으면 안 미워.
그게 관찰자로 보라는 얘기야. 톨레가 얘기하는 관찰자. 나를 보고 있는 나. 보는 관찰자는 절대 나보고 뭐라고 안 그래. 심판, 판단도 안 하고 뭐라고 안 해. 그냥 이렇게 봐. 그 관찰자. 관찰자가 되라고. 점점 그 놈이 커져. 나보다 더 커질 수가 있어. 데이빗 홉킨스가 “놔라, 그래야 한님이 그 일을 하신다.” 기독교 신자들이 “네가 할라니까 하나님이 못 하셔. 네가 손을 놔. 그러면, 하나님이 그 일 해. 네가 하는 것보다 훨씬 잘 돼. 여러 군데에서 생각지도 못 하는 사람들이 모아서 너를 도와.” 그런 것을 느끼지. 이상한 사건들이 벌여져. 나를 도와. 예상하지 않은 사람들이 온다던지. 우주가 나를 돕는 것을 느껴. 나라는 사람이 살아서 해버리면 도와주고 싶어도 못 도와줘.
지금은 우리가 머리로는 어느 정도 알았다고 할 수 있어.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실습이야. 학습은 그만하면 되었고, 실제 살면서 그대로 해 봐. 이론은 이쯤하면 이만큼 되었어. 실제 살면서 그것을 확인하고 그래.
학생 : 제가 3박 4일 실상사에 템플스테이를 다녀 왔거든요. 오면서 이제 마침표 찍어야 되겠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3박 4일 되풀이해서 있는 그대로 보기 연습을 하고 왔거든요. 이제 이런 곳에 찾아다닐 필요 없겠다. (웃음) 내 남편을 있는 그대로 보자. 자식을 있는 그대로 보자. 스스로 생각하기에 학습은 이제 됐다. (웃음)
선생님 :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판단을 그만하는 거야. 실습은 세월이 필요해. 내가 저기 있는 나무를 여기서 보면 알잖아. 그런데, 내가 나무를 만지고 하나가 되려면, 가야 돼. 실습은 빛의 속도로 되는 것이 아니야. (웃음) 몸이기 때문에 그래. 머리는 빛의 속도로 움직여. 몸은 자연에 속하거든. 몸은 자연이기 때문에.
학생 : 빛의 속도도 자연 아니예요?
선생님 : 그렇게 보면 자연이지. 그러나, 내가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 없는 거야. 사람이. 이 사람이 나를 만나서 정신 번쩍 들게 한 말이, “당신은 빛과 같은 존재로 살고 싶어 하지만, 당신은 빛이 아니야.” 그래서, 정신 차렸어. (웃음) 나는 빛처럼 살고 싶었거든. 그러나, 내가 빛은 아니야. 왜? 나는 여기 있으면서 저기 없어. 빛은 여기나 저기나 있어. 빛은 어디에나 함께 있어. 우리가 이 세상을 몸으로 살아가잖니.
내가 이제 이런 것을 못 먹어. 껍질을 깍아서 먹는 거야. 농약을 친다고. 안 치면 농사를 못 친대. 그 전에는 이런 것 다 먹어도 괜찮았는데, 6월부터는 농약을 친 것을 이 몸이 거절해. 농약을 친 것을 먹었을 때 가려운 것과 육류 먹을 때 가려움의 질이 달라. 좁쌀처럼 가려운 것도 있고, 뭉글뭉글 떡처럼 두드러기가 날 때도 있고, 물집처럼 지렁이같이 가려운 것도 있고, 종류가 달라. 의사 말은 내 신장 기능이 저하돼서 독소를 분해를 못 시킨대. 못 시킨 독소가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다. 일리 있어. 신장 기능을 강화 시키면 좋아진대. 난 생각이 달라. 경험을 통해서 느끼는 건데, 김 먹고 혼났단 말이야.
저 분이 나한테 뭐라고 얘기하시는가 하면, ‘너 살만큼 살았고, 얼마 안 남은 삶은 내가 너한테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 순수를 회복해라.’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해. 순수가 뭐야? 원래 있는 그대로. 거기다가 뭘 가미하지 않는. 조미료가 가미된 것은 몸이 거부를 해. 조미료가 뭐야? 더 맛있게 할려고 가미하는 거야. 맛을 더 맛있게 할려고 그것이 조미료야. 화학 조미료까지 가는 것은 아니야. 몸이 그러면, 순수를 회복하기 위해 내가 협조해야겠다. 먹고 싶지. (웃음) 내가 나를 도와서 내 몸의 순수함 - 엄마,아빠가 나한테 준 – 음식도 한님이 주신 그 음식 그대로 먹으면 아무렇지도 않아. 가미된, 농약 친 것을 먹으면 영락없이 몸이 거절해. 몸도 그렇지만, 생각과 맘도 순수를 회복해야겠다. 인간존재 자체가 아주 순수한 것으로 간다면, 불고기 좀 안 먹어도 되겠다.
학생 ; 몇 년 전에 저희 수피즘 읽었잖아요. 얼마 전부터 계속 “이 몸은 제 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성전입니다.” 계속 저도 모르게 계속 하고 있어요.
선생님 : 먹는 것만 순수한 거 먹지 말고, 생각도 순수하게, 인간관계도 순수하게, 그렇게 살아야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꿍꿍이가 있으면 순수한 사이가 아니야. 그 사람을 이용해서 뭘 해보려는 마음을 가지고 만나면 순수한 만남이 아니지. ‘의지의 침묵’까지 하면, 세 번째 침묵이 ‘존재의 침묵’이라고. 그분 얘기는 ‘의지의 침묵’까지는 어느 정도 내가 할 역할이 있어. ‘존재의 침묵’은 내가 못 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험은 할 수 있지. 성인들의 전기를 읽어보면, 성인들이 마지막에 가서 당황한 고백을 해. 지금까지 자기를 인도한 하나님이 안 보이는 거야. 하나님이 없어져 버려. 그게 보통 성인들이 겪는 거야. 갑자기 하나님이 없어. 지금까지 내가 속아왔나. 가짜 하나님이. 내가 속았나. 기도가 안 돼. 기도 자체가 안 돼. 깊은 밤, 어두운 밤, 기도도 안 되고, 그런 경험을 해. 그것이 ‘존재의 침묵’ 아닐까 싶어. 하나님이 계셨는데, 없어. 이유가 뭐겠니. 이유가 간단해. 하나님이 너를 먹은 거야. 삼켜버린 거지. 하나님과 대화가 갑자기 막혀버린 거야. 기도가 안 나오니까. 이제까지 가짜 하나님한테 속은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까지 드는 거지. 지금까지 나라고 알고 있던 것들이 없어진단 말이야. 우리가 얘기하는 거지. 그 경지는 아무도 모르지. 나는 ‘의지의 침묵’까지는 할 수 있겠다. 내 생각, 판단을 침묵시킨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대로 하겠다. 거기까지는 우리가 할 수 있겠다. 해야지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니.
많은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해. 과학의 세계와 종교의 세계가 달라. 과학은 머리라고 하는 한계를 잘못 벗어나. 종교의 세계는 머리가 아니야.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좋지 않은 것은 없다. 다 좋은 것이다.’ 이런 것을 깨달은 사람한테 어떤 모습을 보여도 마음이 아프지 않아. 바가바드기타에서 하나님의 모습은 살인자의 모습으로 보여주거든. 지독한, 고약한 모습으로 보여. 그게 하나님이야. 진짜는 괴롭지 않아. 그것이 올 때가 있어. 어떤 비참한 모습을 봐도 내가 힘들지 않아. 내 몸에 병균이 들어왔어. 아프지? 세포끼리 막 싸워. 이 땅에서 이뤄지는 전쟁이랑 비슷한 거야. 왜 일어나? 창조란 말을 우리가 많이 하지만, 창조라고 하는 것은 파괴라는 것이 없으면 이뤄질 수가 없어. 죽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것이 사람이야. 죽어야 살아. 그런 의미에서 비참하고, 괴로운 것이 삶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눈으로 보게 되면 나쁜 것은 없는 거지.
이분법이라는 구조에서 보면 종교가 싫은 것이 있지. 그런데, 일원으로 가면, 이것이 이거야. 이게 나고. 나쁜 놈이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저절로 그것이 와야지. 마음 아프면 마음 아파해. 괜찮아.
이 사람도 엄청 많은 병을 앓았잖아. 경험을 통해서, 그 경험이 앓을 때는 아프고 힘들었겠지만, 그것이 없어서는 데이빗 홉킨스는 없는 거야. 나 같은 사람이 못되게 보이더라도 다른 눈으로 보면, 저 사람이 저렇게 성장해 가는 과정이구나. 저런 식으로 성숙해 가는구나. 기다려 줄 수 있지. 부정적인 행동을 하거나,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잘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어.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은 없어. 이해가돼. 적어도 그를 미워하지는 않지. 그게 어디냐. 우선, 내가 힘들잖아. ‘안됐다. 딱하다. 어떻게 하면, 저 인간을 도와줄 수 있을까.’
30년 전에 엄마를 죽인 청년이 있었는데, 그때 당시 요즘 같이 핸드폰이 없으니 사진과 자료를 찾으려고 기자들이 그 집을 갔었어. 내가 본 신문 사진은 그 기자가 아나 그 집에 늦게 갔나봐. 먼저 간 기자들이 사진을 다 가져갔나봐. 범인의 사진을 가져와 실었는데, 7살 때 사진이야. 엄마 치맛자락에 숨어서 반쯤 얼굴을 내밀은 7살 짜리 아이 사진이야. 이 놈이 어떻게 자기 엄마를 죽여. 딱해. 미워할 놈은 없다. 욕할 놈이 없다. 가슴 아프고 딱하고. 사람들이 다 그렇게 보여.
보트피플 여자를 캄보디아 해적이 겁탈을 하고 바다에 빠져 죽인 사실이 드러나서 언론들이 캄보디아 해적의 만행을 규탄하고, 그랬을 때 틱낫한 스님도 처음에 분노했대. 여러번 강간당한 소녀를 죽이고 항의하는 아버지도 죽이고. 이런 몹쓸 놈으로 화가 많이 났는데, 그 날 꿈을 꾸는데, 자기가 캄보디아에 태어났는데, 무식하기 짝이 없는 부모 밑에서 인생이 뭔지 모르는 해적이 된 자기를 봤대. 생각이 달라진 거야. 나는 그들을 저주할 수 없다. 네가 그러니까.
학생 : 오늘 숨을 쉬는데, 막힘이 느껴져서 거기에 집중을 해서 그렇게 숨을 쉬었거든요. 책에도 나오길래 차크라에 대해 관심을 가져요. 아침에는 몸의 차크라가 있다는 그 지점에 좀 더 집중을 했어요. 특히 명치 쪽에 막혀있는 거예요. 차크라 생각을 안 할 때는 배 쪽에 오면 묵직하게 막혀요. 최근에 탈이 나서, 몸이 찬데, 찬 음식을 먹어서 더 악화시킨 거예요. 일체 생을 안 먹고, 한약 먹고 있는 중인데, 호흡을 해보니 아픈 부분이 자연스러운 호흡이 아니예요. 몸과 대화를 시도해요. 몸 하나 잘 건수하고 남은 인생 잘 살면 되겠다. 제가 위가 안 좋고 장이 안 좋음으로써 계속 몸과 계속 뭐를 시도하는 거예요. 무기력하게 된 위도 내가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몸을 잘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 : 몸은 당신 것이 아니야. 당신 소유물이 아니야. 당신이 만든 것이 아니잖아. 당신이 만들어서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고. 내 것이 아니니. 누구한테서 물려받은 거지. 공장은 따로 있다고. 남의 집 전세 사는 사람이 집을 더 돌봐주는 것이 맞잖아. 그런 것처럼. 건강 챙기라는 것이 아니야.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예술가가 뭐로 연주해? 몸으로 하잖아. 그림을 뭐로 그려? 몸으로 그려. 몸 아니면 정치고 뭐고 아무것도 못 해. 그러니,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라고. 몸과 계속 대화하는 것이 좋아. 그렇구나. 몸이 얘기해줘.
꿈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은행에 갔는데, 안면이 있는 은행직원에게 그랬어. “내가 이 은행에 거래를 해야 하는데, 계좌하나 만들어 주게.” 그랬어. 갑자기 얼굴이 심각해지면서 엄청 당황해. “안됩니다. 목사님 같은 엄청난 제산을 저희가 관리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 작은 은행은 목사님처럼 엄청난 재산을 관리해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고 깼어. (웃음)
갓 따온 호박을 채를 썰어 소금 간을 해 숨을 죽이고, 약간의 밀가루 반죽을 해서 전을 부치고, 각자 가져온 반찬과 주인장이 해 준 갓 지은 밥으로 함께 밥을 모십니다. 몸으로 알러지가 오신 선생님 덕분에 최소한의 기름과 간으로 음식을 먹으니 본연의 향과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 인. 미. 금요일 3시 30분에 만납니다.
연락 주시면 안내 해 드리겠습니다.
첫댓글 소리샘 고맙고 고마워요. 이 많은 내용을 채록하느라 수고가 많으셨네요.
아, 이런 말씀도 하셨구나!
듣고 또 들어도 늘 새로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