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록Jackson Pollock의 죽음으로 전면회화全面繪畫All-over Painting 즉 화면 전체에 조형요소를 고루 배치하는 구성기법은 신화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폴록이 액션 페인팅에서 보여 주었던 거칠고 광적인 스타일은 그 후광을 잃게 된다. 그리하여 그 반발세력으로 나타나는 것이 차분한 형식의 색면추상色面抽象Color-field Painting과 기하적 엄정함을 지니는 하드 엣쥐Hard Edge스타일이다.
명화산책 도판:
모리스 루이스 "베타 람다"
캔버스 위에 아크릴 물감
Morris Louis Beta Lambda 1
961 262.6 x 407 cm MoMA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79688
폴록의 전면회화는 세계미술의 중심지가 되는 미국화단의 탄생신화라 할 수 있다. 색면추상의 화가 루이스Louis, Morris 1912-62는 영웅 신화의 초점이었다. 그러나 루이스의 신화는 천공으로 쏘아 올려졌던 폴록의 화살이라는 신화가 미국사회에 수직낙하했다고 비유할 수 있다.
이를테면 신화의 현실화 혹은 실용화라 할 수 있었다. 폴록이 페인트를 뿌린 후에 건조시켰다면 색면추상은 페인트가 마르기 전에 희석액을 듬뿍 뿌려 번지게 한 그림을 연상하면 된다.
색면회화는 다시 후기회화적추상後期繪畵的抽象-Post Painterly Paintin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손으로 그린 추상화의 후속세대라는 뜻이다. 뉴먼Barnett Newman이나 로스코Mark Rothko 등은 마치 물감이 저절로 만든 것 같은 색면을 만들기 위해 손으로 물감을 번지게 하거나 칠했다.
루이스는 아예 캔버스에 물감을 부었다. 그러니까 캔버스의 천을 아크릴 물감으로 물들이는 시간이 바로 화가의 손이 되었던 것이다.
아크릴 물감은 원래 건축용 수성도료를 개발한 것으로서 유화에 비하여 경박한 느낌을 준다. 유화에 익숙한 유럽 화단에서 아크릴 그림을 해독하기 어려운 암호통신이거나 감질나는 방언으로 취급하는 것은 당연한 추세였다.
그런데도 새로운 매체의 새로운 속성에 따라 미학을 적용시킬 수 있는 바로 그것이 신세계 미국화단의 강점이라면 강점이었다. 이렇게 신발에 발맞추듯이 만들어 나간 미술현장의 상황논리를 무기삼아 일천한 문화적 전통을 가진 미국이 세계미술사의 주역으로 등극하기에는 많은 합리화가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정통성의 확보가 문제가 되었다. 폴록의 전면회화는 프랑스의 인상파 특히 모네의 수련에서 그 혁명적 시발을 볼 수 있다. 추상표현주의는 유럽 초현실주의에 부자연스럽게 잇대어 있다. 테이프를 붙인 화면을 칠한 후에 테이프를 떼어내는 작업으로 유명한 하드 엣쥐와 색면추상의 원조는 바우하우스Bauhaus의 터주 대감 알버스Joseph Albers였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미국미술이 장악했던 40년대 이후 세계미술의 양상은 20세기 초 인상주의-표현주의-입체주의를 거쳐 다다와 초현실주의에 이르렀던 유럽미술의 발전과정을 서툰 미국인의 손재주로 번안하여 재탕했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작품해설
루이스는 41세가 될 때까지 그다지 촉망받는 화가가 아니었다. 그러나 평론가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를 따라 갔던 프랑켄솔러Helen Frankenthaler의 화실에서 그는 크게 깨닫는다. 로스코가 손으로 그렸던 명상적인 그림을 루이스는 붓을 쓰지 않고서 그릴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루이스는 크기가 정해지지 않은 청바지 천의 캔버스 위에 아크릴 물감을 부었다. 캔버스를 물들인 물감의 층은 캔버스의 층과 같은 위상位相이 되었다. 그것은 큐비즘이 추구했던 바 가장 얕은 공간에서 한걸음 더 나간 본질회귀의 승리로 미국화단사에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