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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 A: 노채 고개 → 길마봉(길매봉) → 길마재(길매재) → 청계산 → 귀목봉 갈림길 → 귀목봉 → 상판리(귀목골) [11.5km],
Plan B: 노채 고개 → 길마봉(길매봉) → 길마재(길매재) → 청계산 → 귀목봉 갈림길 → 귀목봉 → 논남리 종점 [13.5km] 중 하산 시 상태와 버스 시간에 따라 결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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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뒤로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가 청계산>
청계산
높이: 849.1m
위치: 경기도 포천시 일동
수도권 일대에 청계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3개 있다. 이중 가평의 청계산은 산세가 우람하고 주위에 강씨봉, 귀목봉, 길매봉이 있어 제법 다양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여름이면 계곡이 가을이면 낙엽이 운치를 더한다.
청계산은 때 묻지 않은 계곡과 울창한 수림을 자랑한다. 바로 북쪽 능선으로 강씨봉과 연결되어 있어 교통편이나, 산행코스도 같은 곳이 많고, 두 산을 연결하여 산행하는 것도 좋다.
청계산의 산행기점은 청계저수지가 있는 일동면, 가평군 하면 상판리 두 곳이 산행기점인데 이중 일동을 산행기점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판리 쪽은 귀목봉이나 명지산을 오를 때 주로 이용하는 코스로 교통이 그다지 좋지 않다.
일동 버스정류장에서 우체국 뒤로 난 길을 따라 30분쯤 걸으면 대원사, 청계저수지가 나온다. 대원사에서 다리를 건너 마당바위까지 가는 길도 있지만, 청계저수지 북쪽에서 마당바위로 가는 것이 훨씬 빠르다.
마당바위에서 남쪽 계곡으로 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30분 정도를 오르면 억새가 우거진 길마재(길매재)이다. 북동 능선을 타고 안부에 오르면 주 능선에 오른다.
<거북이?>
귀목봉[鬼木峰]
높이: 1,036m
위치: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
귀목봉은 이름 없는 고지로 귀목 고개 위에 있다 하여 등산인들이 귀목봉이라 부르며 동쪽으로 명지산, 서쪽으로 청계산, 북쪽으로 강씨봉이 인접해 있다.
산의 높이에 비해 대체로 경사가 완만하여 험준하지 않으며 장쾌한 능선과 더불어 십여 개의 폭포가 이어지는 장재울 계곡이 명소로 유명하다. 정상에서는 남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청계산의 연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한국의 산하
포천 한북정맥에서 오르는 즐거움을 주는 산 중 남은 곳이 창계산인데, 그 산만 오르기에는 뭔가 아쉬워 명지지맥 중 오르지 않은 귀목봉을 묶어 산행하기로 했다. 청계산을 오르는 방법 중 청계 저수지를 거쳐 바로 오르는 방법과 노채고개에 올라 길매봉을 거치는 방법이 있다. 한북정맥을 종주하는 등산객은 당연히 노채고개로 오르거나 내리고, 정상이 목적인 등산객은 시간과 거리를 절약할 수 있는 청계 저수지를 거쳐 바로 오른다. 정맥 종주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나, 산꾼들의 산행기에 노채 고개에서 길마재(길매재)에 이르는 코스가 암릉이 있어 산행의 재미가 있다는 글을 보고 노채 고개를 들머리로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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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울발 포천 일동행 7시 30분 버스를 타기로 하고 7시 20분에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다. 15분 전에 도착해 35번 승차장으로 가 배낭을 벗어 두고 창우를 찾기 위해 다시 대기실로 가는데, 창우와 흥수가 승차장 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애초 흥수는 지난번 늦잠 때문에 같이 하지 못한 국망봉~강씨봉 코스를 혼자 할 예정이었으나, 창우의 설득으로 이번 코스를 같이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흥수가 같이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등반 준비를 했기 때문에 라면은 하나 부족했지만, 햇반과 물을 따로 챙겼기에 배낭은 흥수와 같이할 때보다 조금 무거웠다. 같이 가자고 적극적으로 흥수를 설득하지 않은 이유는 국망봉에서 출발한 흥수와 노채 고개에서 출발한 우리가 산행 중 어딘가에서 만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흥수도 동일한 생각이었다고….
버스에 타 승객을 둘러보니 젊은 여성이 많았다. 지난번 낙진의 말대로 면회 가는 거로 보였다. 버스에서 자다 깨기를 반복한 후 시간을 보니 기껏 30분 정도 지났을 뿐이었다. 해서 다음 산행 계획을 구상하며 바깥 경치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길 좌우로 외박? 외출? 휴가? 나온 군인이 수없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동에 도착한 것이다. 일동에 내려 전날 과음한 흥수를 위한 간단한 아침과 산행 시작을 위한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식당을 찾았으나 일동 터미널의 그 분주함에 비교해 문을 연 식당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먹자골목으로 보이는 곳에서 문을 연 순댓국집이 발견하고 들어가 술국과 밥 한 공기를 시키고 막걸리를 주문했다. 주인장이 사 온 막걸리는 큰 병으로 이동 막걸리처럼 보였다. 그런데, 맛이 이동 막걸리와 달랐고 맛도 더 좋았다. 해서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이동 막걸리'가 아니라 '내촌 막걸리'고 포천에서 제일 맛있다고 했다. 우리 셋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다시 터미널로 돌아가 택시를 타고 노채 고개를 향해갔다. 터널을 지나니 가평 땅이었고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노채 고개였다. 산꾼들의 산행기대로 택시 요금은 8,120원 나왔다. 지급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운악산과 청계산을 나누고 있는 노채 고개는 과거에는 인적이 드문 오솔길이었겠지만, 지금은 포장된 2차선 도로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터널을 뚫어 정맥을 끊지는 않아 최소한 광덕 고개의 그 황당함은 없었다. 운악산 쪽 들머리는 바로 보였으나, 청계산 쪽 들머리는 찾기가 쉽지 않았다. 군부대에서 설치한 철망에 달린 산악회 리본이 그쪽 어디에 들머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안전통제용 초소(길마재(길매재)가 군부대 사격장 위에 있어 사격 훈련 시 등산객 통제를 위함으로 보였다.)'가 있는 쪽으로 들어가 철책을 따라 100여 미터 올라가니 철책의 문이 열려있었고 능선에 설치된 참호 간 이동로를 따라 등산로가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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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24분 등산을 시작해, 등산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활짝 핀 진달래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거의 3km 넘는 길마재(길매재)까지 등산로 좌우로 진달래 천지였다. 그걸 보며 내가 꺼낸 말이 "앞으로 진달래 산행은 여기로 오면 되겠다!" 였다. 좌우의 진달래꽃을 열병하며 원추리로 보이는 것도 촬영하는 등, 흥수가 선두에서 50분가량 올라가니 암릉(말등바위)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암릉(말등바위) 옆으로 잘 만들어진 우회로가 보였지만, 늘 그렇듯이 흥수가 암릉(말등바위)을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고 그 뒤를 내가 흥수와는 조금 다른 코스로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창우가 올라왔는데, 그 과정에서 손에 찰과상을 입는 불상사도 있었다. 등 뒤로 보이는 산을 국사봉으로 알고 산행을 했는데, 암릉(말등바위) 정상에 올라 자세히 보니 국사봉이 아니라 운악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포천 한북정맥을 그려 놓은 지도를 찍은 사진으로 확인해 보니 운악산이 맞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좌 운악 우 명지 그리고 능선을 따라 저 멀리 국망을 확인할 수 있었고 저 아래로는 청계 저수지와 일동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머릿속에 포천 한북정맥과 화악 명지지맥이 명쾌히 정리되었다. 포천 한북정맥을 따라 좌 포천 우 화천 가평이 있었고, 화천과 가평 사이에 화악이 있었다.
그 암릉(말등바위) 정상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내려오니 그쪽에는 암릉(말등바위)을 오르지 못하게 줄로 막아 놓은 것이 보였다. 우리가 오른 쪽엔 그런 것이 없었던 이유는 우리 같은 인간이 아니면 오를 생각이 들지 않는 암릉이라 굳이 호기심을 자극할 이유가 없어서 일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청계산 정상에 올라 보니 처음 만난 암릉(말등바위)에서부터 청계산 정상까지 암릉 길이었다. 암릉 코스가 주는 재미는 좋았지만, 그만큼 힘이 들어 4km에 불과한 들머리에서 청계산 정상까지 3시간이나 걸렸다. 물론 중간에 휴식도 많이 하고 길을 못 찾아 헤맨 시간도 있지만….
길마봉(길매봉) 정상은 암릉에서 15분 거리에 있었다. 길매봉에서 인증을 찍고 세워둔 이정표의 방향 표시와 거리가 청계산과 노채 고개가 반대로 되어 있어 등산객에 의해 지워져 있는 것을 보고, "이정표의 위치 선정에 문제가 있다!"는 흥수와 "아니다, 180도 돌리면 된다!"라는 창우의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그렇게 2~3분 설전을 벌이며 이정표를 설치한 사람에게 성의가 없었다고 욕을 한 후 다음 목적지인 길마재(길매재)로 가기 위해 길이라고 생각한 쪽으로 가보니 낭떠러지였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다시 길을 찾아보았으나 역시나 길은 길마봉(길매봉) 정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던 창우가 마침내 길을 찾았는데, 노채 고개 쪽으로 가다가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이정표에 있던 방향 표시가 맞았다.
길마봉에서 길마재(길매재)까지는 북한산의 의상 능선, 숨은벽 능선과 비슷한 바위 능선으로 한북정맥에선 전혀 기대하지 않은 코스로 대단히 좋았다. 그리고 그 길마재(길매재)는 군부대 사격장 바로 위에 있어 부대에서 등산객의 관찰이 쉽게 능선을 따라 30여 미터 넓이로 벌목과 벌초를 했고 윤형 철조망과 직선 철조망을 쳐 놓았다.
그리고 철조망에는 온갖 경고 표시를 매달아 놓았다. 길마재(길매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창우가 싸 온 사과를 먹으며 휴식을 취하는데, 청계저수지 쪽에서 등산객 3명이 올라왔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다시 짐을 싸 급경사를 힘들게 올라가는데, 갑자기 군부대에서 사이렌이 울리며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대충 추측한 바론 그 내용이 군부대의 사격장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과 폭탄이 설치되어 있으니 철조망을 넘지 말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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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15분경 청계산을 향해 길마재를 떠났다. 길마재에서 청계산 정상까지는 800여 미터에 불과했지만, 길마재가 해발 550m 청계산이 849m니 거의 300m를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바로 길마재 끝에 거의 80도에 가까운 급경사의 길이 100여 미터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그 경사로 주변에는 야생화가 만발하고 있는 것이 사람을 포함한 짐승이 접근하기 어려워서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렇게 힘겹게 800여 미터를 가 청계산 정상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1분경이었다. 800m에 불과한 거리를 45분이 걸려서 도착한 것이다. 아, 물론 가는 길에 야생화와 벚꽃, 살구꽃 등을 찍느라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12시 5분 청계산을 떠나 귀목봉을 향했다. 그 중간에는 청계산에서 2.9km 거리에 귀목봉 갈림길이 있다고 이정표(국립공원이 아닌 이상 이정표의 거리를 믿으면 안 된다!)에 표시되어 있었다. 귀목봉 갈림길은 한북정맥과 명지지맥이 분기하는 곳으로 귀목봉이 명지지맥의 시작이랄 수 있다. 청계산이 해발 849m 귀목봉이 1,035m로 다시 200m 조금 못 미친 거리를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길마재에서 청계산을 오르는 것과는 달리 2.9km의 거리를 가며 200m를 오르는 것이라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더욱이 가는 길목 곳곳에 양지꽃 군락이 형성되어 있었고, 중간중간 노랑제비꽃과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많아 그것을 즐기며 나아갔다. 그렇게 즐기며 귀목봉 갈림길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 3분이다.
갈림길 정상은 평지였고 쉴 수 있도록 나무 의자도 만들어 두었다. 시간도 적당하고 장소도 적당해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바로 배낭을 풀어 점심 준비를 했다. 갈림길 가운데 자리를 잡고 준비를 시작했는데, 흥수가 오가는 등산객이 있으니 한쪽 구석으로 옮기자고 했으나, 포천 지역 산을 오르기 시작한 이후로 운악산을 빼고 산에서 5명 이상을 만난 적이 없다고 그 자리를 고수했다. 흥수가 길마재에서 만난 3명이 올 수도 있다고 계속 주장해 한쪽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역시 점심 먹는 내내 사람 구경은 할 수 없었다. 갈림길까지 오는 중에 그와 관련된 대화를 나눴는데, 광덕산에서 청계산에 이르는 구간에서 하루에 5명 이상을 보지 못한 이유가 접근이 어렵고 산이 까다롭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늘 하듯이 배낭에 든 모든 걸 꺼내 라면을 끓일 동안 창우가 싸 온 밥과 반찬을 안주로 흥수의 막걸리와 창우의 복분자로 한잔했다.
이후 평소와 다름없이 끓는 물에 라면과 달걀에 버무린 파와 고추를 넣고 맛있게 끓여 먹었으나 지난 산행의 그 맛이 아니었다. 그 원인에 대해 나름 분석을 한 것이 '물이 많고, 너무 오래 끓였다.'와 날이 따뜻해(아니 더워) 라면이 맛있을 때가 아니다'가 있었다. 면을 다 건져 먹고 햇반을 넣는 순간에 창우의 싸 온 밥이 많이 남았으니 햇반은 가져가고 밥만 넣고 끓이자는 의견에 모두 동의했다. 결국, 라면 두 개와 창우가 싸 온 밥만 먹은 것인데, 평소의 2/3 수준이다. 날이 더워 입맛을 잃은 게 아닐까? 어쨌든 라면 죽을 싹싹 긁어먹고 1.4km 떨어진 귀목봉을 향해 출발한 시간이 오후 2시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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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목봉까지 가는 1.4km의 구간에는 얼레지 군락이 곳곳에 있고 중간중간 새로운 야생화도 보였다. 우리가 귀목봉에 도착한 시간이 3시니 오르막도 심하지 않은 흙길 1.4km를 한 시간이 걸려서 간 것으로, 그만큼 주위에 즐길 꽃과 식물이 많아 사진을 찍기 위해 보낸 시간이 길었단 얘기다. 귀목봉을 향하며 얼레지의 어원에 관한 대화에서 흥수는 "이파리에 얼룩이 있어 '얼루기'라고 부르던 것이 '얼레지'가 되었다."는 내가 처음 듣는 표준적이 얘기를, 나는 "햇살을 받으면 잎을 서서히 열어 개화하고 햇살이 약해지면 잎을 닫아, 해를 향해 마치 치마를 들친 것 같아 '얼레리 꼴레리'에서 나온 것이다."라는 흥수가 처음 듣는 얘기를 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구글링을 해보니 내 얘기는 산꾼들의 썰이고, 산림청에서는 흥수 얘기를 표준으로 하고, "꽃잎의 모양이 마치 화난 가재가 두 발을 들고 위협하는 모습 같아 '가재무릇'이라는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귀목봉을 향하면서 왜 귀목봉이라는 이름을 붙었는지도 얘기(이것저것 얘기를 많이 했구만)를 했다. 대개 산 이름이 한자로 되어 있으니 거북이 귀에 눈 목 거북이 눈 봉우리가 아닐까 하는 창우의 의견에 모두 동의를 했다. 그런데 귀목봉 도착 20여 미터 전방에서 바라본 모습은 그냥 거북이 그 자체였다. 목이 눈 목자가 아니라 모가지의 목이다. 이것도 구글링을 해보니 봉우리의 생김새와는 무관하게 귀목 고개 위에 있어 산꾼이 귀목봉이라 이름 붙였다는데…. 그럼 귀목 고개의 귀목을 찾아보니 '길목'이 귀목으로 변천되었다는 글을 찾을 수 있었지만, 신뢰할 만한 글은 아니었다. 귀목 고개에 대한 구글링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귀신 얘기만 많이 볼 수 있었다. 와중에 봉우리에서 거북이를 찾은 우리는 뭐냐?
3시 3분에 귀목봉에 도착해 인증을 찍으며 정상석을 보니, 땅속에 박은 것이 아니라 돌로 만든 받침대 위에 올려놓은 형태였다. 강한 바람이 불면 쓰려질 것 같아 흔들어 보니 역시 불안한 구조였다. 이후 1.4km 거리의 해발 775m의 귀목 고개를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가는 길 또한 주변의 새로운 야생화에 취하고 길옆 나무에 딱따구리가 둥지로 삼기 위해 파 놓은 구멍도 구경하며 갔다. 와중에 파랑새?도 봤다. 이 구간은 평탄한 길을 지속하다 갑자기 고개를 향해 급경사를 이루는 형태라 무릎에 부담이 되는 코스였다.
3시 46분에 귀목 고개에 도착해 이정표를 보니, 논남리 4.3km, 상판리(귀목마을) 2.4km였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거리가 짧고 그나마 차 편이 편리한 상판리로 하산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있는데 논남기 쪽에서 등산객이 한 명 올라왔다. 인사를 나누고 궁금한 것에 관해 물어보니 역시 예상대로 짧은 코스인 상판리 쪽이 길이 좋고, 논남기 쪽은 등산객이 많이 다니지 않아 길이 희미할 뿐만 아니라 가끔 없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휴식을 마치고 상판리 버스 정류장을 향해 출발한 시간이 3시 52분이었다. 급경사의 계곡 길 400여 미터를 내려가니 길이 넓어 지면서 거의 산책로 수준으로 바뀌었다. 계곡을 따라가며 족탕을 할 만한 물을 찾았지만 마른 계곡이었고, 25분가량 내려가니 왼쪽에서 내려오는 계곡과 만나는 합수 지점이 나타났다. 그 계곡은 맑고 시원해 보이는 풍부한 수량의 물이 흐르고 있었다. 바로 달려가 물을 마셔보니 시원하고 맛있었다. 창우는 거기서 더위에 흘린 땀과 흩날리는 꽃가루 낙엽 가루가 엉킨 먼지를 씻었다.
계곡을 따라 족탕을 할만한 소를 찾아 내려가다 등산로와 계곡이 멀어지는 지점에서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족탕이 가능한 장소를 찾아 피곤에 지친 발을 담갔다. 날이 더워 물도 견딜만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30초 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데도 가능한 한 오래 깊이 발을 넣어 근육의 피로를 풀었다. 족탕 후에 얼굴과 목에 묻은 먼지를 씻고 상판리발 현리행 버스 시간을 확인하니 16:00, 18:15, 20:20에 있었다. 해서 현재 시각을 확인하니 흥수가 4시 40분이라고 알려주었다. 4시 차는 이미 떠났고 6시 15분 차를 타야 하는데, 버스 정류장이 족탕을 하는 곳에서 10여 분 거리로 보였다. 그럼 최소 한 시간 이상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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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 주변에 식당이나 마트가 있을 거로 생각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시원한 막걸리로 뒤풀이를 하기로 했다. 이후 버스 정류장을 향해 내려가며 주변 나무와 꽃을 감상하고 찍으며 유유자적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5시 5분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우려했듯이 정류장 주변에는 문을 연 식당이나 마트는 없었고 손님 하나 없는 펜션만 늘어서 있었다. 정류장 의자에 허탈하게 앉아 무엇을 할 건인가 의논을 하고 있는데 귀목 고개에서 같이 출발한 등산객이 도착했다. 일단 우리는 허무하게 앉아 기다리기보다는 계곡 하류를 향해 도로를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며 식당이나 마트의 간판이 있으면 영업을 하는지 확인해 봤지만, 문을 연 곳은 없었다. 그렇게 2km쯤 내려가니 우리가 탈 버스가 종점을 향해 빠른 속도로 우리를 지나 올라갔다. 그때의 시각이 6시 10분경이다. 이 동네 산을 오르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해 본 바에 의하면 그 버스는 종점 출발 5분 이내에 우리가 있는 위치에 도착할 것이다. 6시 15분 발이니 6시 20분이면 도착한다는 얘기다. 그런고로 빨리 어딘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내려올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빠른 걸음으로 다음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이 6시 14분쯤이다. 배낭을 벗어 놓고 물을 마시며 숨을 돌리고 내려온 거리를 확인하니 2.4km였다. 정확히 6시 20분이 채 못 되어 버스가 빠른 속도로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정류장에 선 버스에 탔는데, 있어야 할 그 등산객이 보이지 않고 승객은 우리 셋이 다였다. 여러 정류장을 거쳐 운악산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그 등산객이 탔다. 당연히 우리 뒤에 있어야 할 사람이 우리 앞에 있었다. 아마 혼자 있어 차를 얻어 타기 쉬웠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리에 도착해 우리의 모토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자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먹을만한 식당을 찾아보았으나 현리만의 특이한 곳은 보이지 않고 어디나 다 있는 식당만 즐비했다. 특이한 것은 군사 도시라 그런지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인스턴트나 분식집이 호황이었다. 그 와중에 골목에서 간신히 찾은 족발·보쌈집에 들어가 두 개 세트를 시켜 저녁 겸 뒤풀이를 했다. 맛은 생각보다 좋았다. 뒤풀이를 끝내고 청량리행 버스를 타고 창우와 흥수는 잠실행 버스를 타기 위해 대성리에서 내렸고 청량리나 잠실이나 집에 가는 시간이 같은 나는 그 버스를 타고 청량리까지 그냥 갔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11시니 6시에 집을 나서 17시간을 밖에서 헤매다 귀가한 것이다.
지난주 우중 산행 시 추위에 떨었다면 이번 산행은 더위에 시원한 바람을 찾았다. 그리고 최근 산행 중 그나마 시야가 좋아 멀리 있는 산도 확인이 가능했다. 노채 고개에서 귀목 고개에 이르는 등산로에서 처음에는 진달래 군락이 두 번째는 양지 군락이 마지막으로 얼레지 군락이 우리를 반겨주었고 중간중간 야생화들이 우리를 기쁘게 했다. 11.39km에 불과한 거리를 8시간씩 걸린 이유는 등산로 주변의 꽃과 나무에 푹 빠져 즐기고 사진을 찍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눈의 호강이 없었다면 5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쉬운 코스라는 게 내 생가이다.
눈의 호강을 준 꽃과 나무와 동물을 찍은 사진은 우리 카페 앨범 '포천·가평 길매봉~청계산~귀목봉 초목'에 올려두었다.
이번 산행은 “노채 고개 → 길마봉(길매봉) → 길마재(길매재) → 청계산 → 귀목봉 갈림길 → 귀목봉 → 상판리(귀목골)” [8시간, 11.39km)]” 코스로 들꽃 산행이라 부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