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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미련을 즉시로 버려라
말씀 : 창 19:12-29
12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
13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 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15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17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18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19 종이 주께 은혜를 얻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20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 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21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너의 말하는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23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의 앞에 섰던 곳에 이르러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
29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서론>
우리는 세상 것에 대한 미련에 얼마나 애통하고 있습니까? 미련을 저버리는 것이 특히 즉시로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가를 잘 알 고 있습니다. 아니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압니다. 설령 미련을 버렸을지라도 곧 더 강한 미련의 유혹이 저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압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배푸신 인자하심을 깨닫고 즉시로 일어나 떠나라고 명하십니다.(12-22절)
본문말씀에 성을 멸망시킴에 롯과 가족을 구하심은 그에게 구해줄 만한 가치나 행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를 들으시고(29절), 약속을 이행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박수 칠 때 떠나라는 전원일기 드라마의 제목을 기억하십니까? 레크리에이션 게임에서도 크라이막스 즉, 절정에 이르렀을 때, 미련을 버리고 마무리를 해야 하는 것이 게임의 원리입니다. 그래야 여운을 남기고 다음에 대한 기대의 감정이 싹이 트게 되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한우 소갈비를 내려놓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이미 배는 불러오고, 위에서는 경계경보가 계속울리지만 눈앞에 맛들어지게 놓여있는 한우 소갈비 한짝을 뒤로하고 식탁을 박차고 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든 통제력 시험인줄 삼척동자도 잘 아는 사실입니다.
롯은 완전히 미련은 버리지 못했지만, 일부 수긍하고,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아내와 사위 및 친인척들은 농담으로 여겨버립니다. 심판의 무서운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련을 버리되 즉시로 떨쳐버려야 합니다.
롯의 삼촌 되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질 때 마다 그 즉시로 실행에 옮김으로 축복을 더욱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출발할 때도 그랬고, 외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도 신속하게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즉시 움직이는 결단의 신앙을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5장에, 38년 된 병자에게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셨을 때 즉시 그가 나았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사람들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자 그들은 즉시로 따름으로 복을 받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즉시로 미련을 저버리고 결단하는 용기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늘 이 이른 아침에 저와 여러분은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 즉시로 온전히 떠나는 믿음과 태도를 견지하셔야 합니다. 즉시로 미련을 버리고, 결단을 내리는 신앙의 태도를 통해서 예비된 축복과 은총을 풍성히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본론>
==============================19:12,13절
롯에게 이르되 - 천사들이 롯에게 그를 방문한 목적을 일러주고 있다. 그것은 곧 롯에게 임박한 재난을 경고하는 것이자 심판이 임하기 전에 롯과 그의 가족을 그 심판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서였다. 롯은 그때서야 비로소 나그네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천사들이란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the Codex Samaritanus).
===============================19:14절
농담으로 여겼더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하크'는 '비웃다'(17:17), '희롱하다'(39:17)는 뜻으로, 롯의 사위들이 장인 어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그 말을 단지 조소와 건성으로만 대하였음을 나타내 준다. 이는 그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들을 줄 아는 영적 귀가 없었던 탓인데(사 6:9,10) 이처럼 생명의 복음은 노아 홍수 때에도(벧후 2:5), 소돔, 고모라 때에도, 그리고 말세에 고통하는 때인 오늘날에도(딤후 3:1) 그것은 들을 귀 있는 자들의 것이다(계 2:7,11,17,29).
=================================19:16절
롯이 지체하매 - 본래 재물에 욕심이 많았던 그로서는(13:10,11)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재산을 다 놓고 간다는 것이 못내 아쉬워 머뭇거렸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였던 노아(6:13-22)나 아브라함(12:1-4;22:1-12)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은 재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 만고의 진리인데, 오늘날에는 수많은 무리들이 헛된 일에 분요하며 오직 재물 쌓기에만 급급하니(시 39:6)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들의 재물을 쌓아 두어야 할 진정한 창고는 하늘에 있으며(마 6:19-21), 생명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순종하는 것이 곧 참된 부요의 유일한 길(요 8:51)임을 부지런히 증거해야 할 것이다.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 '인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헴라'는 상대방의 행위에 상관없이 그저 베푸는 '긍휼'이나 '동정'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 는 롯이 노아처럼(6:9) 의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여러 죄악된 요소에도 불구하고(8절) 아브라함을 기억하사(29절 ;18:22-33)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것이다.
==================================19:19절
산까지 갈 수없나이다 - 이처럼 롯이 이의를 제기한 까닭에 대하여선 (1) 멸망의 긴박성에 따른 죽음의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높은 산을 오르기에는 역부족인 육체적 연약성 때문에 (2) 소돔 성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등으로 추측할수 있다.아뭏든 이는 어디를 가든지 함께 동행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못미더워한 일종의 불신 행위인데, 이에 대해서까지 인내하시고 들어주신 것(21,22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롯에게 '인자를 더하셨다'(16절)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19:21절
네 소원을 들었은즉 - '나사'(받아들이다)와 '파님'(얼굴)이 합쳐진 말로, 직역하면 '너의 얼굴을 가납하였은 즉'이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얼굴'을 '소원'으로 의역한 까닭은 간절한 소원을 아뢸 때 대개 얼굴을 땅에 대던 히브리인들의 관습에 기인한다. 한편 롯의 소원이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천사가 이를 대뜸 수락한데 대하여선, 달리 지체할 촌음의 여유가 없을 만큼 하나님의 심판이 촉급하였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22절).
============================19:22절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 본절은 하나님의 심판 목적이 선과 악을 함께 멸하는데 있지 않고. 악한 것을 멸함으로 선한 것을 보존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그분께선 의인의 생명 하나를 보호하기 위해 온 천하를 멸하실지라도(6:13-22), 심판을 포기하면 하셨지 결코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지는 않으신다(18:25; 계7:3). 그러나 여기서 다시한번 기억할 사실은 롯이 구원을 얻은 것은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29절)와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16절) 때문이었지 결코 자신의 의(義)때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구원받은 자는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19:23절
해가 돋았더라 - 영적으로 각성치 못한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졸지성(猝地性)을 강조해 준다. 즉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는 그 아침의 하늘에 심판의 불이 예비되어 있으리라고는 소돔 거민 중 그 누구도 생각치 못했던 것이다(14절). 마찬가지로 심판주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러 재림하실 때에도 역시 이와 같을 것인즉(눅 17:28-30). 우리는 매순간 순간을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마 24:43,44). 한편 롯이 소돔을 떠날 때는 동틀 무렵이었는데(15절) 꾸물거리고서도(16절) 소알에 도착한 때가 해돋는 아침에 불과하니 그 거리가 얼마 만큼 가까운지를(20절) 능히 짐작할 수 있다.
=========================19:24절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 일부 학자들의 견해처럼(Tertullian, Lange, Wordsworth) 심판하시기 위하여 땅에 강림하신 하나님(18:1)과 하늘에 계신 하나님, 또는 성자하나님(16:1)과 성부 하나님을 구별짓고 있는 구절로 오해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이는 어디까지나 심판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음을 강조하기 위한 반복 어법이다(Calvin). 즉 대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반복함으로써 강조 효과를 노리는 이러한 표현 방식은 성경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형식이다(1:27;5:1;9;16). 그러므로 공동 번역은 이를 '야훼께서 손수 하늘에서'로 번역하고 있다.
유황과불을...내리사 -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원인이 자연적인 화산 폭발이라는 일부 학자(Lynch, Kitto)의 학설을 배격해 주는 구절이다. 설사 그같은 자연 현상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을지는 몰라도 어디까지나 두 도성의 멸망 원인과 심판의 주도자는 전적으로 하나님이셨음을 증거하는 구절이다.
==================================19:25절
다 엎어 멸하셨더라 - 하나님의 철저하고도 완전한 심판의 결과이다. 특히 소돔과 고모라 지역은 역청이 많은 곳이었으므로(14:10) 그곳에 대한 하나님의 불심판은 자연히 지각함몰, 침강 현상을 초래하여, 오늘날 그곳은 수표면이 지중해 수면보다 약 392Km가 더 낮은 죽음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12-29절 강해).
==================================19:26절
뒤를 돌아본 고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바트'는 '골똘이 바라보다'는 뜻과 함께 음속에 간직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LXX, Vulgate). 따라서 이것은 롯의 아내가 단순한 호기심에 의해 뒤돌아본 것이 아니라, 소돔에 있는 재물에 마음을 빼앗겨 돌아본 것임을 잘 나타내 준다. 게다가 그녀는 소돔 성 멸망에 대한 천사의 고지(告知)조차 못미더워하였을 것이다.
===============================19:27,28절
여호와의 앞에 섰던 곳 -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천사를 전송하러 동행했다가 멈춰서 하나님과 대화했던 곳으로 헤브론 북동쪽 언덕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중보 기도 드렸던 성읍이 과연 구원받았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조카 롯에 대한 염려로 인해 날이 밝는 대로 이곳으로 달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의 동산 같고 비옥한 애굽 땅과 같았던 성읍과 지경(13:10)이 마치 옹기점 연기같이 불타오르는 장면만을 목격하는 재난의 증인이 되고 말았다.
================================19:29절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 비록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긴 하였지만 아브라함의 간구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진노의 심판 중에서도 자신의 자비(16절)와 롯의 최소한의 믿음(1-8절;벧 2:7.8), 그리고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 기도(18:23-320에 의거하여, 롯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큰데(약 5:16), 특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웃을 위해 드리는 도고(禱告)에 더욱더 귀를 기울여주신다(딤전 2:1-3)(본 주적은 기독링크넷에서 퍼와 정리한 것임).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고 살아갑니다. 삶가운데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구원은 결코 그 힘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를 붙드시고, 역사하시는 고마우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동안 어떠한 마귀의 전략적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승리할 것입니다.
미련을 즉시로 내던지는 결단의 신앙과 믿음이 있는 한 저와 여러분은 날마다의 삶속에서 승전가를 힘차게 부를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소속된 성도답게 날마다 감사하며 즉시 순종하며 미련을 가감히 벗어 던지는 은혜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을 듬뿍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