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간다는 것 /조윤수
온 집안이 차향으로 가득하다. 때마침 재스민 꽃이 피고 있을 때, 꽃 향이 얼굴을 어루만지듯 스치며, 풋풋한 차향을 피워낸다. 오늘 한나절 따온 찻잎을 마루에 한가득 깔아놓았다. 싱그러운 생잎을 재스민 꽃바람으로 우려 마시는 기분이다. 고요히 차향에 마음을 담그면 다신(茶神)에 대한 은혜가 새록새록 피어난다.
차유진향(茶有眞香), 유난향(有蘭香), 유청향(有淸香), 유순향(有純香), 이렇게 차에는 네 가지 향이 있다고 했다. 겉과 속이 한결같으면 순향, 설익거나 과숙(過熟)하지 않으면 청향, 불기가 고루 머물면 난향, 곡우 전 신기를 갖추면 진향이라 한다. 해마다 서툴게 차를 빚으면서 느끼는 것은, 차와 하나 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찻잎은 뜨거운 가마솥에서 온전히 자신을 죽여 도통 다른 몸으로 거듭나는가 하면, 자신의 모습을 일그러트리며 발효 과정을 거쳐 신비한 풍미를 지닌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람은 아이일 적에는 성의 구분 없다가 성장하면서 남아는 남자다워지고, 여아는 여성스러워지는 것 같다. 잘 우려진 녹차를 마실 때 첫 잔의 맛을 아리땁고 여리고 부드러운 열세 살이요, 둘째 잔은 벽옥 같은 십 오륙 세요, 셋째 잔은 익은 맛이라고 옛 다인들은 말했다. 익은 맛이란 서른 살 이후 여인의 맛일까. 그 뒤의 잔은 늙은 맛이고 목마름을 달래기도 하고 다른 용도로 쓴다.
오늘 부려놓은 찻잎은 아직 차의 역할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가능성이 충분한 아이들이다. 하룻밤 시들면 발효하기 시작한다. 발효차는 발효가 진행되는 농도에 따라 다양한 풍미를 지닌다. 기호에 알맞은 향이 풍겨 나올 때쯤 발효를 멈추면 된다. 전문 시설이 있다면 더욱 좋은 차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형편대로 소박하게 할 뿐이다. 차가 발효하는 동안 찻잎은 형태가 여러 차례 변하면서도, 고유한 자신의 향은 간직한 채, 때마다 다른 묘미로 승화되어 간다. 여리게만 뵈던 찻잎이, 자신의 형체를 변화시켜 그토록 그윽한 향을 낼 수 있음이 신비스럽다.
젊었을 때는 스승에게 차를 배우고 같이 차(茶) 일을 하였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그 일에 파묻혀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내 인생에 영향을 주었던 사람이 몇 분 있는데, 스승이자 도반이었던 차(茶) 스님도 그중 한 분이었다. 차를 배우면서부터 한 단계 더 높은 삶을 살고자 했던가. 차의 길이 본래면목을 찾기 위한 수행의 도구였을까. 중년에 들어서자 다도의 길을 주위의 벗들과 전하면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낙원의 환경을 만들자는 모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네 가지 향이 고루 벤 녹차는 완성해보지도 못한 채, 이제는 발효된 차 맛이 내 마음과 몸에 달갑게 어울리는 것 같다.
저 풋풋한 생잎을 보니 내게도 저렇듯 싱그러운 시절이 있었던가 싶다. 생기발랄했을 아이 때에 전쟁의 소용돌이를 겪었다. 혼란스러운 현대사를 관통하면서 안개 자욱한 길도 지나왔고, 희미한 한 줄기 빛에 희망을 걸고 어두운 터널도 걸어 나왔다. 힘겨운 세월을 건너고 삭히는 동안, 나에게는 어떤 결 맛이 쌓였을까. 분명히 내게도 꽃다운 시절이 있었겠지만, 과연 제 맛을 품어왔는지 모르겠다. 뒤돌아보니, 십삼 세까지는 아이였다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여성으로 성장해간 것 같다. 대학 시절은 청춘을 꽃피운 시기였는데, 청년 시기에 익히고 배워야 할 덕목을 다하지 못하였기에 늙도록 철없는 배움을 멈추지 못하는 것 같다.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는 온전히 어머니로 살았다. 어느 정도 아이가 큰 뒤부터 세상에 눈뜨기 시작했다. 부모로서 살아야 하는 일은 사회적 일원의 책임도 따른다는 인식이 새롭게 다가왔다. 여자도 이제는 남자와 함께 인간으로 성숙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여성스러운 인간 말이다. 이렇게 내 삶의 단계는 배우고 익으며 변모를 거듭해오지 않았나 싶다. 청년기는 여자아이로, 성숙의 시기는 어머니의 삶으로, 그리고 인간의 삶으로…….
사람의 얼굴과 표정이 다양하듯, 속에 지닌 인격과 정서도 각양으로 나타난다. 차를 덖을 때 한 잎이라도 타면 온 솥을 못 쓰게 된다. 모처럼 좋은 녹차도 간수를 잘못하면, 해가 되기도 한다. 차의 발효 과정을 두고 보더라도, 잘못 발효된 차는 원하지 않은 냄새로 비위에 거슬린다. 과정이 중요한 만큼 차는 내버려두지만 않으면 배반하지는 않는 것 같다. 가끔 내 인생의 발효는 어느 정도일까? 스스로 물어본다. 뒤 익기(後熟)가 잘된 좋은 보이차를 만나면 마실 때는 별 향미가 느껴지지 않지만, 마신 뒤 은근한 향이 입안에 머문다. 인생도 그렇게 깊이 발효된다면, 무미(無味)하나 여운이 오래 남는 향긋한 맛을 낼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차를 경영하는 일이 인생을 경영하는 일이었다. 차 만드는 일은 정성스럽게, 갈무리할 때는 건조하게, 끓일 때에는 청결하게 해야 한다. 정성스럽고, 잘 말려 습하지 않게, 청결하게 하면 다도(茶道)는 다한 것이다. 삶의 경영이 녹록하지 않을지라도 담담히 나아가는 것이, 인생을 살아내는 맛이 아닐까. 이제야 겨우 다도에 입문하는 것 같은데, 가야 할 길이 먼 것 같다. 비록 육체의 맛은 넉 잔째 우려낸 뒤의 노(老)한 녹차 맛이지만, 정신은 끊임없이 발효하여 성숙의 경지에 이르기를 소망한다.
사이후이(死而後已), 있는 힘을 다하여 여생에 힘쓸 일이다. 찻잎이 익어가는 달금한 향이 집안에 가득하니, 이런 절후 같으면 더 바랄 게 없다. 이제 조용히 차가 지닌 성품대로 차 생활을 즐기는 일만 남지 않았는가. 목마르면 차 한 잔, 졸리면 잠 한숨, 그것으로 모자람이 없으련만……. (2014년 5/16)
『제6회 목포문학상』수필부문 본심평
본심위원 오창익 (수필가)
<본 상>
예심을 거처 종심에 온 작품은 모두 12편이었다. 이 중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191 님의 『익어간다는 것』 269 님의 『바다의 편지』그리고 288 님의 『작은 새 오카리나』등 3편 이었다. 이들 3편 모두는 기성 문인의 역작들이라 본격수필이 요구하는 구성적 요소나 기능적 요건들을 고루 갖춘 수준작들이었다. 문장의 개성화나 제재의 자기화도 돋보여 모두 당선권에 진입한 우수작들이었다. 하지만, ‘당선작은 각 1편’ 이라는 문학상 규정이 전제되었기에 부득이 ‘공감과 미적(美的) 감동’ 이라는 문예화의 잣대로 가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 191 님의 『익어간다는 것』을 최종 당선작으로 선했다.
이 작품은 차(茶)를 제재로 하여 ‘차를 경영하는 일이 곧 인생경영이다’ 란 의식을 주제화 한 창작수필이다. 관조(觀照)나 의미부여의 수법(手法) 또한 매우 돋보였다. 특히나 말미(末尾)에서 보인 “목마르면 차 한 잔, 졸리면 잠 한숨, 그것으로 모자람이 없으련만…”이라고, 주제의식을 압축, 상상 처리한 문장이 백미였다.
프로필 /조윤수
경남 진주 출생했으나
전북 전주에서 전주여중, 전주여고를 졸업했다.
경희대학교, 부산동아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
서울에서 미국회계사 회사에 10여 년 근무하였고,
결혼 후, 전주에서 전통차문화를 연구해왔다.
1987년부터 1997년까지 ‘애아(愛兒)에게 낙원을’ ,
‘자연과 인위의 조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전인행복운동’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2003년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수필과비평작가회의, 한국미래문학회, 전북문인협회
영호남수필문학회. 행촌수필문학회 회원.
행촌수필문학회 편집위원장 역임.
현 행촌수필문학회 부회장
저서
<<바람의 커튼>>
<<나도 샤갈처럼 미친(及) 글을 쓰고 싶다>>
<<명창정궤(明窓淨几)를 위하여>>
수상
2010년 제3회 행촌수필문학상
2007년 제4회 KBS<아름다운 통일> 작품공모전 동상 수상
2010년 제7회 국제환경페스티벌 글짓기 장려상
2011년 제1회 대한민국 독도문예대전 입상
주소: 전북 완주군 상관면 신리로 99,
(신세대지큐빌아파트) 105동 201호
전화: 010-5175-8618, 063-282-8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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