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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edpolicy.kedi.re.kr/frt/boardView.do?strCurMenuId=65&nTbBoardArticleSeq=817607
문제 상황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되어 가는 시점에서 유독 교육정책의 개혁 동력에 대한 의구심이 점차 높아가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교육부문이 가지는 정책적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점이 분명히 있다. 우선 교육자치제도의 확산을 기조로 하는 새 정부의 행정 통치 원칙에 따라, 중앙교육행정 당국이 초·중등교육에 대한 ‘드라이브’를 자제하면서 시·도교육청에 교육정책을 대폭 위임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아울러 교육개혁으로 인한 실질적인 효과가 단기간에 나올 수 없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교육개혁에 대한 조급성도 그러한 비판적 관점을 키우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교육정책이 본질적으로 가치론적,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갖기 때문에 그 어떠한 정책도 특정 이해집단에 상충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새 정부가 교육 분야 국정과제로 ‘교육혁명을 통한 공교육 혁신’을 설정하고 그 실천과제로서 학교 혁신을 위한 다양한 하위과제를 제시하였다. 특히 교육행정 수반인 김상곤 교육부 장관의 정책적 성공사례로 간주되는 ‘경기도 혁신학교’가 국가적 학교 혁신 모형으로 정착 가능한지 여부가 많은 교육당사자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따라서 학교 혁신의 내용과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때, 으레 ‘혁신학교’의 교육 이념적 목표가 무엇인지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혁신학교’가 국가적 차원의 학교 개혁 모형이 되는 데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 점검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공통된 과제 해결을 위해 교육부, 시·도교육청, 단위 학교가 관계를 재정립하여 협력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도출 가능하다.
‘혁신학교’의 교육이념 재음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혁신학교’는 이른바 ‘진보교육감 체제’라는 교육자치제의 혜택에서 등장한 학교 개혁 모형이었다. 물론 경기도교육청이라는 거버넌스를 기반으로 추진된 동력도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현장 교사들로 이루어진 자발적인 학습공동체의 연구와 그것의 현장 접목을 통해 탄생하였다. 물론 ‘혁신학교’의 이념적 기초를 만드는 데 기존 교육이론가들의 공헌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강단 교육학’의 한계를 넘어선 이론과 실천의 결합으로 평가받을만하다. 도농(都農)혼합의 지역적 특성에서 시작한 혁신학교의 성공 모형은 이후 ‘서울형 혁신학교’로 확산되는 과정을 거쳤다. 그 성패에 대한 평가는 뒤에서 하겠지만, 우선 ‘혁신학교’의 교육 이론적 기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혁신학교’의 교육철학은 우리 교육의 난맥상에서 드러난 파편화된 교육을 지양하고 오래된 전인교육(全人敎育)의 이상을 다시 한번 복원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논어』에 나타난 공자의 ‘군자불기(君子不器)’의 교육사상이나 서양 고대 철학에 기반을 둔 지·덕·체의 조화로운 인간교육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지식 중심의 획일적 교육보다 지성, 인성, 감성, 창의성의 고른 발달을 강조하는 교육의 흐름을 수용한 것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미국의 진보주의 및 유럽 개혁교육학의 학습자 존중 전통, 슈타이너(R. Steiner)의 발도르프(Waldorf) 학교, 프레네(Freinet) 학교, 몬테소리(Montessori) 등의 대안학교 이념을 학교교육에 실현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현대적인 교육 조류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특히 비고츠키(L. S. Vygotsky)의 사회적 구성주의(social constructivism)가 가정하는 학습자의 능동적 역할, 복잡계 이론을 통한 교실 생태 환경에 대한 이해, 일본의 사토 마나부의 학교교육 혁신 등과 같은 실천처방적인 사례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마지막으로 20세기 전후에 국제 교육계를 강타한 핀란드 교육의 성공 사례가 준 자극도 적지 않다. 즉 학교체제의 단순화(10년제 종합학교의 공통 교육시스템)와 교육방법의 다양화, 서열화된 성취능력을 뛰어넘는 확장된 ‘학력(學力)’ 개념, 학교의 배움과 돌봄 기능 확대, 공교육을 통한 교육의 평등성과 수월성의 동시 실현 등은 우리의 교육을 개혁하는 데 정책적 아이디어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혁신학교’의 교육 이념적 기초에 대한 평가와 아울러 이 교육모형이 지향하고자 하는 학교 혁신의 정당성은 충분했다. 이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혁신학교’ 모형은 21세기형 교육혁신에 부합하는 새로운 학교교육 모형으로 규정될 수 있다. 특히 OECD의 DeSeCo로 알려진 ‘핵심역량’이나 미국의 SCANS에서 강조한 ‘필수 기능’은 기존의 분과 교과적 접근에 기초한 인재양성 관행을 극복하도록 하였다. 둘째, 이러한 세계적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혁신학교’는 ‘배움과 돌봄의 교육공동체 실현’을 모토로 학생·교사·학부모·지역사회의 협력에 기초한 학교 운영, 민주적 학교문화의 정착, 학교와 지역사회의 연계 활성화 등과 같은 학교환경의 재편을 추구하였다. 이와 함께 수업혁신을 통한 교육혁신의 실현과 교육의 전문성 및 책무성의 제고를 제시하였다. 셋째, ‘혁신학교’ 모형은 당시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우리가 안고 있는 교육현실에 대한 냉정한 비판에서 왔다. 획일적 입시경쟁 교육의 심화로 인한 고교체제의 평준화 기조의 붕괴가 가속화되었고, ‘교실 붕괴’로 대표되듯이 국가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힘든 상황이 초래되어 창의성 교육은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또한, 기존의 교육과정과 교육체제는 급변하는 21세기의 학습자 요구를 반영할 수 없게 되었고, 이러한 학습자의 자기표현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교사들의 보수적인 교육관도 한계에 도달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혁신학교’ 모형은 이후 다른 교육자치단체들에 일종의 개혁적 표준으로서 역할을 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도심형 혁신학교 모형인 ‘서울시 혁신학교’였다. 그것이 추구하는 교육적 비전은 이른바 「5영역 15전략」으로 구체화되었다.
첫 번째 영역인 학교문화에서 3가지 전략이 제시되었다. 먼저 ‘참여하고 협력하는 학교문화의 구축’이라는 전략1을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학교문화를 창조하고 낡은 학교문화를 극복해야 한다. 학교문화를 혁신하기 위해 교사들의 참여·협력적 집단지성의 문화 형성, 교사들의 집단지성 문화 형성을 위한 근무 여건 마련, 학생 중심의 학교문화 형성 등이 제안되었다. 전략2인 학생 성장·발달(career development) 책임제 구축은 구체적으로 개인별 성장·발달 프로그램 운영, 성장·발달 책임제를 위한 삼자(학부모·교사·학생) 협약 추진, 성장·발달과정을 중심으로 한 평가체제의 도입, 성장·발달 책임제의 단계적 적용 등이 제안되었다. 마지막으로 학부모·지역사회와의 활발한 협력을 전략3으로 제시하였다.
두 번째 영역인 수업에서는 배움 중심의 수업 모형의 개발 및 운영이 전략4로 제안되었다. 구체적으로 학생 활동 중심의 새로운 교수·학습 모형 개발을 위한 연수 강화와 학생 중심 교수·학습 모형의 개발과 적용 등이 그 실천방안이다. 전략5는 교사의 협력과 소통에 기초한 수업 연구의 활성화인데, 동료 교사들과 함께 하는 수업 연구, 자발적 연구 수행과 함께 각종 연수 기회의 활용, 공개 수업과 연계된 수업연구회 운영, 수업 공개 및 참여의 활성화가 핵심적인 실천방안이다. 전략6은 모든 학생을 위한 기초교육의 강화인데, 특히 도구 과목(국어, 영어, 수학)의 기초 학습력 확보와 개별 맞춤형 지도를 강조한다.
세 번째 영역은 교육과정이다. 이에 따라 전략7에서는 꿈을 실현하는 교육과정의 운영이 모토로 제시되면서 그 실천방안으로서, 진로탐색 교과활동의 강화, 공동체 및 시민 교육의 강화, 생태·인권·평화 교육의 강화, 문화·예술·체육 교육의 활성화 등이 제안되었다. 전략8인 참여와 협력학습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에서는 협력학습 교육과정 운영, 체험중심 교육과정 운영, 탐구·프로젝트 학습 교육과정 운영, 과정 및 다면적 능력 중심 평가 시행 등이 실천방안으로 제시되었다. 전략9는 ‘모두가 성장하는 교육과정 운영’으로 설정되었다. 그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서, 소외 없는 모두를 위한 교육과정 운영, 미래의 삶과 연결된 다양한 선택 교과의 운영, 특기적성·문화·예술·체육 중심의 방과 후 교육과정의 운영, 동아리 및 학생자치 활동의 강화 등이 제안되었다.
네 번째 영역인 돌봄에서는 효과적인 방과 후 돌봄 프로그램의 운영이 전략10으로, 체계적인 학생 상담서비스의 제공이 전략11로, 사회적 소외 아동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 체제의 구축이 전략12로 각각 제시되었다. 마지막 영역인 학교운영에서도 세 가지 전략이 마련되었다. 전략13은 협력적 학교 공동체 운영으로서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학교의 의사결정구조를 제안하는 것이다. 전략14는 교수·학습 중심의 학교 운영체제 구축으로서 교사의 행정업무 경감을 통한 가르침 중심의 교수풍토의 정착을 목표로 한다. 마지막 전략15는 교수·학습 중심의 학교 시설 및 환경 구축이다.
‘혁신학교’에 대한 평가
새 정부의 학교 혁신 방향은 지금까지 설명한 ‘혁신학교’의 교육이념으로부터 그 구체적인 그림을 엿볼 수 있다. 왜냐하면 ‘혁신학교’의 이념은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미래지향적인 교육의 방향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학교 혁신의 성패는 이미 운영, 확산된 ‘혁신학교’가 겪은 시행착오 및 문제점을 어떤 식으로 극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혁신학교’ 모형이 우리 교육에 던진 긍정적인 유산 못지않게 그 운영과정에서 제기된 적지 않은 과제를 차분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를 몇 가지 측면에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혁신학교’ 모형은 우리 교육의 난맥상을 요약할 수 있는 서열화된 입시경쟁 교육을 근본적으로 극복하려는 취지에서 출발하였지만, 역설적으로 그러한 구조적인 교육환경에 의해 운영의 성과가 제한되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과도한 입시경쟁 교육은 교육 당사자들로 하여금 ‘혁신학교’의 이념을 단순히 세속적으로 폄하함으로써 주요 교육주체인 학부모 집단의 욕망기제를 중단시킬 수 없었다. ‘혁신학교’로 지정된 초등학교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 것은 그 구체적인 징후였다. 이는 학교 혁신을 성공적으로 실현하는 데 있어서, 새 정부가 구조적인 사회 환경의 개혁이라는 보다 큰 맥락을 고려해야 함을 시사한다. 이에 초·중등교육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적인 요인들인 대학의 서열구조, 왜곡된 노동시장, 지역적 격차, 교육에 대한 문화·관습적 인식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
둘째, 지금까지 ‘혁신학교’가 성공했다는 사례는 부분적인 착시효과일 수도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만 한다. 사실 경기도 외곽 지역의 부분적인 성공 사례는 초등학교 단위에서의 참신한 수업혁신이 보여준 인상효과였을 수도 있다. 대학 입시 경쟁이 본격화되는 지점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초등학교의 수업 혁신은 현재 우리 초등학교 교육과정 운영 여건이나 초등학교 교사들의 역량에 비추어 본다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며, 이미 시행되고 있는 교수법적 실제이기에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니다. 어쩌면 우리 교육계에서 관심의 대상이었던 ‘핀란드 교육’의 실제와 우리 초등학교 단계의 수업 실제와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초등학교 단계를 넘어 중학교와 고등학교 단계로 올라갈수록 ‘혁신학교’의 수업혁신은 보기 힘들었다. ‘혁신학교’로 지정, 운영된 학교에서 초등학교가 절대다수인 반면,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많지 않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사실 지정, 운영되고 있는 중등학교는 열악한 지역에 있거나 신설학교를 통한 시범학교였다.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 교육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혁신학교’의 전국적인 표준 모형을 개발해야 하는 것도 과제이지만, 단순히 시범학교에 머물지 않는 학교급별로 일관된 표준 모형을 개발해야만 한다.
셋째, ‘혁신학교’가 표방하는 이념과 현실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혁신학교’는 교육정책의 슬로건이 되어 버린 나머지 그 실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불분명할 정도이다. 일종의 이념과 현실 사이의 불일치라고 할까? 이미 우리 교육공동체에서는 ‘혁신학교’가 선출직 시·도 교육감의 정책적 브랜드로 확고하게 인식되고 있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도 없을뿐더러 내용적 실체를 확인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이는 ‘혁신학교’의 운영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철저한 정책적 모니터링이 부재했음을 의미하며, 혁신적인 학교 모형으로서 자기 진화하는 과정이 결여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새 정부가 제시할 학교 혁신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학교 모형도 오랜 비판적 검증과 정책 평가에서 견딜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
학교 혁신에서 교육공동체의 역할
이처럼 새 정부가 보여주어야 하는 학교 혁신은 이미 오래된 ‘혁신학교’ 모형보다 훨씬 ‘혁신적인’(!) 것이어야만 한다. 그러한 교육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앙교육행정기구인 교육부, 시·도교육청, 단위 학교 간의 긴밀한 협력관계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먼저 교육부는 교육자치제도의 확산 및 정착을 기본 원칙으로 하여 시·도교육청 및 현장 학교에 대폭적인 자율권을 부여해야만 한다. 이는 초·중등교육정책의 거버넌스가 협력적인 구조로 재편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교육부는 국가 차원에서 ‘교육정책 대강화(大綱化)의 허브’로서만 역할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전국적인 차원에서 학교 혁신 정책의 조율이나 ‘통일화’ 작업 등과 같은 역할은 시·도교육감 협의체로 넘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추세로 보인다. 대신에 교육부는 혁신적인 교육정책이 국가적으로 작동하는 구조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다른 중앙행정기구와 협력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다음으로 시·도교육청은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교육정책의 기본 방침을 유지하면서 지역적 특수성과 강점을 충분히 고려하는 학교 혁신 모형을 개발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혁신학교’ 모형이 도농혼합지역과 도시 지역에서 달리 작동되었다는 선례를 충분히 유념하면서 특정한 지역에 안착되도록 정책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단위학교 차원의 역할이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는 학교 혁신의 가장 핵심적인 주체이다. ‘혁신학교’의 성패가 학교문화의 혁신과 교사의 혁신적인 사고 및 태도에 의존했듯이, 학교 혁신은 현장 교사들의 역량과 노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함께 현장 교사들이 학교 혁신의 주체로 나가기 위해 필요한 행·재정적 지원은 당연히 중앙교육행정 기구와 지역 교육청의 몫이다.
원고는 집필자의 전문적 시각으로 작성된 것으로
교육정책네트워크 및 한국교육개발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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