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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水地理學(陰陽宅)을 올바르게 아는 길
(副題: 風水地理學과 孝의 思想)
(社)精通風水地理硏究學會
理事長 尹 甲 源
(011-615-2488)
제1절 풍수지리의 원리
멀리 차창 밖에 펼쳐진 산야에 멋대로 자리한 묘지들을 바라볼 때마다,
“저 선산(先山)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좌향(坐向)을 조금만 바꾸어서 재혈(裁穴)했더라면 체백(體魄: 遺骨)을 혈토(穴土)에 용사(用事)할 수 있었을 텐데…, 또한 체백과 상극인 물[乾水]만은 피할 수 있었으련만…,
이 건물도 상충살(相沖殺)로 인해 급기야 재난을 면할 수 없게 되었고, 저기 산맥도 국토개발이란 미명하에 맥(脈)이 잘렸으니 지기(地氣)가 단절되어 보존되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깝구나…
풍수지리학의 핵심인 통맥법(通脈法)의 기본원리를 조금이라도 터득했더라면 저런 화는 면할 수 있으련만…”라고 생각하면서,
그때마다 나는 프린스턴대학의 물리학자 J.A. 휠러의 말을 상기해 보곤 한다.
“모든 것의 뒤에는
아주 간단하고, 매우 아름답고,
매우 매력적인 개념이 있다.
십년 후나 백년 후,
또는 천년이 지난 후에,
우리가 그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가 서로에게 말하리라.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어리석을 수가 있었던가.”라고.
이는 진리란 오묘하면서도 정연(整然)하기 때문에 그 이치를 터득하기까지는 어려움이 있을지언정 일단 그 이치를 깨닫게 되면 매우 쉬우면서 간결하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의 전통과 생활문화의 맥을 이어온 풍수지리는 조상의 혼이 담겨있는 고차원적 학문으로 천기(天氣)와 지기(地氣)의 조화로 장자승생기(葬者乘生氣)함으로써 유전인자(遺傳因子: DNA)의 동기감응(同氣感應)을 일으키는 동양철학의 한 진수이며 실재를 들어 증명할 수 있는 과학인 것이다.
풍수지리는 오묘하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 한권의 책에 묶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이 논문을 쓰면서 현 사회의 풍수지리에 대한 일반상식이 너무나 잘못 전래되어 왔거나 또는 잘못 인식된 사실들을 올바르게 인식시키려는 데에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연구를 계속하여 이 학문의 발전에 더욱 심혈을 기울일 생각이다.
예를 들면, 정양정음법(淨陰淨陽法), 삼합법(三合法), 포태법(胞胎法), 구성법(九星法), 현공법(玄空法), 수맥법(水脈法), 물형론(物形論) 등을 주창하는 학파들이 마치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이론만이 가장 정확한 정도인 것처럼 그리고 누구나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영험한 분야인 양 대중을 현혹 또는 오도하고 있음을 우리는 목격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의 실상을 구명해보면 거의 알맹이가 없고 증험해 보지 못한 헛된 이론에 불과함을 실감하게 되며, 이 이론으로 혈처(穴處)를 얻는다는 것은 마치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구한 것과 같아서 부질없이 풍수지리에 대한 세인의 불신만 조장하고 있음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제2절 풍수지리학이란
풍수지리학은 아직까지도 하나의 교과서적이며, 통일된 기준이 되는 정론(定論)이 정립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제반 잡설이 난무하여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일생을 통하여 풍수학에 대한 깊은 연구와 경험 및 증험(證驗)으로 사계(斯界)의 여러 학설에 대한 그 허실을 실증해보면서 그러한 가운데 홀연히 하나의 바른 길을 터득하게 되었다. 즉 어떤 중설(衆說)보다도 그 이론과 실제가 가장 부합되는 통맥법이 정도(正道)라는 확신을 갖게 되어 여러 대학의 강단과 현장을 누비며 이에 근거한 이론과 실증을 통하여 강의해 왔던바, 참석한 거의 모든 이들로부터 면구스럽게도 공감과 신망을 얻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사계(斯界)의 다른 지론(持論)을 주장하는 분들도 많이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1. 인간은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자연과 더불어 조화를 이뤄 환경친화적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삶과 죽음의 바탕이 되는 땅에 후천팔괘(後天八卦)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원리를 적용하여 거기에 함축된 지기(地氣: 靈的인 힘)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학문이 바로 풍수지리학이다.
즉 삶의 집은 양택(陽宅)이요, 죽음의 묘(墓)는 음택(陰宅)으로서 이 두 분야[陽宅·陰宅]의 이론과 실제(實際)를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2. 좋은 땅[明堂 : 陰宅, 陽基]이란?
산진수회(山盡水回)하고 환포장풍(環抱藏風)으로 형성된 보국(保局), 즉 조룡(祖龍)의 산진처(山盡處)에 물이 궁체(弓體)로 감아주고, 청룡 백호가 환포하여 지기(地氣)의 누설을 방지하는 국(局)이 형성된 곳에 음택(陰宅, 묏자리)은 일선(一線)의 맥(脈)이 응결(凝結)되어 혈처(穴處)[半坪]가 형성된 곳이며, 집터[陽基]는 일편(一片)의 평포(平鋪)된 곳에 물[食水]이 있고 국세(局勢)가 관활(寬闊)하며 주위환경이 평화스러운 곳이다.
풍수지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용(龍)·혈(穴)·사(砂)·물[水]이 잘 조화됨으로써 길지(吉地: 陽基와 陰宅)가 형성되는 것으로서 이른바 산맥진처(山脈盡處)에는 필유음택(必有陰宅)이요 산곡진처(山谷盡處)에는 필유양택(必有陽宅) 인 것이다.
제3절 풍수지리학의 기원(起源)
1. 풍수지리학은 양택풍수로부터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인간이 태초에 삶을 영위할 때 움막이나 동굴 속에서 생활하면서 추위를 막기 위해 장풍(藏風), 즉 찬 바람을 막아야 했고, 또 생명유지와 생활의 필수요건인 물을 얻기 용이한 곳에서 생활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2. 우리나라에서의 풍수는 문헌상으로나 또는 옛 고분을 보아도 멀리 삼한말기(三韓末期: 마한의 부족국가 영주(領主)의 묘인 전남 나주시의 고분군(古墳群))에서 삼국초기(三國初期: 신라국의 이전 6가야의 부족국가인 대가야의 부족장의 명당인 경북 고령군의 고분군) 무렵에 자생적으로 발생하였고, 이를 신라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이론을 정립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혼과 삶이 곳곳에 민족정서로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
그런데 당나라 장일행(張一行: 683 - 727)으로부터 도선국사(道詵國師: 827 - 898)가 풍수지리학을 배워왔다는 낭설이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거의 모든 풍수서적에 기록되어 있는데 시기적으로 100년 이상 차이가 나므로 이러한 기록은 잘 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3. 양택 분야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풍수학의 원초적 발달과정으로부터 형성된 이론으로서, 먼저 지세와 지형적 측면에서 길지임을 관찰한 후에 후천팔괘(後天八卦)에 의한 건방(乾方: 男)과 곤방(坤方: 女)이 남녀성쇠(男女盛衰)에 영향이 큼을 감안한다든지 또는 그 터에 정주(定住)할 주위환경과 인간의 여러 가지 심리적 선호 또는 취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후에 주거지를 결정하는 등 여러 가지 상황을 복합적으로 고려하게 되었다. 이러한 풍수학은 차차 인간생활이 발전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근심지영(根深枝榮)이란 관념에 의하여 산 자[生者]뿐만 아니라 선조의 유택(幽宅)도 따뜻하고 양지바른 곳에 모심으로서 효사상(孝思想)을 승화시키고 또한 그 자손도 번영할 수 있다는 면에서 음택풍수까지도 연급(延及)하게 되었다.
4. 옛날 고려나 조선조 시대의 왕릉들은 통맥법에 의거해 명당(明堂: 吉地)터를 택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장풍득수지지(藏風得水之地: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 곳)라는 양기(陽基)에 적용된 용어의 본의를 풍수가들이 잘못 해석하여 이를 그대로 음택(陰宅:墓)의 장법(葬法)에 직설적으로 적용함으로써, 결국에는 많은 묘들이 건수(乾水)를 완전히 털어 내지 못하고 대다수가 습지에 묘를 쓰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으니 실로 개탄을 금할 수 없는 바이다.
제4절 풍수는 과학이다
과학이란 자연의 현상을 체계적으로 분석 정리하고 여기에서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 또는 원리를 발견하여 이에 대한 보편타당한 확증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이다. 길지 즉 명당터란, 망자(亡者)의 유골을 혈처에 안장하면 그 유골이 황골(黃骨)이나 자골(紫骨)로 오랫동안 보존되는 곳이다.
나는 오랫동안의 경험과 천착(穿鑿)으로 명당의 위치를 예단(豫斷)한 후 토질탐색봉(土質探索棒)으로 지층의 토질을 탐색하여 혈처를 찾아내는데 그 면적이 대개 반평(半坪)정도 된다. 이러한 혈처는 풍수지리학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결과로서 이것이 바로 과학의 증표인 것이다.
1. 일본에서 나의 강의를 접해 듣던 한 재일동포가 잘못 재혈(裁穴)된 자기 부모 묘를 상담해 와 용사해준 일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비록 길지라 할지라도 천광(穿壙)의 소모태(小母胎)에 석회나 유황 등의 화학제품을 혼합하여 유골을 안치(安置)하면 단시일 내에 소골(銷骨)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2. 양택은 태양의 에너지와 땅의 에너지[地氣]가 융합되어 조화롭게 이루어진 훈풍화기(薰風和氣)로 인하여 거주자의 건강과 생체리듬을 향상시킴으로써 영향을 직접 받는 것이고, 음택은 선조의 유골을 매장한 후에는 선조와 후손사이에 유전인자(遺傳因子, DNA)의 동기감응으로 인한 영향을 받게 된다. 이를 현응적 결과(玄應的結果)라고 하는데, 발현되는 시기는 양택보다는 비교적 늦다.
3. 따라서 좋은 선산(先山)을 가진 가문은 그곳에 조상을 용사함으로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적으로 집안이 융성 발전해 가고, 그렇지 못한 가문에서는 그 집안이 점차적으로 퇴락해져 가는 문중(門中)을 보아 왔다.
※ 윗 그림은 조상을 용사했을 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타나는 현응적 결과가 진행하는 과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는 현응적 결과에 의해 실증되고 있는 바이다.
다만 음양택에 살(殺)이 비칠 때에는 흉사(凶事)인 현응적결과가 단시일[3~5년] 內에 발생한다. 흉살(凶殺)의 종류에는 직룡직수충살(直龍直水沖殺), 역장살(逆葬殺), 검살(劍殺), 첨살(尖殺), 부시형살(浮屍形殺), 천옥살(天獄殺), 규봉살(窥峰殺) 등이 있다.
제5절 나의 풍수 역정
나는 세살 때 엄친을 여의고 청상과부이신 자모(慈母)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그때는 어려웠던 일제강점기로 모든 것이 공출로 이어지는 시기여서 가운은 기울대로 기울어져 갔다. 그 당시는 봉건적 사회요, 농본주의 사회인 1차 산업화 시대로서 요즈음같이 여성이 사회활동을 마음대로 하던 때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얼마 되지 않는 전답을 가꾸어가며 모진 고생을 다하면서 쓰러져가는 집안을 이끌어갔다. 옛말에 “홀아비는 이가 서 말이요, 과부는 은이 서 말”이라고 하였듯이 곤경을 딛고 일어나 생활을 유지하였던 어머니는 함양박씨(咸陽朴氏) 가문의 진사댁 손녀였다.
1.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 뫼의 관(棺)을 빼드려야겠다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었다. 이를 시행하기 위하여 많은 지관(地官)들을 모시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지관을 따라다니게 되었고, 이때부터 풍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구마 밭 도둑방지를 위해 산에서 아카시아나무를 한 짐 가득히 지고 내려오다가 밭 위에서 잠시 쉬던 중 깜박 잠이 든 사이에 비몽사몽간에 영적 교감이 있어 자세히 보니 명당 터가 형성되어 있어 그 자리에 치표(置標)를 해두었다.
그런데 며칠 후 어머니가 찬을 만들기 위하여 고구마 잎을 뜯고 있었는데 어느 노인 세 분이 찾아와 그 밭 위에 있는 가묘(假墓)를 누가 했는지 아느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우리가 했노라고 하니 어떤 지관이 잡았느냐고 묻기에 현재 중학생인 아들이 치표해둔 것이라고 하자 깜짝 놀라면서 가묘해둔 묘지를 매입하려고 내가 다니는 학교에까지 찾아왔다.
요즈음에는 거의 모두가 교통이 편리한 도로변, 혹은 이에 가까운 산이나 또는 밭과 같은 평지에 모시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는데, 이러한 곳에는 습기로 인하여 가는 실 같은 수렴(水簾, 毛簾: 털)에 감겨지기 마련이며, 이러한 체백은 10년 내지 20년 사이에 새까맣게 소골된다. 비록 좋은 길지에 모시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흉살이 없고, 또한 습기가 없는 풍화토(風化土: 마사토)를 찾아 모셔야 한다.
나는 이러한 곡절을 겪으면서 어려서부터 풍수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눈을 뜨게 되었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심취하게 되었다.
2. 1991년에 91세로 자친(慈親)이 홀연히 세상을 떠나시니 길지를 점지하여 아버님과 합장해 드리기 위해,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이장하였던 선고(先考)의 묘를 파묘해보니 구묘에 있었던 목근(木根)은 없어지고 체백의 모든 상태가 좋아졌으나 다시 어떠한 이물질이 침범해 올 초기단계에 있었다. 그래서 안치되었던 체백을 수습한 후에 한 삽을 더 깊이 파보니 그곳에서 비로소 혈토가 나왔다. 이를 본보기로 삼아 혈토에다 유골을 안치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후로 다른 사람들의 초장이나 이장할 때는 더욱 마음을 집중하여 조금의 후회도 없도록 용사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3. 답산하다 보면 묘의 상석에 어느 문중 누구의 묘라는 것이 새겨져 있다. 그 묘가 가문에 어떤 영향을 주었겠다는 생각이 들면 석문(石文)을 보고 그 문중을 찾아가 족보를 빌려보면서 흥망성쇠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해 연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뫼의 형국에 의하여 어떠한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다.”라는 옛말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일찍이 유년기부터 집안 선산의 형국을 토대로 하여 문중의 흥망성쇠를 연구하여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누구라도 본인들의 선산에 대해서 연구하면 그 선산에 대한 후손들의 성쇠를 뚜렷이 실증을 알 수 있으므로 이것이야말로 가장 합리적인 공부이며, 간산할 때 고총을 보더라도 왜 고총이 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원인을 도출해 내려고 노력하면 본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제6절 나와 이기론(理氣論)
1. 풍수지리란 대개 형기(形氣)와 이기(理氣)를 연관해서 공부하여야 하는 학문이다. 젊은 날에 내가 공부해왔던 것은 주로 현장에만 연구한 형기에 관한 분야였었다. 공부하는 도중에 읽은 안창호(安昌浩: 호는 島山, 興士團創立)선생님의 전집에서 이이(李珥 栗谷)선생이 말한 “생애시(生涯時) 습득한 학문을 후손에게 알리지 않음은 죄악이다”라는 글을 읽고서 이에 감명을 받아 현재까지 공부해왔던 내용들을 정리해놓기 위해서는 책을 편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기론(理氣論: 理論)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풍수서적의 원본은 한문(漢文)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다시 한문공부와 곁들여서 이론을 연구하였다. 내가 공부하였던 이론은 정음정양법(淨陰淨陽法), 삼합법(三合法), 구성법(九星法), 포태법(胞胎法: 八十八向法), 현공법(玄空法), 수맥법(水脈法), 물형론(物形論) 등이다.
그런데 연구하고 있는 이론(理論: 理氣論)과 이미 전에 터득했던 형기(形氣: 形氣論)를 상호 접목해보니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의사의 처방은 그 결과가 환자 한 사람에 한하여 영향이 미치지만, 풍수는 한 가문 전체에 영향을 주게 된다고 생각할 때 그 책임은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고 더욱이 말이 없는 남의 체백(體魄)을 잘못 모셔주면 큰 죄악이 되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있어 한 때는 이 학문을 포기하려고도 하였었다.
2. 그러던 중 옥룡자지리서(玉龍子地理書: 通脈法)와 안씨문중비방요법(安氏門中秘方要法), 경기도 평택의 한약방에서 비장해왔던 홍씨 풍수지리비결(洪氏風水地理秘訣), 단양 구인사 주지 상월당(上月堂)이 비장(秘藏)해 두었던 결록(訣錄), 정철(鄭澈)선생님의 5대손 동지공(同知公)과 진사공(進士公)의 몽책(蒙冊) 등을 입수하여 이들을 체계적으로 재정리하여 계속 연구하게 되었다.
그후 충북 보은군 마노면 관기리에 사는 현암 김광수(玄岩 金光洙) 선생께서 자신의 생명과 같이 보존했던 풍수에 관한 통맥법의 원본인 금부경(金符經)을 전수받았다. 이는 인쇄가 발달하기 이전의 고려시대의 필사본으로서 “玉龍子傳之舞學而留通宮中之秘法正心修德者輕勿傳之”(옥룡자가 무학대사에게 전하여 궁중에서 통용되어오던 비법이니 정심수덕한 사람이 아니면 가벼이 전하지 말라)라고 부전(附箋)되어 있는 귀한 책이었다. 이 책을 3년간을 연찬(硏鑽) 탐색해 본 결과 “금부경”은 바로 내가 추구하였던 형기론과 합치되는 이론서이었다. 이를 계속 연구하면서 실전(失傳)되어가는 도선국사가 창조한 통맥법의 선구적 전승자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하였다
통맥법이란 채목당(蔡牧堂)의 발미론(發微論)에서도 말하였듯이 “氣不自成 必依脈而立. 脈不自爲 必因氣而成. 蓋有脈而無氣者有矣. 未有無脈而有氣者也.”라 하였으니 “기는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맥에 의지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요, 맥은 스스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기로 인해서 형성되는 것이다. 대개 맥은 있는데 기가 없는 경우는 있지만, 맥이 없이 기가 있을 수는 없다.”라는 뜻이다.
즉 맥이 없이는 기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니 통맥법이란 용을 보고 그 용(龍)속에 형성된 맥에서 혈처(穴處: 陰宅,陽宅의 地氣가 응결된 곳)를 찾아내는 이론체계를 세워놓은 학문이다.
제7절 우리 학회의 목적
1. 첫째 본 통맥법을 학문적으로 정립하여 세상에 올바르게 알리기 위한 교육실시
본 학회에서 지향하고 있는 바는, 현재 왜곡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사계(斯界)의 여러 잡설과 비정상적인 사설(邪說)이 횡행하고 있음을 탄식하면서 또 여기에 빠져들어 마치 뜬구름을 잡는 듯한 허황된 이론에 헤매고 있는 풍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계도함과 동시에, 풍수학의 정도에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현 사회의 실정에 가장 적합한 새로운 장법을 창안하여 이를 널리 보급함으로써 우리나라 장례문화의 기본질서와 효율적인 국토개발의 방향설정에 도움이 되도록 길잡이 역할을 자임(自任)하기 위함에 있다.
풍수지리학은 산진수회(山盡水回)하고 환포장풍(環抱藏風)이라는 포괄적 개념하에 오랫동안의 경험에서 터득해낸 지기(地氣: 明堂)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이 명당은 그 형태가 여러 가지이며 거기에서 나타나는 지기의 감응과 증험이 천차만별이다.
1) 풍수지리가 학문적인 체계와 형태를 갖추려면 용어의 해설과 통일, 풍수지리의 기원과 유래, 역대 감여가(堪輿家)의 풍수지리 이론을 기초단계부터 심화단계까지 점진적으로 전개하여 이를 체계적으로 구성 정립해야 할 것이다. 이같이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질 때 군소 술객(術客)들의 잡론과 사설(邪說) 등은 배제되어 스스로 소멸될 것이고, 이런 결실을 볼 때 일반인들의 의혹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2)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정신과 이념에 입각하여 이를 전국에 전파하기 위해 대구, 서울, 光州를 삼각지역으로 삼아 교육을 실시하여 전문인력 양성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3) 이를 시행하면서 풍수지리학 연구는 형기에 관한 학습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이론만으로는 현장에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현장학습을 통해 본 연구를 심화시키고 확신을 굳힘으로써 지사(地師)로서의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에 심혈을 쏟고 있다.
2. 둘째 현실에 알맞은 매장문화 창조(埋葬文化 創造) -새로운 장법인 先祖合同墓 창출-
근래 갑자기 부상(浮上)되고 있는 화장법(火葬法)으로 인하여 납골당(納骨堂)이나 수목장(樹木葬) 등으로 장례를 치르는데 이로 인한 사회에 미치는 여러 가지 영향에 관하여 신중히 고려해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화장은 무해 무익이라 하여 매장법과 화장법을 병행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나 우리 학회(사단법인 정통풍수지리연구학회)에서는 이 두 가지 장법에는 상호 장단점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 분묘를 정리하는 방안으로 여러 문헌과 고대(古代)의 선례 및 풍수지리학적 견해 그리고 국가정책적인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절충 보완하여 합리적이고 현실에 적합한 장례문화의 개선책을 창안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새로운 특수 장법인 선조합동묘(先祖合同墓)이다. 본 장법에 대한 특허권을 취득(2008. 12. 8.)하여 시행하고 있다.
본 장법은 조상의 유골을 화장하지 않고 하나의 소모태(小母胎)에 한 분씩 봉안(奉安)하면서도, 한 봉분에 수십 분을 합동으로 모시는 장법으로서 이는 우리 민족의 정서에 맞는 재래식 일반묘의 장법을 절충 보완하여 창안한 획기적인 매장법이다. 한편 이는 고대 중국에서 활용하였던 장법이며, 우리나라에서 활용했던 평장법(平葬法, 暗葬法, 偸葬法)을 종합 적용하여 창안하였다.
1) 화장 및 납골당 설치 등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매장은 나를 낳아준 부모 또는 선조의 유해를 보존한다는 그 자체의 상징성으로 인하여 생존하고 있는 후손에게 미치는 정서적인 측면에서의 안정과 선조에 대한 추모심을 갖게 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화장은 선조를 상징하는 가시적 실체가 없어짐으로써 피부에 닿는 추모심과 추원심(追遠心)이 감소되고, 인간[國民] 상호간의 존중성과 웃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상실되어, 국민 정서에 경박한 영향이 미치고 전통적 미덕인 충효사상을 둔화시킨다. 즉 인간도덕의 기본인 효와 숭조사상(崇祖思想)에 대한 정서를 훼손시키고 나아가 국가에 대한 충의심이 말살될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절대 그래서는 안 되지만-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사상의 풍미로 인해 사회정서가 삭막해져 자살풍조가 만연하게 되고 흉악범이 속출하여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2) 선조합동묘(先祖合同墓)와 무연총묘(無緣冢墓)
일부에서는 화장 및 납골당만이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길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나, 후손이 관리할 수 있는 선조합동묘와 더불어 산과 들에 산재해 있는 많은 무연총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무연총묘를 조성하여 사문중(私門中)의 시향제와 같이 해당관서에서 해마다 시제를 모시면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진위(鎭慰)시킬 수 있으며, 동시에 효율적인 국토관리는 물론, 국민의 정서함양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 또한 화장하여 납골당에 봉안했던 유골을, 자연으로 돌아가는 장법인 본 선조합동묘 장법으로 다시 봉안하는 것을 현재 경향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호응을 받고 있음을 첨언하는 바이다.
나는 이러한 각오로 요즈음 보급되고 있는 화장문화 장법을 지양하고 새로운 매장문화인 ‘선조합동묘’라는 장법을 창안하여 이 장법을 보급시키려고 2004년 12월 4일에 우리 종중(宗中) 입향조(入鄕祖) 이하 42위(位)를 이 설묘법(設墓法)[先祖合同墓)]에 시범적으로 선행실시해 보임으로써 타성(他姓) 문중들의 많은 호응을 받고 있는 중이다.(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 장등부락에 입향조부터 42位를 한 봉분에 봉안하였음)
본 장법의 시행 과정을 보기 위해 내방한 노인 3분 중 한 분이 얼마 전에 선조 유골을 화장하였음을 후회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가신 분이 있었다.
이 새로운 장묘법은 국민 모두가 보다 큰 관심을 기울여 누구나 꼭 한번 살펴보고 시도해야 할 때가 왔다고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3) 유대교의 율법 스승으로 탈무드를 쓴 마빈 토케이어 씨는 2010년 8월6일 서울 연지동 기독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간담회 강연에서 “우리나라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전통의 상실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고 하면서 “한국이 잘살게 됐고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했지만 영혼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로봇은 과거가 없지만 인간은 미래를 위해 과거의 도덕과 지혜를 활용해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이 뼈아픈 한마디는 우리의 현실과 미래의 국민 정서를 위해서 각성하고 또 각심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게 한다.
4) 우리 학회에서는 일반 매장묘와 선조합동묘에 가장 합리적으로 활용되는 붕판(棚板, 天蓋)이라는 새로운 천개를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사용자들에게 큰 호평을 받고 있으며[2007.5.28 특허권 취득] 현재 서울을 비롯한 경향각지에서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다.
제8절 양기론(陽基論: 陽宅)의 개념
양택풍수는 처음 사찰지를 점지하는데서부터 이론이 정립하게 되었다. 양택지[陽基]는 장룡(長龍)으로 산진처(山盡處)에 혈처가 넓고 물이 크게 합취(合聚) 또는 만곡(彎曲)하며 사각(砂角)도 크게 교결(交結)하고 조공(照拱)하며, 국세(局勢)가 넓고 관활(寬闊)하여 화평스러운 곳이어야 한다.
또한 인간은 태초에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 왔기에, 선사들은 처음에는 산 자[生者]들을 위한 양택풍수를 착안하여 연구하게 되었고, 이것이 근간으로 근심지영(根深枝榮)의 이치에 의하여 죽은 선조의 유골을 따뜻하고 양지바른 곳에 모시는 음택풍수까지 연급(延及)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우리 선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스스로 아름다운 산천의 살기 좋은 곳을 찾아서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왔다. 물 좋고 따뜻하며 물산이 풍부하고 교통이 편리하여 생활조건이 갖추어졌을 뿐만 아니라, 자연으로 부터의 재앙을 피하고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며, 안으로는 주민의 순화를 조장하여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지를 선택하였으니, 이는 오늘날의 풍수학적 견지에서 보더라도 거의 손색이 없는 양택(陽宅)의 길지를 선택함으로서 이에 따라 역사의 흥망성쇠와 부귀빈천을 재래(齎來)하게 되었다.
명리학(命理學)을 연구한 분들은 양택풍수에 동서사택(東西四宅)의 이론을 기본이론으로 강조하고 있는바 이는 하나의 가상(家相)의 이론일 뿐이다. 명리학은 오행의 상생상극의 이론을 연구한 학문이고, 풍수지리학은 후천팔괘이론과 음양오행이론을 응용한 학문이다.
한편 이제까지 세인(世人)들에게 양택에 대한 분야는 오직 사주명리학을 하는 분들만의 전관영역(專管領域)인양 간주되어 왔는데 이는 실로 본 학문을 잘못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이점을 새롭게 지적하고 잘못된 경위와 진위를 세밀히 분석하여 내가 저술한 책인 “반평의 진리” 속에 정리해 놓았다.
2. 양택분야의 연구방향 –복합적 학문(複合的學問)-
양택지를 선택함에는 형기론적인 관점에서 길지(吉地: 陽基)를 택하면서 동시에 후천팔괘를 이용한 가족관계 –예를 들면 건방(乾方: 男)과 곤방(坤方: 女)이 남녀성쇠(男女盛衰)에 영향이 큼을 감안- 그리고 그 터에 정주(定住)할 인간의 여러 가지 취향 및 선호 등 심리적인 면도 고려 대상에 포함시켜 연구하는 복합적인 학문이다.
3. 삼태봉(三台峰)이나 삼각산(三角山) 아래에는 양택길지(陽宅吉地)가 형성된다. 예로 경복궁(景福宮)터는 북한산(北漢山)의 삼각산(三角山)아래에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곳은 대체적으로 토질이 좋은 대지(大地)가 형성되어 있다.
4. 조선조 때 실학자로 유명한 이중환(李重煥)선생의 택리지(擇里志)에는
첫째, 지리(地理)가 좋아야 하며[風水的 條件]
둘째, 생리(生利)가 좋아야하고[資源의 條件: 生活에 필요한 財貨]
셋째, 인심(人心)이 좋아야 되며
넷째, 아름다운 산과 물이 있어야 한다[자연 환경]고 하여 이 중 하나라도 빠진 것이 있으면 좋은 땅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양택지는 형기론적인 길지와 주위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제9절 지관(地官)의 계층과 기본정신
1. 지관의 계층
1) 신안(神眼)
신안은 신[神系: 雜神]의 계시를 받아 사령(邪靈: 邪氣)의 힘에 의해 땅속을 순간적으로 들여다볼 수는 있다. 이는 오직 잡신의 신통력에 의지하므로 명당을 간택할 능력은 없다. 대개 사람들은 이런 신안을 신비롭게 느껴 그것이 진짜인줄 알지만, 길지는 잡신이 산천의 정기에 억눌려 찾지 못한다.
내가 풍수지리학을 공부하기 전에는 귀신이란 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공부가 깊어지면서 이런 귀신은 정기(精氣)에 범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만 우리가 인정하고 있는 영적인 이상(理想)만이 존재할 뿐 귀신이란 존재치 않으며, 단지 잡신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매년 십일간씩 산중에서 단식참선으로 터득한 결론이다.
접신한 사람이 풍수지리학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지사노릇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현혹되어 패가망신한 집안을 나는 왕왕 보았다. 이런 허황한 사례에서 보듯,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길지를 찾을 수 있음을 실증(實證)함으로써 이러한 잡신은 퇴치(退治)될 것이다.
2) 법안(法眼)
법안이란 풍수지리의 구성요소인 용(龍: 脈), 혈(穴), 사(砂), 물[水]을 형기론과 이기론의 상호보완관계를 연구하여 학문적인 이론과 과학적인 해석의 바탕 위에 실제와 자신의 경험을 더하여 땅의 이치를 터득한 지관을 말한다.
3) 도안(道眼)
도안이란 법안의 기초 위에 만물의 이치를 깨달아 영적으로 통달한 도선국사(道詵國師), 나옹선사(懶翁禪師), 무학대사(無學大師)와 같은 최고경지에 오른 지관을 말한다.
2. 지사의 기본정신
인간이란 강물처럼 흐르는 존재로서 늘 변하고 있다. 그러한 속에서 평상심을 유지하며 올바르고 밝게 살려면 우리는 일시적이고 찰나적인 흐름에서 벗어나 보다 높은 도덕심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밝게 들여다보는 수양과 철저한 정신적 수련이 필요하다.
지관은 형기와 이기를 모두 정립하여 땅의 이치(理致: 原理)를 먼저 알고 간산(看山)하여야 올바른 혈처를 찾을 수 있다. 이기에만 능하고 형기를 잘 모르면 이는 곧 방안풍수요, 그릇된 길을 걷고 있는 지관일 것이다.
유능한 풍수지리학자는 일조일석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욕속불달(欲速不達)이라. 심성구지(心誠求之)면 수불중(雖不中)이라도 불원의(不遠矣)라” 하였다. 이는 “속히 하려고 욕심을 내면 도리어 이루지 못한다. 열심히 구하면 비록 적중은 못하더라도 머지않아 깨닫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평생 면학의 연속인 것이다.
더욱이 21세기는 보다 현실적이고 전문가 및 자격증 시대가 될 것이니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분야를 20~30년간 꾸준히 한다면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반드시 노력한 보람과 그 분야에서 뜻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제10절 명당의 삼위일체와 숭조정신
1. 삼위일체(三位一體)
이 세상에 한 위대한 인재가 배출되기 위해서는 하늘[天]에서는 별 자리[星座]를 만들고, 땅[地]에서는 그 바탕[吉地]을 설치하며, 인세(人世)에서는 수대(數代)에 걸쳐 덕을 쌓은 자가 천조지설(天造地設)한 명당에 묻히고, 자손이 좋은 터에서 생활함으로써 인걸(人傑)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즉 적덕지효(積德至孝)한 사람이라야 명지관(名地官)을 만나게 되고 또 대지(大地: 陰宅과 陽基)를 소점(所点)함으로써 천지인(天地人)이 삼위일체가 되어 대인물(大人物: 聖人)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1) 다시 말해서
① 하늘에서는 조화로써 별자리를 이루고,
② 땅에서는 지기가 응결하여 명당터를 만들고,
③ 인세(人世)에서는 마음이 바르고[正心], 적선(積善) 적덕(積德) 지효(至孝)한 사람이 나옴으로써 이 삼위(三位)가 하나로 어우러져 그 결정(結晶)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2) 한편 인(人)의 삼위일체는
① 망인(亡人)이 덕망가(德望家)이어야 하고
② 자손은 지효(至孝)하고 적선가(積善家)이어야 하며
③ 더불어 명지관(名地官)을 만나야 한다.
3) 우리 학회는 이에 상응하여 유능한 지관을 양성하려고 자임(自任)하고 있으며 그 실행을 위하여 회훈(會訓)을
① 정심(正心) - 마음이 올 바라야 하고
② 정시(正視) - 마음이 올 바라야 혈처가 바르게 보이며
③ 정행(正行) - 올바른 재혈(裁穴)로 혈토에 체백을 모셔야 한다.’라는 삼위일체적 회훈의 기치를 들고 정진하고 있다. 이는 본 학문의 참 뜻을 널리 알리는 요체인 것이다.
적선자는 좋은 땅에 들어 갈 것이요 그렇지 못한 자는 길지에 묻힐 수가 없으며 선조도 이러한 곳에 모실 수 없는 것이니 풍수의 덕목인 효 사상과 동일선상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2. 풍수는 효이며 종교다
불교의 덕목은 자비(慈悲)요, 유교는 인(仁)이며, 기독교는 사랑[愛]인데 풍수지리학의 덕목은 효(孝)이다. 효는 동양문화의 기본 사상이요, 인성(人性)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명당에 대한 관념은 효에서 발상된 것이다. 본래 사람은 무일물(無一物)이라 하였으니 항상 마음이 정심(正心)이어야 그 안에서 참된 영혼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효(孝)는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사는 치국(治國)의 근본이며 충(忠)의 기본정신이 바로 효의 발로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통문화인 효 사상을 승화시켜 자손만대에 지속시켜 나가야 한다.
풍수의 근본과 덕목은 효이며 효정신의 근본인 숭조(崇祖)는 바로 선조들의 종교였다. 그러므로 나의 종교는 숭조를 기본덕목으로 하는 풍수이다.
과거 우리의 어머니들은 새벽에 정화수(井華水)를 장독대나 부엌에 떠놓고 조상님께 가족의 건강과 성공을 빌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선조와 후손의 정신이 서로 통령(通靈)하면 어떤 종교적 차원보다도 훨씬 그 결과가 컸음을 많은 분들이 경험한 바가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숭조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토속신앙인 것이다.
제11절 맺음말 -우리의 갈길-
1. 서양문화가 배금주의(拜金主義)와 물질문명에 치중한 진화과정이었다면, 동양문화는 정신적 안위를 중시하고 이기심을 억누르며 자아(自我)를 실현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정신문명의 진화과정이라 하겠다.
내면세계에 숨어있는 지고(至高)한 성품은 우리를 더 바람직한 차원으로 승화시키기 때문에 지금 서구에서는 오래전부터 물질문명의 한계를 느끼고 그 해결책을 동양철학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이 고조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서양의 물질문명에 지나치게 경도(傾倒)되어, 동양의 정신문화를 오히려 경시하는 경향이 있으니 미래에 어떠한 현상이 전개되려는지 두려움과 아쉬움이 크다.
2. 우리나라의 국토는 세계의 제일 명당이다.
우리나라는 국토전체가 크고 작은 산들로 오밀조밀하게 잘 짜여 있고, 또한 산이 아름답고 물이 맑아 이 강산에 상서로운 지기가 충만하고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전국토를 끊김 없이 하나로 연결하여 중간에 파생된 여러 산과 맥을 통해 생기를 전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길지(吉地: 陽宅과 陰宅)가 형성되어 있기에 예로부터 이웃나라 들이 우리나라를 가리켜 “지기가 가득 찬 동방의 삼천리 금수강산”이라하여 선망(羨望)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토질은 생토(生土)로 알맞은 습기가 있고 탄력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관찰할 때에 땅에서 발산되는 빛이 맑고 명랑하다. 물 역시 맑고 깨끗해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고 또한 산이 많아 취락지역도 거의 산으로 둘려 싸인 지기가 충만한 국토로서 영기(靈氣)가 충만하여 양택과 음택이 적정하게 배치되어 있으므로 이를 합리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세계적 인물이 배출될 수 있도록 우리는 가일층 노력해야 할 것이며 혹시라도 잘못된 활용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는 운동을 계속 전개함으로써 머지않아 더욱 각광받을 날이 다가올 것이다.
3. 사회교육의 측면에서도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인성교육을 제고(提高)시키고 우리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민족의 정신문화인 효 사상을 승화 고취시켜 나아가야 한다.
만일 현 사회의 질서가 서지 않고 혼탁한 사회로 계속 빠져들게 되는 현상을 빚어내게 된다면 앞으로 더욱 착란스러운 사회로 도래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래서 천륜을 어기는 죄를 짓는다면 그 응보가 바로 당대(當代)에서 일어나지 않더라도 틀림없이 후대(後代)에 그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전감(前鑑)을 우리는 많이 체험해왔던 바임을 명심하여 아무쪼록 덕행을 쌓음으로써 천지의 보응(報應)을 향유토록 권면(勸勉)하면서, 국민의 정서를 올바르게 계도할 주체가 되도록 서로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4. 영혼과의 대화
우리처럼 한평생 땅의 이치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산천은 실로 우리의 마음을 맑게 해주는 바탕이요 연원(淵源)이다. 여기에서는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고 지는 단순한 자연이 아닌 우주의 큰 기운이 숨 쉬고 있는 커다란 생명체요, 영원히 시들지 않는 우리들의 품속이기에 필자는 홀로 산에 올라 산과 교감을 나누면서 그 속에서 내 근본 마음을 찾고자한다. 또한 온 산천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 이름 모를 묘 앞에서 영혼의 소리를 듣게 된다.
“지금 당신이 웃으며 거기에 서있듯이 나도 한때는 웃으며 거기에 서있었소 내가 지금 여기에 누워있듯이 당신도 언젠가는 여기에 누울 것이오. 어서 돌아가서 나를 따라올 준비를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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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는 것이므로 나도 언젠가는 이런 곳에 누울 것인데… 하며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면서, “자연의 섭리에 의해서 언젠가는 죽어 자연의 땅속으로 돌아가는데, 가는 마당에 후손에게 재산을 많이 남겨도 자손이 이를 다 지키지 못할 것이요, 좋은 책을 많이 모아 물려주어도 이를 다 읽지 못할 것이니 남모르게 음덕을 쌓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는 고언(古言)이 떠오른다.
나는 일부 사회유력층에서 자손들에게 남길 유산보다도 오히려 선조의 유골을 길지에 유치(誘致) 봉안(奉安)하는 것으로서 숭조정신을 물려주고자 하는 이들을 보았다. 이는 과연 선조를 길지에 봉안하여 음우(陰佑)를 유산으로 자손에게 물려줌이 더욱 참되리라고 확신하는 올바른 사고를 지닌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5. 국정에의 활용
우리는 이 아름다운 강토를 가장 유효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개발, 활용하여 땅의 지기가 파손되지 않도록 잘 보존하여 후손에게 후회 없이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지도자나 국민들은 미처 그러한 생각은 못하고 그저 목전의 수요에 대한 편익만을 추구하여 자연환경을 함부로 파손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따라서 국토 개발을 책임지는 분들이나, 위정자들은 국토개발사업에 풍수지리학을 도입 활용할 것을 간곡히 권하고자 한다. 참고로 고려, 조선조 시대 관료들은 풍수학을 필수과목으로 연구하여 국정에 활용하였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6. 퇴계(退溪: 李滉)는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것은 참된 앎이 아니다.”고 하였다. 나의 저서 “도선통맥지리서”는 형기론을 중심으로 한 실제 경험을 통해서 지득(知得)한 사실들을 기록한 것이니, 이기론과는 실제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서로 연구하고 질의하고 토론하여 풍수지리학을 더욱 깊게 구명(究明)하여 실생활에 적용한다면 음택에선 선조를 길지에 모시고 양택에선 환경을 잘 이용하여 심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며 인륜의 기본인 충효사상을 국민정신으로 승화 고취시키는데도 일조할 것이고, 길지의 현응적 결과를 많은 사람이 최대한으로 향유하게 될 것으로 사료된다.
7. 옛 성인(聖人)이 말씀하길 “나면서부터 저절로 도(道)를 깨달은 것이 아니고 낮이나 밤이나 부지런히 도(道)와 학문을 배우고 추구하여 자신의 늙음과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잊어버리고 있노라” 하였다. 나도 이러한 숭고한 정신을 본받아 미력하나마 선사(先師)들이 구축해 놓은 이 심오한 풍수지리학의 진리를 부지런히 연구하여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내 늙음과 건강을 던져 ‘강단(講壇)과 간산(看山)’에서 생애를 마치고자 함이 나의 간절한 소망이다.
◆ 이 책의 자매서인 “반평의 진리(反坪의 眞理) 제5판”에는 풍수전문가로서 갖추어야 할 풍수지리학의 기본원리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적선과 적덕, 충과 효, 권선징악 등 사람으로서 행하여야 할 우리의 기본 정서가 담겨 있어, 비단 풍수지리학을 연구하려는 초보자 뿐 아니라 이 어지러운 세태 속에 살아가는 일반인들도 필히 일독(一讀)해야 할 내용이다. 이 “반평의 진리”를 연구하기 위하여 미국 뉴욕에서도 동호인 모임이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