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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The Black Swan』
- 부제: 위험 가득한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On Robustness and Fragility)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차익종・김현구 옮김
2018.4.30./ 동녘사이언스/ 648쪽
『블랙 스완』을 읽었다.
책 제목은 서구인들이 18세기에 호주 대륙에서 ‘검은 백조(black swan)’를 처음 발견한 사건에서 가져온 은유적 표현이라고 한다. 검은 백조의 발견은 ‘백조는 곧 흰색’이라는 그때까지의 경험 법칙을 무너뜨렸으며, 이것이 주는 경고는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 판단이 행동의 준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을 레바논에서 불안정한 정국과 끊이지 않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낸 저자는, 1987년의 뉴욕 증권시장의 ‘블랙 먼데이’를 겪으면서 ‘블랙 스완’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연구와 집필에 매달려 2007년에 이 책을 발간하였다. 기존 경제 시스템을 비판하며 금융시장의 붕괴를 예측한 이 책은 발간 직후 많은 혹평을 들었지만, 다음 해인 2008년에 미국 금융시장이 붕괴하자 그는 ‘월가의 현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책을 쓰고 나서 3년이 지난 뒤에, ‘말을 물가로 끌고 가서 물을 먹이기’ 위해 후기를 썼다고 하였는데, 상호의존, 비선형성, 강인한 생태의 망으로 이루어진 복잡계인 대자연에서 검은 백조에 대처하는 방안을 찾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초판본이 발간되고 나서 제기된 지적 중 자신이 저지른 오류 부분을 인정하고 바로잡았는데, 상당한 명성을 쌓아가는 중이었고 반대론자들의 공격 또한 거세었을 텐데도 이런 솔직한 태도를 취했다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 과연 경험론적 회의주의자다운 자세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본문 중에서》
우리가 쉽사리 깨닫지 못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마음 구조에서 기인한다. 인간은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사실, 오직 사실만을 머리에 욱여넣는다. 이 ‘메타 원리’(인간은 원리를 습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원리)를 쉽게 습득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우리는 추상적인 것을 얕잡아 본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일까? 이 의문을 풀려면 상투적인 지식을 전복시켜서, 이런 지식이 복잡다기하며 회귀적인(recursive) 속성이 갈수록 강해지는 현대 사회의 상황에 들어맞지 않음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이것이 이 책의 중심 주제다. p.29
이 책은 불확실성을 다룬다. 나는 희귀한 사건을 불확실성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한다. ~ 보편적인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희귀하고 극단적인 사건들의 원리를 연구해야 한다. ~ 나는 정상적인 것에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친구의 성격이 어떤지, 예의 바른지 품격이 있는지 등을 알려면 장밋빛 일상생활이 아니라 극단적인 상황에서 그를 시험해 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범죄자인지 아닌지를 일상생활만 관찰해서 알 수 있을까? p.33
어떤 목적지와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지도를 혼동하는 경향, 즉 순수하고 정교한 형식에만 초점을 맞추는 태도를 나는 그의 사상(성격)에 따라 플라톤적 태도라고 부른다. ~ 나는 플라톤적 태도가 복잡한 현실과 만나는 폭발성 있는 경계지대를 플라톤 주름지대(Platonic fold)라고 부른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의 간극이 넓어서 위험한 지점, 바로 그곳이 플라톤 주름지대다. 검은 백조는 바로 이곳에서 잉태된다. p.34~35
(개인적인) 에세이인 이 책에서 나는 우리 인간의 관습적 사고와 반대로 우리가 사는 세계가 극단적인 것, 미지의 것, 개연성이 극히 희박한 것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우리는 익히 알려진 것, 반복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사소한 이야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극단적인 사건을 예외로 치부하여 양탄자로 덮어 버려서는 안 되며 오히려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덧붙여 나는 인간 지식의 진보와 성장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바로 그 진보와 성장 탓에 미래는 갈수록 예측이 어려워질 것이며, 인간의 본성과 사회‘과학’은 이것을 감추는 데 진력하고 있다고 과감하게(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하게) 주장한다. p.38~39
여기, 아직 읽지 않은 책에 주목하고 자신의 지식을 대단한 자산이나 소유물 혹은 자존심 향상을 위한 도구로 여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반(反)학자다. 이 반학자를 회의적 경험주의자라고 부르기로 한다. p.43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사건들이 매일 일어나는데도 그들은 그 사건들이 예상 밖의 사건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 일단 사건이 발생하고 나면 그 뒤에는 그것이 뜻밖의 것이 아닌 듯이 보이게 된다. ‘소급적 개연성’이라는 것이 작용해서 그것을 희귀한 사건이 아니라 있을 법했던 사건으로 이해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뒷날 나는 비즈니스에서의 성공이나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와 관련해서도 이와 똑같은 망상이 작용하는 것을 목격했다. p.55
역사는 기어가지 않는다. 사회도 기어가지 않는다. 역사와 사회는 비약한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예견 가능하도록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세계를 믿고 싶어 한다. 이것을 깨달은 후 내게는 신조가 하나 생겼다. 우리는 ‘뒤돌아보는 쪽으로 발달된 거대한 기계’라는 것, 인간은 자기기만에 탁월한 존재라는 것이다. 나의 일그러진 인간상을 해가 갈수록 강화된다. p.57
극단의 왕국에서는 하나가 전체에 터무니없이 큰 영향을 쉽게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자료에서 이끌어 낸 지식은 의심해야 한다. 이것은 두 종류의 무작위성을 구분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불확실성 시험법이다. p.90
그런데 주목할 것은 사건이 발생하고 나면 사람들은 자신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돌발 사건이 발생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또 다른 돌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을 예견하려고 한다.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가능성은 보지 못한다. 1987년의 주식시장 대폭락 이후 미국의 주식 거래자들은 매년 10월만 되면 또 다른 시장 붕괴 가능성을 열심히 예측하려 하지만, 첫 번째 사건에 전례가 없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한다. 우리가 검은 백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유일무이한 이유는 과거의 관찰을 미래를 결정짓는 것, 혹은 미래를 표상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p.100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인간의 추론 장치는 사소한 지구의 변화에 의해 명제가 뚜렷하게 달라지는 복잡한 환경에 맞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원시적 환경을 생각해 보라. 거기서는 ‘대부분의 식인 동물은 야생동물이다’라는 명제와 ‘대부분의 야생동물은 식인 동물이다’라는 명제 사이에 결과론적인 차이가 없었다. 오류는 있지만, 결과의 차이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우리의 통계적 직관은 미묘한 변화가 커다란 차이를 낳는 환경에 맞춰 진화해 온 것이 아니다. p.115
흰 백조를 보았다는 사실이 검은 백조가 없음을 확증해 주지는 않는다. 만약 내가 검은 백조를 한 마리를 목격한다면, 모든 백조가 흰색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가 살인하는 장면을 목격한다면 나는 그가 범인임을 실제로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설령 내가 어떤 사람이 살인하는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가 무죄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원리가 암 진단에도 적용된다. 단 하나의 악성종양만 발견되어도 암이 있음을 확증할 수 있다. 그러나 악성종양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암이 없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p.120~121
우리는 영장류 가운데 인간 종의 성원으로 규칙에 대한 허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주어진 문제의 차원을 축소시켜 그것들을 우리 머릿속에 집어넣기 위한 것이다. ~ 검은 백조는 단순화 작업에서 버려지는 부분이다. 예술적 작업과 과학적 작업도 차원을 줄이고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인간 욕구의 산물이다. ~ 소설, 이야기, 신화, 민담 등은 모두 똑같은 구실을 한다. 그것들은 세계의 복잡성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해 주며, 우리에게 세계의 무작위성으로부터의 피난처를 제공해 준다. 신화는 인간 지각의 무질서와 지각된 ‘인간 경험의 카오스’에 질서를 부여한다. p.140~141
자서전이란 어떤 특성을 후속 사건들과 자의적인 인과관계로 엮어낸 책이기 마련이다. 무덤을 생각해 보자. 실패자들의 묘지에도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차고 넘치게 묻혀 있다. 용기,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기, 낙관주의 등등. 백만장자들과 똑같지 않은가? 사소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두 부류를 나누는 진정한 요인은 단 한 가지다. 행운, 그저 행운일 뿐이다. p.194~195
내가 비판하는 것은 무지한 상태에서 벌이는 모험이다. 탁월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모험 행위를 유발하는 것은 허세가 아니라 확률에 대한 무지와 맹목이라는 증거를 제시한 바 있다. 앞으로 이어질 몇 장에서 나는 우리가 미래를 투시할 대 불리한 결과나 극단점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음을 좀 더 깊이 있게 다루려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현재 상태까지 우연에 의하여 도달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위험의 확률을 비슷하게 피하게 될 것임은 전혀 아니라는 점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p.209
열 계단만 밟으면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성공이 결코 우연의 소산이 아니었다고 말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룰렛 게임에서 일곱 번 이긴 도박꾼이 수백만 분의 1 확률을 손에 쥐었다고 자랑하며 초월적인 힘 덕택이거나 자신의 능력 덕택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p.213
오늘날의 교육제도에서 가장 큰 문제는 학생으로 하여금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지 설명을 짜내도록 강제하고, “잘 모르겠어요” 하고 판단을 유보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 질문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결과를 만들어 낸 원인을 설명하려 애쓴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머리를 땅에 박고 거꾸로 서 있는 꼴과 같이 결말에 맞추어 원인을 끌어대는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무작위적 원인이 작용하고 있는지 따져 봐야 한다. p.215
검은 백조 사태를 겪고도 거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이유는 발생하지 않은 사건이 우리에게 추상적인 영역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 우리 인류는 아직까지 추상적인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진화하지 못했으니, 우리는 언제나 전후 맥락을 들어야 이해를 할 수 있다. 무작위와 불확실성은 추상적인 영역에 속한다. 우리는 이미 발생한 것은 중요하게 여기지만, 일어날 수 있었을지 모르는 일은 무시한다. 요컨대 우리의 천성은 피상적이고 표피적일 뿐 아니라, 그러한 천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p.231~232
우리는 지난 일을 이야기로 꾸미는 데 능숙하다. 과거의 일이 쉽게 이해되도록 새로운 이야기까지 만들어 낸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이란 판단의 척도가 아니라 확신을 만들어 내는 능력의 원천이다. 여기서도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상자 속의 것’을 열어 보지 않고도 예견하는 플라톤적 사고, 즉 (사리에 맞지 않는) 법칙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p.236
문제는 인간의 사고방식이 매우 경직된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한번 이론을 만들어 내면 좀처럼 마음을 바꿔 생각하지 못한다. 따라서 오히려 자기 이론을 만드는 일에 늦는 사람이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우리가 불충분한 증거에 입각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고 하자. 이때 새로운 정보가 더 정확한 것이라고 해도, 기존의 견해와 모순되는 새로운 정보가 출현하면 쉽게 수용하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생각이라는 것도 일종의 소유물처럼 여기기 때문에 한 번 형성된 생각과 이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p.249~250
테틀록은 정치학과 경제학 분야 ‘전문가’들의 업무를 연구했다. ~ 분석 결과 (전문가들의 예측치의) 오류율은 예상보다 몇 배를 뛰어넘었다. 박사학위 소지자든 학부 졸업자든 결과에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테틀록이 분석을 통해 얻은 규칙성은 하나였다. 명성 있는 사람일수록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예측력이 떨어졌다. 그의 연구는 전문가들의 무능함을 입증하려 하기보다는, 어째서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무능함을 깨닫지 못하는지, 즉 어떻게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는지를 밝혀내려는 데 더 초점을 두고 진행된 것이다. 이들의 무능함에는 일정한 논리가 내재해 있었는데, 대부분 신념이라는 형식을 취하거나 자부심이라는 방어기제로 나타났다. 그의 연구는 이들이 어떻게 사후 합리화를 해내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분석하고 있다. p.259~260
예견의 문제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즉 인간의 본성과는 관련이 없되 정보 자체의 속성에 기인하는 고유의 한계가 그것이다. 앞서 나는 검은 백조 현상에 세 가지 속성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예견 불가능성, 파급의 막대함, 사후 합리화 등이 그것이다. p.280
칼 레이먼드 포퍼의 핵심 사상은 회의주의적 태도를 하나의 방법론으로 만들어 냈다는 점에 있다. 포퍼는 회의주의자를 건설적인 인물로 격상시켜 주었다. ~ 포퍼의 관심은 역사적 사건을 예견한다는 것의 한계, 역사학이나 사회과학 같은 말랑말랑한 분야를 미학이나 나비 수집이나 동전 수집 같은 취미 바로 위로 격하시킬 필요성에 집중되어 있었다. ~ 포퍼의 핵심적 주장은, 역사적 사건을 예견하려면 기술적 진보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지만, 기술적 진보란 근본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p.290
자유의지를 믿는다면 사회과학이나 경제 예측 따위를 진심으로 믿을 수 없다. 우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지 예견할 수 없다. 물론 교묘한 술수를 쓴다면 예외는 있을 수 있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쓰는 수법이 이것이다. 이들은 각 개인이 합리적 존재일 것이라고 가정하고 이들의 행동이 예상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p.308
‘예측’이라는 인간의 정신 능력은 인간을 진화의 법칙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만, 그것 역시 진화의 산물이다. 동물은 환경이라는 짧은 끈에 묶여 살아가지만, 인간은 그보다는 훨씬 긴 끈에 묶여 있다. 대니얼 데닛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예측 기계’다. 그에게는 인간의 마음과 의식은 인간의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필요에 의해 최근에 생겨난 특질이다. p.315~316
과거에서 교훈을 얻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뭔가 분명한 해법이 있다고 믿게 되지만 우리 선조들 역시 그들 나름의 해법을 얻었다고 믿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남을 비웃지만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또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다. 이것만 제대로 깨달아도 내가 서문에서 언급했던 저급한 사고방식이 되풀이되는 일은 없을 테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 자폐증을 ‘마음의 맹목(mind blindness)’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미래의 관찰자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능력을 ‘미래에 대한 맹목’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p.322~323
우리는 불행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한껏 과대평가한다. ~ 이런 종류의 예측 오류에는 의도가 있다. 즉 (새 차를 사거나 부자가 되는 일처럼) 중요한 행동을 유도하려는 동기를 부여하거나 불필요한 위험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예측 오류는 또한 좀 더 일반적인 문제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즉 인간은 도처에서 제 꾀에 넘어가는 존재다. 자기기만에 관한 트리버스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성향은 우리를 미래로 쉽게 이끌어가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자기기만이란 일정 영역을 넘어서면 바람직스럽지 않은 성질을 드러낸다. 자기기만은 불필요한 위험을 피할 수 없게 한다. p.324
나는 정규분포곡선을 충분히 이해하되, 이것이 성립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분명히 구분하려 한다. 나는 평범의 왕국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규분포곡선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이를 입증해야 할 사람은 바로 애용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가우스 분포 곡선의 편재성은 세계의 특성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 즉 인간의 머릿속에서 기인하는 문제다. p.403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보의 불투명성과 불완전성, 세계 작동 원리의 파악 불가능성이다. 역사는 그 속내를 우리 앞에 내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추측만 할 뿐이다. p.425
심리학, 수학, 진화론을 공부하여 이를 돈이 되는 일에 적용함으로써 그 가치를 확인하려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정반대의 해법을 권한다. 격렬하고 힘겨운 미지의 시장 불확실성을 연구함으로써 자연의 무작위성에 대한 통찰력을 얻어라. 그리고 이를 심리학, 확률론, 수학, 의사결정론, 통계물리학에 적용시켜라. 그리하면 이야기 짓기의 오류, 루딕 오류, 플라톤적 관념이라는 거대 오류 그리고 표상에서 실제로 접근하려는 거대 오류 등이 눈에 보일 것이다. p.426
가우스 곡선을 연구한 금융학 교수들이 비즈니스스쿨로 자리를 옮기더니 MBA 프로그램을 맡아 미국에서만 한 해에 수십 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모두가 이 짝퉁 포트폴리오 이론에 세뇌당하고 말았다. ~ 이리하여 가우스 분포는 오늘날의 금융업과 과학 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시그마, 분산, 표준편차, 상관관계, R-스퀘어, 그리고 이론가의 이름을 딴 샤프-비율 따위의 단어가 어엿한 전문 용어로 대접받게 되었다. 예컨대 뮤추얼펀드의 보고서나 헤지펀드의 자료를 펼치면 ‘위험’ 측정치라 주장하며 계량적 수치를 곁들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p.438~439
놓친 기차가 아쉬운 것은 애써 좇아가려 했기 때문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들이 생각하는 방식의 성공을 이루지 못한다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남들의 생각을 추종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택할 수만 있다면, 경쟁의 질서 바깥이 아니라 그 위에 서도록 하라. 고액 연봉이 보장된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것도,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면 돈보다 많은 것을 가져다준다. 이것이 운명에 욕설을 퍼부을 수 있는 스토아주의자가 되는 첫걸음이다. 인생의 기준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다면 이미 자기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p.463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행운이며 희귀 사건이며 엄청나게 희박한 확률의 사건이다. 지구보다 수십억 배 큰 행성에 묻어 있는 한 점 먼지를 생각해 보라. 이 먼지 한 점이 우리가 태어난 확률과 같다. 거대한 행성은 그 반대의 확률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사소한 일에 성내기를 그칠 일이다. 성(城)을 선물로 받았는데도 기꺼워하기는커녕 욕실에 곰팡이가 낄지 모른다고 전전긍긍하는 배은망덕자가 되지 말라. 선물로 받는 말의 입을 열어 흠을 찾으려 애쓰지 말라. 기억할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검은 백조라는 사실이다. p.464
대자연은 상호의존, 비선형성, 강인한 생태의 망으로 이루어진 복잡계다. 대자연은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늙은, 아주 늙은 사람이다. 대자연은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는다. 인간도 운동과 단식이라는 식습관을 따르고, 오래 걸으며, 설탕・빵・흰쌀・주식투자를 피하고, 경제학 수업 듣기와 《뉴욕타임스》 읽기 등을 자제하면 나이가 들어도 뇌기능을 쉽게 잃지 않는다. 결국 대자연은 긍정적 검은 백조를 활용할 방법을 인간보다 더 잘 안다. p.486~487
대자연은 과도한 연결과 지구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 지구에서 이동이 증가함에 따라 전염병이 심해질 것이다. 병원균 집단에서 소수의 종이 압도적으로 우세해질 것이고, 살상력 있는 병원균일수록 효과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 나는 지구화를 중단하고 여행을 가로막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부작용과 상충효과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지금 전 지구적으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있다. p.493~494
내 책이 출판된 모든 나라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을 때, 많은 사회과학자들과 금융계 종사자들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나를 비판하는 함정에 빠졌다. 내 책이 많이 팔렸고 독자들에게 쉽게 이해되기 때문에 독창적이지 않고 체계적 사상을 담고 있을 리가 없으며, 논평은커녕 읽을 가치도 없는 통속적인 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첫 번째 상황 변화는 내가 수학적・실증적・학문적인 10여 편의 논문을 여러 학술지에 발표하면서 일어났다. 이는 많은 책을 판 나의 죗값을 치르려는 시도였다. 그러자 모두 침묵했다. p.517
결국 나는 논쟁에서 중요한 것을 얻었다. 그것은 검은 백조 사건이란 자기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는 척도와 가짜 결과를 이용해 잘못된 신뢰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초래된다는 점이었다. ~ 직업상 확률 척도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 점은 내가 최소 4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을 포함한 많은 거물급 인사들과 토론자로 참여했을 때 확인되었다. ~ 댄 골드스타인과 나는 확률 도구를 사용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그들 중 97%가 초보적인 질문에 대답을 못 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충격을 받았다. p.522
《블랙 스완》 이전에 대다수 인식론과 결정이론은 현실 세계의 행위자들에게 생산성 없는 심리게임과 전희(前戲)에 불과했다. 거의 모든 사상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루고 있다. 《블랙 스완》은 사상사에서 우리가 모르는 것에 의해 어느 지점에서 상처를 입는지에 관한 지도를 제공하고, 지식의 허약성에 대한 체계적인 한계를 설정하려는 최초의 시도다. 그리고 이러한 지도들이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 정확한 지점을 제시하려는 시도다. p.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