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를 대표하는 장거리 걷기 여행길에는 경기 둘레길과 경기 옛길이 있다. 경기 둘레길은 경기도의 외곽을 따라 걸어가는 아름다운 경관과 역사, 문화, 생태 탐방로로써 총 길이 860km, 60코스를 원점 회귀하는 순환 둘레길이고
경기 옛길은 조선 시대 실학자 신경준 선생이 집필한 역사 지리서 도리고의 육대로六大路를 토대로 지역의 문화유산을 연결한 687km의 도보 여행길로 옛길을 따라 새길을 걸어가는 새로운 형태의 역사 문화 탐방로이다.
2022년 8월 12일 경기 둘레길을 걷기 시작하여 2년에 걸쳐 지난 8월 3일 860km 대장정의 길을 완주하였고 경기 옛길은 6대 간선로를 토대로 조성한 삼남길, 의주길, 영남길, 경흥길, 평해길, 강화길은 걷기를 마치었으나
작년 봉화길이 새로이 조성되어 이를 걷고자 한다. 봉화길은 조선 시대의 평해 대로와 영남대로의 사이에 있는 한양에서 경북 봉화까지 이어지는 중심도로인 봉화대로를 토대로 경기도 지역만 단절된 구간, 도보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구간 등은 대체로를 개척하여 새로이 조성한 역사 문화 도보 탐방로이다.
경기 옛길의 봉화길은 하남시, 광주시, 여주시, 이천시의 4개시 지역의 문화유산과 민담ㆍ설화ㆍ지명유래와 같은 스토리텔링이 곳곳에 녹아 있는 총 길이 135km, 9개의 길로 조성하여 2023년 10월 개통하였다.
봉화길의 첫 번째 길은 역대 조선왕조의 실록(實錄)과 왕실족보인 선원보(璿源譜)가 이운(移運)되던 길인 덕풍천길이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넘어오는 첫 관문인 덕풍천 길은 히남 검단산역 2번 출구인 은방울 공원에서 시작한다.
오늘도 경기 둘레길을 함께 완주한 걷기의 동지인 백두대간의 사나이 독도의 달인으로 누구나 공인하는 김헌영 총무와 함께 걷는다. 하남 검단산의 부근에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에 없어 광나루역의 한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오늘의 출발지인 검단산역에 소재한 하남시 홍보관에 들러 경기 옛길 봉화길 안내 자료를 얻고자 하였으나 업무 시작은 10시로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도보 여행자에게 시간은 황금과 같기에 기다릴 수가 없어 아무런 자료도 가지지 않고 오로지 스마트폰만 믿고 걷기에 임하지만 홍보관에 전시된 각종 자료가 핸드폰에 내장되어 있기에 염려할 것은 없다. 하지만 곳곳에서 걷기 인증 도장을 어떻게 찍을까?
우리 땅 걷기는 좋아서 하는 취미 활동이지 누구에게 자랑하기 위한 것이나,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기에 인증 도장을 짝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 개의치 않고 2번 출구로 나오니 은방울 공원이었다.
봉화길의 출발지이다. 하늘을 보니 구름이 푸른 하늘을 가렸다. 흐린 날씨지만 걸어가기에는 좋은 날씨아다. 한강을 이용하여 한양으로 들어오는 물산을 감시하고 단속한데서 유래한 검단산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이른 곳은 산곡천이다.
깨끗하고 말끔하게 정비된 하천변의 보행자 길과 자전거 길에는 천변을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자전거 애호가들로 붐빈다. 말끔하게 정비된 하천을 보니 내 마음의 홍진의 때가 씻겨간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냇물에서 자랐다. 목욕도 하고, 고기도 잡고, 썰매도 타는 놀이 공간이었지만 산업화와 더불어 그 맑고 깨끗한 천이 악취가 풍기는 폐수가 흐르었다가 생태 하천으로 복원되어 다시금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산곡천 山谷川은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에서 발원하여 한강으로 유입되는 하천이다. 우리의 발걸음도 산곡천을 따라 한강을 향하여 걸어가는데 정면으로 예봉산이 우뚝 솟아 우리를 인도하여 힘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예봉산은 “조선 시대 자료인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예빈산(禮賓山)’으로, 『대동지지(大東地誌)』에는 ‘예봉산(禮奉山)’으로, 일제 강점기 자료인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예봉산(禮峰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의 ‘예봉산(禮峯山)’이라는 이름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예봉산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고 하였다.
왜 일체는 우리의 산하대지에 멋대로 그 지명을 바꾸었을까? 하늘을 향에 우뚝 솟은 장쾌한 예봉산의 산줄기에 힘찬 기운을 느끼기에 우리의 기상과 얼을 꺾고자 받들 奉자를 봉우리 峰자로 함부로 고친것이 아닐까?
사람의 이름을 다른 사람이 함부로 바꾼다면 憤氣撑天, 怒發大發하면서 사물에 대한 개명 앞에 침묵하고 있는 것은 분명 부끄러운 일일 텐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 침묵이 활화산 되어 타오를 날을 맞이할 수가 있을까?
산곡천의 물은 한강으로 합수되고 팔당대교가 오른쪽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덕풍천으로 가는 길은 강변 자전거길, 그 옆의 산책길, 벚나무 가로수길, 왼쪽에 메타세퀘이어길이 있는데 경기 옛길을 인도하는 표지기가 부착되어 있지 않아 봉화길을 이탈하기 쉽다.
지도를 확인하고 벚나무 길을 따라 걸어간다. 걸어도 걸어도 경기 옛길 표지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지도의 가는 길을 확인하니 일직선으로 진행하는 외길이 되어 좌, 우의 갈림길을 고려하지 않고 진행하니 냇물이 흐르고 있다.
덕풍천이었다. “덕풍천은 경기도 하남시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하천으로 한강에 합류한다. 한강의 제1지류이다. 시의 남부 상사창동의 남한산성 부근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가 중부고속도로의 교량인 덕보교를 기점으로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꾼 후 시 중심부를 통과하여 한강에 유입되는 준용하천이다. '덕풍동을 지나가는 하천'이라 붙여진 이름이다.”[네이버 지식백과]
덕풍천에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데 신평교를 지나고 덕풍 2교를 지나도 경기 옛길의 유도 표지기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직선의 외길일지라도 도보 여행가들이 길을 걸으면서 이 길이 경기 옛길임을 확신하고 지나가야 하건만 이처럼 표지기가 부착되어 있지 않으면 반신반의하게 되어 길을 이탈할 확률이 매우 높다.
오로지 덕풍천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는 길을 봉화길로 여기며 천변의 산책로를 따라 진행할 때 덕보교를 지나면서 오고 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자 김헌영 총무는 독도의 달인답게 지도를 확인하며 봉화길은 덕풍천의 산책로에서 차로에 진입하여 인도를 따라 진행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덕풍천 산책로에서 도로상의 인도로 진입하는 곳에는 하남 위례길을 알리는 표지목이 세워져 있다. 이제부터 자동차가 내달리는 차도와 나란히 인도를 따라 걸어간다.
이제까지 거의 보이지 않았던 봉화길을 인도하는 표지기가 전봇대 곳곳에 매달려 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만난 듯이 반가웠다. 하지만 가는 길은 자동차 도로상의 인도가 되어 자연의 향연을 낄 수 없는 딱딱한 길이었다.
그런데 “이 길은 병자호란 때 청군과 대치하여 남한산성에서 45일간 항전할 때 보부상들의 희생적인 보급로로 이용되는 등 국난 극복의 현장이었고 역대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가 이운되던 역사 보장(保藏)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길”(경기 옛길 홈페이지) 이라고 하였다.
역사의 향기를 접하니 자동차 도로를 걸어간다는 불만이 사라질때 광주향교에 이르렀다. 광주향교는 원래 고읍(古邑) 서쪽에 있던 것을 숙종 때에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으로 경기 지역에서 평지에 세운 유일한 향교라고 하였다.
국립 지방 교육기관인 향교의 명성이 선비들이 강학하던 사설 교육기관인 서원에 미치지 못한 것은 오늘날 국공립학교가 이름난 개인 학원의 명성에 못 미치는 것과 같은 현상으로 볼 수가 있을까 ? 라는 쓸모없는 생각도 해보며
가는 길에 대한 지도를 확인하니 남한산성 전승문까지 오로지 외길로 가는 길이었는데 전승문 좌측, 3.9km를-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표지판을 따르면 좌측으로 방향을 전환하도록 인도하고 있지만 이것은 위례길인 남한산성 옛길을 가는 것이다. 경기 옛길인 봉화길은 직진으로 진행하는 길로 주의를 요했다.
중통마을을 지나서 공영 주차장에 이르러 차도는 끝이 나고 이제 남한산성으로 진행하는 산길을 예상하였으나 길은 여전히 아스팔트가 놓여있어 대형차량들의 통행은 없지만, 소형 차들은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었다.
식당 지대를 지나 계곡 물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는데 바로 자연의 향기를 마음껏 뽐냈던 덕풍천의 발원지가 되는 계곡의 물소리였다. 홍수 피해가 있었는지 사방댐을 건설하여 놓았고 이제 전승문으로 오르는 흙길이 우리를 맞았다.
하지만 경사가 급한 탓인지 나무 계단이 놓여있다. 계단이 숲속에 설치되어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하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람들의 발길마저 드물은 탓일까? 계단에는 푸른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한 계단씩 오르기에는 간격이 좁고, 두 계단씩 오르기에는 넓어 숨소리가 빨라진다. 계단은 예상보다 길게 놓여있었다. 계단길이 끝이 나고 전승문의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갈지자로 돌아가고 있어 완만한 오르막길이 되었다.
전승문에 이르니 현판은 걸려있지 않았지만 팔작지붕 양 날개의 처마가 날카롭게 솟아 누구에게도 질 수 없는 기상에서 병자호란의 교훈인 ‘오로지 승리만이 있을 뿐 패배는 없다’라는 기개가 넘쳐나고 있었다.
전승문은 남한산성 북문이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배수의 진을 친 조선의 군사들은 북문을 통해 청나라 군사들에게 기습공격을 감행하였지만 대패하여 끝내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여야 했던 비극으로 인해 다시는 전쟁에서 패배해서는 아니된다는 교훈을 담아 전승문戰勝門으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삼전도의 비극을 새기면서 종착지인 남한산성 로타리에 이르니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답게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민족 최대의 비극이 서려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되겠다.
● 일 시 : 2024년 10월 6일 일요일 흐밈
● 동 행 ; 김헌영 님
● 동 선
- 09시07분 : 하남 검단산 역 2번 출구
- 10시10분 : 덕보교
- 10시35분 : 광주향교
- 11시15분 : 공영 주차장
- 11시55분 : 전승문(북문)
- 12시05분 : 남한산성 로타리
● 총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 12.8km
- 소요시간 : 2시간5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