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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우 목사 0101 - 8722 - 9185
아모스 6장 1절과 4절로 7절 말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부자
어제 밤새 비가 와서 아마 오늘부터는 기온이 많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우리 어르신들께서는 특별히 건강에 유의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봉독해 드린 아모스 6장 1절과 4절부터 7절 말씀은 어쩌면 오늘날의 우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신 말씀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했던 주전 760년애서 주전 750년 전의 상황과 너무나도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했던 시기는 이스라엘이 최고로 번성했던 시기였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남 유다 왕국과 북 이스라엘 왕국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요, 남유다는 웃시야 왕이 다스리고 있었고,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이스라엘 주변국들은 다들 별 볼일이 없었습니다.
북 이스라엘 왕국은 군사력으로나 경제력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아주 강한 나라였습니다.
아마 솔로몬 왕이 다스리던 이후로 최고의 번성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현재, 세계 어디에 내다 놓아도 꿇릴 게 없잖아요?
엊그제 뉴스를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지하 발전소를 건설하겠다고 하던데요, 뭐든지 앞서가고 뭐든지 자신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 나라입니다.
자랑스럽죠. 위대한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라가 부강할 때, 우리들은 더 조심해야 합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했었던 그 당시의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라가 외형적으로는 부강하고 번성해서 태평성대를 누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마는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온갖 탐욕과 부정과 부패가 가득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은 자기 권력을 이용해서 온갖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부패 수준이 심각했습니다.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아먹고서 판결은 엉뚱하게 내려주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마찬가지여서 제사장들은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가 얼마나 거룩하고 신령해야 되겠어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마저도 형식적으로 드리고, 가식적으로 드리고, 제물에만 탐을 내고 그랬단 말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총체적인 부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때에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6km정도 떨어진 곳에 드고아(Tekoa)라는 마을에서 목자로서 뽕나무를 키우는 농부가 살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아모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급하셨으면, 한 번도 선지자 교육을 받아 보지도 않은 사람을 선지자로 세웠겠어요?
아모스는 제사장 집안도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아모스는 남 유다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남 유다 사람 아모스를 불러다가 북 이스라엘에 가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부르셨던 것입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선지자도 좋은 소리를 해야 듣기 좋다고 그러지, 귀에 거스르는 말을 하면 다들 듣기 싫어합니다.
요즘에 기독교 TV에서 소위 말하는 ‘뜨는 목회자’들을 보세요!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들어야 인기가 막 올라갑니다.
재미있게 해 주고 복 받으라고 그러고, 하나님게서 함께 해 주실 것이니까 걱정말라고 그러고 그래야 좋다고 그럽니다.
하긴 목회자들 치고 좋은 소리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아모스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더구나 남 유다 사람이 북 이스라엘에 가서 회개하라고 외치고, 당신들 이제 얼마 안 가서 망하게 될 거라고 외쳐댔으니, 누가 좋다고 그러겠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입에 넣어 주시는 말씀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모스 선지자는 자기 나라도 아닌, 북 이스라엘에 가서 회개를 촉구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이게 어디 보통 일이었겠습니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예요.
호세아 선지자는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외쳤던 사람이었는데요, 아모스 선지자는 오직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공의’만 외쳐대는 아주 외골수 선지자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1절을 보세요!
처음부터 아주 노골적으로 강한 어조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나라의 지도자들, 권력층에 있는 사람들, 부자들을 향해서 외치고 있는 것 좀 보세요!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여! 이스라엘 집이 그들을 따르는도다.”
시온에서 교만한 자들은 남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을 말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들은 북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뭐예요?바로 ‘교만’입니다.
야고보서 4장 6절 말씀에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아멘!)
그런데도 교만할 거예요?
제사장이면 다예요? 사회적으로 지도층에 올라가게 되면 더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지 하나님의 산, 시온에서 거들먹거리고 돌아다녀도 되는 거예요?
남 유다 왕국은 예루살렘 성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나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살았는지 모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우리 남쪽 유다에 있으니 이게 얼마나 다행이냐? 이게 얼마나 축복이냐? 여기에서 우리들이 제사장으로 섬기고 있다니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라고 생각을 하면서 교만을 떨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가 하면 북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남쪽에서는 종교를 가지고서 자랑질을 하고 있었고요, 북쪽에서는 부강한 경제력을 믿고서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하긴 주머니에 돈이 없으니까 괜히 어깨가 축 쳐지고, 기운이 없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런데요, 사실 알고 보면 돈만큼 믿을 게 못되는 것이 없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세요!
재벌요? 그것도 하루아침에 다 무너지고 맙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거 별 거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그 잘난 돈을 자랑하면서 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자기들만 그렇게 살다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가 잘못 살면 그 영향이 모든 국민들에게 미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1절 하반 절에 “이스라엘 집이 그들을 따르는도다!”
백성들이 다 복고 배우는 거예요.
그러면 종교지도자들이나 정치인들만 잘 하라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요?
그렇죠?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에요. 여기에 계신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할렐루야!)
그럼 4절부터 5절, 6절까지 다 같이 봉독해 보시겠습니다.
“상아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누가 그렇다고요? 지금 내가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 거예요.
‘아니, 목사님! 우리같이 지리산 자락에 사는 노인네들이 무슨 상아 상에 눕고, 어디 송아지 고기를 먹고, 풍악을 울리면서 주색잡기를 한단 말인가요?’
그러고 보니까 정말 그렇네요.
그런데요, 그래도 옛날을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게 얼마나 편해졌어요?
누가 요즘 같은 세상에 한겨울에 냇가에 나가서 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는 사람이 있어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한나절을 자고 일어나도 뭐라는 사람이 없고 말이죠.
냉장고를 열면 꽁꽁 얼려 놓은 고기며, 먹을거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결국에는 냉장고 속에 있는 거 다 먹지도 못하고 내다 버려야 됩니다.
그렇게 먹을 게 흔한 세상이 되었어요.
동네마다 논에다가 코스모스를 심고, 무슨 튜울립인가 뭔가 하는 꽃들을 심고, 논을 묵이면 벌금을 물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주고 말이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가난할 땐 먹고 살기가 바빠서 다른 생각할 틈이 없었습니다.
고난과 고통으로 정말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에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부르짖어서 기도하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던 말입니다.
그런데 이젠 먹고 살만 하니까, 보세요! 간절함이 없는 거예요.
일을 안 해도 먹고 사는데, 뭐가 걱정이 되겠어요?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서 기도하지 않아도 통장에 돈이 가득한데 얼마나 마음이 든든하겠어요?
그러나 하나님게서는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계십니다.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여! 이스라엘 집이 그들을 따라는도다.”
우리들이 잘못 살면 이 나라 백성들은 다 우리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서 그대로 따라한다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우리들은 우리 동네의 지도자들입니다.
영적으로 우리들이 우리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인 줄 믿습니다.
우리들이 잘 하지 못하면, ‘저 예수쟁이들 좀 봐라! 저것들도 저렇게 사는데, 우리들이 뭐 이렇게 사는 게 무슨 흉이 되겠느냐?’라고 하면서 다 그 죄악의 길을 따르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어요? 바로 우리들에게 있습니다.(할렐루야!)
잘못 생각하면, 자본주의를 부정할 수도 있습니다.
‘부자로 사는 것이 나쁜 거란 말인가?’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부자’입니다.
함께 따라해 보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부자!”(×2)
사랑하는 우리 칠정교회 성도님들께서는 정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부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부자는 어떤 부자일까요?
아닌 게 아니라, 저나 여러분들이나 오늘 성경 말씀에 나오는 이런 부자가 되기는 어려울 거예요.
우리가 어디 고대광실 높은 집에 살면서 상아 상에 누워서 잠을 자겠습니까?
무슨 돈이 있다고 만날 함박스테이크, 비프 시테이크를 시켜서 칼질을 하겠어요?
오늘 예배가 끝나면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하게 될 텐데요, 아마 오늘 메뉴가 김치찌개나 아니면 된장찌개인 것 같습니다.
어제 제가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데, 전화가 왔더라고요.
“들어오는 길에 두부 한 모만 사다 주세요!”
제 아내가 전화를 했더라고요.
진짜 어제는 돈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다행이 우리가 단골로 다니는 원지 마트에 가니까 포인트 적립된 것이 있어서 1,300원짜리 두부 한 모를 포인트로 차감하고 사왔습니다.
물론 이 바닥에서 어딜 가도 저에게 외상 안 주는 집이 없습니다.
그런데 진짜 돈이 10원도 없으니까 참 난처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제 두부 한 모를 사 오면서 기도를 했다는 거 아니겠어요?
“하나님, 저도 좀 부자가 되면 안 될까요?”
사실 부자도 아니죠, 뭐. 아무 때나 두부 한 모 살 정도만 되어도 참 좋겠다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저는 어쩌다가 보니까 어제 같은 일이 생긴 거죠. 사실 시골 교회 목사님들 사모님들이 그런 분들이 무척 많습니다.
어디 시골 교회만 그렇겠어요?
도시 지역에서도 어렵게 목회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하실 교회에서, 2층 상가 교회에서, 아주 어렵게 목회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하루 하루를 품을 팔아서 사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나물을 뜯어다가 시장바닥에 앉아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잘 곳이 없어서 쪽방을 찾아서 전전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분들에 비하면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여러분, 부자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냥 부자 말고,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부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는 어떤 부자일까요?
첫 번째, 겸손한 부자입니다.
돈 푼이나 생기면 얼마나 거들먹거리는지 몰라요.
오늘 본문 1절 말씀에도 보세요!
남쪽 유다 나라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이 있는 시온에 산다고 얼마나 콧대가 높았습니까? 교만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또 얼마나 강성대국을 자랑하면서 사마리아 산에서 자기들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믿고 마음이 든든했잖아요?
사람이 없을 땐 주눅이 들고, 돈 푼이나 있을 땐 거만을 떨고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없을 때에도 당당하게, 그리고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셔서 부자가 된다면 더욱더 겸손한 부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등 따숩고 배부르니까, 점점 더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악기를 만들어서 연주했는데,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다윗이나 된 것 마냥 온갖 악기들을 다 동원해서 니나노 니나노 하면서 노상 풍악을 울리면서 술판이나 벌리고 있었던 거예요.
더 가관이었던 것은 대접에다가 포도주를 마셨고요, 귀한 기름을 몸에 쳐바르면서 허영을 떨었다는 것입니다.
포도주나 대접은 다 성소에서 귀하게 쓰이는 물건들입니다.
그리고 기름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전에서만 쓰이는 물건들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것들을 가져다가 개인적인 사치와 향락을 위해서 썼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리를 도둑질 하는 교만의 극치였습니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하나님의 자리를 넘볼 만큼 교만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우리 칠정교회 성도님들은 겸손한 부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부자는 정직한 부자입니다.
70년대, 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나게 경제 성장이 일어났습니다.
기업가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국민소득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라고 그럽니다.
“잘 살아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동네마다 공장마다 노상 이 노래가 스피커로 울려 퍼졌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새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너도 나도 잘 살아 보겠다고 정말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골목길을 쓸고, 돈이 없어서 비료를 못 사니까 마을마다 식량증산을 위해서 퇴비를 만들고, 논둑마다 콩을 심고,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는지 몰라요.
북한 사람들은 천리마 운동에다가 새벽별 보기 운동을 했거든요.
그때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새마을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하루 24시간동안 재봉틀이 쉬지 않고 돌았습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아가씨들이 도시로 나가서 미싱 시다라고 그러죠?
재봉틀 기술자를 돕는 일부터 시작해서 졸다가 재봉틀 바늘에 얼마나 손가락을 다쳤는지 몰라요.
그렇게 해서 엄청난 부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4대강 사업을 통해서도 큰 이익을 남긴 사람들이 있어요.
시대마다 크고 작은 국책 사업들이 시행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정직하지 못한 기업가들의 횡포는 끊이질 않았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라고 믿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긁어모았습니다.
정직하게 적금통장에 꼬박꼬박 저금을 해서 부자가 된 사람들도 많았지만, 일부 부도덕하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돈으로 펑펑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지금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눈 먼 돈이라고 그러죠?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고 그럽니다. 못 먹는 게 바보래요.
그러나 정직하지 못한 부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세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직한 부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나누어 주는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한동안 “배워서 남 주자!”라는 표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밤잠을 못 자면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 이유가 뭡니까?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은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내가 고생해서 번 돈이니까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거라고요?
오늘날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다가는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 어떤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될지 모릅니다.
꼭 그런 위협이 아니더라도 자발적으로 나누는 일에 용감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연말이면 그런 미담들이 많이 소개가 되고 있잖아요?
‘김밥 할머니께서 평생을 벌어서 모으신 돈을 어디 학교에 장학금으로 기탁을 했다.’
‘자신은 아까워서 한 푼도 못 쓰면서도 그 연세 많으신 분이 하루도 쉬지 않고 종이 박스를 주워서 판 돈으로 무슨 무슨 귀한 일을 했다.’
얼마나 듣기 좋은 소식입니까?
우리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소식이잖아요?
무엇보다도 나누는 부자가 정말 최고의 부자인 줄 믿습니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잖아요?
혼자 움켜쥐고 사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
어제 어떤 분이 돈을 주시면서 ‘꼭 필요한 데 쓰세요! 목사님께 드리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 바치는 겁니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너무 감사해서 고맙고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드렸더니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께서 돈은 이런 때 쓰라고 주시는 거잖아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분이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무척 행복해 보이시더라고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정말 부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부자들이 되셔서 겸손하게, 정직하게, 나누고 베풀도 드리면서 멋지게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