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 맘의 딸/박혜숙
창문을 여니 파도무늬의 아침노을이 예쁘다. 노을은 잠깐 왔다가는 인생에 비유될 만큼 짧다. 사라지기 전에 찍어놓으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해뜨기 전의 동쪽하늘엔 뭉게구름에 테가 두른 분홍 노을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남쪽엔 파도가 풀리기 시작하며 햇님 맞을 준비를 한다.
저녁노을 중엔 주황색 불꽃이 타올라 황혼기 마지막 정열을 보는 듯 강열했는데 해뜨기 전 분홍 노을은 정원의 볼 빛깔이다. 아이들이 세상으로 나가기 전 설레는 마음이랄까? 정원을 떠올리자 푹 웃음이 나온다. 처음 그를 낳았을 때 까만 피부 되 박 이마에 네모 턱 공부 많이 시켜야겠다고 한숨지었다.
하지만 아이들 얼굴은 자꾸 바뀐다. 열심히 진화해 까만 눈동자의 깜찍한 모습으로 보는 사람마다 예뻐졌다고 하면 엄마는 항상 현재가 제일 예쁘다고 옷과 장신구에 신경 쓴다. 누가 사줬는지 기억해 입을 때마다 말하고 병원놀이를 좋아해 날 환자로 만들곤 한다.
그와 나는 밀당 중인데 내가 조금 이기고 있다. 여름휴가를 용평에서 보내겠다고 엄마 오빠와 KTX를 타고 왔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A형 남편에게 휴가를 주고 1박2일만 합류했다. 사위 밥까지 더운데 해 먹이는 장모에 대한 배려도 한몫했다. 3시 반부터 나에게 의지해서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지내는 정원은 할머니 사랑해. 보고 싶었어. 살며시 뽀뽀도 하고 아양을 떨었다.
그런데 엄마가 휴가 동안 자기 옆에 있으니,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엄마 손만 잡고 다녔다. 식사하러 가서 세 테이블에 나눠 앉았는데, 남편 식탁에는 술꾼 사위들이 가고, 내 앞에서 만화를 보던 정원이 비좁은 엄마 옆으로 가는 바람에 혼자 막국수를 먹었다.
"나만 왕따야."
" 껌 딱지들 때문에 죽겠어."
딸은 민망함을 얼버무린다.
보름을 쉬었어도 더위는 가시지 않는다. 손주 돌보러 서울 가기가 정말 싫다. 엄마가 있으면 쳐다보지도 않는 손주를 위해 남편과 시원한 집을 놔두고 귀경하는데 짜증이 난다. 3시 반 어린이집 차에서 내리는 정원에게서 가방만 받고 손도 잡지 않고 앞장서 걸었다. 정원도 웃지도 않고 따라온다.
집에 와 텔레비전 틀어달라고 하여 바보 되려고 그러냐 말리지도 않고 만화 틀어주곤 침대에 누워 쉬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용평 살림살이 갈무리하고 밑반찬을 만들었다. 대청소하고 빨래해 널고 먼 거리를 왔더니 몸살기가 있다. 더구나 긴 여행 후 손주 보러 가다 어깨를 다친 전적이 있어 몸조심을 했다.
정원이 전과 다른 것이 느껴지는지 침대 옆에 누워 손을 잡는다.
"감자 할아버지 네서 할머니 손을 뿌리치더니 왜 잡아."
" 엄마가 더 좋아서 그랬어. 그런데 할머니는 왜 오래오래 있다 왔어."
" 거기는 시원해서 좋으니까 지금도 오기 싫은데 너희들 때문에 억지로 왔지."
저녁 밥상에 삼겹살을 굽고 용평에서 따온 오이를 주니 내 밥에다 제일 큰 고기를 얹어주고 할머니 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골고루 먹고 키 클 거라며 우유 반 컵까지 마셨다. 편식이 심한 정원을 참 예의가 발라. 칭찬하고 돌아오는데 에이스 과자 한 봉을 쥐어주었다. 이제 바보짓 그만 해야지. 분홍노을에 다짐하자 바람이 볼을 때린다.
화초들이 보름 동안 말라죽진 않았다. 동네에 도랑이 없어 허덕이는 새들 먹으라고 물 떠놓는 고무다라에다 약한 화분들을 앉혀 놓았지만 옥상은 비가 얼마나 내려주는가가 관건이다. 용평에 있는 동안 화초들이 목말라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우리 식구들은 동물을 좋아하고, 화초 키우는 것을 귀찮아해서 물주라고 하지 않았는데 비가 며칠 안 오면 딸들이 물을 주었다. 타죽은 것이 없어 다행이다 싶었는데, 분꽃이 나팔꽃 넝쿨 사이로 손을 내저으며 숨막혀한다. 가기 전만해도 화초들이 제 화분마다 똑바로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팔꽃 사이로 노란 해바라기 꽃이 보였다. 세우려고 보니 수십 번을 감아 쓰러트린 다섯 개의 해바라기가 손가락 굵기의 줄기를 가는 끈의 나팔꽃 넝쿨이 칭칭 감아 쓰러트렸다. 해바라기가 훨씬 강해 보였는데 넝쿨손의 공격에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우리 몸도 저렇게 병균의 공격을 받고 쓰러져 절규할 것 같아, 해도 너무 한다고 욕을 하며 그 주변에 있는 나팔꽃 뿌리를 뽑고 넝쿨을 걷었다. 불과 보름 동안 그 아래에서 햇빛도 못 보던 채송화, 실란, 백합들이 살았다고 인사해 왔다. 가장자리만 나팔꽃을 남기고 제거했다.
과유불급, 사람이든 화초든 욕심이 과하면 제거된다.
이제 매일 옥상에 올라가 그 동안 방치되어 곤욕을 치른 화초들에게 정성을 쏟아야겠다. 그렇게 흙을 만지고, 화초에게 정성을 다하다보면, 귀하게 꽃을 피우고 내 몸에 면역력도 나아지겠지. 5살짜리 손녀에게 삐져 토라졌던 속 좁은 할미 마음도 좀 넓혀야지.
'아무렴 아빠 엄마 다음이 나지. 그걸 질투해?'
엄마가 보고 싶어 커튼을 젖히며 왜 이렇게 안 깜깜해져. 울상 짓는 정원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더울 땐 해가 오래 있다 넘어가고 추울 땐 해가 빨리 넘어가는 거야. 엄마가 보고 싶어 밖이 캄캄해지기를 기다리고, 싫은 날도 어린이집을 가야하는 워킹 맘의 딸로 살아가는 손녀를 꼭 안아준다.
직장을 고만두려 했을 때 '지금은 엄마보다 돈이 더 필요해.'했던 딸의 딸이다.
첫댓글 맞벌이 부부들이 겪는 애환이
대를 이어가며
비슷한 아픔이 있어요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