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흥사(新興寺)
이 가람은 신라(新羅) 진덕여왕 6년(서기652)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향성사(香城寺) 라고 하였다. 이 이름은 불교의 중향성불토국(衆香城佛土國)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인데 중향성(衆香城)은 금강산(金剛山) 철위산(鐵圍山)을 의미하며 불토국(佛土國)은 부처님께서 교화 할 대상적 국토라는 의미와 정치적 형태의 국가라고 하는 뜻과 어울린 말이다. 향성사가 화재를 당한지 3년 후 의상조사께서 능인암(현재 내원암)터에 다시 중건하고 사명(寺名)을 선정사(禪定寺)라고 개칭 하였다.
그 후 946년간 수많은 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 정진하여 왔으나 조선 인조20년(서기1642)또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된 것을 2년후 영서(靈瑞), 혜원(惠元), 연옥(蓮玉) 세분의 고승들께서 중창을 서원하고 기도 정진 중 비몽사몽간에 백발신인이 나타나서 지금의 신흥사 터를 점지해 주며 “이곳은 누 만대에 삼재가 미치지 않는 신역(神域)이니라” 말씀 하신 후 홀연히 사라지는 기서(奇瑞)를 얻고 절을 중창하니 지금의 신흥사이다.
절 이름을 신인(神人)이 길지(吉地)를 점지해 주어 흥왕(興旺)하게 되었다 하여 신흥사(神興寺)라 하였으며 1647년에는 대웅전을, 1661년에는 해장전(海藏殿)을, 1715년에는 설선당(說禪堂)을, 1737년에는 명부전을, 1801년에는 용선전(龍船殿)을, 1813년에는 불이문(不二門)을 세웠다.
1858년에는 벽하(碧河)가 구월산 패엽사의 16나한을 옮겨 해장전에 봉안한 뒤 응진전이라고 이름을 고쳤다. 6·25전쟁 때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 국가의 지원과 신도들의 시주로 복구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극락보전·명부전·영산전·보제루·시왕전·불이문·설선당 등이 있다. 이밖에 향성사지3층석탑(보물 제443호), 〈은중경언해 恩重經諺解〉, 20여 기의 부도 등이 있다.
6·25사변때 고성군 건봉사는 전소되었고 영북지역의 대본산 기능이 마비되었을 무렵 고암, 성준 두 스님의 원력으로 여기 신흥사를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로 승격하여 업무를 이관하게 되었다.
이후 신흥사는 영동지역의 불교를 새롭게 일으키는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불사를 전개해 나갔다. 속초노인복지관을 개관하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등 지역사회에서 사회복지사업에 헌신하는 한편, 춘천에는 불교방송지국을 개국하여 포교에 전념하는 사찰이 되었다.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자 신흥사가 과거의 신흥사가 아니라 새로운 신흥사가 되었다며 신흥사(新興寺)의 귀신 신자(神字)를 시대에 맞게 새로울 신자(新字)로 고쳐 사용하자는 중론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1995년부터 영동불교를 새로 일으킨다는 서원을 담아 사명(寺名)을 신흥사(新興寺)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화암사(禾巖寺)
금강산 팔만구암자의 첫번째로 손꼽히는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에 위치한 화암사(禾巖寺)는 전통사찰 제27호로 신라 혜공왕 5년(769) 진표율사(眞表律使)가 비구니 도량으로 창건하였다. 진표율사는 법상종의 개조(開祖)로서 법상종은 참회불교의 자리매김에 큰 영향을 미쳤다.지금으로부터 359년 전인 인조 11년(1633) 택당 이식(李植, 1584~1647)선생이 간성군수로 있을 때 썼다는 간성지 화암사조에 의하면, 「천후산 미시파령(天吼山 彌時坡嶺=미시령) 밑에 화암(禾岩)이란 바위가 바른편에 있기 때문에 절 이름을 화암사라 했다. 이절은 산허리에 위치하고 있어 가까이는 영랑호, 멀리는 창해에 임해있고 양양, 간성의 모든 산과 평원심곡이 눈 아래 보이고 넓고 아름다운 경치는 절이 토해 놓은 것 같다. 절 뒤에는 반석과 폭포가 특수한 모양을 하고 있어 가히 볼만하다. 1622년(광해군 14)에 절이 불에 타버렸으며, 지금은 중건 중이나 완공되지 못했다. 옛날에는 크고 우아한 문루가 있었는데 망가졌다. 문루에서 바라보는 창해에서 해 뜨는 모습은 강호를 찾는데 있어 이곳보다 나은 곳이 없건만 옛사람들을 찾아와 놀아보지 못했으며 지방사람들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또 관동지방에는 이름난 곳이 많아 과객들이 이곳까지 올 겨를이 없었으므로 절 이름이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간성군 남쪽 70리되는 곳에 있는 산으로서 석굴이 많고 그곳으로부터 바람이 나온다 하여 천후산이라 부른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양양과 간성 사이에 큰 바람이 많은 것도 이 까닭이라 한다. 뛰어난 성인대가 있는데 돌모양이 불상과 흡사해서 성인대라 하였다. 그 옆에 또 큰 바위가 있는데 마치 곡식을 쌓아둔 둥근 곳집같이 보인다하여 세속에서 화암(禾岩)이라 부른다.또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옛날 이곳에서 적과 싸울 때 짚으로 만든 거적으로 이 바위를 둘러싸서 마치 벼가리 같이 보이게 하여 적을 물리쳤다 하여 화암(禾岩)이라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화암사는 창건 이래 고종 원년까지 1096년간 화재가 5번이나 났는데 이것은 화암이란 이름 때문이라는 것이다. 화는 불을 의미하는 것이니 화자를 쓰지 않도록 하고 화자 대신 수자로 쓰자는 것이다. 풍수음양오행설에 의하면 수극화(水克火)로 물은 불을 이긴다 하여 물 수(水)자를 써야겠는데 수(水)자를 쓰자 하니 절 이름에 대한 역사적 의의가 없어진다 해서 수(水)대신 수(穗)자를 쓰면 음(音)은 수(水)와 같고 뜻은 화(禾)와 같으니 수암(穗岩)이라 했으나 또 화재가 생겨 1912년에 화암(禾岩)으로 다시 고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항간에서는 이 바위를 ‘수바위(穗岩)’로 부르게 되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수(穗)자는 좀 어려운 한자여서 아는 사람이 적고 바위 경치가 아름답다 해서 수바위(秀岩)라고 세속에서 쓰기도 한다. 1911년 건봉사의 말사가 되었고, 1915년 소실, 6.25 전쟁으로 폐허, 1986년 중창되는 등 화재와 중건을 거듭하다 1991년 세계잼버리대회때 불교국가 천 여 명이 대웅전에서 수계를 받아 유명해졌다. 동쪽으로는 발연사가 있고, 서쪽에는 장안사, 남쪽에는 화암사가 있어 금강산에 불국토를 이루려는 진표율사의 뜻이 담겨 있는 사찰이다.화암사는 오랜 세월 동안 흙속에 묻힌 옥돌처럼 빛을 보지 못하다가 근래에 이르러 동선 주지스님의 원력으로 많은 불사가 이루어져 새로 재건 단장되어 많은 불자들과 탐방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최북단 금강산 남쪽 첫 관문인 사찰로서, 2011년 4월 5일(음력 3월 3일 삼짇날)부터 온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위한 미륵대불과 해맞이 공원조성 불사 1000일 기도정진 중에 있다.전국 불자들의 수희 동참과 함께 미륵부처님의 나투심으로 하루속히 통일이 이루어지고 이 나라가 미륵부처님의 무량한 가피와 복덕으로 불국 안락정토가 구현(具顯)되기를 간절히 발원하고 있다.







첫댓글 스님.일심행.일광심.법인행.양달석.장순남.장순분.대구보살.고불심
녜 9명신청으로시작입니다
해인(이종득) 신청합니다.
안타깝게 아직은 보살님이걷기불편하신모양이네요 열번째?
천우외1명 신청합니다,
회장님이 어찌 이렇게 일찍신청하셨을까나 짝지한명까정?12번까지입니다
이래 일찍신청하는거보니 저도 신도회장님이 신기해죽겠습니다....ㅎㅎ
회장님 회장님 우리회장님 복받을껴 ㅎㅎㅎㅎ
꺼벙이도 신청합니다...
방가방가 ?13번이요
김은희?권명화님신청 15명입니다
윤덕남 신청입니다
16번입니다
여섯번째입니다
대자행님도 동참합니다
17번입니다
이춘희.김숙희.황춘자,강순임.김정희.조설연.신청하셔서 23번가지입니다
저 신청합니다
녜 몸살은 나진않으셨나요
황성규,,최순매,,이미화,,윤금조,,김옥희,,만덕행,,6명 신청합니다~~~()
녜30번가지입니다
조성형 조은경 2명 신청합니다.
서른두번째이니다
최영미 최윤화 2명 신청합니다
34명입니다
김부식 신청입니다
보각심(전명숙), 이혜영 이상 2명 신청합니다.
이정민.배은주님신청하셔서 39명입니다
소옥자,서규환,이순지,홍윤보 4명신청합니다
윤명자, 박현수 신청합니다.
이미화,이명하 신청입니다
이선이.마점선 지인한분..50명입니다
소옥자보살딸님외총4명
54명입니다
지춘월님 신청하셔서 55명입니다
김전희.김정식 신청합니다
배영길.최옥용
사곡동 이순자보살님 지인 1분 신청하셨습니다.
서세철님 시청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