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9 주일설교
므낫세와 헵시바
(열왕기하 21:1~9)
010-9600-**** 은 제 아내의 전화번호입니다. 저는 이 번호를 저장하면서 제 아내 이름 대신에 ‘헵시바’라고 저장을 해 놓았습니다. 아내 이름에 왜 헵시바라고 저장했는지 설교를 듣는 중에 아시게 될 것입니다.
구약 성경의 왕 중에 가장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 히스기야와 므낫세입니다. 이 둘이 왜 이해되지 않는지 한번 들어 보세요.
유다의 왕 중에는 하나님을 잘 섬긴 선한 왕도 여덟 명 있지만 나머지 12명은 우상숭배자이고 악한 왕들이었습니다. 악한 왕 중에도 특히 악한 왕은 아하스와 므낫세 두 사람인데 아하스는 히스기야의 아버지이고 므낫세는 히스기야의 아들 입니다.
제가 히스기야와 므낫세가 이해되지 않는 이유는 히스기야는 믿음 없고 악한 아하스의 아들인데 어떻게 믿음 좋은 왕이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믿음이 좋은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왜 또 그렇게 믿음이 없고 악한 왕이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의 불신과 악행을 물려받지 않고 믿음이 좋기로 소문난 왕이 되었습니다. 히스기야의 믿음과 관련해서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앗수르가 쳐들어왔을 때의 일입니다. 앗수르는 북쪽의 여러 나라를 점령한 후 이제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에게 편지를 보내서 무능력한 여호와를 의지하지 말고 자기에게 항복하고 자기나라 신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모독하는 그 편지를 들고 히스기야는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앗수르 왕이 말하기를 세상의 신들 중에 앗수를 왕의 손에서 자기 민족을 보호한 신이 하나도 없다는데 여호와께서는 진짜 하나님이심을 보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이사야를 보내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천사들이 앗수르 진영으로 가서 185,000명의 군사를 다 죽여 버렸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185,000명은 엄청나게 많은 숫자였는데 하루 밤에 조용히 죽어 버렸으니 기절초풍할 사건이죠.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그렇게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던 앗수르 왕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신하들에게 암살당했습니다.
히스기야의 믿음을 보여주는 또 한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한번은 히스기야가 중병에 걸렸는데 이사야가 와서 왕이 죽을 테니 집안을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판사나 의사가 아니라 하나님께 사형을 선고받았으니 히스기야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히스기야가 누구입니까?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입니다. 앗수르 대군 185,000명을 기도로 물리친 사람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아는 히스기야가 조용히 ‘네, 알았어요’ 할 리가 없지요.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그 동안 주님을 잘 섬긴 것을 좀 기억해 주시고 선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히스기야를 보신 하나님이 급히 이사야를 불렀습니다. “너는 돌아가서 내가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았다고 해라. 히스기야는 3일 안에 깨끗하게 나을 것이라고 말해라.”
그런데 히스기야는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금방 죽는다고 했다가 금방 낫는다고 하시니 무슨 징표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해시계의 그림자가 10도 앞으로 가게 할지 뒤로 가게 할지 물었습니다. 해시계에서 10도이면 시간으로 40분입니다. 앞으로는 원래 가는 것이니까 뒤로 가게 해 달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정말로 해시계의 그림자가 뒤로 물러가게 해 주셨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람이란 참 연약한 존재입니다. 기분이 아주 좋아진 히스기야는 우쭐하고 교만해져서 그만 실수를 해 버립니다. 히스기야의 실수를 보면서 우리는 정말로 조심해야 하겠구나 하는 교훈을 받습니다.
히스기야가 기적적으로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바벨론의 왕이 사신을 보내어 왔습니다. 바벨론 사신이 축하 편지와 여러 가지 예물을 가지고 오자 히스기야는 극진히 대접하고 왕궁의 보물들과 성전의 보물들을 다 보여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기고의 무기들도 다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 문제입니다. 지난번에 앗수르를 물리친 것은 군사력이나 무기들이 아니라 여호와의 능력이었습니다. 기도하여 응답받은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물과 무기를 자랑하고 있으니 이 사람 히스기야, 큰일 났습니다.
이사야가 와서 히스기야를 꾸짖었습니다. 왕이 바벨론 사신들에게 자랑한 보물들은 몽땅 바벨론에게 빼앗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예전의 히스기야 같으면 울면서 회개하고 살려달라고 했을 텐데 자기 시대에는 평안하고 나중에 그런 일이 있다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뭐 어쩌겠느냐고 받아 넘겨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자 아들 므낫세가 왕이 되었습니다. 므낫세에 대해 성경은 네 가지를 말합니다. 1)므낫세는 12살에 왕이 되었다. 2)므낫세의 통치 기간은 55년이다. 3)므낫세의 어머니 이름은 헵시바이다. 4)므낫세는 우상숭배자이다.
므낫세는 바알 제단도 만들도 태양신, 달신, 별신에게도 제사를 했습니다. 므낫세는 이방 사람의 역겨운 짓을 따라합니다. 여기서 역겨운 짓이란 우상 제사에서 어린 아기를 죽여서 제사하는 끔찍한 짓입니다. 므낫세 이 사람, 미친 거 맞죠?
므낫세가 왕이 된 나이가 12살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기도해서 연장 받은 수명이 몇 년인지 아세요? 15년입니다<왕하 20:6>. 그 15년 사이에 태어난 아들입니다. 히스기야는 54세에 죽었습니다. 15년 연장 못 받았으면 39살에 죽을 뻔 했죠. 그런데 15년 연장 받아서 42살에 므낫세를 낳았습니다. 이렇게 늦둥이 아들을 낳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아들이 예뻐서 죽습니다.
히스기야가 므낫세를 얼마나 예뻐했는지 성경에 증거가 나옵니다. 므낫세의 어머니 이름이 헵시바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왕의 어머니를 소개할 때는 그 출신가문을 소개함으로 그 왕이 어머니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을지 암시를 줍니다. 하지만 므낫세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고 이름만 달랑 나옵니다. 여기 헵시바의 이름이 소개된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성경에서 헵시바를 검색하면 딱 한 번 더 나오는데 이사야 62:4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범죄한 유다를 심판하실 것을 경고한 후에 나중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유다를 회복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장차 하나님이 회복시키실 새 이스라엘을 향해 헵시바라고 부를 것이라고 하셨는데 다시 말하면 헵시바는 회복하실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의 이름입니다.
헵시바라는 단어는 발음도 예쁘지만 그 뜻이 환상적으로 좋습니다. 히브리어로 ‘헵시’는 ‘나의 기쁨’이고 ‘바’는 ‘그녀에게’입니다. “나의 기쁨이 그녀에게” 이 얼마나 황홀한 고백입니까? 저는 제 아내의 전화번호에 ‘헵시바’라고 저장해 놓았습니다.
병에서 나은 히스기야가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 어머니를 헵시바라고 불렀는데 히스기야가 병이 나은 후에 새 부인을 얻은 것은 아닐까요? 하여간 바벨론에서 사신들이 와서 보물과 무기를 자랑한 것도 그 즈음일 것 같습니다.
믿음이 대단하지 않던 사람도 죽을병에서 기적적으로 나으면 믿음이 좋아져서 간증을 하고 다닙니다. 그런데 믿음이 특출했던 히스기야는 왜 이렇게 인본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는지 참 안타깝습니다.
히스기야는 39살에 병에서 낫고 42살에 헵시바가 나아준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는 지었는데 므낫세는 “잊어버리게 하셨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두 명의 유명한 므낫세가 나오는데 하나는 요셉의 아들이고 또 하나는 히스기야의 아들입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가 되어 결혼도 하고 아들을 낳았을 때 하나님이 애굽으로 팔려오고 노예로 살다가 감옥에서 고생하게 하신 그 모든 고생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의미로 아들 이름을 므낫세, ‘잊어버리게 하심’이라고 지었습니다.
히스기야도 죽을병에서 나은 후 아들을 낳고는 죽을 뻔한 고통을 잊어버리게 하셨다고 아들을 므낫세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귀한 아들을 낳아준 아내가 얼마나 예뻤던지 헵시바, ‘나의 기쁨이 그녀에게’라고 불렀습니다. 히스기야는 헵시바와 그녀가 낳아준 늦둥이 므낫세에게 무한 사랑을 쏟아 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헵시바가 예쁘고 므낫세가 사랑스럽더라도 그 아들이 망나니가 되도록 방치하면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그 아이 인생도 망하고 가문도 망하고 하나님께도 큰 욕을 돌리게 되는 것을 므낫세의 인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므낫세가 55년간 우상숭배와 악행을 행한 후에 그의 아들 아몬은 2년 만에 죽었는데 므낫세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아몬의 아들 요시아는 다행히 히스기야를 닮아서 종교개혁을 단행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요시아가 갈그미스 전투에서 전사한 후 23년 만에 유다는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자식이 예쁘고 귀할수록 더욱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대로 훈육도 하며 바르게 길러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나의 기쁨이 그녀에게’가 낳아준 아들 ‘잊어버리게 하심’을 보면서 죽을병의 고통만 잊어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앗수르의 군사 185,000명을 물리쳐 주신 능력과 죽을병에서 치료해 주신 놀라운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사람은 마지막이 좋아야 다 좋은 법입니다. 어제 두바이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인도에서 착륙하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비행기는 착륙을 잘 해야 하듯이 인생도 말년을 잘 끝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여정은 과정도 훌륭해야 하고 특히 말년에 실패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므낫세와 헵시바, 므낫세는 과거의 고통을 모두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고백이고 헵시바는 나의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는 황홀한 고백이 담긴 이름입니다. 사람은 이름에 담긴 값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담은 이름을 주셨습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여수룬, 의로운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회복시킬 공동체 즉 신약 백성을 하나님이 헵시바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제자는 지식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승의 모든 것을 본받고 따릅니다. 우리는 학생도 아니고 고객도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또한 성도, 즉 거룩한 무리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즉시 우리 신분은 거룩한 자로 바뀝니다. 우리는 거룩한 자이기에 거룩하게 사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자인데 거룩하게 안 살면 야곱처럼 됩니다. 야곱이 137세에 애굽의 바로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험악한 세월을 살았답니다.” 이걸 두고 맞고 깨질래, 그냥 깨질래? 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많이 입은 성도입니다. 제자입니다. 하나님의 헵시바입니다. 우리의 바뀐 신분을 인식하고 헵시바답게 살아서 하나님이 계속해서 “나의 기쁨이 너에게 있다”고 하시는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