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212)-이상적인 교회의 상1
안녕하십니까?.
캐나다에서 천 여명이 모이는 꽤 큰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친구가 교회의 모델을 세워보겠다고 하면서 감리교를 떠나 독립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어떤 모습의 교회가 될는지 참 궁금합니다. 로스엔젤레스에서 만나 잠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현대 교회의 여러 문제점들과 이상적인 교회의 상에 대한 필요성 등등의 이야기는 나누었지만 정작 독립교회의 상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가 마침내 이상적인 교회의 상을 찾아 독립교회를 시작한다는이야기를 듣게 된 것입니다. 염려스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친구를 잘 알기에 기대를 해 봅니다. 그리고 새로운 교회의 상에 대한 논의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상적인 교회의 상에 대한 생각들은 편지로 몇 자 적어 봅니다.
坤兒 (저만 부르는 그 친구의 이름입니다), 먼저 새롭게 시작하는 독립교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바라네.축하하고. 독립교회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해 유감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함께 논의되기를 바라네. 사실 꼭 독립교회를 해야만 하는지는 여전히 내게 의문일세. 감리교라는 틀이 그렇게 닫혀진 교단은 아닌데 말이지. 어떤 점들이 자네를 독립교회로 나가게 했는지 궁금하지만 어쨌든 교단의 틀은 벗어나서 논의를 해 보세나.
큰 틀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국가도 민주주의 혹은 사회주의, 자본주의 혹은 공산주의 등등의 구조에 있어서 큰 틀을 잡지 않던가? 우리가 이데올로기의 틀 안에 산다고 해서 교회가 꼭 그렇게 따라갈 필요는 없겠지만 어쨌든 인간 삶의 축이 되고 있는 큰 틀(이데올로기)은 교회의 틀을 논의할 때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네. 민주주의는 '현실'에 치우치고 사회주의는 '이상'에 치우치는 틀이라고 할 수 있겠지. 어떤가? 민주주의적인 교회의 상인가? 아니면 사회주의적인 교회의 상인가? 오늘날 '국가'가 민주주의의 상이라면, '가정'은 사회주의의 상이라고 생각되는데 교회의 이상적인 상으로서 '국가'를 삼을 텐가? ‘가정’을삼을 텐가?
오늘날 교회(혹은 목회자)를 평가하자면 <타락하지 않은 독재>와< 타락한 독재>의 두 모습이 아닐까 싶네. 물론 중간쯤의 <타락중인 독재>도 있겠지. 민주주의적인 틀을 가진 교회의 상들은 참으로 찾기가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싶네. <타락한 혹은 타락중인 독재>야 그렇다 해도 <타락하지 않은 독재>는 어떤가? 좋은 독재인가? 혹시 자네는 이 같은 <타락하지 않은 독재>로서 교회의 상을 그리는가? 이상적인 교회의 상을 찾는다면 사실, 이상적인 교회라고하는 것은 모든 교회들이 쫓아 갈 수 있는 그런 교회의 paradigm이 아닌가? 목회자들이 평생을 수련해야만 '타락하지 않은 독재'에 이를 수 있다고 하면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타락하지 않은 독재>의 교회의 상은 (하늘의) 이상적인 교회는 될 수 있을 찌 몰라도 (땅의) 이상적인 교회의 상은 되기 힘든 것이 아닐까?
처음부터 타락하려고 하는 그런 독재자가 어디 있겠는가? 한 예를 들어 보세. 나는 지금 한2년 가량 한국의 목회를 경험하고 있는데 (한국의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네 만은) 재미있는 것은 목사는 교회 사람들에게 밥 한번 사기도(?) 힘이 든다는 걸세. 목사는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고 하데. 청년이나 학생들 사주는 것 말고 어른들에게는 기억에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아. 2년 동안 얻어만 먹은 셈이지. 밥뿐인가? 이것 저것 챙겨주는 뒷돈까지 설교했다고 심방했다고 기도했다고 명절이라고 등등. 그리고 그것이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조금 지나면서 보니 목사들의 삶의 일부더군. <재물>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마음>까지 쫓아 간다고 성경이 말하지 않던가? 당연히 마음에 편견 (편애란 말이 여기서는 맞을 것 같으이)이 오면서 어떤 의미에서 타락의 길로 접어든다~ 이 말일세. 마음에 공평함을 잃게 되고, 공평함을 잃는다는 것은 정의를 상실한 것이 아닌가, 정의를 상실하고서야 어찌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할 수가 있으며, 하나님의 은총이 없이 어찌 이상적인 교회의 상을 그릴 수 있다는 말인가? 교인들이야 '목사를 대접해야 한다'는 선한 마음에서 만들어진 습관이겠지만 (사실 이들은 모두 신앙심이 깊으신 분들 아닌가) 알게 모르게 교인들도 목사를 타락한 독재자로 만드는데 일조하는 셈이 아닌가? 목사가 성인군자가 아닌 다음에야 말일세.
그러니 '성인군자로서의 목회'를 이상적인 교회의 상으로 삼지 않는다면 '독재'적인 모습들을 교회의 틀 안에서 지워야 하지 않겠나? (사실 목회자가 성인군자의 길을 걸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지만 교회의 구조 속에서 그것을 틀로 삼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신학교 4년 교육에 (지금은 6년인가?) 그리고 목회의 현실에서 성인 군자의 목회자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쨌든 무리 아닌가? 비록 소수는 있을 수 있어도 말일세.) 이런 점에서 새로운 교회의 상에서는 '민주주의적'인 교회의 틀이 잡혀있어야 한다고 보네.
그렇지만 민주주의라는 것이 최선의 것인가?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목회자의 제일 큰 기능이 아니겠나) 독재의 모습을 버릴 수가 있겠느냐 하는 걸세. 말씀에 대한 카리스마, 신탁에 대한 예언자의 모습이 '독재'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도 없으면 목회자의 존재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하겠는가? 환자에게는 많은 사람의 의견보다는 전문적인 의술을 아는 한 사람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집을 짓는데 다수의 의견이 필요하겠는가, 전문적인 기술자가 필요하겠는가? 하나님의 뜻을 파하는 목회자가 어찌 독재자의 모습이 없을까~ 성인군자는 못 된다 하더라도 그 흉내를 내지 못하고서야 어찌 목회자 (설교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어찌하겠는가? 독재를 피하면서도 독재를 해야 하고 민주주의적이면서 민주주의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 역설을 이상적인 교회의 상에서는 어떻게 소화해야 하겠는가? 교회의 외적 요소들 (교회의 행정, 정책, 의견수렴)을 민주적인 큰 틀로 정하고 목회자에게 일정 부분 독재의 권한을 부여하면 되겠나? 자네가 시작하는 독립교회의 큰 틀이 어떻게 짜였는지 궁금하이.
나는 자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회의 상에서 교인의 숫자를 어느 정도 잡고 있는지 궁금하네. 도대체 오늘날 이상적인 교회의 교인의 수는 얼마만 해야 하는가? (물론 지역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일세) 우문인가? 클수록 좋은 것인가?
내 생각에는 말이지, 대형교회를 꿈꾼다면 '민주주의적'인 틀을 더욱 더 견고하게 해야지 싶네. ‘민주주의’라고 하는 검증체계 말일세. (전혀 민주주의적이지 못한 타락한 대형교회 대물림까지 가는 독재의 전형들 의 모습을 우리는 감리교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지 않은가?) 중.소형 교회라면 '타락하지 않은 독재'의 상도 괜찮을 것 같고. 독재는 '이상'을 민주주의는 '현실'을 출발점을 삼지 않던가?. 그러나 보통 대형교회에서의 '이상'은 (민주주의가 없어) 타락하기 쉽고 중.소형교회에서의 현실은 (독재가 없어) 효율적이지 못하지 않은가?
‘타락하지 않은 독재'의 상이라고 해도 타락에 대한 잠재성이 늘 있으니 이를 어쩌겠나? 나는 목회자의 수입과 지출이 대통령과 국회 의원들 마냥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네. 이는 타락의 잠재성을 막을 수 있는 차선이 될 수 있을 것일세. 차선이라 함은 목회자가 성인군자가 못되기 때문이네.(사실 목회자가 성인군자라면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인가?) 특별히 목사들의 수입에 대한 투명한 공개는 목회자의 타락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리라 생각하네. 이상적인 교회의 상에서는 이러한 공개가 꼭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네. (감리교 목사로서 나는 이 제도가 감리교에 입법되도록 노력할 걸세. 궁금(^^)하지 않은가?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수입이 어떤지. 허허~ 자네가 찬성할 찌는 모르겠구먼. 자네… 이제 보니 훌쩍 커있네 그랴. 내게 말일세.)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자세히 논의하기로 하세.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건강하게나. 주의 은총이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함세.
[추신: 참고로 대형교회를 이상적인 교회의 상으로 삼았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꼭 한 번 가 읽어 보기를 권하네. 중.소형 교회라면 플라톤의 <국가>를 권하네. 두 권 모두 교회의 큰 틀을 잡는데 분명 도움이 되리라 확신하네.
추신2: 그런데 오늘날 대형교회라면 얼마를 뜻하나? 글쎄… 지난 번 감리교 촛불 시위 때 김진호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면서 감리교회 교세를 5000 교회 150만 성도라고 말씀하신 것 같던데 그러면 감리교회는 평균 300명이 되는가? 하기는 도시와 농어촌이 다르고 한국과 캐나다가 다르지 않겠나? Context에 따른 통상적 개념으로 대형교회. 중.소형교회를 이해하시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