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일기] 나의 운전면허시험 획득이야기..
나는 운전면허를 88년 10월22일날 합격하였는데..
그때만해도 자가용 My car시대란..꿈도 못꾸던 시절이었었고
버스 아니면 자전거가 주교통수단이었었다.
오토바이도 아직 타보지도 못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88년 10월23일날 일본으로 유학의 길을 떠났는데...
일본가면 아르바이트로 야간운전을 할려구..
초봄 꽃샘추위가 시작될무렵부터 부지런히 운전면허장에가서 시험을 보았다.
운전학원다니기엔 내여건이 안되니깐..
당시 나는 군대 막 제대하고 사진공부하러 일본유학가기위해 독학으로 공부하며
새벽신문배달하며..일본어국가공인1급시험에 합격하였고 유학자격시험에도 합격하였었다.
그때는 그런 조건이 필요하던 시절이었었다.
우리집은 동네에서 재일부잣집이라고 소문은 나있는 집이었지만
우리어머니의 살림운영은 매우절약적이시고 알뜰하시기때문에
또 내가 사진작가의 꿈을 갖는다는 것은..어머니의 인생관으로서는 너무나 불행한 길을 선택하는것같아
목숨걸고 반대하시던 상황이었었다.
그래서 고등학교졸업하고 곧바로 사진학과로 진로를 가지 못하여 세상과 타협한 길로 가는 바람에
청춘시절 허송세월하며 아까운 방황으로 마음이 뻥~공허하고 무척이나 갈급하였고 정신적으로 배고팠다.
어느덧 이삼십년 세월이 지난 지금자리에서 돌아보면
그래..잘된거야..
일찍 정상코스로 궤도에 진입했었더라면..
세상적으로는 멋있게 안정적인 행성의 위치를 얻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많은 굴곡과 질퍽거림..바닷가 모래성처럼 쌓았다가 무너지기를 반복하는
하루살이 인생이.. 어떻게보면 기특하게 생각된다...
하여간에..
당시 운전면허는 나에게 있어서 정말 생명줄같은 거였었다.
그렇게 소중한 운전면허가..이론시험은 한번에 붙었는데
실기시험에서는 24번이나 떨어졌던 것이다.
결국..유학떠나기전 하루전날 겨우겨우 합격을 하였던 것이었다.
요즘 나는 아직.. 결혼도 죽기 하루전날에 할수도 있겠다..라는 씁쓸한 생각도 해보곤 한다.
운전면허시험 합격할수있었던 과정은..
22일날 마지막 운명적인 기회...
결국 또 떨어졌다...
사상공단에 위치한 면허장의 삭막한 뒷골목에 쭈구리고 앉아
담배만 계속 피우며..하늘과 땅만 꺼져라고 한숨 푹푹..
(지금은 담배연기 재일 싫어하지만..)
이대로 돌아갈수는 없는데..
하다가..문득! 지금까지는 1종보통시험만 쳤었으니..
혹시 2종보통시험을 한번 쳐보자!!!!!!!!!!!!!!!!!!!!!!!!!!!
다시 면허장에 들어갔더니 다행히 바로 2종실기시험을 볼수있는 절호의 마지막 타이밍이 있었다.
(2종은 내가 원하던 것에 미달되는 것이었지만...)
군고구마 한봉지.. 관제탑에서 감독중이신 시험관님께 정중히 갖다드며...
(이미 내 얼굴도 알려진만큼 알려진 터라...^^)
마지막 죽음앞에 선 시험에 임하였다...
제대로 운전기술공부를 못받았기에
그냥 감각으로만 달렸다.
위험한 코스에서는 하느님께서 시험감독관의 입을 통하여
위험하다고 어드바이스를 해주셨어 가다가 멈추고 빽하고..
기가막히고 코가막히는 우여곡절끝에 합격의 빵파레소리...
합격은 하였지만 운전면허증은 보름 기다려야하니...
빈손으로 일본으로 떠났다...
처음에는 신문배달하면서 지국에서 먹고자고 낮에는 학교다녔었는데
자전거로 300부나되는 주간지두께의 신문들을 배달하기엔 너무 힘들었었다.
특히 비오는날 언덕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하던 날에는 학교까지 지각하는 사례..
그래서 50cc원동기면허를 일본현지에서 땃다.
쉽지는 않았지만..아슬아슬하게 천운이 따랐다.
한동안은 잘 적응하였지만..
또 아구가 찼다.. 일본은 비가 많이 오는 나라이니까...
도저히 이짓도 못하겠다..싶어
야간트럭운전을 하기위해..국제면허증을 한국에계신 형님편으로 붙혀받았다.
그때부터 새로운 인생극장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평일은 야간에 6시간 중거리 운전을 다녀왔었고
주말에는 8시간 12시간 장거리 운전을 다녀왔었다.
몸은 고달팠지만 돌아오던 새벽...아침..해가 뜨자
온세상이 꽃으로 만발한 일본땅의 대자연은 너무 황홀했었다.
봄이되면 사람들은 화사한 기모노를 입고 봄꽃아래에서 사진찍으며 아름다움을 교태부리고
초저녁부터는 소랑~노래를 부르며 띵까띵까 춤을 추며 온마을이 축제분위기였었다.
스물여섯살의 피끓는 청춘인 나만..혼자서 오로지 죽어라 일만하고 죽어라 공부만하였고
그리고 유일하게 나의 스트레스해소는 사진찍고 인화하고 글쓰고 편지쓰고 하는 것뿐...
그리고 단전호흡수련으로 심신을 정렬시키며...
트럭회사에서 성실하다고 인정받기도 하였으며
새로나온 대형트럭까지 맡껴주었다.
일본중부지방 어디라도 오더만 떨어지면 나는 무사히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왔다.
무전기로 교신하면서 지도책읽어가면서...
그래서 일본지도는 동경도에서부터 이바라기 동북지역 중부지역 남부지역 빠싹하고
작은마을마을들의 특색들이 다 기억난다. 지도책도 수십권이나 사모았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보람있었고 열심히 살았었고
최고의 성취감을 얻었었고 무엇이든지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확인시켜주었었다.
이 모든것이 그렇게 열어주지 않으려고 했던 운전면허시험...
그 치사하고 치사했던 운전면허합격이라는 패스포트가 있었기에 스타트가 가능할수있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스물여섯에 건너가 서른까지...
서른한살부터는 한국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한국에 돌아오자 재일 먼저 운전면허시험에 대한 복수부터 하였다.
1종보통시험을 치루어 한방에 합격하였고
내친김에 1종대형시험까지 치루어 두번만에 합격하였었다.
그제사..한맺힌 마음의 보상심리가..
빗장이 풀리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