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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황혼에 깃든 미네르바의 올빼미
헤겔은 그의 저서 <법철학> 서문에서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역사에 대한 한 철학자의 보편적 직관이 담겨 있는 말이다. 현실이 무르익었을 때 비로소 관념적인 것이 실제적인 것에 맞서서 나타나고 사상으로서의 철학은 현실이 그 형성과정을 완성하고 난 다음에야 시간 속에서 형상화된다는 이 말은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매무 타당한 지적으로 여겨진다.
1980년대 후반 루마니아 헝가리 폴란드 등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독일의 통일, 러시아의 마르크시즘 포기 선언은 탈이념 시대의 도래를 예고했다. 이는 이데올로기 대립 시대의 종언과 더불어 세계질서의 재편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범주를 탄생시켰다. 근 1세기를 이념의 철옹성을 고수해온 마르크시즘의 현실적 실패는 사회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예기치 못한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항상 현실의 뒷발굽에 붙어 있던 철학은 새로운 이념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고, 또한 이념에의 추종자들은 좌절감과 더불어 자기정립을 위한 아이덴티티Identity(정체성)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작가 최인훈의글쓰기도 이러한 역정 위에 놓여 있다. 6·25와 남북 분단이라는 냉전체제에 살아온 그가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이념 대립 시대를 끝막음하는 1990년대의 현실에서 미네르바의 올빼미로 나래를 폈다. 헤겔주의자 코제브가 이 시대를 ‘역사에의 종언’으로 갈파했었다면 <광장>의 작가 최인훈은 <화두>를 들고 나선 것이다. 그러므로 1990년대 현실에서 최인훈이 던진 ‘화두’를 통해 제시하고자 하는 물음은 무엇에 관한 것이고 이러한 화두는 어떤 방식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추구하고 있는가. 이 작품은 1950년에 민족사의 수난이자 이념의 대리전을 치러 본 그가 그 후 40여 년간 새로운 역사적 전개과정을 목도하고 체험하는 과정들을 한 지식인의 성장사처럼 기술하고 있다. 그러면 8·15 해방과 6·25, 남북의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제3국, 그리고 죽음을 택한 <광장>의 세계가 탈이념, 탈냉전의 시대에 어떻게 굴절되었는가. 적어도 이 글은 <화두>(민음사/1994)가 지닌 ‘화두’ 의미 규명을 시발로 하여 <화두>가 추구하고 있는 세계관적 의미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 이는 최인훈의 삶의 행적을 추적하는 일이며, 또한 그의 글쓰기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② 소설의 들머리 – 화두를 찾아서
최인훈은 1959년 <그레이 구락부>를 통해 등단한 후 그동안 <가면고>(1960), <광장>(1960), <총독의 소리>(1967~1968),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70), <태풍>(1973) 등 많은 작품을 쓰긴 했지만, 주로 관념 편향의 소설을 창작해 왔다. 그리고 1973년 이후 작품 활동이 뜸했던 그가 1994년 <화두>를 내놓았는데 이는 전혀 외부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 작품에 이르러서 그는 집요하게 추적했던 인간의 본질, 자유, 사랑, 이념, 휴머니즘의 문제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 ‘나’의 문제로 회귀한다. ‘나’란 누구인가. 이에 대한 언급은 이미 작가에 의해 주어졌다. “이 소설의 부분들은 대부분 사실에 근거하지만 그 부분들의 원래의 시간적, 공간적 위치는 소설 속에서는 반드시는 원형과 일치하지 않는다. 즉 이 소설은 소설이다”(1부, p.6)에서 이 소설이 자신의 체험에 근거함을 밝혔다. 그러므로 북한→한국→미국→소련이라는 작가적 체험이 상상력과 결부되어 얽어진 것이다.
<화두>에서 작가가 화두로 삼는 것은 좀 별나다. 작가는 작품의 서두에 조명희의 <낙동강>을 내세우고 있다. 이 작품은 <광장>처럼 이명준의 죽음의 해명에 작품의 구조를 바친 것도 아니고 단순히 고등학교 1년 시절의 낙동강 수업에 대한 회상을 화두로 삼고 있다. 작가는 타자로서 조명희를 내세우고 있다. 그에게 있어 조명희는 추구해야 할 테제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기억의 현상학이라는 창작방법을 추구하고 있는 이 소설은 원체험으로서 ‘낙동강’의 수업이 자리해 있다. 고등학교 1년생인 그에게 있어서 국어시간의 작문은 글쓰기의 기원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기관구 앞에서 오래 서서 검은 바퀴 달린 쇳더미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었다. 작품에 쓴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친구네 과수원에 가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거기서 활달한 여학생을 만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낙동강’ 얘기를 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깊은 얘기도 아니었고 오래 끌지도 안았다. ‘형평사’ 대목도 그녀가 지나가면서 한 말이었다. 작문에서 그녀가 알려주었다는 내용은 필자인 나의 지식이었다. 작문의 내용은 사실이지만 사실만은 아니었다.’(1부, p.82~83)
북한에서의 체험으로서 중요한 것은 이것 말고도 ‘비판회’ 사건이 있다. 고등학교 국어수업을 통해 그가 글쓰기의 방식을 터득했다면 자아비판회 사건은 이념의 굴레에 묶이는 계기가 된다. 북한에서 해방 후에 전개된 ‘자아비판회’는 효율적으로 민중을 다스리는 도구로 사용된다. 개인을 감시하고 억압하고 제도권 속에 옭아매는 중요한 형구인 것이다. 지도원 선생과 나 사이에 벌어진 자아비판회는 바로 <광장>에서 이명준의 ‘자아비판회’와도 연결된다. 자아비판회 사건은 그 사실을 부모에게조차 알릴 수 없었던 것으로 두려움과 공포의 그늘로 기억 속에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북한에서의 생활은 전쟁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해방 후 자본이 없는 사업가로, 목재회사 평직원으로 활동을 하던 그의 아버지는 W시에서 전쟁 때 가족들과 더불어 월남을 한다. 월남민의 의식, 고향을 북에 두고 내려온 이들이 겪는 체험은 변두리 체험이다. 월남인들은 어디서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최인훈은 이러한 유랑민 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군에 입대하고 작문 시간의 창작 체험을 통해 끊임없이 창작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1973년 이전까지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던 그는 이후 한동안 침묵을 지키는데 여기에 미국 체험이라는 작가의 체험이 자리해 있다. 그가 미국에서 인식한 삶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 하나가 말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맛보는 것이다.
‘폴: 그렇다. 지금 자유선거를 실시한다면 폴란드는 그 즉시 자본주의 나라가 될 수 것이다.
나: 폴란드에서도 그런 말을 아무에게나 할 수 있는가?
폴: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나: 당신은 공산당원인가?
폴: 그렇다.
나: 공산당원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폴: 공산당보다 진실이 더 중요하다.’ (1부, p. 108)
폴란드 작가에게서 느낀 것은 진실에 대한 중요성과 진실을 믿는 그 작가의 신념이다. 이러한 상황은 서술자에겐 당혹스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적어도 그 당시 우리 사회는 군부독재가 아성을 굳게 지키고 있던 닫힌 사회였고, 게다가 글을 쓰는 사람조차 구속하는 불문율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짧은 소설 하나를 쓸 때마저도 나를 강박하는 의식이란 보이지 않는 제도적 폭력이며 언어의 주술에 언제 잠겨버릴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었다. 이로 인해 그는 이러한 불문율에 제도되길 기다리는 노예의식을 갖게 된다.
미국에서 체험한 두 번째 사실은 바로 <자본론>이다. <자본론>의 체험은 서술자에게 있어 고등 2년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것이 전부다. 국내에서 감히 엄두도 못낼 책을 자본주의 미국 땅에서 맞이한 그의 감상이란 어떤 것일까. 이 책은 적어도 조명희의 <낙동강>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에게 읽혀졌을 수밖에 없다. 서술자에게 있어서 자본론은 ‘정신의 마술 같은 것’이었다. 적어도 서술자의 고백처럼 “국내에서 이 책들을 구할 길이 없었고, 그래서 장님 코끼리 더듬듯 여기서 한 조각 저기서 한 조각씩의 귀동냥 눈동냥에 의지해서, 엉뚱한 사람의 저작물에 반영된 2차, 3차 반사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그림자 속을 숨바꼭질” 하던 것이 여지없이 발각된 형국이다. 1990년대라는 시간은 이러한 서술자의 논리를 정당하게 해석해 주고, 평가해 줄 시간적 거리를 지녔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중학교 때 지도원 선생이 G-W-G, W-G-W와 같은 기호를 적어가며 언급한 이 책을 과연 그도 그 내용을 알았을까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의 <자본론> 체험 고백은 금기의 풀림의 소산이다. 문협 정통파로 문단을 이끌어 왔던 김동리에게는 상상도 못할 발언이다. 김동리는 그의 산문에서 마르크스 엥겔스의 전집을 그의 동료로부터 건네받았지만 다시 펴보지도 못한 채 다른 친구에게로 건너가 버렸다고 지레 꽁무니부터 빼게 했던 이념의 금서이자, 잘못했다간 화를 입을 공포의 주술이었다. 바로 이념 금제의 시대를 살아온 작가의 생존을 위한 어설픈 변명과 고뇌가 엿보인다. 최인훈 역시 누구보다도 이념의 금제에 살았었고 제도권의 흑백논리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폴란드 시인의 말을 끝까지 발설하지 않고 자본론의 체험을 이제 와서야 발설하는 것도 역시 금기의 풀림의 소산이다. <광장>의 이명준의 이념논리가 4·19라는 민주화 함성을 통해 배출될 수 있었듯이 <화두>의 나의 고백도 1980년대 후반 동구권 사회주의의 붕괴와 마르크시즘의 몰락, 한국에서의 문민정부로 인한 이념의 완화 때문이다. 1990년대 와서야 ‘화두’를 던질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역사적 도정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곧 그에게 관념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이 맞설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된 것이다.
③ 관념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의 맞섬
<화두>는 <광장> 이후 최인훈 문학의 결산이자 총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광장> 이래 그의 문학의 일단 가운데서 우리는 관념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이라는 두 축을 발견할 수 있다. 이미 <화두>에서 제시되었던 관념적 요설들과 사상성은 그 이전의 리얼리즘 소설이나 모더니즘 소설과는 다른 지향점을 갖고 있다. 이념이 언어로 전달되면서 이데올로기의 굴절을 통해 걸러진 사상의 언어, 이것은 한편으론 최인훈 문학의 특징이자 최인훈 문학의 한계이기도 하다. <광장>에서 이러한 관념 편향성의 언어들은 그래도 소설의 구문구문에 내포되어 현실과의 거리감을 별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나타나던 것들이 <화두>에 이르면 아포리즘의 형태로 작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것은 1부에 26면, 2부에 66면 가량, 도합 90여 페이지에 이른다. 게다가 산문 형식의 문서 25면 가량을 포함시킨다면 10분의 1이 넘는 부분이 거의 작가의 순수 요설로 들어차 있다. 자아비판회 사건, 독서 감상문 사건 등 유년기적 체험에서 1990년대 당대의 시점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소설적 과정을 다루던 <화두>가 이렇듯 아포리즘에 빠진 까닭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공식적인 아포리즘을 제외하더라도 글쓰기 군데군데 들어 있는 DNA 이론, 기하학 논리, 철갑상어 이야기 등 현실 자체를 생물학이나 수학 기타의 논리로 귀속시키려는 모습들이 나타난다. 이러한 것들은 분명 논리적 서사구조를 무기로 하는 소설의 구조에 긴장을 떨어뜨리고 심지어 소설이 작가의 말장난으로 그칠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미 <화두>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사상의 포화성이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적어도 최인훈의 문학이 현실과 관념의 이중적 공간에서 어떻게 자리를 확보하고 있는가는 중요한 문제를 갖게 된다. 철저히 실존적 체험을 토대로 하여 형성된 이 소설은 사실 실제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이 제대로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혼재해 있다. 물론 이러한 사실과 허구 사이에 끼어든 관념성은 작가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의 문학에서 사상은 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표현된 그 내용 자체에 가까우리만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상성, 관념이 과도하게 자리해서 <화두>는 소설적이기보다 오히려 철학적 담론을 지향하고 있다.
(가) 환상 없는 삶은 인간의 삶이라 불릴 수 없다. 환상 있는 곳에 길이 잇다. (1부, p.346)
(나) 현실이여 비켜서라. 환상이 지나간다. 너는 현실에 지나지 않는다. (1부, p.347)
(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국가요, 정부요 하는 존재는 국외자로서는 일이 끝나 보지 않고는 마지막까지 알 도리가 없는 사항을 그들만이 관장하고 있으므로, 일이 될 대로 될 때까지는, 국외자는 마지막 판단을 할 수 없다. 정보공개라는 것도 그런 정도다. 그래서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생겼나 보다. (1부, p.327)
내용의 일관성 없는 이 관념은 바로 최인훈의 자기의식의 반영물이다. 소설의 내용과 내용 사이의 격자를 작가의식이라는 자의식적 자기반영을 통해서 작가는 메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포리즘적 서술은 작품에 있어서 작가의 독백이나 의식의 흐름과는 상관이 없다. 차라리 의식의 장유연상 기법에 의해 작가의 심리적 흐름을 의식의 영역 밖으로 이끌어 내어 독자에게 환기시키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의식의 표백은 소설의 구조 자체를 심원하고 신비한 세계로 이끈다기보다 오히려 관념적이고 자아해체적인 모습으로 이끄는 것이다. 소설과 소설의 연계 고리, 파편적이고 실체적인 현실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서사구조 자체에 일탈된 행위를 함으로써 소설을 이데올로기 일변도의 담론으로 이끄는 것이다.
④ 주인-노예의 인식구조 비판
<화두>를 지배하는 요소이자 서술자를 지배하는 의식으로 무엇보다 주인-노예의 변증법적 인식을 들 수 있다. 서술자는 이미 우리의 근대 자체를 감시와 억압의 체제인 닫힌 사회로 규정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밀실’ 역시 현대 세계에서 자유라는 광장과는 단절된 의식 공간의 지표물이다.
‘이른바 ’거주이전의 자유‘가 기본적인 전제인 그들의 생활문화의 원칙이 여기서도 적용되는 것이 없는데 그런 사정도 잘 몰랐을 뿐더러 이만한 혜택이 제공되는 모임에 왔으면 프로그램 본부가 있는 이곳에서 무슨 행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안 나는, 갈데없이 <닫힌 사회>에서의 생활문화의 산물이었다.’(1부, p.98)
나에게 있어 열린 세계는 처음 해방기이다. 해방은 식민지 상황에서 갑자기 주어진 것이었다. 작가가 탐구한 닫힌 사회에서의 생활윤리는 이태준 김사랑 조명희의 3가지 형태다. 그가 글쓰기에 집착한 것도 닫힌 벽, 금제, 억압의 벽을 깨는 것이었다. 그가 <광장>을 내었던 것도 그의 표현대로 4·19의 자유화 바람 덕분이었다. 그러나 해방에 의해 남북이 분단되고 각각 이데올로기 금제의 억압 사회가 실현되었듯, 4·19는 5·16이라는 군부 쿠데타, 군부독재로 이어진다. 그가 이후 <광장>에서 엿보려 했던 자유의 세계는 군부 쿠데타-유신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의 발악적 상황 하에서 물거품이 되고 만다. 작가가 끊임없이 구명하려고 하는 자유, 진실을 향한 소설적 진정성은 좌절된다. 이런 상황은 <화두>에서 <광장>의 세계를 다시 ‘밀실’로 규정함으로써 드러난다. 그리고 독재정치가 심화되고 조장되던 그 때(1970), 최인훈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연작을 발표한 것도 이런 현실감각 내지 시대적 위기감과 무관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해방 전의 그의 원전原典 <구보씨...>도 가까운 장래에 남쪽에서 햇빛을 볼 가능성에 기대는 1970년 현재에서는 환상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1970년 현재에서 볼 때 <구보씨...>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물론 수긍할 만한 미래 말이다), 우리 문학사에는 없는 존재라는 현실에서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에 <구보씨...>라는 이름으로 모작을 씀으로써 나는 우리 문학의 연속성의 단절에 항의하고, ‘민족의 연속성’을 지킨다는 역사의식을, 문학사 의식의 문맥에서 실천하고 싶었따.’(2부, p.51)
자료의 인멸이나 훼손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창작했다는 그의 고백은 과장이 아니라 진실에 가깝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현실감각은 <쿠오바디스> 속의 노예 철학자의 그것과 동일시한다. 바로 북한에서 전쟁 중 내려왔다는 월남인 의식, 다시 전쟁이 났을 경우 두 체제 중 어디에도 편입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은 바로 그를 주인이 아닌 노예의 의식에 붙들리게 한다. 이것은 한국 사회 자체가 감옥과 유사하고 거기에 있는 인민은 감옥의 유형인이라는 철저한 역사적 피해의식과 위기 속에서 생존하려는 비열한 자기인식에 비롯된다.
‘나보다 경력이 많은 작가들의 사정도 그만그만한 모양이었다. 근본적으로 독서시장이 영세하여 직업으로서의 글쓰기라는 것은 순수문학의 작가에게는 바라기 어려웠다. 20세기의 한국의 작가들의 그 지칠 줄 모르는 가난타령, 식민지의 예술만으로는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다. 정치적 상황은 어쨌거나 나의 경제적 상황이야말로 직업생활의 가장 밑바닥 노예의 그것이었다.’(1부, p.374)
물론 노예에 대한 인식은 변두리 의식이자 주변 의식이다. 집권 통자의 파수꾼으로밖에 살아갈 수 없는 상황, 피난민이라는 유이민적 삶의 인식이야말로 토박이나 정치권력에 비하면 주변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역사의 주체가 아닌 변두리인으로서 역사의 중심부에서 밀려났다는 인식이야말로 그의 본질을 규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런 인식은 그의 글쓰기 자체에 대한 회의를 내포하며, 진정한 자기의 내면적 성찰에로 이른다. 어려서 어머니로부터 벗어났을 때 이른 영원체험, 그리고 미국에 갔을 때 느낀 미국 체험은 이러한 것을 느끼는 중요 변수로 작용하게 된다. 주변인으로서의 인식, 나온 지 100여 년이 넘어서야 겨우 자본론을 대하는 것 등은 식민지 지식인의 서글픔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는 이를 슬픈 지체라고 했고, 이런 금기 자체를 “역사라는 것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부분의 운명적 제약”으로 파악했다. 노예의 운명 자체를 식민지 조선과 해방 후 남북한에서 권력과 역사라는 거대한 굴곡이 주는 운명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로 인해 아버지는 자기 권속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 안전지대에 대피시키고자 하는 보호본능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노예의 인식은 장황히 언급되어 있다. 그가 추구하는 노예의식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옛날옛적에 휘어이훠어이’이다. 아기장수의 비극적 운명을 극화한 이 내용은 아기장수를 둘러싼 가족들의 노예의 인식과 노예의 가족에는 노예만이 가능하다는 서글픈 현실적 인식으로 인해 한 장수의 앞날을 무자비하게 유린하여 종극을 맞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현실을 “제가 속한 가족이 당한 불이익의 공동피해자일망정, 만일 그 세계 해석이 ‘그래도 도는’ 세계의 실상이라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적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은 비켜가도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불혹이라는 이 나이에 이르도록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1부, p.432)고 지적했다. 그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 즉, 일제 치하와 광복, 남북 분단, 6·25, 4·19, 5·16, 유신, 10·26, 12·12 등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그로 하여금 굴복과 복종을 강요했던 것이다. 지배와 피지배의 계급적 환경에 쉽게 예속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소련의 마르크시즘 포기 선언, 그리고 통일 독일의 형성 등 바야흐로 이념의 시대에서 화해의 시대로 데탕트 시대에서 새로운 질서가 재편되면서 열린 사회에 대한 전망이 가시화되었다. 이런 역사적 변화 속에서 피지배 계층이던 민중도 역사의 주체로서 나설 수 있게 되었다. 노예도 바로 주인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예-주인의 변증법이 현실에서 주인만이 나타나는 닫힌 사회의 부정과 해체로 인한 열린 사회의 가능성이 역사의 전면에 부상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헤겔주의자 코제브가 역사의 종말이라고 칭했던 동질적 국가는 다시 역사 속으로 퇴화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주인과 노예의 보편적 인지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최인훈은 자유민주주의의 종국적 도래를 천명한 후쿠야마의 논리에도 편들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최인훈이 역사를 결정된 논리가 아니라 가능성의 논리로 믿기 때문이다.
⑤ 이념의 와해.. <화두>가 선 자리
1994년 현실에서 <화두>의 의미망은 여러 면에서 조명할 수 있다. 먼저 작품 자체의 의미에 더욱 근접하기 위해 작가의 변명부터 들어보자. “100~200장 정도 남았을 때 상당히 무서운 생각이 들었어요.. 불의의 사고로 마지막 장을 내 손으로 태깔을 내지 못할 것 같은 공포, 사람이라는 게 이 정도의 거구나, 생생한 공포를 느꼈어요, 거기에 한 마디 더 붙일 게요, 이 순간까지 내가 화두니 해서 종교적인 걸 끌어다가 작품 제목까지 달았는데, 아직 종교인들이 느끼는 정말의 희열, 신을 느꼈다느니 하는 경험은 없어요.”(대담, 상상4, 살림, 1994, p.233)
작가의 공포는 어디에 근원하는가, 마치 작가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미완으로 끝내고, 고리끼가 <클림쌈긴의 생애>를 미완으로 끝내고 죽은 것을 염려한 탓일까. 아니면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의 일부가 다른 사람들의 창작일 가능성이 있다는 오해의 소지를 염려한 것일까. 작가의 공포증의 근거는 끝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었다. 이런 불안감 때문에 그는 결말 부분을 먼저 서술했다고 한다. 그의 결말부로 처리된 조포석의 글처럼 제시되고 있는 선언문 형식의 글은 그러므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A-T까지 제시된 20단원의 아포리즘적 글은 그의 다른 아포리즘적 글이나 다름없다. 그가 이 글을 마지막에 붙인 의도는 무엇인가. 이 문제는 바로 조명희의 죽음이 걸려 있다. 조명희의 <낙동강>에서 출발된 화두는 바로 조명희의 죽음을 인식하고 그의 죽음의 원인을 궁구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다.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기 위해 사회주의 종주국에 갔던 조명희, 그는 나의 기억 속에 박성운과 로사이다. 언젠가 혁명의 완수를 위해 돌아와야 할 테제의 인물임이 분명한데 그가 아름답게 그리고 추구하던 세계를 등지고 이국땅에서 아무런 죄도 없이 죽어버렸다. 이 충격은 그의 진정한 사인 규명에 필수적이었고 그것은 나(서술자)의 정당성의 근거였다. 단지 조명희가 소수 민족의 문제로 인해 죽었다든가, 또는 간첩행위로 죽었다든가 하는 것들은 그의 죽음에 정확한 규명이 되지 못한다. 적어도 위의 사실들이 정확히 말해 사실이라면 너무나 허무한 사실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런 사실에다 문학적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이는 조명희의 죽음을 졸사한 것이기보다 철저히 의로운 죽음이기를 위장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 만든 물건이 바로 이 선언문 형식의 산문이다. 그러므로 <화두>의 시발과 종극이라는 측면에서 이 문건은 중요한 것이다.
(가) 우리 당은 권력을 잡고부터 거의 끊임없이 내란의 압력 하에서 일해야만 했다. 쏘비에뜨 러시아가 세워지고 나서 5년 사이에 걸친 경제건설의 걸음걸이, 만일 순전히 경제적 원칙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2부, p.485)
(나) 그러나 우리는 단단히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은 결코 무작정 위대한 우정인 것이 아니라 외부의 적과의 심각한 투쟁에 의하여 그 대열을 정비할 때만, 신중하게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는 사정없이 혁명의 대의에 심혼을 바치는 노동자 계급 속의 최량의 분자를 선택함으로써만 위대한 공동체가 된다는 것을, 바꾸어 말하자면, 위대한 공동체가 되자면, 당은 위대한 공동체가 되자면, 당의 위대한 선택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환호)(2부, p.511)
조명희의 산문으로 보이게 적은 이 글의 문체는 최인훈의 문체이다. 최인훈이 바로 조명희를 테제로 삼고 그의 삶은 허무하게 하지 않으려는 허구적 창조 신화가 여기에서 허구적 상상력으로 발휘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이룬 것이다. 조명희는 적어도 소련에서 체제를 비판하고 조명희 식의 사회주의 건설, 이를 테면 마르크시즘에 기초해서 일인 일당의 독재체제가 아닌 권력의 분산과 개인의 평등권이 보장되는 사회개혁을 꿈꾸다가 제거되었다는 논리를 수립하고 있다.
조명희의 <낙동강>에서 이 심오한 사상적 체계로 연결시키려는 최인훈의 의지의 산물이다. 외부의 적과의 심각한 투쟁, 내부의 심각한 투쟁을 거쳐 노동자 계급의 위대한 공동체 즉 사회주의가 달성된다는 이 논리는 적어도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논리가 투영된 변증법적 사고논리인 것이다. 이는 1930년대를 혁명의 시대로 보낸 조명희에게 있어 이념적 당위성이자 어쩌면 역사적 전망이기도 했다. 자기의 죽음을 너무나 허망하게 보낸 로자의 삶을 재조명하고 그에게 역사적 조망을 제시하고자 하는 선언적 산문의 장치는 바로 사실을 허구로 재구성하는 장치적 구실을 한다. 이는 역사적 결정론을 믿고 자본론을 믿은 소설의 실천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조명희에게 바쳐질 수 있는 이론적 토대였다.
그러나 최인훈이 산 세월의 사정은 달랐다. 1990년대 한국적 상황은 세계의 이데올로기의 변화 속에서 이제 실천적 이념의 시대, 마르크시즘에 기초한 더 이상의 역사발전 논리가 세계 발전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자리에 있다. 1990년대 현실에서 지난 80여 년 간 사회주의 체계의 흐름을 통람하면서 나올 수 있는 최인훈의 논리는 적어도 단순히 대립과 투쟁의 변증법을 넘어선 조화와 통일의 새로운 세계관적 모습이다. 이는 역사에는 결정론도 허무주의도 없다는 것으로 역사에 대해 경험론적 토대에 입각해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 나라에 실천문학이 성행하고 곧 민중의 실천논리가 사회화로 참된 민주화의 지름길이라는 인식이 지배한 시기였다. 6·13 호헌조치에 대한 거국적 반대시위가 그러했고 직선제를 통한 문민정부의 민주화 현실이 그러했다. 그러므로 닫힌 사회로 규정된 우리의 근대가 합리적 설자리를 잃어 버렸다. 냉전의 시대,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화해와 다원화의 시대로 바뀌어져 모든 문학자들이 나름의 철학과 문학논리를 찾을 때, 최인훈은 <화두>를 꺼냈다.
그러므로 그의 화두는 현실이며 현실에 입각한 가능성의 논리이다. 변증법적 현실을 극복하고 제시되는 현실은 마르크시즘의 역사적 대안으로서 아직 구체적 방법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그 현실 자체를 극복하려는 대응 논리로서의 화두이다. 그러므로 <화두>가 서 있는 자리는 대립과 갈등의 시대의 종결을 선언하고 새로운 시대의 출현을 예고하는 데서 마친다. 테제 조명희의 죽음을 합리화함으로써 그에게 참다운 삶의 논리를 부여하고 시대적 삶 자체를 이념의 희생양으로 파악하려고 하는 근원적 역사의식은 바로 남이나 북,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전체주의와 개인주의를 지양하고 이 둘의 통합을 통해 조화해 가려는 논리이다. 말하자면 주인-노예의 변증법에서 노예가 주인으로 화하는 변증법적 주체의 인식으로 개인도 사회의 주인이라는 새로운 사회의 시작을 구체화하는 이데올로기적 담론인 것이다.
1990년대적 현실에서 나온 <화두>는 최인훈의 소설 쓰는 작업(이는 <화두>로 묘사된다)을 추적하는 작업이며 나의 테제인 조명희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주체의 정립과정, 진정성의 추구에 있다. 1990년대 소설적 모험에서 작가는 작가의 이야기를 현실의 추상화와 허구의 접목 속에서 자신의 주체 형성을 그린 것이다. 오늘날 자신을 잊고 살아가는 세대들에게 이 소설은 타자를 통해 주체를 해체하고 노예의 인식에서 벗어나 주인으로 주체를 정립함으로써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학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의 소설은 주체-이념의 와해 시대에 진정성을 추구하고 참된 소설을 시도해 보려는 자신을 해체하는 자기 실험적 정신이 가열찬 문학임에 틀림없다.
(김주현·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