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머리 국밥
2022년 7월 31일 주일 점심에 특별 메뉴가 등장했다. 올해 구순(九旬)의 김옥규 원로권사가 아들의 건강 회복을 위해서 기도해 준 성도들이 고마워서 대접한 소머리국밥이다. 소머리국밥은 탄수화물, 단백질, 식이섬유, 비타민B1, B2, C, 레티놀, 베타카로틴, 칼슘, 칼륨, 철, 인 등의 영양소가 들어 있는 영양 보양식이다. 그런데 이 국밥은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손질하는 과정이 매우 힘들어 유능한 조리사의 수고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마침 이화식(李花植) 원로권사가 이 일의 유경험자여서 그에게 소머리 국밥 임시 셰프를 맡겼다. 그는 봉평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봉평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방년(芳年) 20세 되던 1968년에 결혼하고 강릉에서 가정을 꾸렸다. 남편 건강이 약하여 슬하의 삼 남매를 키우면서 이 권사는 식당을 운영하며 가장 노릇을 병행했다. 가난해도 자녀들을 굶주리고 싶지 않은 모정(母情)이 선택한 직업이다. 그러다가 제주도로 건너가서 본격적으로 국밥집을 운영했는데 거기서 그는 억척스럽게 일하며 자녀들을 잘 키웠다. 막내아들이 대학 갈 즈음 2000년대 초에 국밥 식당을 접고 다시 시댁 고향 강릉에서 새 삶을 살았다. 지병으로 고생하던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남게 되자 고향 봉평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고향교회에서 행복하게 신앙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 이력 때문에 이 권사는 소머리 국밥 일일 셰프가 된 것이다. 소머리 국밥의 주재료는 당연히 소머리다. 미리 주문하여 4 등분한 소머리가 도착했다. 이 국밥은 잡냄새 제거가 최대 관건이다. 소머리는 뇌(腦)뿐만 아니라 입, 코, 귀, 눈 등 사람으로 치면 얼굴을 의미한다. 특히 코나 입은 각종 여물을 먹는 기관이다. 반추(反芻) 동물인 소는 이미 위장에 저장한 여물을 토해내서 되새김질한다. 소의 혀는 냄새의 온상지다. 이처럼 잡내가 깊게 밴 소머리를 국밥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유능한 조리사의 손길을 거쳐야 하는 이유다. 이 권사는 원문자(元文子) 권사, 전춘옥(全春玉) 원로권사의 도움을 받으며 국밥 주방장 직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우선 소머리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초벌 삶기에 들어간다. 이때 소주 400㎖, 월계수 잎 5장, 다진 마늘 5티스푼을 넣고 잡내가 날아가도록 뚜껑을 열고 1시간 정도 센 불로 삶는다. 초벌 삶기가 끝나면 찬물에 여러 번 씻어준다. 박박 문질러 소머리 사이사이 틈을 잘 닦고, 귓속과 콧구멍을 가르고 안쪽 부분을 잘 닦아낸다. 특히 소의 입천장에서 냄새가 심하므로 오돌오돌한 흰색 부분과 혓바닥의 흰 껍질을 벗겨낸다. 이 작업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1시간 20분 정도 센 불로 소머리를 끓인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끓기 시작한 후 2~3시간 푹푹 삶는다. 센 불과 중간 불로 조절하며 1시간 정도 끓이면 노란 기름이 뜨는데 모두 걷어낸다. 우설(牛舌)을 건져내고 30분 더 끓인다. 젓가락으로 껍데기 부분을 찔러서 잘 삶아졌는지를 확인한다. 부드럽게 들어가면 잘 익은 것이다. 소머리를 건져내고 1시간 이상 식힌 후에 소머리를 먹기 좋게 썬다. 뜨거운 상태로 썰면 뭉개질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부위마다 식감이 다르기 때문에 구분해서 썰어야 좋다.
염천(炎天)의 태양이 온 대지를 녹여버릴 기세로 이글거리는 한여름에 에어컨 바람조차 들어오지 않는 주방은 소머리 삶아대는 화기와 육수 끓는 열기가 더해져 어느새 한증막을 방불케 했다. 몇 달 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어깨를 마음대로 쓸 수 없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화식 권사는 이렇게 소머리와 사투하고 있었다. 무거운 소머리를 가마솥에 옮기는 과정도 칠순의 그에게는 만만치 않은 중노동이다. 주방의 솥이 크지 않다 보니 소머리를 한 번에 삶지 못해서 이런 과정을 네 번 거치는 동안 긴긴 여름 해는 태기산(泰岐山) 너머로 자취를 감추고 산골 마을 밤하늘에 별이 총총 떠 있을 때가 되어서야 일차 준비가 끝났다.
이튿날 7월 30일 잡뼈들을 모아 푹 고는 일 등 남은 손질 때문에 이 권사는 이른 아침에 주방 문을 열었다. 잡뼈는 국밥의 육수를 만드는 재료다. 잡뼈들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어깨 부상을 조심해야 하기에 여러 번 나누어서 옮겨야 했다. 차근차근 뼈를 삶으며 육수를 마련했다. 화구에서 뿜어내는 화기가 달구어 놓은 주방의 열기를 빼고자 주방 뒷문을 열자 밖에는 태양 열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도 더위와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잘 삶아진 소머리는 먹기 좋게 썰어야 한다. 무거운 소머리를 번쩍 들어서 국밥 재료를 준비하는데 말 없는 도우미 전춘옥 권사가 같이 거들었다. 젊은이들도 힘든 일을 이들은 평생 하던 일이라 힘들지 않다면서 기쁘게 감당했다. 지난날 생업으로 하던 일이 주의 성전에서 성도들을 섬기는 일로 탈바꿈되자 무더운 날 이들이 흘리는 구슬땀에는 그들만이 믿음 안에서 느끼는 희열(喜悅)이 있었다. 콧노래도 부르다가 흥에 겨워 가락에 맞춰 억제할 수 없는 이 권사의 어설픈 춤사위 한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힘에 벅찬 일이지만 이화식 권사는 이렇게 쓰임 받음에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몸이 회복되지 않았거나, 나이 들어 병약해 골골하면 지금 병원에 누워 그 누군가의 손길로 도움받을 처지가 아니던가? 그런데 건강하게 국밥 제조 기술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권사는 그저 감사와 기쁨이 가득할 뿐이다. 교통사고로 잠깐 병원에 있어 본 경험 때문인지 이 권사는 소머리 국밥에 담긴 하늘의 은총을 상기시키면서 남은 삶도 이렇게 주를 위해 일하다가 가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다. 그의 모습에서 무더위보다 더 뜨거운 주를 향한 사랑의 열정이 빗어낸 아름다운 헌신을 본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로마서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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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머리국밥의 셰프 이화식 원로권사와 도우미 전춘옥 원로권사
전춘옥 원로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