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감리회 조선연회와 에인즈워스 감독
보아즈 감독이 4년의 임기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자 그 후임으로 에인즈워스 감독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에인스워스(魚仁洙, William Newman Ainsworth) 감독은 1872년 2월 10일 미국 조지아 주 카밀라(Camilla)에서 케이트 맥레니(James Thomas Ainsworth)와 케이트 맥레니(Kate L. McRaeny)의 아들로 태어났다. 1891년 에모리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893년 메리 니콜슨(Mary Nicholson)과 결혼하고 4남매를 낳았다. 1891년 남조지아연회에 허입하고 그레이스처치, 메이컨, 몬트섬, 베인브리지, 더블린, 말버리스트리트 등지에서 목회했으며 웨슬리가 인디언 선교를 했던 사바나의 웨슬리기념교회에서 목회했다. 조지아에서 목회하는 동안 에인스워스는 명설교가로 이름을 날렸고 절제운동, 초교파연합운동에 힘을 썼다. 1909년에 메이컨에 있는 웨슬리안 대학 학장으로 봉직했다. 이때 에인스워스 학장은 중국 유학생 쑹아이링(孫謁齡), 쑹칭링(孫慶齡) 쑹메이링(孫美齡) 자매를 학장 집에서 지내도록 했으며 그들의 학업을 도왔다. 나중에 쑹칭령은 쑨원(孫文)의 아내가 되고 쑨메이링은 장제스(蔣개石)의 부인이 된다. 이들 아버지 쑹자수(孫嘉樹) 목사 역시 메이슨 대학의 졸업생이었다. 이로 인해 에인스워스는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과 친분을 가지게 되었고 아시아 선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03년 에인스워스 목사는 멀버리스트리트교회에서 돌아와 다시 목회를 했으며 1918년 5월 애틀랜타에서 개최된 남감리회 총회에서 감독으로 선출되었다. 감독이 된 이후 그는 텍사스, 미시시피, 앨라배마, 테네시, 버지니아, 조지아를 담당했다. 해외로는 쿠바, 중국, 일본, 조선선교를 담당했다. 1926년 에인스워스 감독은 조선에 들어와 연회를 주재하였는데 그것이 1926년 9월 9월 2일~6일까지 경성 종교교회에서 개최된 제9회 조선연회다. 이때 조선선교 30주년을 맞이하는 미남감리회는 선교사 35명, 조선인 목회자 179명, 6개 지방에 446개 교회, 총 교인수 19,085명으로 집계되었다. 백형기, 김준옥, 신후승, 유덕수를 집사목사로, 선교사 브래넌을 장로목사로 안수했다. 이 연회에서 에이스워스 감독은 특히 2년 전부터 추진된 남북 감리교회 합동에 관한 일을 더욱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또한 에인스워스 감독은 1927년 9월 8일~13일까지 경성 종교교회에서 개최된 제10회 조선연회를 주재했다. 이 연회는 남감리회가 조선에 선교한 지 30주년 해였기에 ‘조선 남감리회 30주년 기념 행사’거행했다. 또한 남북감리회 연합위원회에서 마련한 ‘남북감리회 합동안’을 승인하고 1930년 미국 남감리회 총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장종식, 서원필, 문인숙, 송정근, 김형식에게 집사목사 안수식과 최초로 김흥순, 윤흥상 목사의 은퇴식을 거행했다. 제11회 조선연회가 1928년 9월 5일~9일까지 원산 상리교회(후에 원산중앙교회)에서 개최되었을 때 이 회의를 주재했으며 특히 남북합동과 교회진흥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을 결의했다. 그는 1929년 9월 4일~9일까지 경성 종교교회에서 개최된 제12회 조선연회를 주재했다. 이 연회에서 양주삼 목사를 시베리아 연회 관리자로 임명했고, 1930년 미국 총회에 참석할 목회자 대표에 임두화, 김인영 목사, 평신도대표에 구영숙, 이춘호를 선임했다. 이들은 남감리회 총회에 참석하여 ‘남북감리교회 합동안’을 승인할 필요성에 대해 강력하게 호소하였다. 1929년 에인스워스 감독은 남북 감리회의 합동을 위한 마지막 작업을 잘 마무리하고 조선선교 관리자로서의 임기를 잘 마쳤다.
에인스워스 감독이 조선연회 관리자로 있으면서 남감리회는 시베리아 선교회를 관리하였다. 그가 조선연회 관리감독으로 부임하던 1926년에 북간도지방이 조직되었다. 이때 에인스워스 감독은 시베리아 선교처 관리자로 양주삼 목사를 임명하였으며, 양주삼 목사의 사회로 제1회 북간도지방회가 1926년 11월 11일부터 12일까지 두도구(頭道溝) 예배당에서 개최되었다. 에인스워스 감독은 1926년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용정예배당에서 개최된 제6회 만주선교회, 1927년 9월 1일부터 2일까지 용정예배당에서 개최된 제7회 만주선교회를 주관했다. 1927년에는 제2회 북간도지방회가 11월 15일부터 16일까지 국자가(局子街) 예배당에서 양주삼 목사의 사회로 개최되었다. 이어서 제8회 시베리아선교회가 1928년 9월 29일부터 10월 2일까지 용정예배당에서 모였다. 남감리회 시베리아선교회는 제9회를 개최하고 통합되어 만주선교연회로 새로이 조직되었다. 제9회 시베리아선교회는 1929년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용정예배당에서 에인스워스 감독의 주재 아래 개최되었다. 이때 임명기를 보면 선교처 관리자는 양주삼 목사, 시베리아지방에 김영학(金永鶴) 감리사, 그 아래 니시(尼市)시내, 수청(水淸), 몽고가(蒙古街), 연추(煙秋)구역이 있으며, 간도지방에는 이화춘(李和春) 감리사 아래 두도구(頭道溝)-이도구(二道溝), 국자가(局子街), 어후평(於厚坪), 옹성습자(甕聲磟子), 백초구(百草溝), 대두천(大肚川), 경신향(敬信鄕), 동구(東溝)구역이 있었다. 남북 감리회의 통합으로 시베리아 선교회는 만주 선교연회로 새롭게 조직되어 조선감리회시대를 여는 밑거름이 되었다.
에인스워스 감독은 조선연회 관리 감독의 직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감독직을 성실하게 수행한 후 그의 나이 66세인 1938년에 은퇴하고 노스캐롤라이나 애쉬빌에 거주했다. 1942년 7월 7일 향년 70세에 별세하여 고향인 메이컨 리버사이드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에인스워스(魚仁洙, William Newman Ainsworth) 감독
남감리회 한국연회 제10회연회와 창립 30 주년 기념 축하연(1927.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