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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시대(士師時代)와 유다 지파의 족보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삿 2:16)
...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삿 1:21) ...사람들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사 21:25)
사사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으로 가나안 땅에 진입한 후 왕정이 들어서기까지 약 400년 기간을 말합니다. 사사란 판관이라는 말이며, 판관은 오늘날 법을 집행하는 법관 또는 공무를 담당하는 행정관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들은 지파별 또는 지역을 대표하여 백성들을 다스리는 행정관이며, 전시에는 군대를 통솔하는 지휘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군주제도를 원하지 않으셨고(삼상 8:9), 하나님이 왕의 역할을 하는 신정정치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사사시대 지도자나 백성들은 이런 제도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이방 신을 섬기고 이방 제도를 모방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제도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실패합니다. 백성들이 여호수아가 살아 있을 동안은 하나님을 섬겼지만, 주전 1390년경 여호수아가 죽자 여호수아와 맺은 “세겜 언약(수 24:25)”을 어기고, 바알 신을 섬겼기 때문입니다(삿 3:7).
컴퓨터에서 사사시대를 검색하면 백과사전에서 “사사시대는 기원전(주전) 13세기에서 11세기경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부터 왕정으로 접어들기 이전까지의 시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이 없는 상태에서 도덕적 혼란과 방종으로 빠져들었던 극도의 혼란기를 이른다.”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왕이 없다는 말은 군주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겨야 할 왕, 하나님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지역 주민들을 쫓아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섬기는 사악한 신 바알과 그 풍습과 제도를 진멸하라는 뜻입니다.
사사시대를 두 가지 표현으로 나타내면 하나는 “쫓아내지 못하였다”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했다”입니다. 사사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지역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한 것이 사사기 1:19부터 8회나 언급되고 있고, 자기 소견대로 했다는 말이 3회나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사사시대는 종교적 타락과 경제적, 사회적 혼란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사시대입니다. 그러나 사사시대의 이해는 이것으로 부족합니다. 사사시대는 지도자와 백성들이 세겜 언약대로 하나님을 섬겨서 신앙은 레위기 제사법을 지키고, 생활에서는 레위기 희년법을 지켰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단순한 삶의 방식을 지키지도 못하고, 그 제도가 가진 영적, 현실적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현실 정치인 행정과 사법은 지역별 대표로 뽑힌 사사를 중심으로 하며, 생활은 지파별로 분배된 기업에서 백성들이 각자 희년법을 지키며, 공동체를 운영하는 지방자치를 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제도를 잘 다듬고 제대로 운영을 했으면, 이스라엘은 아주 이상적인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이상적인 나라란 사람이 왕이 되어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 소수가 사회를 지배하는 정치를 하게 되는 군주제도(삼상 8:10~18)를 하지 않고서도, 오늘날의 정치가 꿈꾸는 이상적(구조적 흠이 가장 적은, 온전한)인 민주사회나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제도적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왕이 없는 지방자치제에서 지도자와 백성들은 내적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제도적으로는 지방자치제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이 제도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합리적으로 개선, 발전시켜 나가야 했습니다. 백성들의 생활에 필요한 행정이나 경제활동은 지파별 지방자치단체가 맡고, 종교(제사), 정치, 군사, 외교 등은 12지파가 하나로 뭉친 연합 공동체로 하는 운영의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곧 오늘날 연방제 국가가 하고 있는 중앙집권과 지방자치를 효율적으로 분담하는 운영 방식을 찾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사시대에 대한 골격을 만들어 주시고, 이를 현실에 맞도록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위임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사시대에 백성들이 경제생활을 어떻게 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경제생활을 덮어두고 사사들이 하고 있는 종교나 정치, 전쟁과 사회적 혼란에 대한 것만 알고 있다면, 사사시대는 절반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사사시대 경제활동은 이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이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간접적이나마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입니다. 이것이 사사시대에 유다 지파의 족보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사사시대에 들어있는 유다 지파의 인물을 따라서 그 시대의 삶을 추적하면, 사사시대의 경제생활이 어떠했는지를 간접적이나마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사사시대 유다 지파의 족보 개관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룻 1:1)
사사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시기별로 대체로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유다 지파에서 사시시대의 초기 족보에 들어가는 이름은 라합과 살몬(살마)입니다. 그런데 라합과 살몬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없습니다. 이 라합과 살몬이 살았던 시대와 배경, 그리고 신분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이를 기록한 역대기 족보마저 특이한 모습(종족별 분류)으로 기록되어서 계보 파악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필자가 라합과 살몬의 족보에 대하여 몇 번에 걸쳐서 길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만큼 필자가 보기로는 라합과 살몬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연구도 부족했다는 뜻입니다.
그다음은 라합과 살몬의 혈통과 기업을 물려받은 룻과 보아스입니다. 룻과 보아스는 사사시대 후기의 인물입니다. 라합과 살몬에서 얽히고설킨 사사시대의 초기 역사를 반영하는 족보가 그 이후는 족보에 이름조차 없는 단절 상태가 되어 이 상태가 또 오랜 기간 계속됩니다. 그러다가 룻과 보아스가 등장하여 비로소 정상적인 족보로 회복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윗의 등장, 곧 다윗과 그 자손들의 족보입니다. 물론 사사시대에 다윗의 족보는 다윗이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라고 베들레헴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 때까지입니다. 그러면 유다 지파의 족보는 기생 라합과 그 남편 살몬, 그리고 이 가계와 기업을 회복하고, 이은 룻과 보아스를 따라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다윗까지의 계보입니다. 그러므로 사사시대에 계보에 들어있는 인물은 라합과 살몬, 룻과 보아스, 그리고 이새와 다윗은 세 가족뿐입니다. 세 가정의 가족사가 들어있는 것이 사사시대 300년 역사를 압축한 유다 지파의 족보입니다. 이 세 가족에 대한 계보는 룻기·마태·누가복음에서 족보에 오른 이름과 대수가 모두 일치하며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이 족보에 이름이 오른 가계를 따라서 베들레헴에서 왕이 나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합니다. 이 세 가족의 300년 역사가 사사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있는 전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가계와 가족사는 많이 듣고 배워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사사시대의 시조인 라합과 살몬, 이 라합과 살몬의 가계와 기업을 이은 룻과 보아스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사사시대는 라합과 살몬, 그리고 룻과 보아스의 가족에 대한 300년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 두 가족의 족보와 300년 가족사 안에 들어있는 계보의 파악과 시대적 배경, 삶의 방식 등을 알면 사사시대 전체의 흐름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사시대는 사사들이 주도한 사회는 타락과 부패, 전쟁과 내분으로 인한 혼란의 역사입니다. 한 예로 사사시대에 종교 지도자인 레위인이 베들레헴에 사는 여성을 첩으로 두었고(삿 19:1), 그 첩이 또 비류들에 의하여 욕을 당하여 죽습니다(삿 19:25,26). 그런데 레위인은 첩의 시체를 열두 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12 지파에 보냅니다. 이로 인해 지파별로 내전이 일어나고, 사건에 연루된 베냐민 지파는 소속된 남자가 전멸을 당하다시피 하는 피해를 입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사사기 19장, 20장의 내용이며, 그 진통은 21장까지 이어집니다. 이것이 사사시대가 보여주는 타락과 혼란의 한 단면입니다.
그러나 사사시대의 유다 지파의 족보에 들어있는 라합과 살몬, 룻과 보아스의 기족사 이야기는 이러한 음란하고 살벌한 비극의 역사와는 다릅니다. 사시시대의 라합과 살몬, 룻과 보아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소망을 안겨주는 역사와 따뜻한 내용들이 담겨있습니다. 이들은 주류가 이끄는 사사시대의 주류들과는 달리 그 시대에 주류들에게 밀려나 있거나 홀대를 받고 있는 비주류들입니다. 사사시대 족보의 시조가 기생 라합, 그 족보를 이어온 모압 여성 룻의 신분이 특이합니다. 그리고 이들 가족이 가진 신분의 특성이 비주류의 역사를 이어오는 사사시대의 대표적 인물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사시대 주류들이 종교적 타락과 혼란한 사회를 만들어 족보가 끊어질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생 라합을 세워서 사시시대의 시조로 삼고, 끊어진 계보는 총회에 들지도 못하는 모압 여성을 룻을 불러서 계보를 다시 회복시키고, 잇게 하십니다. 이들은 주류들이 지키지 않는 레위기 생활 규례와 희년법을 지킨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주류들이 끊어놓은 주류들의 족보를 다시 회복시켜 이어주는 자들입니다.
라합의 후손과 사사시대 족보의 세 가지 수수께끼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마 1:5)
라합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사사시대의 시조입니다. 그런데 사사시대의 족보에서 라합과 그 후손들은 적어도 세 가지 정도의 수수께끼가 생깁니다. 첫째, 기생 라합에게 분배된 기업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둘째, 라합의 후손, 곧 사사시대의 족보가 왜 초기부터 장기간 끊어져야만 했는가? 그리고 셋째, 엘리멜렉의 계보를 왜 기생의 후손인 보아스가 이어야 하는가? 하는 주제들입니다. 이것이 사사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풀어야 할 세 가지 수수께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수수께끼에 대하여 쉽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라합이 약 1400여 년간 성경과 역사에서 덮여있다가 마태복음 족보가 라합과 살몬을 소개함으로써 비로소 그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족보가 라합의 이름을 알려주어도, 우리가 그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않기 때문에 다시 지금까지 약 2000년간 라합의 이름은 덮여 있습니다. 그래서 라합과 그 후손에 대한 족보는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사사시대의 시조 라합에 대해서는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고, 관심도 없고, 연구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누가복음 족보에서 스룹바벨의 할아버지 대에서 네리와 스룹바벨의 관계, 또 스룹바벨의 직계 후계자인 레사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언급을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족보상의 수수께끼입니다.
기업이 없는 라합의 가족과 자손들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수 6:25)
우선 사사시대의 시조, 기생 라합에게 분배된 기업이 있었는가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기생 라합을 불러서 사사시대를 여는 여리고 성 진입에서 쓰임을 받게 하십니다. 그리고 라합과 라합의 남편 살몬(살마)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시조로 이름을 올리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베들레헴을 그들의 가족과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기 위해 여리고 성 정탐꾼을 보낼 때부터 준비를 하십니다. 여호수아게 살몬(살마)을 비공개(가만히)로 선택하여 여리고로 보내는 등 준비를 하셨습니다(수 2:1). 그래서 라합의 도움으로 여리고 성 진입은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라합의 여리고 성 진입은 성공하였고, 여리고 진입은 가나안 땅의 정복에도 교두보(橋頭堡)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생 라합이 가나안 땅 정복 후에 어떻게 살았는지는 우리가 모르고 있습니다. 라합과 그 가족들이 살아야 할 기업이 있었는지에 대한 주제를 말합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말이 없습니다. 라합은 신분이 기생인 것을 보면 가족들은 가난하게 살고 있습합니다. 더구나 라합과 가족들은 여리고가 고향이지만, 여리고가 베냐민 지파의 기업으로 분배되어 거기서 살 수도 없었습니다(수 18:21).
그러므로 라합과 가족들은 남편이 유다 지파이므로, 유다 지파 살몬(살마)의 계보를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라합이 베들레헴에 살았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라합의 직계 후손이 베들레헴 사람 보아스이기 때문에 그렇게 추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곧 라합은 가족과 함께 일찍이 남편인 살몬(살마)을 따라서 여리고에서 베들레헴으로 이주를 하였고, 거기서 정착하여 살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라합 가족이 베들레헴으로 이주를 한 것은 룻기에서 나오미와 룻이 모압에서 생활고를 겪으며 살다가 베들레헴으로 들어와서 생활 문제를 해결 받는 것과 닮았습니다(룻 1:19). 물론, 족보상으로도 라합과 살몬, 룻과 룻의 남편 보아스는 같은 혈통, 같은 기업을 이어받은 직계 후손입니다.
그런데 라합의 가족이 베들레헴에 살기는 하지만, 베들레헴에서 분배받은 기업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라합이 기업을 분배받기 어려운 이방 족속이고, 여성이며, 직업도 천하디천한 기생이었습니다. 라합은 기업이 없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같은 사사시대에 사는 입다의 경우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삿 11:2)
입다는 룻과 같이 사사시대 후기의 사람입니다. 므낫세 지파의 소속인 길르앗의 아들이고, 용사이지만 기생의 아들이기 때문에 기업을 잇지 못하고 본처에서 난 이복형제들에게 쫓겨납니다. 모세의 율법은 두 아내가 있을 경우 차별하지 말고 장자권을 주라고 했으므로(신 21:16,17), 서자도 기업 상속권을 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입다는 기생의 아들이므로 상속권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라합도 기생이었고, 더구나 이방 여성이므로 기업을 분배받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 전체에서도 장자권을 가진 주류입니다. 이러한 주류가 기생 신분인 라합을 혈통상의 가족으로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진멸하거나 쫓아내어야 할 가나안 족속이었고, 그들과는 언약도 혼인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신 7:2,3). 라합은 거기에다 율법이 불륜으로 보는 직업을 가진 기생입니다(레 20:10, 신 22:22, 요 8:5).
특히 사사시대는 모세의 율법을 따르기보다 각자 자기 소견대로 살았으므로, 유다 지파의 주류들도 기생 라합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어렵습니다. 자기 소견대로 사는 시대, 특히 주류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를 지켜주거나 이득이 되는 계명은 잘 보이지만, 같은 신명기를 보더라도 그 안에 들어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라는 말씀은 보기가 어렵습니다. 주류들 입장에서 자기들은 늘 희년의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적 약자에게나 필요한 레위기 희년법이나 신명기 면제년 규례는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 신명기가 기업이 없는 자를 돌보라는 말씀은 수차례에 걸쳐 신신당부를 했어도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으며, 눈에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물론, 그들도 율법을 따라서 습관을 따라서 틀에 박힌 구제는 하고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정도의 경제관을 가지면, 레위기 희년법이 보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사사대에 족보에 오를 유다 지파의 주류 세력들도 길르앗이 기생 아들 입다를 대하듯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유다 지파의 주류들이 자기 지파로 편입된 라합에게 기업을 주지도 않고 홀대를 했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사시시대는 라합에서 시작하여 적어도 약 5대는 끊어져 버립니다. 주류들은 자기들만 자리를 지키려고 하다가 자기들이 먼저 족보에서 끊어져 버리는 창피를 당합니다.
그리고 라합이 살았던 베들레헴은 지리적 이해도 필요합니다. 베들레헴은 여호수아의 토지분배에서 지명이 나오지 않습니다. 베들레헴이 작은 마을이긴 하지만(미 5:2), 그래도 사사시대에 베들레헴은 기업이 없는 레위인이 그곳에 살기도 하였고, 또 다른 레위인과 첩의 친정 가족들이 살기도 합니다(삿 17:7,19:2). 여로보함이 왕이 되어서는 그가 예루살렘에 거주하면서 베들레헴을 견고하게 하는 건축을 하기도 했습니다(대하 11:6).
곧 베들레헴은 작은 마을이지만, 여호수아의 토지분배에서 나오는 여러 촌락과 마을과 같은 마을 중에 하나입니다(수 15:48~62). 사사시대 후기의 일이지만, 룻기를 보면 보아스가 기업 무르기를 할 때 성문에서 증인으로 입회를 하는 장로들이 10명이나 되는 것을(룻 4:2,9) 보아도 베들레헴은 토지분배를 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의 토지분배에서 지명이 기록되어야 합니다. 또 베들레헴은 앞으로 다윗 왕이 태어나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할 곳이므로 더욱 기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록이 없습니다.
베들레헴이 여호수아의 토지분배에서 이름이 없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사시시대 초기에 베들레헴은 여부스 족속이 사는 예루살렘과 인접 지역입니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의 거리는 길게보면 10km 직선 거리로는 7km 밖에 되지 않습니다. 제가 자란 시골 마을은 한 동네에서도 산지가 많고, 면적이 넓어서 행정 구역으로는 길이가 8km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은 크게 보면 한 지역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여부스(예루살렘 옛 지명) 족속은 가나안 진입 당시 유다 지파가 쫓아내지를 못했습니다(수 15:63). 그 후 베냐민 지파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삿 1:21). 여부스는 이로부터 400년이 지나서 다윗에 의해 통일 왕국 된 후에 쫓아낼 수 있었습니다(삼하 5:6,7). 그러므로 사사시대에도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7~10km 안에 있는 인접 지역으로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이었으므로 여호수아가 토지분배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은 베냐민 지파와 인접한 접경지이므로 경계도 불확실했습니다.
또 하나의 근거는 베들레헴은 애굽 종살이를 하던 때 헤스론이 애굽을 나와서 거주하다가 죽은 곳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헤스론이 베들레헴 거주했다는 말은 없지만, 헤스론이 베들레헴에서 죽어서 장사되었습니다(대상 2:24). 헤스론의 직계 후손 갈렙의 아내가 베들레헴 지명을 가진 에브랏 또는 에브라다입니다(대상 2:19, 4:4). 갈렙의 손자인 살마가 ‘베들레헴 조상(대상 2:51,54)’이므로, 이미 그곳에 살마 족속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의 토지분배에서 베들레헴은 이미 유다 지파의 자손들이 살고 있어서 토지분배를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정황과 라합 가족들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라합이 베들레헴에 살기는 하지만, 공식적으로 분배를 받은 기업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나 유다 지파 주류들이 기생 아들 입다의 경우와 같이 라합의 가족들과 그 후손에게는 기업을 분배하지 않았고, 살고 있는 터전을 라합 가족의 기업으로 인정하지도 않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또 베들레헴은 여부스 족속의 세력권 안에 있어서 분배하기가 사실상 어렵고, 이미 유다 지파 중 갈렙, 훌, 살마의 3대와 그 후손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기업을 분배할 필요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라합이 살고 있는 베들레헴과 그 기업의 상속권 문제는 여호수아의 토지분배에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아서 기업의 상속권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 기업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의해 관습적으로 인정이 되고 있거나 서로 복합적으로 얽혀있음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땅은 원래 주인이 없는 천연물이기 때문에 상속권이 분명하지 않으면, 그 지역 주민들에게는 서로 토지에 대한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어있습니다.
살몬(살마)과 보아스 사이에 끊어진 계보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마을들과 아로엘과 그 마을들과 아르논 강 가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주한 지 삼백 년이거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삿 11:26).
사사시대는 주전 1406년 가나안 진입에서 다윗이 왕이 된 주전 1010년경까지 약 396년 기간입니다. 여기서 여호수아 통치 기간을 약 16년~20년으로 잡고, 사울이 왕이 된 주전 1050년경까지를 사사시대로 보면, 사사시대는 약 340년 기간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여호수아와 사울은 유다 지파가 아니므로, 족보상의 사사시대는 살몬에서 다윗이 왕이 된 30세까지를 사사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보아스의 아들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이므로 오벳에서 다윗까지는 3대에 걸쳐 약 90년~100년 기간입니다. 여기서 라합과 보아스의 기간은 오벳에서 다윗까지 3대의 기간을 제외하면, 약 300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은 입다가 말한 사사시대 300년과도 기간이 거의 일치합니다(삿 11:26).
이 300년 기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살몬과 보아스 2대뿐입니다. 여기서 300년 기간 안에 들어있는 사사시대 초기 인물 살몬과 후기 인물 보아스가 살은 기간을 제외해도 그 기간은 약 250년이 됩니다. 그런데 이 250년 기간은 어림잡아서 약 5대는 이름이 빠져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연대와 족보에 빠진 대수 5대의 추정은 추정일뿐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 추정은 이 시대에 평균 수명을 감안하여 빠진 대수를 5대 정도로 추정한 것에 불과합니다. 만약 이 시대에 평균 수명이 엘리 제사장처럼 98세까지 살았다고 보면(삼상 4:15), 300년 기간은 약 3대가 겹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기간입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이 98세에 아들을 낳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 제사장이 30세에 아들을 낳았다면 98세를 살았어도 세대 간 간격은 30년입니다. 그러므로 시대별 평균 수명과 시대별 평균 세대수 간격 차이는 서로 개념부터 다릅니다.
그리고 사사시대의 족보가 3대가 빠지든, 5대가 빠지든, 그 빠진 대수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사사시대는 이름을 빼버렸는지, 이에 대한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족보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시대적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깨달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대체로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사사시대의 죄악 때문입니다. 사사시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백성들이 여호와를 떠나서 자기 소견대로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살펴보면, 시대마다 큰 문제가 있었으면 그 시대에 족보에 오를 이름을 제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종교적 타락과 사회적 혼란이 심했던 사사시대에도 그 시대의 대표적 책임자는 족보에서 이름을 빼버린 것입니다.
둘째, 유다 지파의 주류 세력들이 이스라엘 중심부에 사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한 책임을 지운 것입니다.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아낙 자손이 살아서 난공불락이 요새 헤브론도 믿음 하나로 정복을 했습니다(수 11:21, 14:6~9). 그러나 장자권을 가진 유다 지파의 주류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여부스를 그냥 포기하다시피 하고 훗날 다윗이 정복할 때까지(삼하 5:7) 오랫동안 그 상태로 있었습니다. 이것 하나만 해도 족보에 이름일 빠질 이유가 됩니다.
셋째, 기생 라합에 대한 신분상의 차별 문제가 관련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은 기생 라합과 그 후손들에게 무슨 과오가 있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족보는 세상적으로 보면 족보에서 언급할 필요가 없는 여자 이름, 그것도 기생인 라합의 이름을 굳이 들추어내면서 공개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라합의 신분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그를 특별하게 대우하여 소개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 시대의 족보에 오를 주류 사람들이 라합을 신분상의 이유로 홀대하여서 그 책임으로 족보에 이름이 오르지 못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사례가 라합과 그 후손들에게 생업의 터전인 기업을 분배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주류의 월권이고, 횡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마태복음 족보가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족보는 공적 대표자, 곧 그 시대의 주류를 중심으로 계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류들은 생업의 터전인 기업을 이방인이고, 기생의 후손이라고 분배를 하지 않았으면, 주류로서 해야 할 시대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족보가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14대만 추려서 기록하는 족보이기 때문에 시대마다 이름을 선택하거나 제외하는 결정이 필요한 데, 이렇게 사람을 차별하여 기업을 주지 않는 주류는 계보에서 빼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같은 시대에 5대가 빠져도 기생이었던 라합은 남편 살몬과 함께 이름을 넣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런 점을 특히 유의해야 합니다.
넷째, 누가복음 족보는 기업의 상속권 소유가 중심인 사적인 대표자를 계보에 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족보에 이름이 오르려면, 희년법과 기업의 상속법을 지켰어야 합니다. 이것은 누가복음 족보에 이름이 들어가는 기준은 각자가 자기 기업만 있다고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가계 대표자로서 권리와 의무를 준행해야 합니다. 가계 대표자는 친족이 속한 범위 안에서(넓게는 지파 전체에서) 희년법과 기업 상속법을 지켜야 하는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갈 자격을 갖춘 유다 지파의 주류(장자권자)들은 이러한 희년법 의무를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보아스가 어떻게 족보에 오르며, 기업의 상속권을 이을 수가 있을까?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룻 1:2)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신 25:6)
필자는 희년법을 공부해 온 사람이므로 룻기의 중심 주제인 계대결혼과 기업 무르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룻과 보아스가 준행한 계대결혼(룻 1:11,12)과 기업 무르기(룻 2:20)는 희년법이 추구하는 가계와 기업을 속량의 방식으로 회복하는 경제의 구원방식입니다. 이렇게 경제를 구원하는 방식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는 십자가의 속량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구원의 방식인 속량(贖良, 고엘, redemption)은 인간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론이며, 신구약 66권의 성경 전체에 걸친 핵심 주제이고, 근본 바탕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룻기의 중심 주제인 계대결혼과 기업 무르기를 매우 중시합니다.
그런데도 필자는 룻기를 읽으면서 늘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룻과 보아스가 낳은 아들은 그 이름을 죽은 엘리멜렉의 후계자로 이어주어야 합니다. 기업의 상속권도 그렇습니다. 본문 신명기 25:6에서 보듯이 형이 아들이 없이 죽으면, 아우가 형수에게 들어가서 아들을 낳아주고, 그 씨를 형의 아들로 입적하여 법통상의 족보를 이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명기 25장이 말하는 계대결혼입니다.
또 족보에 필요한 기업 무르기나 상속권 승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룻기 4:6에서 보듯이 이름도 없는 “아무개”는 자기에 돌아온 기업 무르기의 권리와 의무를 포기합니다. 그 이유는 아무개가 값을 치러서 무르기를 하면, 그 기업이 자기의 것이 되지 않고, 형수와 죽은 형의 혈통으로 이어지는 것이므로 자기는 재산 손실이 발생한다면서 그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고 맙니다. 또 창세기 38:8,9에서도 오난은 형수인 다말에게 씨를 빌려주려고 들어가기는 했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설정을 해버립니다.
그 이유는 형이 죽었으므로 형에게 돌아갈 기업이 내 것으로 상속될 수 있는데, 형수에게 씨를 빌려주게 되면 그 기업은 형수와 형수의 아들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행동이 악하였으므로 그를 바로 죽게 합니다(창 38:10). 그리고 신명기는 이런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하여 죽은 형제의 씨를 이어주기가 싫으면, 장로들이 증인이 되어 신발을 벗기고 침을 뱉으며, “신 벗긴 자의 집”이라고 공동체에서 공개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형제와 친족, 나아가서는 이웃을 위해 세워놓은 생활경제의 권리와 의무를 준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기업의 상속권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입니다.
이처럼 계대결혼과 기업 무르기는 값을 치르는 속량자(대속자, 고엘) 자신에게 혜택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도움이 필요한 자가 속량(구원)의 혜택을 입습니다. 그러므로 룻과 보아스가 행한 계대결혼과 기업 무르기는 죽은 엘리멜렉의 이름으로 족보와 기업을 이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포로기 초기에 스룹바벨도 친아버지는 브다야이지만(대상 3:17~19), 그의 계보는 친아버지(브다야) 계보를 잇지 않고, 계대결혼으로 법통상의 아버지가 된 스알디엘의 계보를 잇습니다(마 1:12).
그러므로 사사시대 룻기의 주역인 룻과 보아스가 준행한 계대결혼과 기업 무르기는 그 계보가 죽은 엘리멜렉의 계보로 이어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보아스의 친아들 오벳이 보아스의 아들이 아닌 엘레멜렉의 법통상의 아들로 족보에 이름이 올라야 합니다. 그런데 룻기·역대기·마태·누가복음 족보는 룻이 낳은 오벳이 보아스의 가계를 이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보여주는 하나의 수수께끼입니다.
그다음 또 하나의 의문은 보아스가 기생 라합의 계보를 잇는 것입니다, 기생 라합의 후손은 기업이 없는 것이 분명하고, 그래서 족보가 사사시대 300년(또는 250년) 역사에서 적어도 5대는 족보가 끊어져 있는데, 그 족보에서 이름이 엘리멜렉에게로 가지 않고(엘리멜렉->오벳), 보아스가 올라가며, 상속권도 보아스의 이름으로(보아스->오벳) 이을 수가 있느냐 하는 주제입니다.
이 주제는 작게는 우리가 생활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희년법의 생활원리를 바로 알고, 이를 삶에서 실행해야 하는 실무적 준수 사항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크게는 희년법으로 한 나라와 한 시대를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구원방식을 이해하고, 그 구원방식대로 살아가야만 하는 필수적 생활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룻기를 보더라도 룻기에 대한 이해를 “영적”이라는 명분을 붙여서 종교적 측면과 윤리적 부분만 말하고 그칩니다. 곧 룻은 이방 여성이지만, 하나님께 신앙고백을 하여서 구원을 받았고, 시어머니에게 효도하여 구원자인 보아스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복을 받았다고 합니다(룻 1:16). 그리고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룻에게 인애(헤세드)를 베풀었고, 그를 따라 다윗 왕가가 일어나고, 메시아의 계보를 잇는 복을 받았다고 전하고 그칩니다.
룻기에 대한 이런 풀이는 틀린 것이 하나도 없으며,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룻기를 보면서도, 이런 종교적, 도덕적인 것만 보고, 룻기가 말하는 중심 주제인 계대결혼과 기업 무르기의 방법론이 무엇인지를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활에서 실제로 지켜야 하는 생활 실무인데 이를 모르면,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어떻게 됩니까? 이것은 자동차를 운전하는 운전기사가 차선이 있는 줄을 모르거나 교통신호등도 보지 않고, 시(시편)를 읊조리고, 노래(찬송)를 하면서 운전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룻기를 읽으면서도 계대결혼법과 기업 무르기로 희년법을 지켜서 가계를 일으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어가는 생활에 필수적 실천 규례를 모르면, 그것은 룻기를 읽는 의미가 거의 없습니다. 심하게 표현하면 그런 룻기의 이해는 ‘소귀에 경 읽기’와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구약의 제도인 계대결혼과 기업 무르기를 복음시대인 지금도 문자적으로 이행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율법을 지켜야 할 시대에 그 율법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았어야, 지금에도 그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는 어떻게 성취가 되었고 변화되었으며, 완성되어 가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복음으로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우리가 생활에서 삶을 통하여 제대로 누리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룻기를 보아도 그 풀이를 종교적, 윤리적 범위로만 한정, 축소해서 접근하고, 로마서처럼 죄 문제와 영혼의 구원 사역으로 바로 넘어가기만을 반복하면, 룻기가 가진 내용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칩니다. 룻과 보아스가 행한 속량, 특히 특히 기업 무르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활에서 토지 거래에서 실제로 준행해야 하는 실무 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땅이 가진 특성으로 인하여 생존권이 걸린 토지문제를 과학적, 합리적, 효율적으로 해결하고, 구약시대에 시장경제를 가장 부작용 없이(적게) 운영하는 유일한 방식이었습니다.
레위기 희년법은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레 11:1~8),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것(막 7:2,3), 시장에서 파는 음식을 먹어도 되는가 하는 것(고전 10:25)과 같은 자질구레한(?) 율례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것은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영생의 조건을 물었을 때, 예수님이 부족하다고 그 한 가지와 같이 큰 것입니다(마 19:16~22). 희년법 순종 여부가 작게는 하나님의 족보에 내 이름이 올라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선택기준과 결부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홍해를 건넜어도 약속의 땅을 거부하여 첫 희년을 지키지 못한 광야의 백성들과 같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희년법의 준수 여부는 크게는 한 나라의 시장과 경제 구조, 그리고 한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한 필수적 생활 수단으로써 삶과 생명의 본질 문제가 걸려있는 중차대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사사시대에 엘리멜렉과 보아스는 누가 그 계보에 이름이 들어가야 하는가 하는 주제는, 나의 삶에서 경제적 생존과 자유가 담보로 걸려있다고 할 만큼 큰 주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생활에서 하나님이 주신 상급이 나에게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선택과 판단기준에서도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룻기를 보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보더라도 이런 안목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사사시대 300년간 끊어진 족보의 수수께끼(비밀)를 우리가 제대로 찾아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성경은 그런 관점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읽어야 하고, 그렇게 풀고 전하는 노력만이라도 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사사시대에 끊어진 족보 300년 역사를 지금 다시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이미 다룬 바 있는 유다의 3대손인 헤스론과 후손들에 대한 족보를 다시 보아야 합니다. 곧 역대상 2장 18절에서 4장 4절까지의 족보에서 유다 지파 헤스론과 갈렙의 후손들이 갈라놓은 세 개의 계보를 다시 살펴보고, 추정이라도 해보아야 하는 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