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지인知人
知人章, 所以次前者, 前章, 明君王守道, 則萬物自貧. 此章, 明所貧服, 有道之君. 此一章內, 物有三句. 具一意, 連次而來. 遂分爲四. 第一, 明自知. 自知, 則明了. 第二, 明自勝. 自勝, 則全强. 第三, 明知足强行, 安貧樂道. 第四, 結其死. 而不亡. 善其不違天理.
지인知人 장이 앞 장 다음에 놓인 까닭은 앞 장이 설명했기 때문이다. “군주가 도道를 지키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와) 손님이 된다.” (따라서) 이 장은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와) ‘손님’이 되어 따르는 바, (다시 말해) 도道를 가진 군주의 모습에 대해 설명한다. 이 한 장 안에서 (그러한 군주의) 모습은 3가지를 가진다. 그리고 1가지 (모습)의 의미가 연이어 (2개의 문장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문단이) 나뉨에 이르러 4개가 된다. 첫 번째 문단은 설명한다. “(본래 일부러 일삼음이 ‘있음’이 어슴푸레한) 자신(自; 性)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러한) 자신을 알아차리게 되면, (불교에서 말하는 자신의 숙명과 업보에 대해) 밝아지게 된다.” 두 번째 문단은 설명한다.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자신을 이겨내야 한다.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자신을 이겨내게 되면, 온전하게 굳세지게 된다.” 세 번째 문단은 설명한다. “(본래 일부러 일삼음이 ‘있음’이 어렴풋한 자신의) 분수(分; 性)를 지키고, (그것을) 굳세게 일삼게 되면, 빈곤을 편안하게 여기게 되고, 도道를 따라 즐겁게 살아가게 된다.” 네 번째 문단은 결론짓는다. “(몸과 마음) 이것은 (‘이내’) 사라진다. (그러나 도道는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도道에 대한 절개와 지조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몸과 마음) 이것이 (‘끝내’) 천리天理를 거스르지 않게 하기를 잘해야 한다.”
第一, 明自知. 自知, 則明了.
첫 번째 문단은 설명한다. “(본래 일부러 일삼음이 ‘있음’이 어슴푸레한) 자신(自; 性)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러한) 자신을 알아차리게 되면, (불교에서 말하는 자신의 숙명과 업보에 대해) 밝아지게 된다.”
知人者智.
(앞에 있는) 다른 사람을 (비추어) 살피는 사람은 (그 근기와 본성의 크기와 깊이를) 알아차리게 된다.
謂照達前境. 鑒人機性, 大小深淺, 無不悉知. 此, 是他心智.
(“지인知人”은) 앞에 있는 대상을 비추어 (그것에) 다다른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근기(根機; 機)와 본성(本性; 性)을 살펴서, (그것이) 큰지 작은지 깊은지 얕은지, 빠짐없이 “알아차린다”는 말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타심지他心智’이다.
自知者明.
(앞에 있는 다른 사람을 비추듯) 자신을 살피는 사람은 (자신의 숙명과 업보에 대해) 밝아지게 된다.
自知己身. 宿命善惡, 三代報應, 無不明了. 此, 是宿命智.
(“자지自知”는) “스스로” 자신의 몸(身; 機·性)을 (살펴서 빠짐없이) 알아차린다는 말이다. (따라서 자신의) 숙명宿命의 선善·악惡이나 삼대三代의 업보業報가 “밝혀지지” 않음이 없게 된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숙명지宿命智’이다.
第二, 明自勝. 自勝, 則全强.
두 번째 문단은 설명한다.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자신을 이겨내야 한다.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자신을 이겨내게 되면, 온전하게 굳세지게 된다.”
勝人者有力.
(앎의 힘이) 남을 이기는 사람은 (하늘의 악마를 항복시키게 되고, 이단을 제거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
智力勝人. 威能制物, 所以降伏天魔, 剪除異道. 此, 是降魔智.
(“승인勝人”은) 앎의 힘이 남을 이긴다는 뜻이다. (이른바, 앎의) 위세가 만물을 제어할 수 있게 되면, 따라서 하늘의 악마를 항복시킬 수 있게 되고, 이단異道을 제거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항마지降魔智’이다.
自勝者强.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굳세지게 된다.
自能克服己心, 制諸累欲, 累欲不起, 智慧日損. 此, 是斷惑智.
(“자승自勝”은) “스스로” 자신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마음을 극복한다는 뜻이다.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 겹겹이 쌓여 있는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를 제어하게 되면, (따라서) 그것이 일어나지 않게 되고, (일부러 일삼은) 지혜가 날로 덜어지게 된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단혹지斷惑智’이다.
第三, 明知足强行, 安貧樂道.
세 번째 문단은 설명한다. “(본래 일부러 일삼음이 ‘있음’이 어렴풋한 자신의) 분수(分; 性)를 지키고, (그것을) 굳세게 일삼게 되면, 빈곤을 편안하게 여기게 되고, 도道를 따라 즐겁게 살아가게 된다.”
知足者富.
분수를 지키게 되면, (도道와 덕스러움德이) 넉넉해지게 된다.
守分, 知足. 無復貪求. 非直財賄不貧, 亦乃道德豐富. 又解, 並鑒有無, 則萬境俱照. 智無不足. 故受富名. 此, 是知足智.
(본래 일부러 일삼음이 ‘있음’이 어슴푸레한 자신의) 분수(分; 性)를 지키는 것이 “지족知足”이다. (그러한 자신의 분수를 벗어난 채) 다시금 (무엇을) 탐하거나 (일부러 일삼아) 구하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나치게 재물이 궁색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이내 도道와 덕스러움德이 넉넉해지게 된다. (덧붙여) 다른 해석은 다음과 같다. “(‘이내’ 일부러 일삼음이) ‘있음有’과 (‘본래’ 일부러 일삼음이) ‘없음無’을 더불어 살피게 되면, 만물의 (‘본래’ 일부러 일삼음이 ‘없는’) 모습이 더불어 비추어지게 된다. (따라서) 지혜로움이 부족함(을 가짐)이 없게 된다. 따라서 부富와 명예를 얻게 된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지족지知足智’이다.”
强行者有志.
굳세게 일삼는 사람은 (도道에 대한) 절개와 지조를 가지게 된다.
志, 節操也. 志力旣强, 卽發引誓願. 務在先人後己. 外身濟物. 至於道場, 終無退轉.
“지志”는 (도道에 대한) 절개와 지조를 의미한다. (이른바, 도道에 대한) 절개와 지조의 힘이 이내 “굳세지게 되면”, 이내 (수행에 대한) 서원을 펼치게 되고, 이끌게 된다. (따라서) 타인을 (자신의) 앞에 자리하게 한 채, 자신을 (타인의) 뒤에 자리하게 하는 데 힘쓰게 된다. (따라서) 자신을 멀리한 채,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게 된다. (따라서) 도道의 경계에 이르게 되고, 마침내 (그것에서) 벗어나거나 어긋나는 바가 없게 된다.
第四, 結其死. 而不亡. 善其不違天理.
네 번째 문단은 결론짓는다. “(몸과 마음) 이것은 (‘이내’) 사라진다. (그러나 도道는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도道에 대한 절개와 지조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몸과 마음) 이것이 (‘끝내’) 천리天理를 거스르지 않게 하기를 잘해야 한다.”
不失其所者久.
그것이 그렇게 되도록 하는 바를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위세와 명성이) 오래 보여지게 된다.
應機赴感, 隨病與藥, 咸使得宜, 不失其所. 以斯接物, 久. 而强固.
(비유컨대) 기미와 어우러져 마음이 나아가게 하는 일, 병病에 따라 약藥을 주는 일, 명령을 미치게 하되 마땅함을 얻는 일, (이것이) “부실기소不失其所”이다. 이것으로써 세상 사람들을 대하게 되면, (자신의 위세와 명성이) 오래 보여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굳세지게 되고, 단단해지게 되기 때문이다.
死而不亡者壽.
(몸과 마음은 ‘이내’) 사라지겠지만, (그때까지 도道에 대한 절개와 지조를 ‘끝내’)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은 (명命대로) 오래 살게 된다.
行願具足, 內外道圓. 理, 當不死不生, 無夭無壽. 而今言死而不亡者, 欲明死, 而不死不壽, 而壽也. 應身遷謝, 名之爲死. 聖體常在, 義說爲壽.
(“사死”는 몸과 마음이 ‘이내’ 사라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도道는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몸과 마음의) 수행과 서원이 더불어 (도道에) 충족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마음과 몸 곧) 안과 밖에서 도道가 원만해져야 한다. 도(道; 理)는 마땅히 (몸과 마음처럼 ‘끝내’) 사라지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 도道는 몸과 마음처럼 ‘끝내’) 요절하는 바도 없고, “장수하는 바”도 없다. 요컨대, 지금 “사이불망死而不亡”이라는 일컬음은 “(몸과 마음은 ‘이내’) 사라지는 바이지만, (도道는 몸과 마음처럼 ‘끝내’) 사라지는 바도 아니고, 장수하는 바도 아닌데, 따라서 (몸과 마음이 사라질 때까지, 도道에 대한 ‘수행’과 ‘서원’을 몸과 마음에서 ‘끝내’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하고) 장수하게 해야 함”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덧붙여, 마음이나) 몸과 어우러져 옮겨가고 물러나는 것, 그것을 이름 지어 불러 “사死”라고 한다. 성스러운 본체體로서 언제나 자리하는 것, (그것을) 뜻하여 일컬어 “수壽”라고 한다.
첫댓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모두 저의 부족함 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