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 출처 : 정요한목사님 대하설교 ' [347 마태 5:17-48 너희도 온전하라]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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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37, 맹세에 대한 새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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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33절上: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구약 율법으로 말씀하시기를) ...
→ 신명기 23:23에서 말씀하신 바
5장33절: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입으로) 맹세한 것을 (그대로)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 이러한 율법을 따라 우리는 기본적으로, 절대 헛맹세를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혹시 맹세(말)를 했다면, 입으로 맹세한(말한) 그대로 실행하는 신실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믿음이 있다고 하는, 성경을 안다고 하는,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진실에서 벗어난 거짓 맹세(거짓 말)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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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6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새번역: 아예)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 예수님께서는 신23:23의 진정한 율법의 의미를 말씀하고 계시다. 맹세란 자신의 진실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행해지는 것으로써, 맹세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진실성이 의심받고 있는 증거인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맹세를 선호하고 남발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는 것이고, 맹세 없이도 상대방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성실하고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함을 예수님께서 교훈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일평생 세례식, 결혼식, 임직식 3번정도만 맹세를 할 수 있고, 그 이외에는 맹세 없이도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진실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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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가 맹세 대신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계시다. 예수님께서는 성도가 맹세 대신에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함을 강조하고 계시다. 우리는 ‘옳다’ 나 ‘아니다’ 라는 분명한 대답으로 진실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려고 하는 거룩한 언어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분명하고 진실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떤 마음이 있어서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것이 악한 것임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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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42, 복수에 대한 새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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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38절: 또 (구약 율법에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 구약의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은 조폭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런 개인 행동지침이 아니라! 재판장이 공식적으로 공평하게 집행하는 구약의 정의로운 법이었다. 출21:24과 레24:20에서 이미 배웠던 것처럼 ‘동해보복법’ , ‘탈리오의 법’ 은 이런 엄한 법이 있음으로 인해서, 힘 좀 있고 돈 좀 있다고 약한 자들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공평의 법이었다. 함부로 했다가는, 가해자가 아무리 부자이고 권력자라 할지라도 자신이 약자에게 행한 대로 똑같은 처벌을 받게 되기 때문에 힘 있는 사람들이 조심할 수밖에 없는! 약자를 향한 부자와 권력자들의 범죄를 막기 위한 예방적 차원의 법, 즉, 하나님의 약자 보호법이었던 것이다. 이제 그 동해보복법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해석을 하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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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절上: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
→ 가슴에 새겨야 할 말씀이다. 한 번씩 유투부에서 목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만스럽고 악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조회수를 가져가는지 모른다. 그리고 오늘날 포항에서도 대부분의 교회들은 약화되고 있는데 오히려 그런 교회에 순간적으로 성도들이 집중되면서 성장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성장은 곧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아무런 의미없는 성장이다. 우리는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아야 한다. 본문의 말씀에는, 공의로운 심판은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대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우리도 심판은 온전히 공의의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맡기고! 개인적 차원의 복수는 물론, 법정에서의 고발까지 성도는 하지 말아야 함을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즉,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악한 자, 피해를 끼친 악한 자에 대하여 어떤 복수도 삼가라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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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39절下: ...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 당시 고대 근동에서 손으로 뺨을 때리는 것은 매우 모욕적인 일이었다. 특히 히브리인들은 주로 오른손을 사용하기 때문에, 오른편 뺨을 때렸다는 것은 정면에서 손등으로 쳤을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유대 풍습으로 볼 때 손등으로 뺨을 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는 것보다 2배나 모욕을 주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때에도,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은 왼쪽 뺨도 돌려 댈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그 어떤 경우에도 직접적으로 복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온유한 무저항적 자세로 마치 십자가의 길을 가신 주님처럼 그 고통과 모욕을 견디어 낼 것을 교훈하고 계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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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절: 또 너를 고발하여 (값싼)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값비싼)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 혹시 고소당하고 고발당했을 때 묵상해보아야 할 말씀이다.
41-42절: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오늘날 성도들이 공의로운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무저항적이고 희생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이런 성도들의 선한 행실을 지켜본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자연스럽게 전도가 되게 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세상 속의 소금과 빛의 모습이요, 세상 속의 거룩한 제사장 나라의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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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3-48, 이웃사랑에 대한 새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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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43절: 또 (구약 율법에서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 ‘네 이웃을 사랑하라’ 는 가르침은 레위기19:18에 나오는 반면,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표현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후자는 성경의 가르침 이라기보다는 당시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이미 자리잡고 있었던 당시의 보편적인 교훈, 당시의 보편적인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 하에 있었으므로 로마인과 반민족적인 유대인들을 공공의 적으로 생각하고 증오심을 갖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당시 시대상들을 지적하시면서 이웃 사랑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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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나 예수님께서는 천국 시민된 성도들에게 이러한 숭고한 수준에까지 자라나기를 요구하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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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절上: 이같이 (행)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아들로 입증되리니) ...
→ 번역이 좋지 않다. 아들로 입증되리니 라는 의미이다. 본문은 성도의 실제 행동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정도에까지 이르러야 함★을 말씀하시는 중요한 내용이다. 우리의 행실이 이러한 수준에까지 이르러야만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함을 받게 된다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전도가 된다는 중요한 말씀인 것이다. 이와 같은 성숙한 신앙을 가지기 위해 더 애쓰고 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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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절: 이같이 (행)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아들로 입증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참아주시며 그 해를 동일하게 악인과 선인에게 비춰주시며, 비를 영원히는 아니지만 일정기간동안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동일하게 내려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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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46-48절: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좁게는 21절 이하의 결론이고, 넓게는 5장 전체의 결론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이미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셨던 하나님의 명령이 생각나게 하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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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수준높은 의로움의 모습이 바로 소금과 같이 맛을 내는 삶, 등불과 같이 빛을 비추는 삶의 모습인 것이다. 이런 모습이야 말로 거룩한 제사장 나라! 진정한 전도자의 모습! 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오늘날 신비주의에 빠진 교회들처럼 거짓 능력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 5장의 주님의 말씀과 같은 크리스천의 참된 능력을 추구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까지, 정요한 목사님 대하설교 [347 마태 5:17-48 너희도 온전하라] 의 내용이었습니다. 산상수훈은 마태복음 5장~7장까지로, 내일부터는 그 3번째 대하설교 [대하설교 348 마태 6장, 천국 백성의 물질관] 의 녹취내용을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