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몸치의 댄스일기25 (파티에서 왈츠시범)
2003. 8. 30. 토요일. 비 내리는 날.
모던 종목의 단체반 강습을 받고 있는 댄스 스튜디오에서 정기 행사인 댄스파티가 열렸다.
파티가 시작되어서 행사일정에 따라 각 반별 시범이 있었다. 나도 동호회 소속에 따라 두 번 단체 왈츠반 시범을 보였다.
여러 팀이 어울려서 하는 거니까 그건 무난히 파트너들과 호흡을 맞춰 끝낼 수 있었다. 제너럴 타임에는 오로지 왈츠 한 종목만 가지고 왈츠 음악이 나오면 동호회에서 알고 있는 숙녀 분들과 왈츠의 기본을 가지고 즐기는 흉내라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라틴음악과 왈츠 이외의 타임에는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아쉬움과 한심한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왈츠를 배우면서 내 기억에 남는 여러 가지 일들이 수없이 많이 발생했다.
오늘 이 파티도 내 일생에서 잊혀 지지 않는 날이 될 것 같다.
몇 달 전 6월 달에 첫 댄스파티와 왈츠 시범을 보인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무모한 행동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그런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그 꼴이었던 사건이었다.
이번 파티는 그래도 그 때에 비하면 약간은 댄스에 대해서 눈을 뜬 시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당시보다 왈츠의 베이직도 조금 더 잡혔고 기초 스텝과 루틴도 훨씬 익숙해진 편이었다.
나의 관심은 이번 댄스파티에 스승과 제자간의 시범 발표에 나에게 왈츠를 가르치시는 김정현 원장님과 나와 왈츠 시범이었다.
김정현 원장님은 댄스계에서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모던부분 프로 챔피언 경력이 몇 번 있었다. 각종 국제경기 참가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 댄스공부를 하신 분이셨다.
늘씬한 몸매의 우아한 자태 사부님이시지만 여성으로서도 너무나 아름다우신 분 그리고 댄스의 최고 고수님.
대중 앞에서 이 분과의 왈츠 시범이란 왈츠를 배우는 입장에서 내 개인적으론 이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 있을까.
시범이 시작되기 전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사회를 맡으신 동호회의 떡봉님께서 왈츠입문과 연습과정을 간단히 소개하시면서 일부러 나를 불러내서 긴장을 풀어 주셨다.
김정현 선생님은 제자와의 시범인데도 마치 큰 대회에 출전하는 프로 현역 선수보다 더 아름답게 꾸미시고 정말 멋진 댄스 드레스 등 뒤가 깊이 파여진 고급 드레스를 갈아입고 나타나셨다.
현역 시절 챔피언 먹었을 때 입었던 고급 드레스인지도 몰랐다. 선생님의 의상이나 댄스화 머리치장 모두 품위 있고 고급스런 액서서리로 몸단장을 하신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난 정말 행운아인 것 같았다.
세계 정상급 프로 선수라도 이보다 더 멋지고 아름다운 파트너와 왈츠를 즐길 수 있을까 싶은 황홀감마저 들었으니까.
어쨌든 이 시범에서는 그 분이 나의 왈츠 파트너이시니까.
왈츠 경력 몇 달 만에 나처럼 운이 좋은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댄스의 최고수 챔피언 출신의 아름답고 세련된 숙녀님과 이런 시범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남성이...
내 기분이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나의 왈츠 음악 체인징 파트너가 시작되었다. 난 순간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처음부터 황홀경에 빠졌다.
그렇지만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오히려 연습할 때보다 나의 정신은 더 맑아지는 것 같았고 또렷해짐을 의식했다.
스타트 선에서 우선 마주선 파트너에게 인사를 한 후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난 왼팔을 들어올려 파트너를 맞을 신호를 보냈다.
파트너를 맞이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거만한 자세 양팔을 벌리고 상체를 세우고 활개를 폈다.
그리고 그 순간의 내 파트너 최고 고수님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숙녀가 내게로 미소를 지으며 음악에 맞춰서 사뿐사뿐.
나도 큰 무대에서 시합을 벌이는 최고의 선수가 된 양 홀딩을 하고 기분 좋게 찰싹 붙여주시는 파트너의 체취를 느끼며 스타트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도 생각 안나는 것 같고 그러면서도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흘러갔는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날 것 같으면서도 아련한 세상의 무의식 세계를 경험한 것 같기도 했다.
지켜보시는 분들이야 내 표정 내 동작이 어설프고 불안하고 어색한 동작 하나하나가 보였겠지만, 난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여유도 없었다.
순간순간 나는 연습 때처럼 높이 올라갈 때는 한없이 끌어올라가고 싶었고 다운과 스윙 때는 쿠션을 주어서 다리를 내뻗었다.
오히려 연습 때보다 스텝과 루틴을 일부러 의식하지 않아도 그냥 무의식적으로 되어가는 것 같았다.
오로지 내 몸에 익혀진 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스텝을 생각할 틈도 음악 박자를 따져볼 여유도 어떤 것도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질 수 없었다. 그게 나의 짧은 경력 햇병아리 초보의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일 게다.
각 동작에서는 평소 연습하던 때의 기억이 스쳐갔고 그때처럼만 해야겠다는 의식이 들었다.
전체적인 연결동작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생각하려도 의식하지 않았지만 각 동작에서의 포인트는 그때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 순간에는 템포를 늦출 때는 늦추고 올라갈 때는 마음껏 올라갔고 가라앉을 때는 사정없이 내려앉았다. 예상보다 잘 되어지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들이키며 한없이 높이 올라가고 싶었다. 그럴 때 나도 모르게 환희와 희열감을 맛보기도 했다.
의식하지도 않았는데 붙여주는 파트너의 기분 좋은 바디 텐션에 묘한 쾌감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픽쳐라인 부분 [콘트라첵]과 [오버스웨이]에서는 더욱 의식이 또렷해졌다. 내 파트너가 불편하지 않도록 중심을 잃지 않도록 나의 자세를 더 똑바로 세웠다. 선생님이 평소 가르쳐 주신 대로 배를 들이켜서 여성이 그 공간에 흡입될 수 있게 해야 된다는 것까지 의도적으로 의식할 수 있었다.
댄스라인(LOD)을 흘러가는 동안에 줄지어서 지켜보시는 관객들의 찬사와 환호가 내 귀에 어떤 때는 아련히 어떤 때는 또렷이 들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의 시선에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난 위쪽을 바라보며 시선이 아래쪽으로 떨어질까 내 몸의 자세가 흐트러질까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어떻게 흘러갔는지 마지막 음악의 소절이 끝날 때쯤 나도 이미 계획된 풀코스를 돌아서 엔딩부에 도달해 있음을 그때서야 알아 차렸다.
난 마지막 정신을 가다듬고 아름다운 내 파트너 최고 고수님이신 우리 선생님을 멋있게 보여드리기 위해 오버스웨이로 끝을 맺었다.
잠시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음악도 이미 멎어 있었다. 박수 소리가 우레처럼 들렸고 환호성이 들렸다.
그제야 난 내 파트너를 일으켜 세워 드렸다.
나의 파트너 우리 선생님도 얼굴 가득히 만족스런 미소를 띠시며 손을 잡고 관객들을 향해 인사를 드리고 우리 파트너끼리도 마주 보고 인사를 한 후 나의 팔짱을 끼시고 자리로 에스코트해 드렸다.
난 그때까지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이었다. 아니면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내 정신이 아니었다. 그냥 몽롱한 의식이었다.
사람들이 다가와서 칭찬을 해주었지만 난 건성 답례를 했다.
잠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내 정신이 돌아온 듯 했다. 하지만 내가 과연 무얼 했나 정말 우리 선생님을 모시고 내가 왈츠를 추었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곧 현실이었음이 입증됐다.
김정현 선생님과 함께 나의 댄스 사부님이신 홍순지 원장님께서 나에게 꼭 영화 [쉘위댄스]를 본 느낌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웃으시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파트너를 해주셨던 김정현 원장님이 일부러 내 곁으로 다가오셔서 정말 잘했다. 평소보다 훨씬 잘 했다고 하시면서 안면 가득히 웃음을 띠시는 걸 보고서야 나도 정말 왈츠시범을 했구나하는 실감을 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오히려 알지 못할 흥분감이 몰아닥쳤다. 그리고 곰곰이 내가 한 과정을 돌이켜볼 여유도 생겼다.
물론 좀 더 잘 할 걸 다시 한다면 조금 더 잘 할 것 같은 기분도 들었지만 어느 때보다 큰 후회가 되거나 결정적인 실수를 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대로 아쉬움 중에도 만족스런 시범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선배님들 눈에야 아직도 모자라고 부족하고 서툰 감이 파악되겠지만 몇 개월의 왈츠 경력을 가진 나로서는 더 잘 할 수 있는 실력도 기술도 없는 게 나의 한계인 듯 했다.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후회할 수 없는 최선을 다한 나의 기량이었다.
이제 시간을 두고 차분히 배운 걸 또 다듬고 여유롭게 세련되게 하는 과정을 거쳐야 원숙해질 게다.
나로서는 멋있고 잊을 수 없을 수 없는 좋은 경험이었다.
이런 행운을 안겨주시고 나를 빛나게 해주신 사부이신 김정현 홍순지 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댄사모] 댓글
Hera
흔히들 연습 때는 잘 하다가도 막상 경기나 시범에선 당황해서 루틴도 잊어버리고 음악도 잘 안 들린다는데 소개된 대로 3개월 밖에 안되셨다면 경력이 무색하리만치 의젓하게 잘 하시던걸요~ 추카함다!!! 03.09.01 17:01
답글 blue
...츄카츄카~~ 그리고 정말 부럽읍니다. 저도, 훌륭한 선생님에게서 개인레슨 한 번 받아보았으면...*-_-*... 03.09.0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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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2. 6 다음카페 [사즐모]에 “예전글”이란 제목으로 재탕으로 올렸던 댓글.
댓글
에뜨랑제 07.02.07 00:38 첫댓글
한 마디로 부럽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그러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날이 오리라고 기대해 봅니다.
눈동자2 07.02.07 09:47
반듯하고 우아하게 자기 기량 다해서 음악 한곡에 온 정열을 불태울 수 있다면 .... 청노루님 왈츠 시범에 부러움만 안고 갑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아름답습니다. *^&^*
겨울나그네 07.02.07 09:49
왈츠 입문 3 개월에 시범댄스라면 아주 대단하십니다....저는 3년 넘어섰는디도 버벅대고 있으니.....미티긋네유....좋은 글 용기 얻고 갑니다.
군주 07.02.07 14:13
청노루님 반갑습니다. 김정현 샘이야 참피언 하신 거 맞고요. 그때는 홍순지 선생님이 아니시고 김운제 선생님이었습니다. 저도 김정현 샘한테 1년 동안 모던을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벌써 10년 전이니까 청노루님이 사제네요...ㅋㅋ
무지개빛1 07.02.07 16:23
말이 되나요? 6월에 첫시범이고 8월에 또 시범 보이신거면서 3개월 됐다면.......6월 시범은 배운지 한달만에 시범? 글 읽어 보면 단체반 몇달, 개인 몇달 내내 베이직만 하셨다는 글도 있던데......정확히 이 시범이 왈츠 시작하신지 얼마나 된 시점이신데요?